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98
98화 T&S 커피의 탄생
스펜서 씨는 테이블 아래에서 작은 주머니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머니의 매듭을 풀어 열더니, 원두 한 움큼을 손에 쥐어 사람들에게 내보였다.
“이 커피 원두는 커피 열매를 채집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쥬바라는 여자 노예가 모아 온 열매를 통해서 얻은 겁니다.
그리고, 샌더슨 경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새로운 커피 가공법을 적용해 개발해 낸 아주 특별한 원두죠. 이 원두로 커피를 우려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오는 물속에서 과육을 완전히 제거하는 스펜서 씨의 발효법에서, 과육을 일정부분 남기고 건조하는 방법을 제안했었다.
특히나 쥬바가 고른 커피 열매 과육의 풍부한 맛을 살려보자는 취지였는데, 스펜서 씨가 이 방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리고 저는 감히 단언컨대, 이 커피는 천국에서나 맛볼 수 있는 커피 맛이 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천국의 맛이라는 소리에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 방금 시음한 원두커피의 맛도 대단했는데, 이번에는 천국의 맛이라니.
“쥬바! 이리 앞으로 나와 보겠어?”
그러자 샘슨 옆에 앉아 있던 쥬바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앞으로 나온 쥬바에게 스펜서 씨가 당부했다.
“우리 계속해왔던 것처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이 커피 원두의 분쇄 정도를 살펴보다가 가장 맛있어 보이는 지점에서 내게 말해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네, 스펜서 씨.”
태오는 몇 개월 전, 쥬바의 타고난 미각과 후각에 대해 스펜서 씨에게 전해 주었다.
태오의 말에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 본 스펜서 씨는 자기 쌍둥이 자식들만큼이나, 아니 어떻게 보면 그 아이들보다 쥬바가 더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크게 기뻐했다.
이후 스펜서 씨는 로스팅 과정이나 커피 원두의 분쇄 정도를 연습할 때마다 꾸준히 쥬바를 참여시켰고, 이제는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선 것으로 보였다.
쿵- 쿵- 쿵-
드르륵- 드르륵-
많은 양은 아니었기에 커피 원두는 금세 고운 가루로 변해갔다.
“스펜서 씨! 지금입니다!”
쥬바의 말에 분쇄를 멈춘 스펜서 씨가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융드립 커피를 제조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 특별한 커피의 정체가 향기로 드러났다.
더 이상 놀랄 것이 없을 것 같았던 향이 또 다른 색깔로 변신해 퍼져나가기 시작하자, 주위가 금세 술렁였다.
“오- 이건 또 뭡니까?”
“와- 냄새가 진짜···.”
여기저기서 깊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스펜서 씨는 이런 반응을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여유 있는 미소와 함께 융에 걸러진 커피를 조금씩 잔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각자의 탁자 위에 걸러진 커피를 내려놓았다.
“자, 다 완성됐으니 드셔보십시오. 그런데 너무 귀한 커피라 많이 못 드린다는 점은 이해 부탁드리겠습니다. 허허. 이제 이 마지막 잔으로 오늘의 시음회를 끝내야겠군요.”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스펜서 씨가 환하게 웃었다.
툭-
태오는 떨리는 마음으로 탁자 위에 놓인 커피잔의 손잡이를 잡았다.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가공법이라 더 관심이 가기도 했지만, 마시기도 전에 코를 타고 올라오는 농도 짙은 그윽한 향에 벌써부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 냄새가 사라진다는 것이 너무나 아쉽게 느껴질 정도로 향이 기막히게 좋았다.
고작 원두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이렇게 진심 가득한 마음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태오는 더 식기 전에 아까운 향을 뒤로한 채, 천천히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후룩-
“후후··· 흐흐흐···”
태오의 입에서 헛웃음이 길게 흘러나왔다.
일반적으로 원두커피의 특이한 쓴맛은 처음 커피를 접하는 사람에게 접근을 어렵게 만든다.
이 쓴맛이 혀에 익숙해지고 나서야 쓴맛 뒤에 숨겨진 다양하고 풍부한 커피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때 커피의 쓴맛을 잡아 주기 위해 크림이나 꿀, 설탕 같은 단맛을 사용한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가미된 단맛에는 자연스러움이 녹아 있지 않아 커피 본연의 맛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태오는 쥬바가 채집한 열매의 특별한 단맛을 생두 속에 남겨 보자는 생각을 했다.
즉, 커피 열매의 껍질과 과육을 깎아내되, 강렬한 단맛이 숨어 있는 과육을 상당 부분 남긴 상태에서 건조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그랬더니 잘 숙성된 천연의 단맛이 건조된 생두에 스며들면서 특별한 원두커피의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윽하고 풍성한 향에 신맛과 쓴맛이 균형을 잡고 있었고, 은근한 단맛이 원두커피의 맛을 전체적으로 크게 끌어올렸다.
천천히 식도를 타고 부드럽게 내려가면서도 입안을 가득 감싸는 향과 고소하고 담백한 달달함은 극상의 행복감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시대 세계 어느 나라의 카페에서도 맛보지 못한 독특하고 특별한 향과 맛의 원두커피였다.
버틀러 경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정말 여기에 어떠한 설탕이나 향신료를 넣지 않은 건가요?”
“네. 한 톨도 넣지 않았습니다. 원두 그 자체로만 우려낸 순수한 커피입니다.”
황홀한 눈으로 커피잔을 내려다보던 엘리사가 말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가 있죠? 단맛이 아닌 것 같은데 달달하고, 커피 특유의 씁쓸한 맛이 고소하고 담백한 맛과 함께 기분 좋게 살아있고··· 그저 한잔의 액체인데 수많은 맛이 너무나 조화롭게 섞여 있는 느낌이에요!”
금세 한 컵을 다 마셔버린 베키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정말 천국의 쿠키 맛인데요? 너무 아쉬워서 더 마시고 싶어요.”
마시기 전에는 그윽하고 달콤한 향에 취하게 했고, 입안으로 들어와서는 쌉싸름하고 부드러운 단맛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는 듯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반 커피에서처럼 신경을 흥분시켜 날카롭게 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차를 마실 때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분 좋은 차분함을 주고 있었다.
‘꼭 항불안제 같은 작용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의 불안증을 치료하는 데 쓰이는 약물이 항불안제인데, 우울한 기분이 심한 환자의 불안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지금의 원두커피는 마치 항불안제를 복용한 것처럼 마음을 가라앉히고, 즉각적인 심리적 안정감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와- 이 커피는 약물과 달리 머리가 멍해지지도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같지도 않아. 천연성분의 힘인가? 게다가 이런 고소한 담백함과 달콤한 쓴맛이라니···.’
커피를 마시면 늘 남기던 태오에게 이 커피는 한 방울 한 방울이 줄어드는 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커피와 관련해 정답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편안함과 기분 좋은 감정이 뿜어져 나왔다.
이 원두커피에는 향과 맛 자체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면서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싶게끔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저 블루마운틴이라는 커피를 재배해서 수익을 늘릴 목적이었는데, 엄청난 치트키가 하나 생긴 셈이야. 한번 마시면 헤어 나오기 힘든 마력을 지닌 커피다.
하나하나 수작업이 많이 들어가니 대량생산은 힘들겠지만, 이 향과 맛 때문에 엄청난 희귀성으로 더 큰 이득이 생길 수 있겠는걸?’
그때 태오 옆으로 스펜서 씨가 슬며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샌더슨 경? 어떻소? 결과가 제법 괜찮게 나온 것 같지요? 허허.”
태오가 미소 지으며 흑인 노예들을 가리켰다.
“저들을 보세요. 커피를 살면서 처음 마셔보았는데, 저런 반응이라면 제 의견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하.”
스펜서 씨도 고개를 돌려 흑인 노예들을 쳐다보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말할 수 없이 행복한 감정이 피어나오는 듯했다.
버틀러 경과 엘리사와 레오나드도 수다쟁이가 되어 있었다.
“샌더슨 경. 나도 사실 이 정도의 맛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어요. 그때는 ‘융’ 필터는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고, 쥬바 같은 타고난 능력의 노예가 농장에 있는 줄도 몰랐으니까. 게다가 샌더슨 경의 제안으로 새로운 가공법을 적용하게 될 줄은 더더욱이요. 허허.”
그때 저 앞에 스펜서 씨의 쌍둥이 아들과 딸이 사람들과 크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참 잘 키우셨어요. 저런 뛰어난 외모에, 사교성도 좋고, 교육도 잘 받아서 학식도 인성도 아주 훌륭하니, 얼마나 든든하시겠습니까?”
태오의 말에 스펜서 씨가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비록 물라토 출신이지만, 나한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보물들이지요. 어쩌면 이 커피보다 더 소중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네, 정말 그럴 것 같습니다.”
순간 스펜서 씨의 얼굴에 쓸쓸한 감정이 잡혔다.
“사실 나는 저 아이들을 평생 곁에 두고 보살피고 싶은 마음이었소. 하지만 생각해보면, 저 젊은 아이들에게 이곳의 삶이 얼마나 무료하고 답답하겠소?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노인의 헛된 욕심일 뿐이지요.”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아직도 이렇게 정정하신데요.”
쓴웃음을 지어 보이는 스펜서 씨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태오에게 어렵게 입을 뗐다.
“샌더슨 경. 이런 자리에서 불쑥 어려운 청을 드리는 게 아닌가 싶지만···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
“네? 부탁이요?”
“그렇소. 너무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그동안 말을 못 하고 있었소만, 커피도 성공을 거둔 것 같고 해서, 지금이 말하기에 가장 편할 것 같아서 말이요.”
“네, 뭐. 제가 들어드릴 수 있는 거라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고맙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인 스펜서 씨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혹시 가능하시다면 말이오, 런던으로 돌아가실 때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가주실 수는 없겠소? 그래서 런던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조금만 신경 써주신다면 정말 고맙겠소만···. 너무 염치가 없는 부탁이라.”
“쌍둥이들을 런던으로요?”
“그렇소. 내 아이들이라서가 아니라, 저 애들은 재능이 아주 많은 녀석들이오. 이런 식민지 섬에서 젊음을 썩히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그런다오.
그동안 나름대로 런던으로 보내는 방법을 고민했었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소이다. 아이들이 물라토인데다, 무엇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지요.”
“······.”
“그러다 샌더슨 경 관련한 소문을 듣게 되고 이렇게 반년 넘게 함께 생활하면서, 난 이제 그 누구보다 샌더슨 경을 여러 면에서 신뢰하고 존경하게 되었소.
온갖 사기꾼이 판치는 런던에서 샌더슨 경 같은 훌륭하신 분이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저 아이들을 그저 옆에서 지켜봐 주시면서 자리 잡게 도와주신다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이 농장에 쏟아부어 샌더슨 경 농장이 크게 성장하도록 도움을 드릴 것이오. 어떻소?”
자기 피가 섞이지 않은 자식들이었지만, 스펜서 씨에게서는 그 어떤 부모보다 애틋하고 절절한 감정이 흘러나왔다.
어쩌면 애초에 기술이전료 명목으로 순수익금의 1%라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태오와 계약을 내걸었던 것도 런던으로 보낼 쌍둥이들을 염두에 둔 일인지도 몰랐다.
잠시 생각한 태오가 흔쾌히 부탁을 받아들였다.
“뭐, 돌봐줘야 하는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이제 성인이나 마찬가지이니 크게 어렵지는 않은 일이지요. 저도 사실 자제분들이 외모는 물론 재능도 무척이나 뛰어나다고 여겼거든요. 런던으로 함께 가서 쌍둥이들의 자립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마침 제가 런던에서 사업도 하니 본인들이 원하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옆에서 도와주도록 하지요.”
스펜서 씨는 환한 얼굴로 태오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아이고- 고맙소. 정말 고맙소.”
거칠고 투박한 손이 오랜 세월 얼마나 고생하며 커피 농장을 일궜는지 느낄 수 있게 했다.
“스펜서 씨. 저도 하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시오. 뭐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소.”
“우리 원두커피 상품의 이름을 지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수준의 커피를 그냥 테오 농장 커피라고 부르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고유 명칭을 하나 만드는 것이 어떨까요?”
“그거야, 농장 주인 맘대로 하실 일이지요.”
“그래서 제가 그동안 생각한 것이 ‘T&S 커피’입니다.”
“T&S 커피라면··· 아, 테오 샌더슨의 약자군요? 부르기 좋고 간단해서 딱 좋네요.”
“아니요. 제 이름과 스펜서 씨의 성을 합친 겁니다. 즉 ‘테오 & 스펜서 커피’가 풀네임인 셈이죠.”
태오는 ‘테오’와 ‘스펜서’의 이니셜을 딴 ‘T&S’ 커피를 말하고 있었다.
“아니··· 왜 내 성을?”
“스펜서 씨의 평생 꿈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커피 제조가 아니었습니까? 그걸 위해 이득도 거의 최소화해서 참여하신 거고요. 그렇다면 최소한 커피에 스펜서 씨의 성이라도 남기셔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샌더슨 & 스펜서로 하면 SS라 발음이 좀 별로고··· 그래서 특별하게 제 이름과 스펜서 씨의 성으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떠세요?”
태오의 갑작스러운 제안과 그 속에 담긴 의미에 크게 감동한 눈빛의 스펜서 씨였다.
눈시울을 살짝 붉힌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솔직히 평생을 커피 농사와 무역업을 하면서 내 이름이 들어간 커피를 꼭 만들어 보고 싶었소. 하지만 자메이카에 와서 커피 농사에 줄곧 실패하면서 그 꿈을 완전히 접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어찌 이 늙은이의 그 욕심을 알고 이런 감사한 제안을 해주시다니···.”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드려야죠.”
“정말 고맙소. 내 성이 들어간 커피에 앞으로 더 자부심을 가지고 이 커피 농장을 죽을 때까지 책임져 보겠소.”
“그렇게 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지요. 하하.”
이렇게 T&S 커피의 탄생을 알리는 원두커피 시음회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