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82
82화 두 연인
◈ 버틀러 경 저택
엘리사를 진찰한 태오가 돌아간 후.
무거운 침묵을 깨고 버틀러 경이 입을 열었다.
“벤자민, 언제부터··· 언제부터 엘리사가 레오나드와 사귀었다는 거야?”
“저도 정확히는 몰라요.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제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타일렀지만, 엘리사는 이미 오래전부터 레오나드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신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냥··· 좋은 감정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저렇게까지 좋아하고 있을 줄은···.”
버틀러 경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렇다고··· 고작 남자 하나 때문에 눈이 멀어?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버틀러 부인이 애원하듯 간청했다.
“하지만 여보, 정말 모든 증상이 샌더슨 경 말대로 벌어지고 있잖아요? 그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우선 우리 애부터 살려야지 않겠어요? 빨리 에반스 자작 집을 찾아가 부탁을 해봐야지 않을까요?”
집안이 모욕을 당하고, 결투까지 하면서 에반스 집안과는 틀어질 대로 틀어진 사이였다.
무엇보다 제이콥 에반스 자작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면서, 이젠 두 집안의 하인들조차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로 변해있었다.
도대체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버틀러 경은 난감하기만 했다.
그때 둘째 아들 벤자민이 조심스레 의견을 냈다.
“아버지, 아까 샌더슨 경이 급하다고 했잖아요? 그러니, 내일 당장이라도 레오나드를 불러봐야 하지 않을까요? 제이콥 에반스에게 말하면 당연히 거절할 테니, 레오나드만 따로 조용히 불러내는 겁니다.”
셋째 스티븐이 반대했다.
“아니, 형. 그랬다가 나중에 에반스 집안사람들한테 무슨 해코지를 당하려고 그래? 그러지 말고, 다른 의사라도 알아보는 게···”
셋째 아들의 말에 버틀러 부인이 버럭 성질을 냈다.
“넌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무슨 다른 의사? 지금까지 왕진해서 엘리사를 치료한 의사가 자메이카 최고 명의였다고! 그 사람도 엘리사의 병이 이렇게 될지 전혀 예상 못 했어! 하지만 샌더슨 경은 이미 이렇게 될지 알고 있었다고!”
“······.”
“여긴 자메이카야! 본국의 시골 촌 동네보다 못한 의사들만 득실거리는 곳이라고. 여기서 샌더슨 경만 한 능력이 있는 의사가 있을 수 있겠니? 국왕 폐하조차 주치의가 되달라고 애원했던 분이라고!
거기다 마음의 병이라면··· 그 샌더슨 경이 치료했다는 그 런던의 백작님의 아드님처럼 그런 일이 생긴 거라면, 지금 우리가 의지할 의사가 샌더슨 경 말고 누가 있니?”
아들을 윽박지른 버틀러 부인이 이번에는 남편에게 매달렸다.
“여보! 당장 레오나드를 불러주세요. 그래서 샌더슨 경 말씀대로 우리 엘리사를 치료하게 해주세요! 제발요··· 엘리사한테 문제가 생기면 저도 더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제발··· 흐흑-”
버틀러 경은 지끈거리는 이마에 손을 대고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 다음 날 오후. 버틀러 경 저택.
태오가 버틀러 경 집 거실로 들어서자, 한 젊은 청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레오나드 에반스였다.
오늘 오전, 버틀러 경은 둘째 아들에게 레오나드를 집으로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레오나드가 다니는 모임을 알고 있었던 벤자민은 바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사정을 얘기하고 집으로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망설이는 모습의 레오나드였지만, 엘리사가 많이 아프다는 말을 듣고서는 군말 없이 바로 따라나섰다.
“반갑습니다. 테오 샌더슨입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레오나드 에반스입니다.”
시원한 눈매에 귀티가 흐르는 청년이었다.
태오는 레오나드의 기본적인 성향과 감정을 파악해보려 몇 가지 질문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에반스 집안의 큰아들이자 가장인 제이콥 에반스 자작에 대해 좋지 못한 이야기를 들었던 태오는 레오나드 에반스의 성격에 대해서도 약간의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레오나드의 인품은 돌아가신 아버지 아이작 에반스 자작을 닮았는지 꽤 훌륭해 보였다.
다만, 주위의 평에서처럼 에반스 집안의 사람들이 다소 자기주장이 강한 성격이었는데, 레오나드의 경우에도 그런 점이 엿보였다.
‘흠··· 엘리사는 조심스럽고 꼼꼼한 성격을 가진 아가씨지만, 마음이 여리고 지나치게 신중하다 보니 결정력이 많이 부족해.
반대로 자신감 넘치는 레오나드는 문제를 해결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출중해서 결단력은 좋지만, 그런 자기 판단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고.”
호감을 느끼고 있는 두 사람의 성향이 비슷할수록 이상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성향이 아주 다르더라도, 서로의 장단점이 블록처럼 딱 맞물리는 경우에는, 성향이 일치하는 커플 못지않은 끈끈한 관계를 형성한다.
즉, 함께 있을 때 훨씬 빛이 나는 커플이 있는데, 바로 엘리사와 레오나드가 그런 경우였다.
자기의 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 엘리사에게 레오나드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다면, 지나치게 강하게 밀어붙여서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는 레오나드를 엘리사가 적절히 제어하면서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듯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자연스럽게 채워나가면서 하나로 결합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깊은 연인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보였다.
이렇게 서로를 채우면서 결합한 감정은 그만큼 믿음과 애정이 견고해 쉽게 떼어내지 못하게 된다.
억지로 마음을 돌려세우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큰 상처를 남기기 십상이다.
특히 마음이 여린 엘리사 쪽에 더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컸다.
집안 문제로 1년 넘게 못 보게 되면서, 스트레스에 취약했던 엘리사의 심적인 불안이 한계에 다다랐고, 그것이 신체적 질병으로까지 전이된 것으로 진단됐다.
태오는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시키고, 레오나드를 엘리사의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실의에 빠져있던 엘리사는 레오나드가 왔다는 말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간 잘 지냈어요? 레오나드?”
“···그냥 힘들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지금 내 얼굴이 너무 형편없죠?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아니야, 예쁘기만 한데 뭘. 그래도 많이 먹고 원래처럼 건강해져야지? 살이 너무 많이 빠졌어. 일어나면 먹는 거부터 신경 써야겠어.”
“요즘 통 입맛이 없더라고요. 하지만 걱정 마요. 어제부터 다시 잘 먹고 있으니까.”
태오가 옆에서 보고 있었지만, 레오나드는 엘리사의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글썽였다.
그렇게 두 연인은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참 동안 이어갔다.
레오나드는 태오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다.
엘리사의 병증에 대한 것은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사적인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면서 엘리사의 마음을 놓이게 한 것이다.
‘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만으로도 엘리사의 표정과 감정이 살아나고 풍부해지고 있네. 정말 마음이 여린 아가씨였구나. 그래도 레오나드와의 관계가 전환 장애의 직접적인 원인이어서 다행이다.’
엘리사의 얼굴에서 보이던 경련도 눈에 띄게 작아졌고, 신체의 움직임도 훨씬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
태오는 엘리사와 레오나드가 더 다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조용히 거실로 나왔다.
덜컹-
거실을 서성이며 애타게 결과를 기다리던 버틀러 경의 가족들이 태오에게 황급히 다가왔다.
“샌더슨 경? 어떤가요? 정말 레오나드가 오니까 나아지고 있나요?”
버틀러 부인이 두 손을 꼭 모은 채 조마조마한 얼굴로 태오의 답을 기다렸다.
“네. 확실히 나아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만 계속 간다면, 엘리사 양은 그동안 특별한 내과적 질환도 없었고, 건강했기 때문에 상태가 굉장히 빨리 호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버틀러 경이 물었다.
“그렇다면, 정말 레오나드에 대한 사랑 때문에 우리 딸이 저렇게 됐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방금 둘 사이를 지켜보니 더욱 확신이 드네요. 앞으로 레오나드가 꾸준히 치료에 도움을 주면 완치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러면 눈도 곧 회복하게 되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이 병은 초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특별한 약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신의 안정을 시키고, 엘리사 스스로가 마음을 편하게 가지게 되면, 수일 이내로 눈도 정상으로 돌아올 겁니다.”
태오의 말에 버틀러 부인이 감격해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레오나드 경이 자주 와서 마음의 안정을 주는 것이 꼭 필요하고요. 저도 당분간은 매일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희망적인 결과에 버틀러 경도 무척 고마워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샌더슨 경.”
나갈 채비를 하면서 태오가 당부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질병의 진행이 잠시 멈춘 상태일 뿐 아직 완쾌한 상황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 가족분들께서는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그저 평상시처럼 행동하시고, 매일 레오나드와 함께 하면서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태오의 말대로 며칠이 지나자 엘리사의 상태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시력도 거의 회복하였고, 마비가 있었던 부위도 정상적으로 돌아오면서 가족들은 크게 기뻐했다.
레오나드 에반스도 매일 찾아와 엘리사와 함께했고, 태오도 수시로 들러 건강을 체크했다.
◈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테오 커피 농장.
이른 아침. 태오는 준비한 물품을 잔뜩 챙겨서 커피 농장으로 향했다.
엘리사의 치료와 농장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느라 열흘 가까이 농장에 올라가 보지 못했다.
고맙게도 팔머 농장의 총관리인인 세바스찬 마틴이 흑인 노예를 4명이나 붙여줬다.
덕분에 힘들지 않게 물품을 들고 산에 올라갈 수 있었다.
팔머 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사탕수수 농장 일에서 빠질 수 있어서인지 굉장히 신난 표정들이었다.
정오를 넘긴 시간.
커피 농장 앞에 도착하니, 태오를 발견한 노아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샌더슨 경!”
“오- 노아!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습니다. 하하.”
“그래, 별다른 일은 없었고?”
“일이야, 뭐 아주 많았습니다. 스펜서 씨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하하하.”
커피 농장의 열매를 확인한 후, 스펜서 씨는 다음 날 바로 태오를 찾아왔다.
그리고 사업참여에 대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혔다.
그는 동업을 하되, 커피 재배와 가공의 기술적 부분만 관여하고 투자나 경영 간섭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재배와 커피 가공에 관련한 모든 책임과 권한은 자신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또한 커피 판매가 성공을 거두면, 순 이익금에서 1% 수익만을 기술 이전료로 가져간다는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태오에겐 좋은 조건이었다.
태오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 스펜서 씨는 계약 조건을 조율하면서 쓸데없는 일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세계 최고의 커피를 생산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최고의 커피에 대한 진정한 열망을 읽은 태오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계약이 합의되자마자, 그는 짐을 싸 들고 커피 농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관리인 숙소에서 노아와 함께 묵으면서 커피 농장 구축 작업에 돌입했다.
“저기 저 창고 보이시죠?”
태오는 노아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못 보던 꽤 큰 건물이 있었다.
“아니, 언제 저런 창고를 지은 거야?”
“말도 마십시오. 스펜서 씨가 생두 가공 시설을 빨리 지어야 한다고 엄청나게 닦달했습니다. 그래서 샘슨의 지시 아래에 다른 남자 흑인 노예들이 협동해서 지으니, 정말 순식간에 가공 공장 하나를 뚝딱 만들어 버리더라고요.
샘슨의 실력은 저도 들어서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짓는 모습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허- 그래? 대단하구만. 그나저나 스펜서 씨가 심하게 노예들을 대하지는 않던가?”
태오는 스펜서 씨가 노예들을 닦달했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였다.
노아야 태오가 이미 그의 품성을 알고서 뽑았기에 별문제가 없었지만, 나이 많은 스펜서 씨는 오로지 실력 하나만 믿고 동업을 하게 된 것이라 함부로 그의 행동을 제지하기가 어려웠다.
“뭐··· 잔소리야 좀 하시긴 한데, 그래도 사탕수수 농장 같은 곳의 관리인들에 비하면야 자장가 수준이죠, 하하. 채찍질을 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지금 한참 마무리 작업 중이니 창고로 가보시죠? 거기에 스펜서 씨도 계실 겁니다.”
오랜 세월 식민지 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을 다루었던 스펜서 씨라, 자기도 모르게 노예를 함부로 대하는 태도가 남아있었다.
좋은 품질의 물건은 좋은 마음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을 가진 태오여서, 흑인 노예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기를 바랐다.
현대인의 관점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겼고, 또 최고의 커피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태오의 걱정과 달리 커피 농장의 흑인 노예들은 스펜서 씨의 잔소리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전에 일했던 농장주인이나 관리인들에게 받았던 폭력이나 불합리한 대우를 생각한다면, 스펜서 씨의 닦달은 애정 어린 잔소리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다.
더구나 이 커피 농장이 실패하게 되면, 다시 팔려나가 지옥 같은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노예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커피 농장의 흑인 노예들을 하나로 똘똘 뭉쳐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강한 원동력이 되게 했다.
이렇게 오로지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만들고 싶다는 스펜서 씨의 열망과 식민지 섬에서 자기들의 소중한 낙원을 만들고 싶은 흑인 노예들의 열망은 묘한 앙상블을 이루면서 태오의 커피 농장을 하루가 다르게 변화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