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81
81화 빨리, 샌더슨 경을!
◈ 다음 날, 버틀러 경의 집 거실.
버틀러 경 내외와 세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의사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뚱뚱한 풍채의 의사는 연신 땀을 닦아 내며 곤혹스러워했다.
“이거 참, 지난주와는 상태가 또 달라져서··· 지금으로서는 뭐가 확실한 원인이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어제부터 악화된 엘리사의 상태가 오늘 새벽 들어 급격히 나빠지자, 급히 의사를 모시고 와 진료를 받았다.
그러나 의사는 병의 원인조차 잡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저번에 주신 약을 먹여도 아무런 차도가 없는데, 그럼 다른 약을 처방해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버틀러 부인의 말에 의사가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글쎄요, 저는 저런 괴상한 병증을 의사 생활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다른 약을 준다고 효과를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따뜻한 차를 먹이고 쉬도록 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을듯싶네요.”
버틀러 부인이 몇 번을 주저하다 물었다.
“선생님, 혹시 우리 엘리사가··· 말을 못 하게 된다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까요?”
그녀의 말에 의사가 황당해했다.
“네? 말을 못 하고, 앞을 못 보다니요. 허허, 그건 너무 지나친 걱정이십니다. 단지 기력을 못 찾아 계속 몸에 힘이 빠지는 것뿐이지, 말하고 보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병증이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 생각에는 며칠 고비를 넘기면 다시 회복되지 않을까 합니다.”
의사는 크게 걱정할 것 없다고 안심을 시켰지만, 버틀러 부인의 표정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
의사가 돌아간 직후, 버틀러 부인은 남편과 세 아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그리고 어제 태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 그렇게 샌더슨 경은 저대로 그냥 방치했다가는 말도 못 하고 앞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하셨어요.”
조셉 버틀러 경이 노기 띤 얼굴로 혀를 찼다.
“쯧쯧, 그래서 당신이 아까 의사 앞에서 그런 이상한 얘기를 꺼낸 거였구만? 그 샌더슨 경이라는 사람 정말 국왕 폐하께 주치의 권유를 받은 사람 맞아? 고작 저런 병으로 눈이 멀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말이 안 되잖아? 당신은 너무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탈이야.”
큰아들 조나단도 어머니를 위로했다.
“어머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다른 좋은 의원을 알아보겠습니다.”
“자메이카에서 오늘 온 의사보다 더 뛰어난 의사가 어딨다고 그러니? 난 아무래도 불길해. 우리 엘리사가 죽어가고 있는 것만 같아··· 으흐흑.”
버틀러 경이 흐느끼는 아내를 나무랐다.
“거, 무슨 험한 소리야? 죽어가긴 누가 죽어가? 엘리사가 워낙 여린 성격이라서 저러는 거니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일랑 접어.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되는 문제라고.
예전에 기르던 개가 죽었을 때도 우울해하고 한 달을 저렇게 끙끙 앓지 않았소?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좋아졌고.”
“그래도 샌더슨 경은 폐하의 주치의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잖아요? 자메이카 촌구석 수준의 의사가 아니라고요! 그런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겁을 줄 리가 없잖아요? 정말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무섭게 경고했었다고요!”
“어허- 이 사람아! 샌더슨 경이 아무리 훌륭한 실력을 갖췄다고 해도, 모든 사람의 병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잖소? 제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오진을 내릴 수가···”
그때였다.
쾅-
엘리사의 시중을 드는 흑인 하녀가 문을 부술 듯 밀고 들어왔다.
“어머!”
버틀러 부인이 화들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주인마님! 주인마님!”
“왜? 왜! 무슨 일이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버틀러 부인에게 하녀가 말을 잇지 못했다.
“아가씨가··· 아가씨가···”
하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버틀러 부인과 남편, 아들들이 엘리사의 방으로 헐레벌떡 뛰어갔다.
덜컹-
“엘리사! 엘리사!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버틀러 부인이 딸을 붙잡고 미친 사람처럼 물었다.
“엄마··· 엄마···”
엘리사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래, 우리 딸! 엄마 여깄어. 왜? 왜 우는 거니? 어디가 아파?”
엘리사는 버틀러 부인의 목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엉뚱한 곳을 쳐다보며 두리번거렸다.
딸의 이상을 눈치챈 버틀러 부인의 두 눈이 무섭게 부릅떠졌다.
“너···너 눈이··· 눈이 왜 그래? 왜 그러는 건데?”
“엄마··· 무서워··· 나··· 너무 무서워. 앞이··· 앞이 안 보여. 눈을 뜨니까···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여. 으흐흑-”
“뭐···뭐라고?”
4남매의 유일한 딸이자 버틀러 부인에게 친구 같은 아이였다.
그런 딸이 갑자기 앞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샌더슨 경이 어제 경고했던 그대로의 증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두려웠다.
버틀러 부인이 반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남편에게 고함쳤다.
“이것 보세요! 샌더슨 경이 말한 대로 증상이 나타났잖아요! 아- 어쩔 거예요! 이 일을 어쩔 거냐고요! 아아-”
버틀러 경도 당황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큰아들 조나단이 다급히 말했다.
“아버지! 빨리 샌더슨 경이라는 분을 모시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괜히 국왕 폐하의 주치의를 하겠습니까? 엘리사의 병을 알고 있다니 낫게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빨리 모시고 와야 합니다!”
버틀러 경이 주저하자, 부인이 큰아들에게 숨넘어갈 듯 소리쳤다.
“조나단, 조나단! 그레이 경 집으로··· 샌더슨 경이 그레이 경의 집에 계시니까 빨리, 샌더슨 경! 샌더슨 경을 모셔와! 어서! 어서!”
“네? 아, 네, 네, 어머니!”
**
그레이 경의 저택.
똑똑똑-
“샌더슨 경! 혹시 주무십니까? 샌더슨 경?”
태오의 방문을 집사가 다급하게 두드렸다.
침대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던 태오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덜컹-
“아니 심슨 씨? 무슨 일이세요?”
“쉬고 계신 데 정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밖에 조나단 버틀러 경이라는 분이 와 계신데, 샌더슨 경을 급히 찾고 있습니다.”
“조나단 버틀러 경이라면···.”
엘리사 양의 큰 오빠로 기억됐다.
“버틀러 경의 아드님이 저를요?”
“네. 근데 굉장히 다급해 보였습니다.”
순간 태오는 엘리사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눈치챘다.
태오는 급히 코트를 챙겨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마당으로 나가보니 한 젊은 남자가 심각한 얼굴로 그레이 경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남자는 뛰어나오는 태오를 보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서 달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샌더슨 경이시죠? 저는 조나단 버틀러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신 거죠?”
“엘리사가··· 엘리사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머님께서 샌더슨 경을 빨리 모시고 오라고···”
예상한 것보다 병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빨랐다.
“네? 벌써요? 이거 큰일이군요. 빨리 가보죠!”
“네. 여기 말 한 필을 더 데리고 왔습니다. 이걸 타고 가시죠?”
“네, 빨리 갑시다.”
태오는 조나단이 건네준 말에 훌쩍 올라타 바로 출발했다.
“이랴-”
“이랴!”
따그닥- 따그닥-
이내 태오와 조나단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그레이 경이 중얼거렸다.
“하이고 당최, 이 밤에 대체 무슨 일이 난 건지···.”
◈ 조셉 버틀러 경의 저택
엘리사의 침실 앞.
태오는 버틀러 경이나 그의 아들들과는 모두 처음 보는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 인사를 나누고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었다.
엘리사의 방문 앞에 선 태오는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버틀러 양은 앞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 혼란스럽고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방에 들어가면, 절대 걱정되는 말이나 울음, 불안 등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가족분들의 지나친 관심이나 걱정은 엘리사의 신체에 생긴 질병을 오히려 악화시켜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주의하셔야 합니다. 최대한 평소의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하세요.”
버틀러 부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걱정했다.
“어떡하죠? 샌더슨 경이 오기 전에 저희가 울고불고 이미 한바탕 난리를 쳤는데요?”
“괜찮습니다. 그땐 버틀러 양도 당황해서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요. 제가 치료를 하러 온 지금부터가 중요합니다.”
급성 전환장애 증상이 나타났을 때, 당황한 가족은 환자의 증상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하거나 동조하기 쉽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냥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 그냥 괜찮다고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런 말도 필요 없습니다. 가족분들이 병에 관해 섣불리 말하게 되면 엘리사는 스스로 큰 병에 걸린 환자로 여기고 무너지게 되기 쉽습니다.
제가 들어가서, 이런 증상은 곧 자연적으로 없어지고 괜찮아진다는 걸 일관성 있게 설득할 테니, 다른 가족분들은 평소와 같은 이야기나 주변에 들은 얘기를 꺼내면서 분위기를 최대한 편안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틀러 부인이 울먹이며 물었다.
“그렇게 하면 나을 수 있는 건가요?”
“한 번에 낫는 병이 아닙니다. 서서히 좋아지게 해야 합니다. 다행히 불치병은 아니니, 병의 원인을 찾아내 치료를 하면 깨끗이 나을 수도 있는 병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네. 그럴게요. 우리 아이가 좋아만 진다면··· 당연히 그래야지요.”
덜컹-
태오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엘리사를 간호하고 있던 흑인 하녀가 얼른 구석으로 자리를 피했다.
엘리사 곁으로 다가간 태오가 밝은 목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엘리사 버틀러 양, 제 목소리가 들리시나요?”
갑자기 들려온 낯선 남성의 목소리에 당황한 엘리사였지만, 어제 만난 태오라는 걸 알고서 안심했다.
“아, 네. 잘 들려요. 샌더슨 경이시죠?”
작은 목소리에도 반응하고 태오라는 것까지 바로 아는 것으로 보아 아직 난청이나 의식 저하 단계는 아니었다.
‘휴, 그나마 다행이네.’
정신과 치료는 치료자에 대한 환자의 강한 신뢰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버틀러 양, 혹시 제가 국왕 폐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소문을 들으셨나요?”
“네, 들었습니다. 자메이카 분들이라면··· 모두 다 알고 있는 얘기죠.”
“제가 버틀러 양을 치료하려고 하는데, 저를 믿으실 수 있겠어요?”
“네···. 감사할 뿐입니다.”
충분한 신뢰감을 느낀 태오는 구체적인 상태를 하나씩 확인해 보기로 했다.
“버틀러 양, 지금 팔이나 다리를 움직일 수는 있나요?”
태오의 물음에 팔다리를 움직여 보던 엘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충분히 움직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촉각이나 감각은 어떠세요?”
“둔탁한 느낌이 드는 곳은 조금 있지만··· 대부분 느껴지는 것 같아요.”
다른 신체 기관은 정상적인 상태로 보였다.
“잘 들으세요, 버틀러 양. 지금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주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겪는 일이기도 하죠.
이걸 낫기 위한 특별한 약은 없습니다.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게 되면 금방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정말요? 정말 일시적인 현상인가요?”
“네, 그럼요. 제가 이전에도 이런 일을 겪으신 분들을 많이 치료했었거든요. 그러니 제 말을 믿고 그냥 따르시면 곧 회복이 될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조금 전까지도 불안에 떨던 엘리사가 조금씩 안정적인 감정 상태를 보였다.
태오가 지켜보던 가족에게 눈짓하자 큰오빠인 조나단이 웃으며 말했다.
“엘리사? 모건 아저씨네 아들 매튜 기억나니?”
조나단의 물음에 엘리사가 관심을 보였다.
“매튜? 아··· 기억나 오빠. 주근깨가 유독 많던 꼬마애잖아?”
“그래, 그래. 근데 말이야 어제 연회 가서 몇 년 만에 봤는데, 글쎄 나보다 키랑 덩치가 더 커졌더라고, 하하.”
“어머, 정말?”
태오의 지시대로 가족은 잘 따라 주었고, 불안과 공포에 움츠려있던 엘리사의 감정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 갔다.
*
진료가 끝난 후, 거실.
태오 주위로 버틀러 경의 가족들이 어두운 얼굴로 앉아 있었다.
“샌더슨 경. 정말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렇게 눈이 안 보인다는 건··· 우리 딸에게 어떤 큰 질병이 이미 생겼다는 것 아닌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젊은 아이가 갑자기 앞이 안 보일 수 있는 거죠?”
걱정 가득한 눈으로 조셉 버틀러 경이 물었다.
멀쩡하던 자식이 갑자기 실명한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부모라도 중병이 걸렸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 모두가 태오의 입만 쳐다보았다.
태오는 그들의 눈빛에서 엘리사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느껴졌다.
아들만 있는 집에서 유일한 딸이자 막내인 엘리사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듯싶었다.
“버틀러 양의 병은 마음의 병에서 비롯되어 신체의 질병으로 급격히 전이된 상태입니다.
다행히 아직은 충분히 나을 수 있는 상태에 있지만, 이대로 마음의 병을 치료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둔다면, 아주 무서운 신체의 질병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버틀러 양은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도 있고요.”
버틀러 부인이 바들바들 떨며 물었다.
“오, 세상에··· 그럼, 우리 엘리사가··· 저대로 영영 눈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부인이 두 손을 모아 간청했다.
“샌더슨 경, 제발··· 제발 우리 딸을 살릴 방법을 알려주세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엘리사의 상태는 제한되고 억압받은 욕구가 신체 증상으로 갑자기 전환된 경우였다.
이런 때에는 만성적으로 점차 누적된 경우와 달리, 스트레스 상황만 잘 조절해줘도 특별한 후유증 없이 빠르게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문제의 스트레스 상황이 지속된다면, 병은 만성화되고 치료가 힘들어지게 된다.
“어제 어머님의 말씀을 토대로 판단해 보면, 지금 엘리사의 문제는 레오나드 에반스 경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니 제가 말씀드린 대로 레오나드 에반스 경을 불러서 상황을 관찰해봐야 정확한 답이 나올 듯하네요.”
버틀러 경이 불편한 기색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오나드를 불러야 한다니요?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죠?”
버틀러 경은 엘리사와 레오나드의 관계를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부인께서 아직 말씀을 드리지 않았나 보군요. 저는 따님의 병이 레오나드에 대한 마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레오나드에 대한 마음이라니? 그럼 이 모든 증상이 고작 우리 딸이 레오나드를 좋아해서 벌어진 일이라는 그런 말씀이요?”
“물론 아직 제가 아직 레오나드 에반스 경을 직접 만나보지 못해서 정확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현재 증상과 사연을 들어보면 거의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버틀러 경은 태오의 진단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글쎄요. 우리 엘리사와 레오나드가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고 좋은 감정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런 지경에 처할 정도로 둘의 관계가 친밀했던 것은 절대 아닙니다! 레오나드를 좋아해서 눈이 멀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때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태오에게 물었다.
“만약 엘리사와 레오나드가 서로를 깊이 마음에 두고 있어서 저런 병이 생긴 거라면, 레오나드를 데리고 와서 간호시키면 빨리 나을 수도 있다는 그런 말씀이신가요?”
둘째 아들인 벤자민은 두 사람 간의 깊은 관계를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버틀러 경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벤자민? 그게 무슨 소리니? 서로 깊이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
“아버지··· 죄송합니다. 제가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어요.”
“뭘 나중에 말해? 그러니까 네 말은, 둘이 깊게 사귀고 있었다는 그런 소리냐고?”
“······.”
태오가 버틀러 경을 진정시켰다.
“버틀러 경, 죄송하지만 지금 그런 걸 추궁할 시간이 없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레오나드 에반스 경을 집으로 불러서 제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이 현재로선 가장 빠르고 확실한 엘리사 양의 치료 방법을 찾는 길입니다.”
머뭇거리는 식구들을 향해 태오가 단호하게 말했다.
“집안끼리의 감정보다 엘리사의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시기를 놓치면 정말 회복이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저로서도 더는 손쓸 방법이 없게 되고요. 부디 따님을 위해 올바른 선택을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