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apocalyptic world, I'm on a submarine RAW novel - Chapter 7
7화 – 포트사이드
“혜인씨!”
그녀가 천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가방 하나 골라봐요. 사줄게요. 멀리 나와 고생하는 직원 복지 차원이니 부담가지지 말고요”
혜인은 다소 놀란 듯한 표정으로, 커다란 동공을 내 눈에 맞추었다. 그리곤 금세 새침한 얼굴이 되면서 말했다.
“음 ··· 그거 그냥 상여금으로 주세요. 명품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
“좋아하는 브랜드가 없는 게 아니고, 명품 자체가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네. 왠지 돈 주고 사는 계급장 같아서, 좀 우습더라고요, 천만 원짜리, 3백만 원짜리 뭐 이런 식으로. 헤헤”
“그럼 어떤 게 취향이에요?”
“이름 없는 공방의 장인이 만든 그런 거요.”
“오오, 그럼 그 가방도”
그녀가 늘 지니고 다니던, 작을 숄더백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연남동에 있는 공방에서 젊은 장인이 만든 거예요. 지금은 상수까지 밀려났지만 ···.”
“멋스럽네요. 좋은 소비이자 투자습관입니다.”
“네? 투자요?”
“이름 없는 공방에서 장인이 만든 ··· 그게 바로 브랜드의 시작이고, 명품의 스토리죠. 훗날 혜인 씨의 그 가방이 엄청난 가격에 팔릴지 누가 알겠어요.”
“너무 과장해서 해석하신 거 같네요.”
“이름 없는, 아무도 모르는 그때가, 진흙 속에 파묻힌 진주를 찾을 수 있을 때죠.”
“그렇군요”
그녀는 알듯 모를 듯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게도 그녀는 한구석에 숨겨둔 말의 봉인을 푸는 것 같았다.
우린 쇼핑을 마치고, 소냐또레호로 돌아왔다.
김창기 선장이 항해계획을 점검하고 있었다.
“선장님. 내일 출항하면 바로 수에즈 운하를 거쳐 한국으로 향하도록 하죠”
“그런데, 수에즈 운하의 특성상 바로 통과가 안 될 겁니다. 출발하면서 항만 당국의 허가받고 예약을 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상당한 기간을 대기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네. 일단 이집트 포트사이드에 요트 정박지부터 예약을 해두어야 할 듯합니다.”
“수에즈를 통과하기 전에 기항해서 보급과 점검을 해두는 것도 필요하겠네요”
선장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로 대답을 했다.
“네 그런데. 대표님! 걱정되는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어떤 거죠?”
김창기 선장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리곤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여기 지도를 보시면, 수에즈를 지나 홍해를 빠져나가면 바로 소말리아입니다. 만날 확률은 낮지만, 해적이 자주 출몰하는 해역입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일단 선장님은 안전한 항로계획을 준비해 주시고요. 저는 보안요원을 승선시키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대표님! 보안요원을 승선시킬 경우, 그들이 총기를 휴대한 채로 돌아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호위선이 우리 배를 에스코트하는 방법이 좋겠네요. 그러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후 보안요원과 접촉할 만한 기항지는 어디가 좋을까요?”
김창기 선장은 지도를 펼쳐, 홍해의 끝자락 한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곳! 지부티가 좋겠습니다. 홍해를 빠져나가기 직전이고 프랑스군, 미군도 주둔하고 있으니 치안도 좋습니다.”
김창기 선장과 대화를 마치고, 바로 이혜인 비서에게 본사와 통신하여 다음 사항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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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배를 보호할 수 있는 안전하고 전문성 있는 해양보안회사를 수배하여 다음 사항으로 계약할 것.
– 5인 이상의 무장한 보안요원이 별도의 선박으로 소냐또레호를 지부티에서 에스코트하여 안전한 해역까지 경호한다.
– 가능하면 보안요원에 경험 있는 한국인을 포함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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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장거리 항해를 위한 보급과 정비를 마치고, 배는 카사블랑카에서 출항했다.
다시 지브롤터 해협을 지나 이집트의 포트사이드에 기항할 것이다. 제법 긴 여행으로 2500해리로 10일 정도 소요되는 거리였다.
…
지중해에서 지루한 항해가 계속되었다.
배를 멈추고 낚시를 하기도 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도 했지만, 마냥 배를 멈춰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카사블랑카를 떠난 지 5일이 되었을 즈음 본사의 현민성 구매팀장으로부터 경호 계약과 관련한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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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ton Global 이란 해양보안회사를 선정할 예정이며 다수의 성공적인 실적을 확인하였고, 결정을 득하여 포괄적 보안 패키지를 계약할 예정.
4~5인의 무장 보안요원이 배정될 것이며. 프랑스 외인부대, 데브그루, 한국의 UDT/SEAL 출신이라는 것.
보안회사의 컨설팅 결과 홍해에서 지부티 항으로 입항하는 경로에 위험지역이 있으니,
계약이 완료되면 홍해의 중간지점으로 좌표로 보안회사의 선박이 나가서 에스코트하겠다는 것.
특히 수에즈 운하 통과 일정에 따라 준비를 할 것이며 대기 시간에 따라 비용의 증감이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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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을 확인하고, 그대로 진행하라는 회신했다. 더불어 상호식별 방법과 통신 유지를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을 정리해서 보내라고 덧붙였다.
…
지중해 바다에서 열흘이 지났다.
소냐또레는
우아하게 푸른 바다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메인 데크에 서서,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또 한 번 감탄하고 있었다.
태양이 수평선을 넘어가면서, 금색과 호박색으로 칠해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감상에 빠진 사이.
어깨에 차가운 것이 닿은 느낌에 놀라 돌아보니, 혜인이 양손에 맥주를 들고 빙긋이 웃어 보였다.
“내일이면 포트사이드로 기항하게 될 겁니다.”
“아핫! 다행이네요. 저도 조금 지겨워지려는 참이었는 데.”
“지중해의 마지막 노을일지도 모르니, 건배하죠”
“장밋빛 인생을 위해!”
“하하하”
지중해의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맥주가 유난히 시원하다고 느꼈다. 그 맛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다음날.
포트사이드 항구가 시야에 들어오자 다소 흥분되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항구 건너편 거대한 첨탑을 지닌 대사원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요트는 항구의 여객 부두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정박지를 찾아 속도를 늦추자 엔진의 윙윙거리는 소리는 점점 희미해졌다.
배의 홋줄을 묶고 정박이 끝나자,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배에서 뛰어 내렸다.
하루 동안 기항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에즈 해군에서 모든 요트 항해를 잠시 중단시켰다고 전해왔다. 어쩔 수 없이 사흘간 머무르면서 각자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하였다.
헬난 포트 사이드 호텔로 숙소를 예약했고, 혜인과 함께 호텔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하고. 예약한 방에 들어섰다. 그 순간 지중해 바다에서 지친 것이, 단지 땅을 밟지 못해서만이 아닌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잊고 지내던 갈증을 각성한 순간.
그것을 채우기 위해 거침없이 서로를 탐하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여행자처럼.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끝없이 마시고,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폭풍 같은 시간이 지나고, 나른한 평온이 찾아오자 혜인에게서 나지막하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아 ~ 어쩌죠?”
“왜?”
“사실은 요~ 솔직히 배를 타고 오는 내내, 그 생각만 났어요”
“그 생각?”
“마치 금단증상처럼 말에요”
“ … ”
“오빠! 우리 할 수 있을 땐 꼭 해요”
“그래”
나는 혜인을 한 번 더 열정적으로 안았다.
…
다음 날 아침, 우린 포트사이드를 둘러보며 산책을 했다. 도시도 바다만큼 깨끗했다.
전쟁박물관이 있다 하여, 가보았지만. 볼거리가 너무 없어서 놀랐다. 왜 그런지 그 사실이 너무 우스워서 둘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날은 종일 산책을 한 것 같다.
포트사이드의 지중해 해변을 걸었고, 시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번화한 시장을 걸을 땐 이국적인 향신료의 향에 취하기도 했다.
종일 걸은 혜인에게 물었다.
“힘들지 않아?”“조금 그렇긴 한데. 왠지 계속 걷고 싶어요. 바다 위에서 열흘 동안 생활하면서 걷는 것에 대한 결핍이 생겼나 봐요”
“하하하”
그렇게 밀린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땀과 먼지를 씻고 나니, 혜인이 내 가운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말했다.
“할 수 있을 땐?”
“어 ··· 해야지”
어제는 타들어 가는 갈증에 물을 찾은 짐승이었다면.
오늘은 가을바람을 간지럽히는 강아지풀처럼, 귓가를 스치는 봄바람처럼, 느릿하고 부드럽게 서로를 발견하고 쓰다듬었다.
아주 천천히.
풍선을 불듯이 희열의 임계점을 향해, 서로의 숨을 불어 넣었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그 희열의 풍선을 동시에 터트렸다.
여행의 고단함에도
남은 마지막 에너지를 서로에게 쏟아부었다.
따스한 체온을 나누는 느낌마저 아득해지며 나른하게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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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