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I will die as an actress, not a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59)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59화(59/135)
며칠 뒤.
사무실 TV에서 죽기 살기로 뛰는 내 모습이 흘러나왔다.
같이 보던 민영 언니, 윤영재 선생님, 꽃별이 모두 신나서 낄낄댔다.
“와, 한새나 이 기집애 약삭빠른 것 좀 봐.”
“원혜림 선배님이랑 골드바 나누셨어요?”
“그럼.”
꽃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웃었다.
그러자 온몸에 파스를 잔뜩 붙이신 선생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아주 제대로 당했어.”
“저 좀 잘하죠?”
“그래, 이놈아.”
“몸은 좀 괜찮으세요?”
그러자 선생님이 앓는 소리를 내면서 소파에 기대셨다.
“예능 두 번 찍었다간 삼도천 건너겠어, 아주.”
그 말에 언니가 풋 웃으며 커피잔을 들었다.
“어때, 요즘 인기는 좀 체감이 돼?”
꽃별이도 눈을 반짝이며 날 쳐다봤다.
“그러게. 플랫슈즈 때랑은 이제 확연히 다른 것 같아. 집 앞에 자주 가던 국밥집에도 내 사인이며 사진, 플래카드까지 다 걸리고. 신기해.”
“국밥집에 웬 플래카드?”
“배우 한새나 단골집. 이렇게.”
내 말에 세 사람이 웃긴다는 듯 깔깔 웃었다.
언니가 리모컨을 들어 TV를 껐다.
“그럼 이제 슬슬 그거 할 때 됐네.”
“그거?”
언니가 노트북을 들어 팬카페 화면 캡쳐본을 보여주었다.
여의도공원 실물 영접 후유증을 앓는 사람, 계 탄 덕후들 후기에 배 아픈 사람, 다른 연예인 팬덤이 조금 부럽다는 사람, 곧 새나의 생일인데 뭐 없는지 궁금한 사람들의 댓글들.
“이게 뭔데?”
내 질문에 언니가 씩 웃었다.
“팬들과 함께 하는 한새나 생일파티. 어때, 괜찮지?”
그 말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 모든 니즈를 합친 아이디어였다.
얼떨떨하기도 잠시, 대답이 먼저 불쑥 튀어나왔다.
“당연하죠!”
그러자 언니가 물었다.
“그럼 팬들이랑 뭐 할래?”
그 말에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럼… 팬미팅인 거지, 이거?
팬미팅에선 다들 뭘 하지?
토크 콘서트처럼 진행되거나, 출연작 명장면을 몇 가지 시연한 다음, 노래나 춤 몇 곡에 간단한 게임을 곁들이는 게 보통의 팬미팅으로 알고 있었다.
흠, 근데 이건 너무 평범한데.
우리 근본이들이 또 나름 개그감이 있단 말이야.
어떻게 만족시켜야 하나.
막상 하려니까 고민이 태산이었다.
인원은 300명이라고 했으니까.
갑자기 이전 삶에서 활동 부진을 이겨내고 대박을 쳤던 선유석의 팬미팅에 5천 명 인원이 몰려왔던 기억이 났다.
그땐 그렇게 부러워했는데.
나를 보러 300명의 팬들이 와준다.
갓 데뷔한 여자 배우에게는 적지 않은 인원수인데, 예매가 열리자마자 매진되었다고 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우선 조언을 좀 들어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는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곧장 폰 전화번호부를 뒤졌다.
그때 이석현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이석현에게 팬미팅 조언을 구하는 문자를 보내자마자 1분 만에 답장이 날아왔다.
이 자식은 스케줄도 없나.
– 저야 뭐, 워낙 다재다능하니까. 춤도 추고, 노래도 했죠. 아 맞다, 마술쇼도 했다. 비둘기.
팬미팅 조언에 대한 이석현의 답장이었다.
어떻게 얘는 문자까지 얄밉냐.
비둘기는 어떻게 했냐고, 대체.
다음으로 간만에 연락한 유리 씨 답장이 이어졌다.
– 음… 나도 노래 두 곡 정도 했어. 하나는 애창곡, 하나는 팬송. 게임할 때 상품으로 내 애장품 걸었는데 그게 인기 좋았던 듯?
역시 관록은 관록이다.
이제야 좀 기억해 둘 만한 정보가 나왔다.
열심히 메모해두고 있는데, 유리 씨가 문자를 하나 더 보내왔다.
– 다른 것보다, 새나 씨 팬들이 궁금해하는 모습을 알려주면 어때?
그 말에 결국 유리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라디오 게스트 나갔을 때 플루트 배운 적 있다고 했더니 우리 팬들이 궁금해했거든. 사실 어릴 때 잠깐 배운 거라 팬미팅 직전까지 딱 한 곡만 열심히 연습해 갔는데, 결국 앵콜 요청받아서 실력 다 들통났어. 그래도 팬들은 그런 거 좋아해.’
짧은 전화 내용을 요약하자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팬들의 궁금증을 풀어 줘라’가 관건이었다.
‘팬들이 나에게 궁금해할 만한 것.’
전화를 끊고, 혼자 머리를 싸맸다.
그러다 혼자서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노트북을 열었다.
팬카페 글쓰기 창을 열어두고 또 한창 궁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적은 건 짤막한 한 줄 뿐이었다.
「근본이 여러분, 저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어요?」
글을 올리자마자 1초 만에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다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 너무 많은데? 좋아하는 음식! 이상형!
– 인생 영화 추천해 주세요.
– 좋아하는 배우 혹은 아이돌? 춤 연습 썰도 궁금해요!
– 짝사랑 썰 풀어주세요.
댓글 중에 명탐정도 나타났다.
– 뭐야, 설마 이벤트? 드디어 팬미팅 하나?
이 댓글 덕분에 팬들의 화력이 더 불타기 시작했다.
내 요리 실력, 다룰 줄 아는 악기, 좋아하는 스포츠팀, 애창곡, 좋아하는 책, 친한 연예인, 연기해보고 싶은 캐릭터 등등.
다양한 질문이 달렸다.
연기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싶다는 팬들의 소원까지.
그 댓글들을 보니 나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궁금해할 수 있구나.
어떻게 준비하면 최대한 나를 많이 보여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아야 했다.
* * *
며칠 뒤.
저 멀리 무대 위로 쏟아지는 조명들이 환했다.
깜깜한 무대 뒤에서 떨리는 마음을 안고 서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날짜 조금만 더 미룰걸.
너무 급하게 준비했나….
꽉꽉 들어찬 객석이 더 떨리게 만들었다.
300석 규모라고 해서 설마 했는데, 빛의 속도로 티켓이 매진되더니 추가로 풀린 50석까지 순식간에 다 차버렸다고 들었다.
“웬일이야, 할머니가 긴장을 다 하시고?”
옆에서 이석현이 또 빙글빙글 놀리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하게 흔쾌히 지원 사격을 나와준 이석현이었다.
여러모로 참 고맙긴 고마운데.
괜히 불렀나.
“오프닝 10초 전입니다!”
스탭의 말에 객석이 조용해졌다.
“3, 2, 1. 마이크 온!”
이석현이 날 보며 살짝 웃고는 먼저 무대 위로 걸어 나갔다.
공연장이 날아갈 것 같은 함성이 쏟아졌다.
무대 뒤에서 이석현의 등을 보며 심호흡을 했다.
“순임아, 여기는 대체 어디냐? 너 나를 어디로 불러낸 것이냐?”
이석현이 무대 위에서 천연덕스레 대사를 쳤다.
팬미팅 오프닝은 궐꽃 설정의 짧은 단막극이었다.
무대 위에서 능청스레 헤매는 이석현에게 다가갔다.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이 들려왔다.
소리가 멎을 때쯤 이석현에게 답했다.
“신하로 남겠다 했다가 과로로 요절하게 생겼습니다!”
답지 않게 처음으로 왕에게 투정을 부리는 순임의 모습이었다.
“일이 많아 못 살겠어서 오늘은 파업입니다.”
“이 수많은 백성이 다 우리만 보고 있는데, 정녕 파업을 하려는 것이냐?”
이석현이 객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났다.
“됐, 됐습니다. 부끄러워서 이만 들어가야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오너라. 그 이야기 들었느냐? 세간에는 우리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나왔다더구나.”
“무엄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전하의 사생활을 발설하다니요? 엄벌에 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 대사마다 팬들이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에 나까지 즐거워졌다.
이후, 드라마에 나왔던 두 사람의 로맨스 씬을 패러디한 대사 몇 가지를 주고받았다.
“체통을 지키소서! 제발!”
외전 같은 짧은 연극이 끝난 뒤, 이석현이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며 짤막한 인사를 건넸다.
“그럼 이제 다들 즐거운 시간 보내요! 나 더 보고 싶으면 내 팬미팅 때 오셔요들!”
과연 이석현다운 퇴장이었다.
나도 고마움을 담아 이석현에게 손을 흔든 뒤, 스탭들이 세팅해준 의자에 앉아 핸드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한새나입니다.”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함성이 다시금 공연장을 메웠다.
“근본이 여러분, 너무 보고 싶었어요!”
“저도요! 언니!”
“한새나! 실물이 더 예쁘다!”
한참이나 관객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그 말을 다 들어준 뒤 생긋 웃었다.
“우리 오늘 신나게 놀아봐요! 제가 궁금한 거 있는지 팬카페에 올렸던 거 기억하시죠?”
“네!!”
팬들의 우렁찬 대답이 돌아왔다.
“연기하는 거 직접 보고 싶다는 분들도 계셔서 한번 준비해 봤어요. 마음에 드셨어요?”
이번에도 객석에서 한 마음 한뜻으로 외치는 대답이 돌아왔다.
마음이 뿌듯해졌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오프닝 아니려나.
팬들의 생글생글한 얼굴을 보니 떨리던 마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이 순간을 나도 실컷 즐기고 싶어졌다.
“우선 여러분이 제게 궁금해하셨던 거, 질문 많은 순서대로 다섯 가지 골랐어요.”
판넬을 들고 스티커를 하나씩 떼면서, 5위부터 거꾸로 순위를 오르며 질문을 읽었다.
질문을 다 읽자, 스피커에서 명랑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러분, 빨리 답변 듣고 싶죠?”
팬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대 위를 훑었다.
무대 뒤에서 MC 채주이 씨가 걸어 나오셨다.
“대박, MC 있었어?”
“어쩐지. 웬만하면 다 있는데 없더라니.”
“와, 채주이다! 둘이 친해졌나?”
무대 위에서 반갑게 채주이 씨의 손을 맞잡았다.
예능 출연한 걸 계기로 연이 닿아, MC 요청을 보냈을 때 선뜻 들어준 주이 씨였다.
팬들이 유독 더 반가워하는 반응을 보였다.
주이 씨가 프로 MC답게 분위기를 붕 띄웠다.
“자,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한새나를 알려줘, 빙고 게임!”
팬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그렇게 다 같이 종이에 스포츠, 가수, 영화, 음식, 취미를 각각 다섯 개씩 쓴 뒤 빙고 게임을 시작했다.
가장 많이 빙고를 완성한 순서대로 팬들에게 내가 만들어 온 수제 쿠키를 선물로 주는 이벤트였다.
“자, 첫 번째. 좋아하는 스포츠, 야구! 스케터스 팀 팬입니다.”
그러자 객석에서 갖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새나 보살이네.”
“어쩐지 참는 연기를 그렇게 잘하더라.”
“아악! 맞췄어! 나랑 똑같아, 누나!”
배시시 웃고 다음 단어를 불렀다.
“그 다음! 좋아하는 음식! 바로 꼼장어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동시에 와하하 웃었다.
채주이 MC가 마이크를 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꼼장어 뭐예요. 새나 씨, 이슬만 먹고 사는 줄 알았는데. 그게 진짜 그 이슬?”
“에이, 아니에요.”
그러자 사람들이 야유를 보냈다.
“그럼 우리 새나 씨 주량은 어느 정도?”
“저야 뭐…”
사람들 눈치를 흘끗 살피며 능청스레 답했다.
“한 병?”
“에이, 거짓말이다!”
“언니 술 잘 먹는다고 소문났어요!”
그러자 MC도 웃으며 보탰다.
“아, 새나 씨. 아주 천연덕스러워요. 우리 배우 지켜주는 차원에 다음으로 넘어갑시다.”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