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life, I will die as an actress, not a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97)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97화(97/135)
-너 이런 것까진 예상 못했지? 이번 사건 덕분에 예매율 확 올랐다!
“에?”
덕분… 이라는 말이 적절한 건가.
스노우폴 수상과 대형 토크쇼 출연에 이어 램스의 SNS까지 연이어 화제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모양이었다.
근데 이건 진짜 예상도 못했는데?
메신저를 읽자마자 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언니. 이게 무슨 일이에요, 대체.”
-그러게. 토크쇼에서 잘 대처했더라. 잘했어.”
“클로이가 걱정이죠.”
그때나 지금이나 내 걱정은 딱 하나뿐이었다.
-클로이 잘 챙겨줘. 놀랐을 텐데. 그나저나 그 사람은 약 오르겠다, 야. 괜히 이상한 짓 하다가 너희 도와준 꼴이나 되고.
“…자업자득.”
내 대답에 언니가 풋 웃었다.
-참, 리틀에그 지수 봤어?”
“아, 어제 토크쇼 직전에 봤어요.”
리틀에그라고 하면 평론가들의 리뷰를 통해 최신 개봉작의 별점과 점수를 보여주는 영화 사이트였다.
어느새 개봉 2주차가 끝나가는 시점.
<홈타운>의 창의력 점수는 8.76이었다.
리틀에그는 워낙 점수가 짜기로 유명한 사이트였다.
따라서 8.76이면 대단한 선방이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주에 개봉한 <마블러스>보다 0.6점이나 앞서고 있었다.
-세상에, <마블러스>보다 앞설 줄이야. 새나야, 너 일냈다.”
“그냥 점수잖아요. 어차피 매출은 껌도 안 될 텐데.”
-그건 당연한 소리고. 그래도 각종 이벤트며 굿즈 쏟아붓고, 상영관도 독점하는 워너스랑 붙어서, 어? 그에 절반 가까이 되는 관객을 얻었잖니. 이건 진짜 경이로운 일이라니까?”
언니가 말하는 도중에 점점 흥분했다.
그 빨라지는 말을 들으며 피식 웃었다.
아침부터 이렇게 비행기 타도 되는 건가.
애써 티 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기분이 좋아져서 살짝 소리 내서 웃고 말았다.
-그래. 진작 그렇게 웃을 것이지.
“한국은 어때요?”
내 질문에 민영 언니가 제법 시니컬하게 대답했다.
나만큼이나 온갖 기사와 댓글들에 질리고 지친 언니였다.
-어떻겠니? 때는 이때다, 하고 국뽕에 취했지. 워너스 출연 왜 안 했냐는 얘긴 쏙 들어갔으니 우린 이득이야. 게다가 난 그 사람이 그렇게 별점 후하게 줄 줄 몰랐다?
“그 사람이요?”
-성세찬 평론가.
“성세찬??”
성세찬 평론가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평론가였다.
성세찬은 오랫동안 스노우폴 뿐만 아니라 해외 영화제와 예술 영화를 잘 모르는 한국 대중들에게 그 가치를 널리 알려왔다.
-그래, 성세찬이 별점 잘 주고 나니까 예매율이 더 뛴 모양이야. 어때, 장난 아니지?
언니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니, 이거 꿈 아니죠?”
-왜, 꿈인 것 같아?
“인생이 뭐가 이렇게 확확 바뀌는지.”
전생에선 별점 따위 꿈도 못 꾼 성세찬이었는데.
게다가 성세찬의 별점은 워낙 짜기로 유명했었다.
-하여튼 고생했다. 좀만 더 고생하다가 와. 몸 관리 잘하고.
언니가 반가운 소식을 한꺼번에 쏟아내고는 전화를 끊었다.
* * *
그런데 만족할 만한 뉴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주 후, 개봉 4주차의 시작과 함께 또다른 토크쇼에 참석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레오 토크쇼.
지난번 쇼와는 달리 레오는 카메라가 돌기 전부터 다가와 쾌활하게 악수를 청해왔다.
이게 뭐라고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지.
막이 오르자 레오가 능수능란하게 오프닝 멘트를 쳤다.
“꺾이지 않는 불씨! <홈타운> 패밀리들입니다!”
아직 적응이 덜 된 청중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우리 팀 앞으로 쏟아졌다.
내가 가장 기뻐하던 소식을 레오가 꺼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홈타운> 패밀리들? 관객 수가 4주째 상승곡선이에요.”
옆에 앉은 레이먼드 감독님이 흡족하게 웃었다.
“이건 저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에요.”
그도 그럴 게, 보통 개봉 4주차에 접어들면 관객 수가 줄어들거나 3주차 수준을 유지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홈타운>은 오히려 눈에 띄는 상승 곡선을 그리며 관객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레오가 빠르게 말을 우다다다 뱉어냈다.
“이걸 누가 예상했겠어요! 저 이 영화 광팬 됐거든요. 그래서 지금 흥분이 주체가 안 되네요. 이게 바로 예술의 힘 아니겠냐고요.”
방청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레오가 한숨을 휘유 내쉬고는 조금 진정한 듯 날 바라봤다.
그리고 새 질문을 던졌다.
“이쯤 되면 모두가 궁금해하고 있을 겁니다. 촬영할 때 재미있는 에피소드 없었나요? 우리 에밀리?”
재기발랄한 레오를 보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에비게일 토크쇼 때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저희 영화의 클라이막스, 비 오는 씬을 빼고 얘기할 순 없겠죠. 정말 녹초가 된 날이었어요. 레이먼드 감독님의 해명이 필요할 거예요.”
내가 의미심장한 눈으로 레이먼드 감독님을 바라보자, 레이먼드 감독님이 당황한 듯 쿨럭댔다.
그러자 레오가 신나서 감독님을 보챘다.
“어디 해명해주시죠!”
그러자 레이먼드 감독님이 포기했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비가 폭풍우처럼 쏟아지던 날이었어요. 실제로 경보까지 울리던 날이었죠. 영화 배경에 내리던 비는 살수차 따위가 아니에요. 감독 자리를 걸고 그날, 촬영을 감행했죠.”
“와우.”
놀란 레오의 반응과 동시에 방청석에서 재밌다는 듯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음향 감독이 거의 울었어요. 결국 바에 가서 지갑이 탈탈 털릴 때까지 술을 사 줬죠.”
감독님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연스럽게 말을 얹었다.
“그런데 그 촬영을 안 했으면 모두가 후회할 뻔했어요. 다행이죠, 그 비 덕분에 영화가 완성됐으니.”
그러자 레이먼드 감독님이 고맙다는 듯 씩 웃었다.
에이든도 자연스레 끼어들어 말했다.
“감독님의 판단도 옳았고, 새나 씨 덕분에 비 오는 장면이 최고의 장면이 되었어요. 열연 보셨죠?”
레오가 이미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러고는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잠깐, 그럼 한 가지 질문만 짚고 넘어갈게요.”
“…?”
토크쇼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생겨버린 클로이가 옆에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질문이길래.
“어떻게 새나와 에이든 둘 다 <패뷸러스>와 <홈타운>을 동시에 제의받았죠? 이거 완전 운명 아니에요? 두 사람의 조합을 다신 볼 수 없는 건가요? 워너스에서도…?”
드디어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질문 세례를 끝낼 수 있는.
‘왜 워너스를 포기했나요?’
이젠 정말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대답하기 위해 고민하는 1초도 안 되는 짧은 사이.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섣불리 이상한 답이라도 내놨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었다.
왜곡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결국 워너스 배역이 마음에 안 들었다는 거잖아?’라고 말할 테니까.
입을 열었다.
“한국에서 <무인도>를 찍고 나서 동료 배우와 LA 연기 워크숍에 갔었어요. 더 폭넓은 연기를 배우고 싶었거든요. 거기서 에이든을 만났죠.”
에이든도 내 표정을 살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레오가 너스레를 떨었다.
“두 사람이 연기를 배우러 갔다고요?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질문에 에이든과 동시에 손을 내저었다.
“한국엔 이런 말이 있어요. 평생 배워야 한다고 해서 ‘배우’라고. 일종의 언어유희지만,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내 대답을 듣고 에이든이 말했다.
“사실 저와 다르게 새나는 워크숍 첫날부터 돋보이긴 했어요. 새나한테 연기를 배우고 싶을 정도로요.”
그 말에 재빠르게 손을 내저었다.
“에이든은 항상 과장이 심해요. 저야말로 에이든을 보고 놀랐어요. 스크린에서만 봤던 그 대단한 악당이 제 워크숍 동기라잖아요.”
토크 사이로 레이먼드 감독님이 부드럽게 끼어들었다.
“저도 말을 좀 보태자면 굉장히 당혹스러웠어요. 에밀리는 처음부터 새나 씨로 점찍어뒀거든요.”
그러자 레오가 눈을 크게 떴다.
“정말요? 그랬군요.”
“네, 다른 배우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새나 씨가 워크숍에서 너무 눈에 띄는 바람에 <패뷸러스> 팀으로부터 오디션 요청을 받았죠. 그리고 오디션에 합격까지 해버렸고요.”
감독님이 여기까지 말하고는 날 보며 살짝 윙크했다.
마치 자기만 믿으라는 듯.
감독님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든든한걸.
“심지어 그쪽이 에이든까지 노리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감독님이 오버스럽게 관자놀이를 짚었다.
“난 끝났다고 생각했어요. 촬영까지 접을 판이었다니까요.”
그러자 방청석에서 옅은 웃음이 터졌다.
“일단 친구인 에이든 바짓가랑이부터 붙잡아 보자 생각했는데. 뜻밖에 새나 씨와 인연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거의 뭐, 구걸했죠.”
감독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레오가 그 자리에서 빵 터졌다.
“세상에,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님이. 말도 안 돼요.”
감독님이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 배우들이 이렇게 대단해요.”
그 말을 듣고 나도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설득당한 거예요. 사실 미국에서 입양인의 삶은 저에게 <패뷸러스> 속 판타지 히어로만큼이나 동떨어진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홈타운>이 가진 ‘감정’이 절 끌어당겼어요. 감독님의 진심도 제게 마지막 한 방으로 작용했고요.”
레오가 이해한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날 바라봤다.
완벽한 마무리였다.
속으로 감독님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넸다.
이어서 레오가 능숙하게 대화의 흐름을 틀었다.
“그 워크숍에 같이 참여했다는 한국 동료 배우도 궁금하네요?”
“그 친구는 어린 친구예요. 고등학생이고, <무인도> 영어 버전을 찍으러 지금 캐나다에 가 있죠.”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뒤로 촬영 외부 에피소드가 이어졌다.
그렇게 이야기는 잠시 샜다가 다시 촬영 비하인드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레오의 질문을 받은 에이든이 한참 길게 답했다.
“…마지막 씬의 테이블은 다 같이 만든 거예요. 감독님부터 배우들, 막내 스태프까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어요. 영화의 주제처럼 모두가 화합했죠.”
그러자 레오가 짓궂게 물었다.
“그럼 엄청 귀한 테이블이네요. 촬영 끝나고 누가 가져갔나요?”
여기서부턴 미리 받은 토크쇼 대본에 나와 있던 흐름이었다.
내가 씩 웃으며 끼어들어 답했다.
“안 그래도 오늘 여기서 게임으로 그걸 정해보려고요.”
“자, 그럼 시작해볼까요? 레오 토크쇼 전매특허 게임!”
방청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번 생은 악녀 말고 배우로 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