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apocalyptic world, I'm on a submarine RAW novel - Chapter 62
62화 – 영상 10.5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회영함과 9번 함은 아직 도착해 있지 않았다. 왠지 서운한 기분이 들었다.
신흥캠프 선착장엔 만국기가 곳곳에 휘날리고 있었고. 야외방송 스피커엔 행진곡풍의 경쾌한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다소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아이디어를 낸 누군가의 정성이 고마웠다.
잠수함 갑판 위에서 개선 군처럼 당당히 서 있는 승조원과 OSS 대원들을 보면서, 어쩌면 ARK호를 되찾은 그 일이 우리들의 작은 전쟁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수함이 부두와 가까워질수록 마중 나온 사람들이 ARK호의 위용에 압도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마다 손가락으로 잠수함의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그 놀라움을 옆 사람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에도 OSS 전속인 배흥덕 도선사가 예인선을 타고 와서 ARK호 함교에 올랐다.
그는 잠수함의 크기에는 별다른 동요가 없었지만, ARK 선저에 장착된 POD drive에는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200m 가까이 되는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게임기 조이스틱 같은 작은 레버로 움직이고 있었다.
“와아~ 이거 정말 대단하네요.”
배흥덕 도선사는 그의 지시에 따란 조이스틱으로 ARK를 조종하는 승조원을 바라보면서, 연신 그 기술과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있었다.
“단지 밀어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감속을 시켜주는 것이 ··· 와아!”
게다가 미세한 움직임이 컨트롤 되어 예인선이 필요 없다는 사실에 배흥덕 도선사는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그렇게 ARK호가 신흥캠프에 접안을 마치고. 육지를 밟았다.
‘이게 얼마 만인지 ···.’
‘고향이란 게 이런 느낌일까?’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그 고향이란 느낌을 잘 몰랐다.
그런데 왠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고향이 주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환영 속에 상념에 잠긴 것도 잠시, 익숙하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대 ··· 대표님!”
김완준 이사였다.
그는 마치 소년처럼 달려와서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억센 팔심에서 그가 그동안 얼마나 노심초사 기다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어! 이사님. 저는 아직도 여자가 좋습니다.”
“아악! 저는 남자가 좋아질 거 같습니다. 하하”
“하하하”
그렇게 사람들과 반가운 재회를 하고. 간단한 행사를 마친 후 각자의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겨울에도 종종 영상 30도까지 오르던 필리핀 타위타위의 날씨는 제법 쌀쌀한 늦가을 날씨였다.
순간 섬뜩한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사람들과 재회의 기쁨을 나눌 시간이었다.
신흥캠프 강당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김완준 이사가 단단히 준비해놓은 모양이었다. 곳곳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OSS 알파, 브라보, 찰리 팀원들의 무용담에 다른 요원들은 경외심에 가득 찬 눈빛이었다. 그 모습에 특별히 델타 팀원들이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델타 팀은 민다나오 MILF(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소탕 작전에서 큰 공이 있던 팀이기에 더욱 그렇게 보였다.
김완준 이사는 자신이 일군 농장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사실 조금 지루할 정도였다.
언 듯 둘러본 신흥캠프 주거단지도 꾸며 놓은 것이, 한국의 여느 전원주택 단지처럼 깔끔하고 예쁜 모습이었다.
“아, 참 이사님.”
“네. 제가 떠나면서 부탁했던 건, 좀 알아보셨나요?”
“아. 그 실내농업 말인가요?”
“네.”
“하하. 그래서 제가 농장 하우스에서 직접 몇 가지 시도해 보았지요.”
“오! 궁금한데요.”
“일단 제가 생각한 조건은 전기와 물 공급이 안정적인 상황에서 공간을 적게 차지하고 …”
“…”
“2~3주 안에 수확이 가능한 작물을 선정해서 잠수함과 비슷한 조건을 만들어 직접 재배해 보았습니다.”
“오, 오!”
김완준 이사는 신이 난 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잎을 주로 먹는 작물은 대부분 가능했습니다. 상추, 시금치, 케일 같은 거요. 그리고 버섯은 거의 모든 종류가 저조도에서도 잘 자랐고요.”
“호오! 계속요. 하하”
“특별히 관심이 가는 건 딸기였습니다. 딸기가 생각보다 인공조명에서 열매를 잘 맺더라고요.”
“와~ 잠수함 승조원에겐 정말 특별한 보상이 되겠는데요.”
“그리고 콩나물도”
“아아~ 정말 그렇겠네요.”
“무, 당근 같은 뿌리채소도 가능한데. 다소 공간이 필요합니다.”
“좀 더 연구해보면, 더 괜찮은 작물도 있겠네요. 혹시 그 분야 전문가가 있는지 좀 더 알아봐 주세요. 필요하면 이참에 실내농업 전문가를 채용하면 더 좋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참 그리고 바질, 민트 같은 허브 종류도 특히 잘 자라고 공간도 적게 차지합니다.”
“오. 그렇다면 혹시 담배는 ···.”
“크크크”
“왜요?”
그는 재밌다는 듯이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말을 이었다.
“아뇨 그냥 좀 우스워서요. 사실 그걸 물어보실 거 같아서 조사는 해보았습니다.”
“오!?”
“가능은 합니다. 해보진 않았지만”
“그래요?”
“조건이 좀 까다롭더라고요, 먼저 광원이 스펙트럼 범위가 큰 LED 여야하고, 흙과 약간의 비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
“그런데?”
그는 일어서서 자신의 가슴높이로 손바닥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어갔다.
“문제는 키가 작은 드워프 품종이라 하더라도 공간이 상당히 필요하고. 결정적으로 …”
“…”
“담뱃잎을 건조하는 데 몇 주에서 몇 달까지 시간이 걸려야. 우리가 원하는 담뱃잎을 얻을 수 있더라고요.”
“아 ··· 너무 비효율적이군요.”
“여기, 10만 보루 쌓아두신 거로 만족하시죠. 하하하”
“네. 하하하”
…
그러던 사이에 본사(국정원) 이 차장이 시원스럽게 사표를 던지고 타위타위로 왔다. 가족들도 곧바로 이주를 준비한다고 했다.
그가 오기를 기다린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알렉세이(암호명 드네프르)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알렉세이를 채용하고 이곳까지 데리고 오게 된, 그간의 정황을 그에게 설명했다.
“이 차장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음 ··· 내 생각엔 문제 될 거 없고. 되려 이 대표 사업에 도움이 될 거 같네.”
“좀 더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는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먼저 전문 인력 중에 그런 비공식 자산이 많다는 것이지. 게다가 그 분야 잠수함 원자로라고 한다면 더욱 그렇지.”
“아 ···.”
“모르긴 몰라도 러시아 쪽 하고도 끈이 있었을 거야. 지금이야 신분이 노출되었으니 소용없지만.”
“저는 그저 원자로 엔지니어가 필요할 뿐인데. 제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어떤 뜻인가요?”
이 차장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는 것처럼 보였다.
“그게 말이야 요즘 이쪽 업계에서 제일 핫한 곳이 바로 우크라이나 SBU라네.”
“?”
“전쟁 때문에 평소 접점을 찾기도 힘든 CIA, MI6도 우크라이나 보안국을 통하면 연결점을 만들 수 있지.”
“그렇겠네요.”
“그 정점에 아빠 곰 고스트베어가 있어. 드네프르를 데리고 있다면 그의 신뢰를 더욱 얻을 수 있겠지. 물론 난 그 인간 때문에 회사를 나왔지만 말이야. 하하”
“그렇군요. 아빠 곰은?”
“그건 우리끼리 붙인 별명이야. 아빠 곰이 대러시아 공작을 총괄하고, 엄마 곰이 그 외 지역과 자국 내 첩보를 담당하고 있지.”
“그럼 알렉세이(드네프르)를 계속 쓰는데 주의할 점이 있을까요?”
“아마 이 대표가 고용을 유지한다고 하면, 드네프르 그 친구나 아빠 곰이나 둘 다 고마워는 할 걸세.”
그는 잠시 하던 말을 멈추고 뭔가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드네프르는 신분이 노출된 데다가 근거지가 결딴난 상태라, 정보자산으로 가치가 거의 없어졌으니 거취가 애매한 상태 일게야. 다만!”
“다만?”
“비밀 취급에 각별히 신경을 쓰는 게 좋을 거야.”
“그건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게 이곳 업계의 상도의지만, 공짜로 주운 것에 대해 대가를 지급하진 않으니까. 그리고 SBU를 타고 정보가 어떻게 흐를지 알 수 없을 게고.”
“아. 말씀 감사합니다.”
이 차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한번 살피고는 낮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건 …”
“?”
“내가 이제 자네 사람이 되었으니 말해주고 넘어가는 게 좋을 거 같네.”
“어떤?”
“자네, 페이퍼클립 알지 않나?”
“네 타이만 작전 이후로 확인해봤죠.”
이 차장은 몸을 숙이고 목소리를 더욱 낮추면서 말을 이었다.
“그게 상위 레벨 리스트가 따로 만들어져 업데이트되었는데. 거기에 자네와 OSS 관련 인물들이 모두 들어갔다네.”
“네?”
“중요한 관리 자원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지. 너무 신경 쓸 건 없네! 담당관이 내 후배고. 이제 나도 그 리스트에 들어갈 거 같으니까.”
“아 ···.”
“그리고 사실 아무리 불명예 퇴직이라 하더라도 내가 OSS에 재취업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네.”
“그런데 어떻게?”
“본사에선 날 이참에 관리가 힘든 OSS에 백업 자원으로 날 심는 셈 치고 보내준 거야.”
“그런 사실을 ···?”
이 차장은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얼굴로 내 눈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자네한테 또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네.”
“…”
“그리고 자네가 국익에 반대되는 일을 하지 않을 거란 믿음도 있고. 하하”
“그럼 불명예 퇴직이란 것도?”
“시파! 그건 진짜라네. 사표 쓰라고 해서 OSS 간다고 하니까, 인심 쓰는 척하면서 날 비공식 자산으로 분류해 버린 거지.”
“아 ···.”
“사실 속마음으론 잘되었다 싶었지만. 자존심 구긴 것처럼 연기했다네. 하하하”
“그렇군요. 아무튼, 날도 추워진다고 하니 이곳에서 여유롭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려 그려. 고맙네.”
OSS에서는 그를 계속 이 차장으로 부르게 되었다. 공식 직함은 정보 고문이었지만 서로 이 차장이란 호칭이 편했다.
…
타위타위 신흥캠프에서의 하루하루에서 일상의 평온이란 것을 오랜만에 느끼고 있었다.
이회영함과 9번함이 며칠이면 들어온다는 소식이 기쁨과 함께 날 각성시켰고. 그 각성에 또 한 번 정신을 차리게 하는 일이 생겼다.
진짜 겨울이 온다는 신호였다.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기온을 확인해보았다.
타위타위는 필리핀에서도 남쪽 끝이고 더 따뜻한 곳이라 영상 17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데 필리핀 마닐라의 기온이 섭씨 10.5도까지 내려간 것이다.
이제 겨울의 시작일 뿐이었는 데, 필리핀 역사상 최저 기온을 갱신한 기록이었다.
그 최저기록은 1914년 1월 11일 마닐라 항구지역에서 기록된 온도였다.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필리핀 전역에서 동사자가 생기고 있었다. 영상 10도에 얼어 죽는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지만 사실이었다.
오늘의 날짜를 확인하니 12월 7일이었다.
‘이것보다 더 추워진다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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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