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apocalyptic world, I'm on a submarine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 Iron Soldier(아이언 솔져)
김범준 박사의 설명을 들으니 미국이 그것에 혈안이 된 이유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대량 생산하게 되면, 제조공정이 새어나갈 위험이 얼마나 커지나요?”
– 지금도 핵심공정은 연구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몇몇 공정에 보안 유지만 된다면 괜찮을 듯합니다.
– 단, 지금처럼 키리바시에서만 생산한다는 전제를 하였을 때입니다.
– 현재 OSS에서 파견된 특임대와 OSSIA에서 철저한 보안 유지에 힘쓰고 있고.
– 바리티늄 제조공정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저 이외에 1명의 연구원만이 알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만약 바리티늄이 아닌 티타늄 같은 다른 소재를 사용해서 비슷한 성능을 낼 수 있습니까?”
– 가능은 합니다만 무게 때문에 실효성이 떨어질 겁니다.
– 과거 소련에서 티타늄 헬멧을 만들어 특수부대에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만. 무게만 3kg이 넘었습니다.
– 티타늄으로 바리티늄 헬멧과 같은 성능을 내려면 12kg이 되어도 어려울 겁니다.
“박사님 알겠습니다. 이 부장님!”
– 네. 대표님.
“미국에 바리티늄의 판매를 끝까지 거절하면 어떻게 될까요?”
– 당장은 미국산 미사일이나, F/A-18 전투기 부품 수급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 외 정치적 압박이 있겠지만 그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음 ···.”
– 무인 잠수정이야 미국도 개발 중이어서 그냥 넘어갔지만 ··· 바리티늄은 미국에서 절실하게 원하는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특허도 내지 않는 마당에 일단 라이선스를 주는 건, 말이 되지 않고. 완제품을 파는 것으로 하죠. 김범준 박사님!”
– 네. 말씀하시지요.
“헬멧과 방탄복 세트의 현재 생산단가와 향후 대량 생산 시 단가를 아시나요?”
– 네. 최근 확인했습니다. 현재는 한화 9,000만 원 정도이고 대량 생산 시 절반 정도까지 낮춰진다고 합니다.
“이 부장님 미국 측에 1세트당 한화로 12억에 판매 가능하다고 하세요. 공급 쿼터는 5만 개로 한정하시고요.”
– 대표님 너무 비싼 거 아닙니까? 안 팔겠다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부장님, 이번에 항공모함과 미사일 사들이면서 쓴 돈이 90조 원입니다. 12억짜리 10,000세트 해봤자 12조입니다.”
– 아 ···.
“그리고 미군이 쓰는 야투경 하나가 4천만 원인데 그것은 소모품입니다.”
– …
“바리티늄 플레이트는 관리비용도 안 들어가는 내구재입니다. 그들도 충분히 납득 할만한 가격일 겁니다.”
– 아 ···. 알겠습니다.
“부장님. 바리티늄은 대체 불가능한 전략 물자입니다. 그리고 만약 미국이 전투기 부품 등 군수물자 판매를 제한한다고 하면, 그러라고 하십시오.”
– …
“대신 OSS의 축소된 군사역량만큼, 우크라이나와 남중국해에서 미국이 그것을 대신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시고요.”
– 네. 알겠습니다.
바리티늄의 가격을 비싸게 책정한 것은 고부가가치 수익원이 되는 이유도 있었지만.
전략 물자로서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려는 이유가 컸다. 미국이든 어디든 그것을 되파는 것이 남는 장사가 되면 안 되었다.
…
바리티늄의 가격에 대한 미국의 큰 불만은 없었다.
그것의 전술적 효용성은 미얀마 전쟁에서 입증된 상태였고, 전략 물자로서의 가치를 인정한 것이었다.
미군은 바리티늄 방탄 세트 30,000개를 주문하였다. 네이비실, 델타포스, 그린베레 정도에 지급할 수량이었다.
금액으로는 36조 원이었다. 이것으로 OSS는 PMC를 넘어 방산 업체로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OSS-ART와 특임대에 바리티늄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프로젝트명은 Iron Soldier(아이언 솔져)로 했다.
CQC와 같은 고위험 근접전투를 위한 슈트와 무기체계를 개발하는 프로젝트였다.
목표는 기존 군장의 무게를 10% 이상 초과하지 않으면서 모든 소총탄을 완전하게 방어할 수 있는 방탄체계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현재 개발 중인 무탄피 소총이 현실화하면, 총과 탄약의 무게를 줄일 수 있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 CQC (Close Quarters Combat) 30m 이내의 적과 교전하는 종합전술체계 –
…
중국과 러시아는 더울 밀접하게 협력하는 것 같았지만 서로의 지향점이 달라 속도를 조절하는 것 같았다.
러시아는 극동공화국과 타타르스탄 등 연방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였지만. 중국은 남방으로 팽창을 목표로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두 번의 우크라이나 전쟁을 치르고 상당수의 연방국이 독립한 러시아의 숨 고르기에 중국이 보조를 맞추는 듯했다.
만약 중국이 대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남하한다면 분명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과 함께 그들을 부추겨 동시에 전쟁을 일으킬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미국은 미국대로 대만을 되찾을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
한국에 주문한 자주포의 초도물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주문은 500문을 하였지만, 당장 받을 수 있는 것은 40문이 최대치였다.
그 K-9A2 자주포 40문과 K-10 탄약보급장갑차 10대를 OSS 남방군에 배속했다.
이로써 남방군은 120mm 비격 자주박격포 48문과 함께 최소한의 포병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미얀마 정국이 안정되고, 어수선한 군이 수습되어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덧 봄이 끝나고 여름에 들어섰다.
세계는 곳곳의 분쟁으로 어수선했지만, 아시아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어쩌면 내가 미얀마를 침공한 사건이 응축되어 폭발 직전 폭력의 에너지를 분출시킨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마치, 범람하여 무너지기 직전인 댐의 수문을 열어 붕괴를 막는 것처럼 말이다.
OSS 남방군 사령관인 김종오 중장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OSS의 본대는 신흥캠프로의 복귀하기로 했다.
그것을 위해 제1강습전단을 시트웨에서 양곤으로 이동하여 주둔시키기로 하였다. 미얀마 공군이 재건될 때까지 OSS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어야만 했다.
OSS의 제1항모전단은 타위타위 신흥캠프로 향했다.
나는 기함인 가디언스 호에 타고 있었고, 미얀마 전쟁의 영웅인 OSS 특임여단과 북방1군은 여러 함선에 나누어서 항모전단과 함께 이동했다.
항모전단은 천천히 미얀마 해를 지나 말라카해협으로 향했다. 이동 중에 가이언스 호 함상에서 전쟁 공로자들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포상하는 행사를 시행했다.
가이언스 호 비행갑판에는 북방1군과 특임대 2천여 명이 도열했고, 각 함정으로 행사가 생중계 되고 있었다.
그들 특임대와 북방1군에 미얀마 전쟁 참전 기장을 수여하고, 최초 수여자로 차민수 상장에게 기장을 달아주었다.
“영광입니다. 원수님.”
“사령관님 고생하셨습니다.”
2개월 급여에 해당하는 특별 보너스와 함께, 연대 단위로 한 달간 본국에 다녀올 휴가를 주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병사들은 술렁거렸지만 좀처럼 기쁨을 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러분은 공화국의 식량자원을 되찾아온 영웅입니다. 그런 영웅 자격으로 고향에 가는 것이 기쁘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고향은 애틋한 곳이기도 했지만, 고통의 기억이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 그리고 우리 북방1군의 파병 기간을 무기한 연장하기로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고향을 다녀오더라도 소속이 바뀌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제야 병사들은 기쁨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 아···. 아···.
– 기럼, 계속 OSS 소속으로 복무한단 말이디?
– 원수님 말씀 못들었네? 휴가 갔다가 다시 온단 말임매
술렁이던 북방1군 병사 중 누군가 함성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와아~
– 만세!
– 원수님 만세! 만세!
그 만세 소리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항모전단의 다른 함정에서도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다음 주둔지는 필리핀 민다나오가 될 것이란 것을 알렸다.
– 원수님 만세! 만세~
그들의 함성이 온 바다를 메울 듯했다.
…
OSS의 항공모함 전단이 말라카해협을 통과하는 것은 여느 때와 다른 언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승리의 개선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의 무력시위이기도 했다.
미얀마 전쟁의 압도적인 승리와 미얀마의 정권교체란 사건은 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재편하게 되었다.
그것은 동아시아는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OSS의 입지를 다지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서 남아시아의 루트를 하나씩 잃어 가고 있었다.
중국과 전쟁을 치르기도 한 베트남은 전통적으로 중국과 적대관계나 다름없었고.
라오스는 내륙국가인 데다가 국토 대부분이 밀림지대였고.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은 2억 7천만 개의 폭탄을 퍼부었었다.
호찌민 루트를 무력화시킨다는 명분이었다. 그 불발탄이 아직도 남아있어 국토개발을 저해할 정도였다.
중국은 라오스를 돕는 척을 했지만, 희토류만 퍼갈 뿐 아니라 메콩강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었다.
중국은 메콩강의 수원에 댐을 지어 그들의 젖줄인 메콩강을 마르게 한 것이었다.
인구는 700만이 겨우 넘은 라오스는 육군의 병력이 13만으로 OSS 남방군보다 작았다. 주변국인 베트남, 미얀마조차도 약소국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았지만, 라오스가 친OSS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
이 부장에 정례 정보보고를 위해 연락해왔다.
“대표님. 라오스에서 OSS 군의 주둔을 요청해왔습니다.”
“그래요? 의외인데요?”
“그들도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적응하려는 것 같습니다.”
“하긴 인구 700만의 작은 나라이니···.”
“그렇습니다. 특히 중국 윈난성과 5개의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 불안할 겁니다.”
“아무리 그렇지만···. 우리에게?”
“그게, OSSIA가 미얀마 시민군을 지원하기 위한 라오스 루트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지원한 자원들이 OSS에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로 미얀마 군대가 박살 나고 정권이 바뀌는 것을 본 것이죠. 아시아에서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우리 OSS의 눈 밖에 나느니 빨리 친구가 되길 선택한 것 같습니다.”
“음···.”
공산당, 일당 독재 국가인 라오스도 변화하고 있었다.
라오스는 민주주의지수 159위, 언론자유지수 160위에 1인당 명목 GDP가 1,80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의 하나였다.
하지만 OSSIA가 미얀마로 통하는 보급통로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뿌린 돈과 지원 물품은 그들의 경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로 인해 1인당 GSP가 2,000달러를 바라볼 수 있는 가시적인 경제 성장을 가져오게 된 것이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라오 인민혁명당이 OSS를 매우 우호적인 세력으로 받아들였고.
미얀마 전쟁의 결과를 보고는 절대 적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