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evitably Levelled up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에필로그 (1)
* * *
십 년 전, 지구에서 대격변이 일어났다.
세계 곳곳에 정체불명의 안개가 발생하고, 안개에 휩쓸린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붙은 명칭이 꿈 안개(夢霧, Dream mist).
사람들을 환상적인 미지의 세계로 데려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나타난 것이 몽환사(夢幻士, Dreamer).
꿈 안개라는 미지 현상을 파헤치고 두려움을 해소한 건 그들이었다.
전 세계에서 극소수의 인간만이 몽환사로 각성할 수 있었고, 그렇게 각성한 몽환사는 꿈 안개 속에서 이세계를 발견했다.
누구는 괴물을 퇴치하고 기이한 전리품을 가져왔으며, 누구는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광물을 수집했고, 누구는 신기한 약초를 채집해서 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꿈 안개에 휩쓸려 사라졌던 사람들을 찾아서 다시 데려오거나, 이세계에 정착했단 소식을 가져왔다.
그렇다고 단지 이득만 가져온 것은 아니었다. 이쪽에서 이세계로 넘어갈 수 있듯이, 조금씩 이세계에서도 넘어오는 존재들이 생겼으니까.
어째서 이계와 연결되는 차원 문이 나타난 것인지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동경으로 변했다. 모든 부와 명예가 몽환사에게 쏠렸다.
그러나 어떤 기준으로 몽환사가 되는지 밝혀낸 사람은 없었다. 자질도, 능력도, 각성하는 시기도 저마다 달랐다.
꿈 안개가 나타나고 십 년, 사람들은 그 십 년을 인류 최고의 황금기라 불렀다. 꿈 안개가 발생하는 원인도, 정체도, 몽환사가 탄생하는 원리도 모르면서 신의 축복이라 여겼다.
그렇게 십 년째를 맞이했다.
* * *
오늘도 크리스는 대낮부터 소파에 늘어진 채 작은 악기 하나를 띵까띵까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을 보며 속이 터진 리아는 크리스의 등짝을 거세게 후려쳤다.
“크리스! 언제까지 빈둥거리기만 할 거야? 정말 나하고 결혼할 마음이 있긴 해?”
“에이, 그 얘기는 벌써 몇 번이나 했잖아. 아델라 누님이 좋은 짝을 찾아서 결혼하면 그때 우리도 결혼하자고.”
“그거 평생 결혼하지 않겠단 말이나 다름없는 거 알아? 그 언니는 완전히 수절할 기세로 환자를 치료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단 말이야!”
두 사람은 얼마 전부터 결혼을 전제로 동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식으로 결혼하는 건 아델라의 결혼식을 지켜본 후에 하자고 크리스가 제안했다.
“난 브라더가 반드시 돌아와서 아델라 누님과 결혼할 거라고 믿어. 아님 리아는 벌써 브라더를 포기한 거야?”
“윽,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우우! 또 커즌 얘기를 꺼내다니 치사해!”
몇 년 전 검은 안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자신을 희생하고 사라진 이안.
갑작스러운 꿈을 먹는 자의 행방불명은 전 세계 많은 이들을 충격과 슬픔으로 몰아넣었다.
이전에도 사라졌다가 근 일 년 만에 돌아온 적 있어서 다시 돌아오리라 믿고 기다리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어느새 일 년을 훌쩍 넘겼고, 점점 검은 안개와 함께 소멸했거나 죽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영웅을 애도하고 싶은 이들이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추모식을 열자고 주장했으나, 꿈을 먹는 자의 상속인이자 정식 대리인인 리아가 번번이 뿌리치며 버티는 중이었다.
“진짜 커즌은 어디에 있을까? 괴물로 변한 커즌도 코어 핵을 삼키고 살았잖아? 그럼 우리 커즌도 시스템 관리자가 되어서 어딘가에 살아 있지 않을까?”
“응, 분명 이세계 어딘가에 왕 노릇 하면서 살아 있을 거야. 아니면 아직 수습할 게 많아서 시간이 걸리는 거겠지.”
이안은 현 인류를 구했을 뿐 아니라 검은 안개에 삼켜져 꿈 안개로 파편화되었던 모든 세계를 구해 냈다.
그로 인하여 세계 통합과 역사 변경이 이뤄져 지금 사람들에게 꿈 안개란 처음부터 이세계로 이어지는 차원 문이었단 인식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기본적인 역사 흐름은 그대로였지만, 이 모든 진실을 기억하는 건 이안과 함께 검은 안개를 해결하러 들어갔던 열 명의 동료들뿐이었다.
“내일은 우리가 수색하러 갈 차례지? 이번엔 어떤 세계로 가려나.”
“부디 이번엔 커즌을 발견하면 좋을 텐데…….”
그들은 아직 이안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 평생 발견하지 못한다 해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 *
“저기, 말씀 좀 묻겠습니다. 혹시 이렇게 생긴 사람을 보신 적 있습니까?”
윌리엄은 거리에서 이안의 사진을 보여 주며 수소문하는 중이었다.
깡, 깡, 한창 대장간에서 작업 중이던 땅딸막한 난쟁이가 손을 멈추고 흘깃 시선을 던졌다.
귀찮은 기색이 역력한 난쟁이는 그대로 무시하려다 윌리엄의 뒤에서 살기를 흘리는 자비드와 시선을 마주하고 황급히 태도를 바꿨다.
“어디 보자… 글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보다 당신들 이방인 아닌가? 보아하니 이 사람도 이방인 같은데 이런 이방인이 왔다면 금세 소문이 퍼졌을 걸세.”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윌리엄은 묻는 족족 열심히 대답해 주는 이세계 주민들과 만나는 동안 감탄했다.
“참 친절한 사람들입니다. 낯선 이방인에게 이토록 친절하게 응답해 주다니.”
“…음.”
자비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잠시 후 윌리엄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보다 여기에도 없는 것 같군요. 벌써 많은 세계를 수색했는데 이렇게 흔적이 없어서야.”
“꿈을 먹는 자. 살아 있다.”
언제나 과묵한 자비드에게서 서툰 위로를 받은 윌리엄은 상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정반대 성향에 가까운 두 사람이었으나, 이런저런 일을 함께 겪으며 끈끈한 유대감을 가졌다.
“예, 저도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합류한다.”
“아,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블라디미르 님과 라티 님이 기다리겠습니다.”
모든 동료가 이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세계를 수색하는 데 주력하는 건 윌리엄, 자비드, 블라디미르, 라티 샤키라 네 사람이었다.
크리스와 리아도 수색하러 나서는 편이긴 하나 두 사람은 주로 원래 세계를 지키는 편이었다.
종종 꿈 안개를 통해서 몬스터나 이세계 주민이 넘어오곤 했기에 이들을 처리하고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라티,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흐음. 이렇게 찾아도 흔적조차 없다는 건 아무래도…….”
“그럼 그대는 꿈을 먹는 자가 소멸했다고 생각하나?”
“아뇨. 단지 우리가 찾을 수 없는 세계에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아요.”
윌리엄과 자비드를 기다리는 동안 블라디미르는 라티와 의견을 나누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라티는 약간 짓궂은 얼굴로 되물었다.
“블라디미르 님은 어떠세요? 꿈을 먹는 자가 없는 지금, 세계의 일인자잖아요? 그래도 그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어요?”
“…사람을 옹졸하게 보는군. 한때 그를 의식했던 건 사실이지만, 다 지난 얘기야. 이제 일인자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막상 해 보니까 그리 좋은 것도 아니더군.”
“후훗, 그럴 거로 생각했어요. 시험하는 듯한 말을 해서 미안해요.”
“아니, 그것도 그대의 매력이지.”
“블라디미르……!”
공공장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진한 스킨십을 나누며 애정 행각을 벌이는 두 사람이었다.
그 모습에 윌리엄과 자비드는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두 사람 앞에 나타나지 못했다.
* * *
장대호와 에라는 검은 안개 사태 시절 함께 움직인 것을 계기로 많은 교류를 이어 나갔다.
정확히 창세 연맹과 블랙마켓의 교류라고 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사업적 교류와 더불어 정보를 나누며 신뢰를 굳건하게 쌓았다.
“여전히 블랙마켓 정보망에 걸린 소식은 없습니까?”
“예, 이제 지구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자꾸 신경 쓰게 되네요.”
“허허, 전에도 감쪽같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났잖습니까? 이번에도 꼭 그럴 겁니다.”
다른 동료들이 직접 발로 뛰는 수색을 펼친다면, 두 사람은 폭넓은 정보력으로 이안을 수색했다.
물론 그들의 수색 범위는 단순히 지구에 국한되지 않았다.
“얼마 전 이세계에 파견한 상단이 돌아왔는데 한 가지 재밌는 소식을 가져왔더군요.”
“어떤 것입니까?”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신앙이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상한 건 여러 세계에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단 거예요.”
세계 통합이 이뤄지면서 지구와 이세계 간의 교류뿐만 아니라 이세계 간의 교류도 서서히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구와 이세계 간의 교류만큼 활발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사실상 지구가 중계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서로 다른 이세계에서 비슷한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단 건 주목할 만한 일이었다.
“으음, 신앙이라. 우리 창세 연맹에서도 상단과 함께 조사원을 파견해야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그보다 물건은 준비됐나요?”
“예, 슬슬 올 때가 됐는데…….”
장대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딘지 초췌한 신디 드부아가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고 나타났다.
“장대호 씨! 방금 전량 생산 완료했어요! 어라, 에리 양도 있었네요?”
“오랜만이에요. 그보다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니에요?”
“후우…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인걸요.”
신디는 여전히 창세 연맹의 주요 인사로 그녀가 생산하는 제품이 가장 중요 품목이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특히 이안의 수색대엔 아무런 대가 없이 뛰어난 아이템을 만들어서 제공하기도 했다.
“여기, 부디 그를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랄게요.”
“예,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잖아요?”
“후훗, 그러네요.”
저마다 각자의 위치에서 노력하고 있었다.
* * *
대한 그룹 후계자 금손희의 결혼식이 열렸다.
동생의 결혼식 때문에 분주한 시간을 보냈던 금수지는 겨우 카페에 앉아 휴식을 만끽했다.
“하아, 손희 녀석 신부보다 더 심하게 질질 짜면 어떡해. 내가 다 민망해 죽는 줄 알았네.”
“후후, 그만큼 누나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단 뜻 아니겠어요?”
“아니… 정말 누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이러진 말아야죠!”
금수지는 버럭 하면서 조금 전 신부에게 받은 부케를 테이블 위에 쾅, 하고 내려놓았다.
그런 그녀의 푸념을 자애로운 미소로 받아 주고 있는 건 아델라였다.
“좋게 생각하자고요. 신부하고도 친하잖아요?”
“친한 걸 떠나서 그… 결혼의 압박처럼 느껴져서 싫단 말이에요.”
금수지는 여전히 배우로서 최고의 경력을 쌓아 가고 있었다.
특히 최근엔 그녀의 깊어진 연기가 많은 호평을 받았고, 각종 해외 영화제까지 불려 다니느라 바빴다.
“그보다 아델라는 어때요? 모처럼 한국에 들어왔는데 의료 봉사는 잠깐 쉬도록 해요. 자기 자신도 돌봐야죠.”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아직은 한국에 있는 게 괴롭네요.”
아델라의 그늘진 미소를 본 금수지는 입술을 깨물며 그녀 대신해서 역정을 냈다.
“아아……! 천하의 나쁜 놈 같으니라고! 이런 미인을 둘씩이나 기다리게 만들어? 그냥 그런 놈 버리고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자구요!”
“후훗, 그럴까요. 전에도 수지 씨라면 괜찮다고 말한 적 있는데… 자꾸 그러면 진짜 진지하게 생각할 거예요?”
“우웃, 저, 저도 생각해 볼게요…….”
금수지가 쑥스러워하며 고개를 숙이자 아델라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진심이에요? 격려하려고 한 말이었는데, 정말 진지해져야겠네요.”
“으아앗! 저도 격려하려고 한 말이거든요!”
아델라는 허둥거리는 금수지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며 찻잔을 들었다.
잠깐 우울한 눈으로 찻잔을 내려보던 그녀는 생각했다.
‘이안, 빨리 돌아와요. 안 그러면 당신을 사랑한 여인 둘을 동시에 잃을 거예요?’
다시 찻잔을 내려놓은 아델라는 언제 우울했냐는 듯 금수지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