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I will die as an actress, not a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5)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135화(135/135)
일주일 후.
티저 촬영을 마치고, 포스터 촬영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다.
각 인격 컨셉에 맞춰 몇 번이고 옷을 갈아입고 메이크업을 수정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작은 소파에 이선호가 앉아있었다.
그런 이선호를 덮치는 포즈의 백장미부터, 그 둘을 질투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오피스룩의 정세은, 구석에 박혀 눈치를 보는 이은재, 중앙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유다양.
그리고 맨 뒤에서 모두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유하영까지.
유하영은 포스터의 어두운 구석에 자리한 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숨어있었다.
아마 팬들이나 네티즌들이 발견해내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총 여섯 명이 담기는 재미있는 포스터였다.
편집팀이 다섯 개의 버전의 한새나를 이선호 주위에 배치할 예정이었다.
역시나 가장 힘든 촬영은 백장미.
작은 소파 위에서 이선호 위에 올라타 덮치는 시늉을 해야만 했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아, 예. 편하게 올라오세요….”
이선호와 되도 않는 인사치레를 나누며 자세를 잡는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네, 새나 씨 다리를 선호 씨 다리 안쪽으로….”
포스터 감독님이 구도를 잡아주고 있었다.
“네네. 지금 그 자세로. 선호 씨가 새나 씨 양 팔목 잡아주세요.”
민망한 자세로 훅 가까워진 거리.
이선호가 내 팔목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괜찮아요? 안 불편해요?”
“예예….”
영 엉거주춤한데, 잘 나오려나.
민망함을 뒤로 넣어두고 감독님을 쳐다보았다.
“지금 잘 나오나요?”
그러자 감독님이 카메라를 보며 스읍 소리를 냈다.
흠.
잠시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때 백장미 몸 안에 있을 때 자세가 어땠더라.
나도 모르는 새에 강지오를 덮치고 있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난 온 힘을 다해 강지오에게 덤벼들었고, 강지오는 필사적으로 날 막아내고 있었다.
그땐 분명 이런 애매한 자세가 아니었는데.
“선호 씨, 팔걸이에 머리 기대볼래요?”
이선호가 슥슥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나 역시 얼굴이 잘 보이도록 카메라 반대 방향으로 머리카락을 넘긴 후, 몸을 가까이 밀착했다.
이선호가 조금 놀라서 날 쳐다봤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의 자세를 찾아갔다.
이럴 때는 백장미가 도움이 되는구나.
속으로 탄식하며 이선호에게 팔목을 내밀었다.
“이제 잡아볼래요? 잔뜩 찡그린 표정 짓고.”
이선호가 내가 시킨 대로 팔목을 잡고 밀어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내가 다칠까 봐 신경 쓰이는지 이선호가 전혀 힘을 주고 있지 않았다.
“제 손목 꽉 잡아요, 선호 씨.”
“네?”
“정말로 싫어서 밀어내는 것처럼요.”
날 잠시 보던 이선호가 이내 손목을 꽉 잡고 밀어냈다.
그러자 감독님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어, 지금! 딱 좋다! 이거야, 이거.”
“이야, 자세 좋은데?”
“와, 핫하다!”
카메라 주위에 있던 스탭 두세 명이 박수를 보냈다.
이거다.
“가볼게요, 바로!”
플래쉬가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이선호는 카메라를 쳐다보고, 난 이선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새나 씨, 카메라 한 번 봐볼까?”
감독님이 주문을 해왔다.
그렇게 잠시 카메라를 보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감독님, 카메라를 보는 인물은 유다양, 강지오, 유하영 이렇게 세 명이면 어떨까요?”
“응?”
감독님이 잠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오, 대박. 완전 좋은데? 천재다.”
감독님이 흔쾌히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
이선호도 무슨 뜻인지 캐치한 듯 아래에서 살짝 웃었다.
“새나 씨, 아이디어 뱅크예요?”
“그런 걸로 하죠.”
유다양과 유하영, 강지오는 마지막까지 남을 핵심적인 주인공이라는 걸 은연중에 암시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아마 눈치 빠른 팬들은 바로 알아보고 후반 내용을 추리할 것이었다.
그것 역시 나름대로 드라마 홍보에 도움이 되겠지.
감독님이 카메라를 들고 외쳤다.
“오케이, 그럼 새나 씨는 선호 씨에게 시선 고정. 덮치려는 표정! 널 갖겠어!!”
다시 한번 촬영이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 * *
포스터 촬영을 마친 오후.
촬영장에서 시큰거리는 팔목을 매만지며 대본을 검토하는데 이선호가 다가왔다.
“그러게 좀 살살 잡는다니깐.”
이선호가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작은 온열팩을 건넸다.
삘받은 감독님이 백장미 촬영에 온 힘을 쏟아부은 덕분에 촬영이 30분이나 더 길어졌다.
그간 이선호는 내 팔목이 영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온열팩을 건네받으며 피식 웃었다.
“잠깐만. 이거 멍든 거 아니야?”
이선호가 눈을 찌푸리며 내 팔목을 가져갔다.
“어라.”
나도 그제야 내 팔목을 제대로 들여다봤다.
자세히 보면 모를 옅은 멍이 살짝 들어있었다.
“아, 이게 뭐야.”
이선호가 속상한 듯 내 팔목에 팩을 가져다 댔다.
“약 갖다줄게요.”
“괜찮아요. 아프지도 않고, 티도 안 나요.”
이선호가 미간을 풀지 않고 한숨을 푹 쉬는데.
“<강력한 여자> 티저 나왔다!”
한 스탭이 외쳤다.
“뭐? 걔네 아직 편집 중이었다며??”
“아씨, 우리 팀 한발 늦었어!”
“야야, 빨리 틀어봐!!”
스탭들이 구름 떼처럼 모여들었다.
예정보다 빠른 소식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데, 이선호가 옆에서 재빨리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강력한 여자> 티저 동영상을 눌렀다.
나도 옆에 붙어서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티저의 시작은 어느 도로 위.
형사들이 타고 있는 봉고차가 검은 차 한 대를 쫓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질주가 미친 듯이 이어지는데….
갑자기 다른 봉고차가 튀어나와 두 차를 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앞서가던 작은 검은 차가 교묘히 다른 차들 틈에 섞여 빠져나가고.
동선이 엉킨 두 봉고차가 부딪치고 말았다.
끼익- 쿵!
두 봉고차가 서로 박은 채로 멈춰 섰다.
그러자 한 봉고차 조수석에서 잔뜩 열 받은 형사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신경질적으로 내렸다.
“어떤 새끼야!!!”
성민희였다.
성민희는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로 포효하고 있었다.
단 한 마디로 분노+아우라+코믹을 전부 보여주는 연기력은 덤.
그러자 다른 봉고차 조수석에서 이번엔 서재연이 내렸다.
서재연이 머리를 박았는지 감싸 쥐고 잔뜩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차 바퀴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걷히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서재연과 성민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또 너냐?”
“내 인생에서 꺼지라고요, 좀!!!”
“쟤 어쩔 거야. 너 때문에 놓쳤어.”
“니 무능을 왜 나를 탓하세요. 관둬, 그냥.”
결국 열 받을 대로 열받은 성민희가 자켓을 집어던지고 서재연에게로 향했다.
서재연도 지지 않고 성민희에게로 걸어갔다.
봉고차에서 우르르 내린 덩치의 형사들이 두 사람 앞을 막아 세웠다.
두 여자가 개의치 않고 서로의 머리끄댕이를 잡기 시작했다.
“아, 아악! 안 놔?”
“진짜 뒤질래? 야!!!”
“어어, 제발. 팀장님들. 놓으세요, 제발.”
“하, 진짜. 또 이러네, 이 인간들.”
그야말로 도로 위는 아수라장.
영상을 보며 킥킥 웃음이 새어 나왔다.
두 사람의 코믹 연기가 아주 일품이었다.
그동안 서재연이 코믹 연기하는 건 본 적 없던 것 같은데.
색다른 느낌이랄까.
곧바로 다음 장면은 어느 단란한 가정집으로 이어졌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거실.
성민희가 코에 휴지를 꽂고, 서재연이 얼굴에 생채기를 단 채로 소파에 앉아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저 시어머니 진짜 지독하지 않냐.”
“내 전남편 시엄마 생각나.”
서재연이 성민희 말에 키득키득 웃었다.
두 룸메이트가 언제 싸웠냐는 듯 같이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히히덕거렸다.
집 안 냉장고와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이 어릴 적부터 동고동락해왔던 사진들이 붙어있었다.
“넌 어쩜 손아귀 힘이 날이 갈수록 세지니?”
“내가 할 말이야, 이년아. 이혼하더니 더 지독해졌어.”
“이게 진짜. 또 해볼래?”
이후, 기막힌 우정을 자랑하는 두 여형사가 전대미문의 연쇄살인범을 두고 공조수사를 벌이는 내용이 펼쳐졌다.
위험에 처한 친구를 목숨 걸고 구하는 서재연의 눈물겨운 여정까지.
짧은 티저 안에 수두룩하게 담긴 명장면들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티저가 끝나고, <강력한 여자> 타이틀이 쾅 뜬 걸 보며 박수를 쳤다.
“와, 재밌다!”
옆에서 이선호가 피식 웃었다.
“새나 씨, 지금 재밌다는 소리가 나와요? 응??”
이선호는 또 혼자 불타오른 모양이었다.
“왜요. 잘한 건 인정해줘야죠.”
그때 티저를 두 번이나 돌려본 스탭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아, 우리 늦어서 어쩔 거야. 편집팀 어디까지 됐대?”
“와, 실시간 댓글 미쳤네. 조회 수도 계속 올라가잖아. 하 짜증나.”
“우리도 오늘 중으로 내야 하는 거 아니야?”
“야, 감독님 어디 계셔? 조감독님!!”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마음 졸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선호도 계속 신경 쓰이는지 티저를 몇 번이나 돌려보며 댓글을 확인했다.
나만 너무 속 편한 채로 앉아있나…?
다리를 조금 떠는 이선호 무릎에 손을 얹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아요.”
“….”
“우리 거 재밌잖아요. 안 그래요?”
그러자 이선호가 떨던 다리를 뚝 멈추고 폰을 내려두었다.
그리고 살짝 웃었다.
“새나 씨 말이 맞아요. 저 좀 조급했나 봐요.”
“걱정 마요. 우리 드라마 재밌고,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이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얼마 후, 제작발표회 현장.
결국 이날이 오고야 말았다.
발표회 건물 입구부터 이선호 팬들과 내 팬들이 보낸 현수막과 화환들로 꽉 차 있었다.
객석에는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다른 드라마와 경쟁 구도가 생겨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화력이 가장 센 느낌이었다.
오늘 오전에 <강력한 여자> 팀이 먼저 제작발표회를 끝마치고, 이미 기사가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플래쉬를 터뜨리는 기자들 앞에서 이선호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두 분 하트 한 번 해주세요!”
이선호와 웃으면서 하트 포즈를 취하며 카메라를 쳐다봤다.
갑자기 마음이 벅찼다.
드디어 오늘이 오는구나.
아직 촬영분도 조금 남았고, 이 드라마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다.
다만 몇 달을 고민하고 앓았던 드라마를 세상 밖에 선보인다고 하니 마음이 묘해졌다.
대본 속에 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야말로 선남선녀네요! 두 분 자리에 앉아주세요!”
MC의 말을 들으며 감독님과 함께 무대에 앉았다.
앉자마자 기자들이 미친 듯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새나 씨, 차기작 선정 기준이 뭡니까?”
“촬영 중에 재밌는 에피소드 있었나요?”
“오전에 <강력한 여자> 팀 제작발표회 현장 소식 들으셨나요?”
“서로 라이벌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서재연 씨와 따로 연락 주고받으시나요?”
어버버하며 마이크를 건네받는데 한 기자가 물었다.
“한새나 씨, <강력한 여자> 팀 시청률 이길 자신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