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I will die as an actress, not a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66)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66화(66/135)
나흘 뒤.
어느덧 촬영은 마지막 클라이막스 두 장면만을 남겨놓고 있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짧은 단편 촬영은 아쉬움을 남겼다.
펜션 안, 준비된 테이블 앞에 나, 꽃별이, 재형 씨, 원혜림 선배님 이렇게 넷이 둘러앉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다 이미 죽고 없었다.
준비해온 캠코더를 들어 테이블 앞에 앉은 사람들 한 명 한 명 얼굴을 비췄다.
꽃별이가 연기하는 은채에게 캠코더 초점을 고정한 채 물었다.
“넌 어떻게 하고 싶어? 이 돈 나눠서 나갈래?”
그러자 은채가 관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전 정말 죽으러 왔어요. 돈은 필요 없어요.”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허영실이 그 말을 비웃었다.
“어린 게 뭐가 그리 힘들다고. 네가 죽는 게 뭔지 알아?”
그러자 은채가 무표정으로 원혜림을 응시했다.
“저 싸이코 같은 기집애. 너 같은 년들이 제일 무서워, 난. 애 안 낳길 잘했지. 저렇게 크면 어떡해.”
그 말까지 마친 허영실이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목을 잡았다.
“컥. 컥…!”
허영실이 순식간에 발작을 일으키며 옆으로 쓰러졌다.
“켁… 켁켁…”
허영실의 목 위로 핏줄이 바짝 올라섰다.
“안… 돼…”
허영실이 눈을 뜬 채 숨을 멎었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말없이 캠코더를 들어 영실이 죽은 모습을 담았다.
그때 재형 씨가 물었다.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준호의 목소리로.
“왜 그렇게 카메라에 집착해?”
“기록을 남겨야 하거든.”
“왜?”
캠코더에서 눈을 떼고 눈앞의 유준호를 쳐다봤다.
“처음엔 단순히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이젠 달라.”
“….”
“너 같은 살인마들이 한 짓을 증거로 남겨야 하거든.”
내 말이 끝나자 테이블 위로 정적이 맴돌았다.
유준호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쩌렁쩌렁 울리는 낮은 웃음소리가 기괴했다.
“언제부터 알았어?”
유준호가 처음으로 즐겁다는 듯 물었다.
대답하지 않고 그 웃는 모습을 캠코더에 담았다.
유준호가 실컷 웃고 나서 말했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 참 멍청하지 않아?”
“….”
“순수하게 죽고 싶다는 마음 하나 지키면서 죽을 수 있었는데 굳이 돈 때문에 죽잖아. 누구 돈인지도 모르고, 이 돈이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르면서.”
유준호가 핵심을 짚었다.
맹목적으로 돈을 좇으면서 그 누구도 던지지 않았던 질문.
“넌 알아?”
내 질문에 유준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캠코더를 똑바로 응시하며 주머니에서 칼을 빼들었다.
“나야 모르지.”
관심 없다는 뜻이었다.
자신의 관심과 목적, 이 펜션에 온 이유는 그저 살인을 저지르기 위함이었으니까.
유준호가 테이블을 확 뒤집었다.
옆에서 은채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그 타이밍에 맞춰 캠코더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손을 들어 손라락을 접어가며 초를 셌다.
‘5, 4, …, 1.’
“컷, 오케이!”
오케이를 외치며 캠코더를 주워 들었다.
방 안에서 우리 연기를 지켜보던 배우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다들 고생했어요!”
“와, 너무 짧게 끝났다. 아쉬워!”
“혜림 선배님 진짜 약 먹은 줄 알았어요. 무서워요.”
다들 마무리 인사를 주고받던 중 유리 씨가 물었다.
“이제 딱 한 컷 남았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이 장면도 다 같이 밖에 나가서 찍을까요?”
마지막 컷에는 이 섬의 풍경이 담길 예정이었다.
이 짧은 여정의 끝을 다 함께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래, 나가자고.”
“우리 다 같이 섬에서 이틀 더 자고 갈까? 너무 아쉬운데.”
장희영 선배님이 정말 아쉬운 듯 이루어지지 못할 소원을 던졌다.
“저 스케쥴 있습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나도 이제 올라가야 돼, 오빠.”
“어우, 다들 바쁜 척!”
그렇게 다들 잡담을 주고받으며 펜션을 나섰다.
이 섬도 마지막 컷의 대미를 장식이라도 해주는 듯, 저 멀리 찬란한 노을이 내려앉는 모습을 내어주고 있었다.
절경이었다.
잠시 모두가 하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 *
이 주 뒤, 어느 회사의 점심시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튜브에 업로드된 한새나의 영상을 보고 있었다.
장희영이 죽은 시점, 누군가 손가락을 뻗어 잠시 동영상을 멈췄다.
“미친 거 아니야?”
“와, 소름 끼쳐.”
“이거 누가 틀었어? 김 대리? 이런 건 어디서 찾았어?”
“그냥 상단에 떠 있길래 눌렀는데요. 이 채널도 처음 봐요. 인더바주카포…?”
“다들 쉿! 빨리 재생 버튼 눌러요!”
* * *
같은 시각, 낡은 PC방.
학교를 짼 듯 대낮부터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모니터 앞에 모여 있었다.
컵라면이 수북하게 쌓인 자리의 모니터에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쪽이 그랬죠. 믿음 같은 건 여기서 쥐약이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말해놓고서 날 믿으면 어떡해요.”
어느샌가 열쇠를 찾아 문을 걸어 잠근 선유석이 원혜림을 보며 씩 웃고 있었다.
원혜림이 분노에 휩싸인 채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미친 연기 대박.”
“닥쳐봐 병X아.”
한 남학생이 감탄사를 뱉자마자 욕을 먹었다.
“우리 같은 편이었잖아. 응? 나가서 같이 살자며. 나 좋다며….”
원혜림이 선유석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선유석이 어림없다는 표정을 짓자 원혜림이 결심한 듯 말했다.
“그럼 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안아줘. 돈 포기할게. 나 외로운 사람이야, 알지…….”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지던 찰나.
원혜림이 순식간에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선유석의 배를 찔렀다.
“…!!”
선유석이 비명도 못 지른 채 바닥으로 쓰러졌다.
원혜림이 선유석에게서 창고 열쇠를 빼앗아 들었다.
“그러게 내가 그랬잖아. 믿음은 쥐약이라고.”
* * *
반나절 후, 지하철 안.
사람들 몇몇이 같은 영상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즈음 넷이 앉아있던 테이블이 뒤집히며 캠코더가 바닥으로 떨어져 지직거렸다.
검은 화면 위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상에 푹 빠진 사람들은 무슨 역을 지나치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숨죽여 화면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 영상 속 화면이 밝아지고 푸르스름하게 새벽이 밝아오는 선착장이 보였다.
저 멀리 배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화면 위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블랙아웃되며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 그래서 누군데! 돈 누구 거야!”
영상을 보던 사람이 지하철이라는 사실을 잊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아차, 싶어 입을 틀어막았다.
지하철 사람들이 그 소릴 듣고 풋 웃었다.
영상을 보던 다른 사람들도 결말까지 보고는 서둘러 댓글 창을 열었다.
-이게 35분짜리였다니. 진짜 10분처럼 느껴졌다.
-몰입력 진짜 최고. 한새나 감독 데뷔해라.
-다음 편 내놔. 2편 내줄 거죠, 그쵸?
-이 섬에서 일어나는 일 시리즈로 만들어도 재밌을 듯.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신도림역에 도착하자 넋 놓고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짐을 챙겨 일어섰다.
* * *
또다시 간만에 돌아온 집.
이게 얼마 만에 눕는 침대냐.
섬에서 앓았던 찬바람이 아직도 뼛속에 스며든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한껏 보송보송한 이불을 만끽하는데, 단톡방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유리 씨 : 내가 딱 감이 왔어요, 여러분.
-희영 선배님 : 뭔데?!
-유리 씨 : 진짜 딱 왔어요.
-선유석 : 뭔데요 뭔데요!
-재형 씨 : 유리 씨 말 너무 많다.
다들 조회 수와 영상 댓글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온 모양이었다.
유리 씨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유리 씨 : 이거 왠지… 그냥 저희들끼리 보는 재미로 안 끝날 것 같아요.
그야말로 폭탄 발언이었다.
유리 씨 제법 자신감 짱인데…?
속으로 감탄하며 단톡방 대화를 지켜봤다.
-혜림 선배님 : 야, 괜히 이 사람들 김칫국 먹이지 마! 특히 장희영! 오늘부터 잠 못 잔다고.
-유리 씨 : 진짜라니까요, 선배님. 저 이런 감 좋아요? 생각보다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아요.
-김은서 : 근데 저도 유리 선배님 말에 동의해요. 무엇보다 원혜림 선배님, 장희영 선배님 출연에 더 관심 쏠릴 거예요.
-선유석 : 그럼 저희… CF라도 찍는 건가요? 펜션? 패키지 여행?
-김은서 : 장난하냐?
김은서가 진심으로 어이없어하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내 쪽도 마찬가지였다.
자살 여행 패키지, 장난하냐.
-희영 선배님 : 나 떨려….
-재형 씨 : 나 참, 한 감독 생각은 어때?
내내 시니컬하게 반응하던 재형 씨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는 토끼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니 글쎄, 이 사람들이 말이야.
다들 귀여워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예상한 것보다 반응이 좋은 건 사실인지라 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보고만 있다가 치고 들어온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타자를 쳤다.
-흠… 사람들 반응까진 솔직히 모르겠어요. 다만, 관심을 더 준다면 신인배우부터 유명한 중견배우까지 합심해서 만들 만했다는 작품이라는 소리를 듣고 싶네요.
그러자 단톡방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선유석 : 이야, 제법 진짜 감독님 같은데요?
-꽃별 : 언니 멋있어요!
-희영 선배님 : 난 우리 한 감독만 믿어요 ^^
갑자기 부담스러워져서 화면을 탁 껐다.
잠시 누워서 천장을 바라봤다.
그러기도 잠시, 다시 엎드려서 아이튜브를 켰다.
들어갈 때마다 조회 수와 댓글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반응에 심장이 살짝 뛰었다.
* * *
다음 날, 작은 사무실.
한 남자가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었다.
서류 상단에 적힌 제목이었다.
남자가 괴로운 듯 목을 쓸다가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고 익숙하게 아이튜브에 들어가 무작위로 영상들을 틀었다.
창작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가진 루틴이었다.
무언가 막힐 땐 뭐라도 보고 있는 일.
영상을 몇 번 넘기는데, 묘한 단편 영화 같은 영상이 나왔다.
남자가 무심코 그 영상을 들여다보는데….
“조회수 100만? 24시간 만에?”
남자가 기겁하며, 영상을 올린 사람의 ID를 확인했다.
‘인더바주카포’
무슨 뜻인지 모를 ID였다.
남자가 마우스에서 손가락을 내려두고 진지하게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창 보던 중, 남자가 ‘이것 봐라’하는 듯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제법이잖아.”
영상은 짧은 단편 영화로, 퀄리티가 매우 의외였다.
기술적으로 말하자면 별로지만, 내용으로 따지자면 매우 훌륭한 그런 영상.
장소와 예산의 한계인 듯 영상은 내내 좁은 장소에서 진행됐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다채로운 배우들의 등장까지.
“원혜림, 장희영, 한새나, 정유리, 권재형…. 거기에 마스크 센 신인들까지.”
남자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전체적으로 심리 스릴러 느낌인데… 왜 이렇게 합이 좋지? 원래 알던 사이인가?”
심지어 무료 음원을 따다 쓴 듯한 BGM을 배경으로 배우들이 그걸 압도할 만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등장인물들의 첨예한 눈치 싸움, 갈등의 고조, 그걸 풀어내는 대사의 뉘앙스들까지.
영상이 끝나자마자 남자가 업로더의 채널을 클릭했다.
이 영상이 채널의 처음이자 마지막 영상이었다.
댓글 개수는 벌써 3천 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배우 라인업도 라인업이지만, 내용이 제일 재밌다. 요즘 영화관에 걸린 영화들보다 훨배 좋다!
-선유석 잘생겼다.
-훔쳐보는 것만 같은 희한한 구도로 보니까 적응 안 됨. 근데 자꾸 보게 됨. 나 관음증 환자된 것 같음.
-김꽃별 배우 누구야? 너무 매력있다. 어디서 나타난 겨.
-안녕하세요, 제작사 크리에이트입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영화 제작 관계자들부터 타 장르 방송인들까지 폭넓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남자가 잠깐 미간을 좁히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폰을 집어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오리지널 콘텐츠 건 말인데요, 빨리 보셔야 할 영상이 있습니다.”
In this life, I will die as an actor, not as a vil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