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vitably Levelled up RAW novel - chapter (112)
112화. 낙원 (3)
“아아, 이렇게 충만한 정기는 얼마 만인지.”
공간이 일렁이면서 지금까지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다란 그림자가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렇게 출현한 몬스터는 의외로 평범한 인간 여자였다.
아니, 평범하진 않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을 멈추게 만드는 요염하고 뇌쇄적인 미녀였으니까.
[보스 몬스터 〈퀸 서큐버스〉가 나타났습니다.]퀸 서큐버스는 존재감만으로 엄청난 위압감을 흩뿌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냥 몽마도 까다로운 상위 몬스터인데 퀸 서큐버스는 그런 몽마들의 왕.
지금껏 상대했던 보스 몬스터와는 차원을 달리했다.
그리고 퀸 서큐버스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메인 퀘스트.
[낙원 메인 퀘스트 : 음란마귀] [낙원의 대저택에는 인간을 유혹하여 정기를 빼앗는 최악의 몽마가 살고 있습니다. 몽마를 퇴치하고 진정한 낙원을 실현하십시오.] [달성 조건 : 몽마 퇴치] [보상 : 경험치 / 저택의 지배권 / 칭호]퀘스트를 확인한 이안은 진지한 눈빛으로 퀸 서큐버스와 대치했다.
딱딱하게 몸을 굳히고 경계하는 이안과 달리 퀸 서큐버스는 곧바로 공세를 펼치지 않았고, 느긋하게 시선으로 이안과 크리스를 핥았다.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두고 품평하는 것처럼.
“어리석게 나를 불러내다니. 아무것도 모른 채 말라 죽었으면 최고의 죽음이었을 걸… 보답으로 극한의 쾌락을 선사해 주지.”
퀸 서큐버스는 매혹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가볍게 손짓했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켜 이안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하하, 과연 왕은 다르군.”
쾌락도 지나치면 고통이라던가.
얼핏 쾌락이라고 하면 즐거운 쪽으로만 연상하는데, 퀸 서큐버스가 선사하는 극한의 쾌락은 극한의 고통에 가까웠다.
도저히 인간의 몸으로 버틸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이안은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러면서 연주를 멈추고 멍하니 서 있는 크리스를 때렸다.
‘연주에 몰두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크리스를 홀릴 정도라, 역시 대단하네.’
겨우 정신을 차린 크리스가 키보드를 강하게 움켜쥐며 외쳤다.
“브라더, 다시 한번 연주를 할 테니까……!”
그때였다.
어느새 다가온 린과 리리가 겁먹은 표정으로 크리스에게 매달렸다.
“도망쳐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걱정 마세요. 꽤 힘든 상대 같지만 반드시 해치울게요.”
크리스가 겁에 질린 린과 리리를 달래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이안이 그를 잡아당기며 두 사람을 뿌리쳤다.
“크리스. 물러서.”
“어, 어째서?”
“그녀들도 몽마야.”
그제야 눈치챈 듯 크리스가 지금까지 나타난 그림자 수를 떠올렸다. 어째서 두 사람을 제외한 다른 자매가 보이지 않는가에 대해서도.
그야 나머지 네 명의 자매는 이미 그림자 형태로 구속당한 상태였으니까!
“켁! 완전히 인간인 줄 알았는데!”
“아, 혹시나 해서 덧붙이는데, 몽마에겐 고정된 성별이 없어. 유혹할 대상의 이상형으로 나타나거든.”
“에에에에에엑!”
여성형의 서큐버스와 남성형의 인큐버스.
몽마는 어느 쪽으로든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었고, 인간이 가진 욕망을 투영했다.
당황하는 크리스와 달리 이안은 일부러 여유 부리면서 농담까지 던졌다.
“하하, 여기는 남자 세 명뿐인데 혹시 인큐버스도 섞여 있었으면 당황할 뻔했다니까?”
본의 아니게 타인의 은밀한 취향을 알게 되는 건 원치 않는 바였다.
단번에 그들의 정체를 꿰뚫어 본 걸로 모자라 자세히 알고 있자 퀸 서큐버스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호오, 우리에 대해서 이토록 자세히 알다니. 쓸모없는 나의 아이들이 당할만하군.”
그리고선 아직 남아 있는 린과 리리를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퀸 서큐버스.
단지 쳐다봤을 뿐인데 린과 리리는 몸을 흠칫 떨었다.
“너희의 쓸모를 증명해. 다른 아이들처럼 실패작 같은 유감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마렴. 처분당하고 싶지 않거든.”
“아, 알았어요, 어머니…….”
린이 흠칫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 와중에 리리는 여전히 우물쭈물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이 차갑게 말했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야.”
인간의 부모 자식 관계와 완전히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어쨌든 여섯 자매는 퀸 서큐버스의 피조물이었고 부모 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따뜻한 모성이나 부성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의 정기를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에 불과하지만.
몬스터에게 인간의 잣대를 들이대선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퀸 서큐버스가 보인 작태는 짜증이 치밀었다.
‘꼭 자식들한테 매춘시키는 포주 같아서 맘에 안 들어.’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크리스가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눈을 크게 뜨면서 이안에게 물었다.
“혹시 아까 그림자들을 처리하지 않은 게……?”
“아아. 서브 퀘스트의 보상을 떠올려 봐.”
이안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퀸 서큐버스를 상대하기 위해 절공을 움켜쥐었다.
퀸 서큐버스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상태.
가까이 가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크리스! 너는 저 두 명을 묶어 둬!”
“알았어요!”
크리스는 다시 연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새 다가온 린과 리리가 크리스의 집중력을 흩트리기 위해 유혹했다.
“예술의 폭발! 나는 음악과 결혼했어!”
그렇게 자기 세뇌를 하며 유혹에 지지 않기 위해 버티는 크리스.
전신이 빨갛게 물들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생각보다 크리스가 잘 버티고 있자 이안은 퀸 서큐버스와 대치했다.
‘시간벌기 정도는 되겠지. 그럼…….’
그 순간 지금껏 느긋하게 여유 부리던 퀸 서큐버스가 공세를 펼쳤다.
“매혹의 노래.”
[퀸 서큐버스가 〈매혹의 노래〉를 사용했습니다.] [공격력이 30% 하락합니다.] [방어력이 30% 하락합니다.] [순발력이 30% 하락합니다.] [일정 확률로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큭, 최악의 공격이다!”
이안이 그렇게 외친 건 그저 위력적인 스킬 효과 때문이 아니었다.
가뜩이나 크리스가 공포스런 연주를 펼치고 있는데 거기에 스킬, 매혹의 노래까지 추가되어 하모니를 이루자 끔찍한 혼종이 된 탓이다.
스킬 효과 자체는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마법력 50%를 흡수합니다.]이안에겐 마녀의 힘을 삼키면서 생긴 마법 흡수력 50%가 있었다.
거기에 마법 흡수력이 마법 저항력보다 상위 속성인 만큼 단순히 효과를 상쇄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산탄!’
[스킬 〈산탄〉을 사용합니다.] [매혹의 노래를 선택했습니다.] [공격력이 15% 하락합니다.] [방어력이 15% 하락합니다.] [일정 확률로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산탄 스킬은 투척 무기와 함께 사용했을 때 최고 효율을 자랑하지만, 가장 큰 장점은 그게 아니었다.
바로 무엇을 총알로 선택했느냐에 따라 다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
마력을 뭉쳐서 산탄 스킬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응용해서 이안은 방금 흡수한 매혹의 노래를 총알로 사용했다.
“다시 돌려주지!”
“이건……! 크윽!”
처음으로 퀸 서큐버스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더욱 강한 마법을 사용했다.
“유혹의 댄스!”
그 모습을 보던 이안이 피식 웃으면서 조롱했다.
“이봐, 그냥 연예계 진출하는 건 어때? 지금이라면 좋은 조건으로 계약해 줄게!”
“헛소리!”
이안은 이번에도 유혹의 댄스를 산탄 스킬의 총알로 선택해서 퀸 서큐버스를 농락했다.
[투척(E-) 스킬의 숙련도가 투척(E)로 상승했습니다.] [산탄(F) 스킬의 숙련도가 산탄(E-)로 상승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한 건 이안이었다.
마법 흡수력 50%라는 건 흡수하지 못한 나머지 절반을 고스란히 받아 내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반면 이안이 흡수한 마법력은 50% 효과밖에 내지 못했다.
물론 거기까지 상정하고 퀸 서큐버스와 공방을 주고받는 이안.
‘슬슬 때가 되었나.’
눈짓으로 크리스가 버티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음을 확인한 이안은 여기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복실아!”
이안이 복실이를 부르자 퀸 서큐버스가 이안을 비웃었다.
“후후, 소환수를 불러도 소용없어. 나에게 허락받지 못한 존재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해!”
퀸 서큐버스가 자신만만한 건 당연했다.
이곳은 퀸 서큐버스의 마력으로 형성된 이공간, 꿈의 세계.
거기서 복실이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 소환수도 엄연히 하나의 생명체로 취급되어서 소환에 제약이 있었다.
이안의 부름에도 복실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퀸 서큐버스는 그것 보라며 광소를 터트렸다.
“아하하하하핫! 대단한 힘을 가진 소환수인 모양인데, 나의 세계에서는 아니야! 어서 그 분해하는 얼굴을 보고 싶어. 자, 자!”
퀸 서큐버스는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더욱 흥분한 상태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안과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퀸 서큐버스 역시 이안이 산탄 스킬로 튕겨 낸 자신의 마법력에 데미지를 입었으니까.
점점 중첩되어 가는 마법 데미지가 부담스러운 건 퀸 서큐버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라고 여겼다.
“후후후, 마지막으로 최고의 쾌락을 선사해 줄게.”
“브, 브라더! 큭, 더는 버틸 수가…….”
결국 크리스도 한계가 찾아왔는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린과 리리의 합동 공격으로 빈틈을 보인 이안에게 퀸 서큐버스가 접근했다.
뱀 같은 손길이 이안의 목덜미를 휘감고, 그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단단히 구속했다.
그리고 이안의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이는 퀸 서큐버스.
“카마수트라.”
[퀸 서큐버스가 〈카마수트라〉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정기를 빼앗길 때까지 벗어날 수 없습니다.]퀸 서큐버스가 가진 최강, 최악의 스킬 〈카마수트라〉
한번 발동하면 대상자를 완전히 구속해서 죽을 때까지 정기를 빨아들이는 무서운 스킬이었다.
“브라더……!”
최악의 상황이라고 판단한 크리스가 절규했다.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을 구하겠다는 필사적인 일념으로 엉금엉금 기어가는 크리스.
그러자 이안이 외쳤다.
“크리스! 오지 마!”
“하지만, 브라더가…… 우으…….”
이미 스킬은 먹혀들었다.
상대가 누구라 할지라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최강의 스킬이란 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퀸 서큐버스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훗, 자아, 내 품에서 극상의 쾌락과 함께 끝나렴. 걱정하지 마. 나머지도 금방 보내 줄 테니까.”
그때, 이안은 고래를 푹 숙인 채 뭐라고 중얼거렸다.
“복실아…….”
“후후, 아직도 소환수를 찾는 거야? 마지막 순간까지 찾는 게 소환수라니, 어지간히 기대가 컸나 봐. 모르겠어? 네가 그토록 찾는 소환수는 오지 않아.”
이안에게 절망을 안겨 주고 싶은 듯 퀸 서큐버스는 일부러 차가운 현실을 들이댔다.
퀸 서큐버스의 아름다운 얼굴은 가학적인 미소로 가득했다.
하지만 이안은 그런 퀸 서큐버스의 바람을 뭉개 버리며 씨익 웃었다.
“과연 그럴까?”
동시에 퀸 서큐버스가 등장했을 때 이상으로 공간이 일렁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곳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이변을 민감하게 알아차린 퀸 서큐버스가 당황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그러자 이안은 오히려 퀸 서큐버스를 양팔과 다리로 단단하게 감싸 안으며 달콤한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잡힌 건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