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I will die as an actress, not a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15화(15/135)
순식간에 불길함이 엄습했다.
“자기, 댓글 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 악역 맡으면 악플도 많잖어.”
“맞아, 새나 씨. 이 정도면 악역으로 잘 성공시킨 거니까, 뒤따라올 수밖에 없는 일엔 관심 꺼도 돼요.”
박훈 선배님과 다른 선배들까지….
“…?”
가만히 폰을 꺼내 들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실시간 검색어 1위부터 7위까지 내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한새나」
「한새나 인성 논란」
「플랫슈즈 유지안」
「한새나 폭로」
두 시간 동안 올라온 기사들이 벌써 스무 개가 넘었고, 댓글들엔 악플이 넘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둥, 관상이 어쨌다는 둥, 업계 찌라시 다 들었다는 둥.
기사들도 가관이었다.
‘한새나, 신인답지 않은 태도 논란 불거져….’
‘플랫슈즈 유지안 역 한새나, 알고 보니 사생활 메소드 연기?’
참 나.
생활 연기 두 번 하다가는 차로 사람도 치겠다.
“귀엽네.”
“응?”
무심코 툭 뱉은 말에 선배들이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지난 삶에서 겪은 악플 내용에 비하면 이 정도는 많은 관심에 감사한 정도였다.
뭐, 보나 마나 양의철 짓이겠지.
지은 씨가 다가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기 촬영 괜찮겠어?”
지은 씨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괜찮아, 나.”
뭐, 이 정도야.
모두를 향해서 씩씩하게 웃어 보였다.
“전 괜찮아요! 원래 이 정도 욕은 먹어야 뜬 거잖아요.”
내 말에 몇몇이 웃어주었으나, 걱정스러운 분위기는 가시지 않았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렇게 유지안이 빵 뜨고 난리가 났는데, 갑자기 안티가 생겨나는 게.”
유리 씨와 몇몇 배우진들이 이상하다는 듯 갸웃거렸다.
“그치, 좀 이상해. 그리고 대체 악역 맡았다고 배우 공격하는 건 언제까지 할 거야. 다들 뒤떨어져 가지고는.”
“새나 씨가 얼른 소속사를 구해야 할 텐데.”
그러니까요, 그 소속사 문제가 꽤나 복잡하답니다.
모든 상황이 예상 그대로였다.
양의철이 한 번 찜해둔 배우를 소속사에 데려오는 과정이랄까.
이전 삶에서 양의철이 데려왔던 여러 여배우는 모조리 악플에 시달려왔던 사람들이었다.
신기할 만큼, 전부 다 그랬다.
양의철은 악플과 대중의 몰매에 잔뜩 지친 배우에게 위로를 건네며, 자신이 언론을 쥐어 잡아주겠다고 호언장담을 건넸다.
그리고 배우가 계약서에 싸인만 하면,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듯 부정적인 여론이 거둬졌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악플과 루머 모두, 사실 양의철이 퍼뜨린 것이었으니까.
이 정도로 악질이었다, 양의철은.
이 모든 진실은 양의철이 술자리에서 자신의 실적을 뽐내며 자랑하듯, 홍보팀과 떠드는 이야기를 듣다가 알게 됐었다.
‘야 요즘은 사람을 어떻게 묻는지 알아? 뒷산에 삽질은 옛말이고. 돈이랑 요거요거, 컴퓨터만 있잖아? 그럼 그게 바로 생매장이야.’
양의철이 킬킬대며 우스갯소리로 얘기하던 말이 떠올랐다.
이가 빠득 갈렸다.
게다가 양의철이 속한 AK는 원래 악역 전문 배우를 ‘캐시카우’로 활용하기로 유명했었다.
회사 입장에선 웬만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유지 비용이 많이 드는 톱스타 한 명보다는, 여러 작품에 많이 돌릴 수 있는 악역 전문 배우 여러 명이 이득이었다.
고로, 그 악역 전문 배우는 회사 입장에선 돈을 갖다주는 기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전 정말 괜찮아요. 얼른 소속사 구해볼게요! 다들 걱정 너무 감사해요.”
“새나 씨, 참 멘탈 좋아. 혹시 도움 줄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그래, 나한테도 언제든 연락해요. 이제 막 데뷔한 신인 길 막으려고 다들 환장했나.”
유리 씨가 길길이 분개했다.
그 모습들을 보자, 고마워서 웃음이 나왔다.
든든하기도 하고.
아무튼, 좀 더 두고 볼 요량이었다.
이제 곧 양의철이 나타날 것이었다.
그에 대비해 새로운 계획을 짜기로 마음먹고는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 * *
며칠 뒤.
<한새나, 영원히 꽃신만 신자>
내 이름과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은 커피차가 야외 촬영 현장 앞에 섰다.
커피차 앞으로 음료를 받아 마시는 배우와 스탭들이 웅성웅성 대며 모여들었다.
“이게 뭐야, 새나 씨 소속사 생겼어?”
아니나 다를까, 양의철이 촬영 현장에 직접 행차를 납셨다.
기가 막혔다.
이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양의철이….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튕겨볼 걸.
사람들이 계속 어리둥절한 눈으로 물어왔다.
“새나 씨, AK 기획사 들어갔어?”
“말도 없이 언제 들어갔대?”
“저 아직 소속사 안 들어갔어요.”
사람들에게 웃어 보이고는 커피차 앞으로 다가갔다.
양의철이 나를 발견하고는 한눈에 봐도 무거워 보이는 꽃다발을 들고 걸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양의철 역시 젊었다.
“배우님, 축하드립니다. 우리 최고 신인! 최고의 악역 배우!”
토기를 꾹 참고 순진한 양과 같은 표정을 얼굴에 깔았다.
“아, 감사합니다. 이런 꽃다발을 초면에… 받아도 되나요?”
“그럼요, 그럼요. 애정 공세.”
양의철이 윙크를 냘렸다.
순식간에 오바이트가 쏠렸다.
안돼, 참아야 해.
“저 이렇게 응원해주시려고… 비싼 커피차까지 해주신 거예요?”
감동한 척,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양의철이 씩 웃어 보였다.
‘다 넘어왔네. 금방이야.’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 속이 너무 훤히 보여서, 몇 마디만 주고받았는데도 지긋지긋했다.
“네, 부담 주는 거 아니에요. 제가 워낙 새나 씨 팬이거든요.”
양의철이 뒤로 손짓을 하자 거구의 두 남자가 핫팩에 미니 난로, 비싼 패딩까지 건네주었다.
“이런 선물을 제가….”
“에이, 앞으로 더 크게 성공하실 분인데. 선물들은 익숙해지셔야죠.”
양의철이 우하하 웃어댔다.
나도 수줍은 척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러자 양의철이 눈치를 스윽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저… 그것보다, 요즘 걱정 좀 많으시겠어요?”
양의철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
지나다니는 스탭들이 모르는 척 귀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걱정…. 네, 많아요.”
고개를 툭 떨구자, 양의철이 웃음을 숨기고 애써 걱정하는 시늉을 해댔다.
“하여간 대한민국 국민은 수준이 낮아. 왜 드라마를 드라마로만 안 보고, 이런 보석 같은 배우를 묻으려고 다들 난리야! 안 그래?”
양의철이 동네 사람들 들으란 듯 쩌렁쩌렁 얘기하자, 옆에 서 있던 거구의 남자 둘이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생각해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양의철이 한 걸음 더 스윽 다가왔다.
“우리 회사 법무팀이 정말 짱짱하거든요. 이런 거 한 번에 없애줄 수도 있어요, 새나 씨.”
그 말에 순진한 눈망울을 장착하고 양의철을 쳐다봤다.
“정말요?”
“그럼요. 연예인들 관리로 우리 회사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닌데요.”
괜시리 고민하는 척 꽃다발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뗐다.
“사실… 다른 회사에서도 제안이 왔는데요….”
“아이구 그랬구나, 그래서 뭐라 했어요?”
느릿느릿, 쉽게 대답하지 않는 내 태도에 애가 탄 듯 양의철이 한 번 더 물었다.
“계약한다고 아직 안 했죠?”
“네, 아직 안 했어요.”
느릿느릿 다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좀 전까지 연락 온 회사들에서도 악플 없애준다고 호언장담은 하는데, 막상 계약하면 못 도와주실까 봐……. 그게 걱정이에요.”
“아이 뭐야. 그런 게 걱정이었어요?”
양의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우리 새나 씨가 아직 너무 순진해서 우리 AK가 왜 AK인지 잘 모르는구나.”
양의철이 의기양양하게 팔을 걷어붙였다.
“있지, 새나 씨. 우리가 웬만한 배우들 스캔들이며 찌라시까지 다 돈으로, 힘으로 덮는 사람들이야. 우리 식구들은 우리가 챙기죠.”
“아… 그렇구나! 진짜 대단하시다! 근데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이라,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게 없으면 마음이 안 놓여서…….”
자꾸 말을 질질 끌자 양의철이 못 참겠다는 듯 대답했다.
“새나 씨, 그럼 우리가 얼마나 능력 있는 회사인지 보여주면 되는 거죠? 딱 3일만 줘봐요. 내가 다 해결해줄게!”
걸려들었다.
허허 웃던 직원들이 그 말에 웃음을 뚝 멈추고, 양의철을 스윽 쳐다봤다.
잠깐, 이건 아닌데, 라는 듯한 표정.
허영 많고 자존심 센 양의철 같은 인간들의 허점이 바로 이런 부분이었다.
조금이라도 못 믿는 것 같으면,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서 달려드는 것.
물론 전생에는 이런 걸 몰랐지만.
이젠 내 인생 짬바가 이젠 사십 년도 더 돼서.
꽃다발을 꼭 껴안고 양의철을 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정말요……? 제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새나 씨는 앞으로 정말 잘 될 배우예요. 난 바로 알아봤다니깐. 이렇게 꽃길만 걸으려면, 주위 도움이 필요한 법.”
양의철이 커피차의 플래카드를 척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실장님.”
고개를 푹 숙였다.
곧 양의철이 직원들을 데리고 차에 탄 뒤, 멀어져갔다.
차 뒷모습이 눈에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 * *
같은 시각.
촬영장에 대뜸 몰려온 기자들 때문에 스탭들과 배우진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저희 촬영 중이니까 나중에 하고, 돌아가세요.”
“그러지 말고, 한새나 배우 인성 문제에 대해 한 말씀씩만 해주시죠!”
“같이 지내면서 트러블 없었나요?”
촬영 관련 문제를 통제해야 하는 제작부 막내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기자들 앞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가만히 참고 촬영을 대기하던 박훈이 걸어 나와, 목소리를 깔고 한 기자에게 말을 던졌다.
“어이, 박 기자. 계속 이럴 거야?”
“배우님, 저희 몇 번 뵀잖아요. 기사 좀 쓰게 한마디만 좀 해주세요.”
기자 몇몇은 소속사를 통해 배우들과 알음알음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박훈이 힘주어 대답했다.
“새나 같이 성실한 애 또 없어. 연기밖에 모르는 애야. 괜히 이제 막 데뷔한 신인 앞길 망치지 말고, 좋게 좋게 써 줘. 박 기자 진짜 그러다가 벌 받는다.”
중후한 목소리로 충고까지 남기고 박훈이 멀어져갔다.
그런데도 기자들이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배우들을 부추겨댔다.
대기실에서 나온 정유리도 기자들을 보더니 인상을 팍 쓰고는 다가왔다.
“다들 저 인터뷰하세요. 이리들 오세요.”
기자들이 순식간에 정유리 앞에 모여 섰다.
안 그래도 여러 매스컴에서 주연을 밟고 올라선 조연이라는 기사가 즐비했고, 이 둘의 관계성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이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우리 새나 씨 진짜 나쁜 사람 전혀 아니에요. 저희 둘, 사이도 좋고, 연기 관련해서 제가 도움 많이 받았어요. 신인인데도 얼마나 잘해요?”
좀 떨어진 곳에서 다음 컷을 체크하던 조연출 정채성 역시 인터뷰에 답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배우 관련 질문들은 싸그리 무시하는 그였으나, 천사 한새나 만큼은 지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인성이 글렀다고요? 말도 안 돼요. 촬영 끝나면 항상 뒷정리까지 같이 하고 가는데요. 인사성도 밝고, 뭐든 엄청 열심히 준비해 와요.”
촬영 뒤편, 흡연 부스.
막내 작가 김지은도 담배를 지져 끄며 건성으로 응했다.
“아, 뭐야. 이런 인터뷰 할 거면 가세요. 저한테 건질 거 없을 거예요.”
멀어져 가는 기자를 보며 김지은이 인상을 썼다.
“다들 참 시간도 남아돈다, 남아돌아….”
다시 촬영장 중심부.
계속해서 쫑알거리는 기자들 때문에 촬영이 딜레이 되자, 성질 난 문 감독이 턱턱 걸어 나와 확 외쳤다.
“인성 논란은 그쪽들이 나셔야지! 남의 촬영을 방해하고! 다 안 가요, 진짜?! 경찰 불러??”
그제야 기자들이 실망한 기색을 하고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