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ectious Disease Survival RAW novel - Chapter 252
251화 Welcome to Goseong (完)
진부령을 넘어 46번 도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다 보니, 반가운 도로교통표지판이 우릴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고성. (Welcome to Goseong)]이윽고 고성 군청을 중심으로 각종 상업 시설과 주거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우리가 탄 SUV는 고성군 외곽 도로를 따라 이어진 7번 국도를 향해 방향을 틀었다.
부우우우웅- 부우웅-
그리고는 고성 북쪽에 있는 DMZ를 향해 쉴 새 없이 달려갔다.
“우와! 이쁘다…….”
창밖을 바라보던 리아의 입에서 나온 감탄사.
“뭐가 이쁘다는 거……. 오……!”
고개를 돌려 리아가 바라보는 풍경을 보자, 내 입에서도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광활하게 펼쳐진 동해와 어슴푸레한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붉은빛이 번져 가듯 어두운 하늘을 물들여 가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해돋이를 보고 있자니,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다.
고성까지 오면서 마주쳤던 수많은 고난과 위기에도 굴하지 않았다는 자부심.
그리고, 길고 길었던 여정에 무사히 마침표를 찍을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이었다.
부우우웅- 끼이익- 끼익-!
이윽고 우리가 탄 SUV가 7번 국도의 끄트머리에 다다르자.
수많은 날을 그리워하고, 애타게 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엄마!”
“태경아!”
“우리 아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지? 무사히 이곳까지 와 줘서 고마워.”
“엄마도 건강히 잘 계셔 주셔서 고마워요.”
그토록 그리웠던 어머니를 만나게 되자, 나도 모르게 감정이 울컥했다.
수많은 감염자를 뚫고 걸어온 노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웠던 변종들과의 사투.
인간 같지도 않은 생존자들과의 전투.
민수와 민아를 잃은 죄책감.
.
.
고성까지 오는 길에 겪은 수많은 고생과 위기들이 모두 보상받는 느낌이었다.
곧이어 엄마가 다가와 나를 안아 준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엄마는 옷 소매로 내 볼을 닦아 주며 말했다.
“아들, 왜 울어? 여기까지 오느라 많이 힘들었구나? 그래도 못 본 사이에 더 늠름해졌는데? 살도 많이 빠졌고…….”
나는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를 닦아내며 대답했다.
“잘 보이려고 다이어트 좀 해 봤는데, 어때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리아한테?”
“아니, 당연히 엄마죠! 누가 저런 선머…….”
말을 전부 내뱉기 전, 나와 엄마의 재회를 보고 있던 백씨 부녀를 살펴보니.
백훈 아저씨는 흐뭇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고, 백리아는 어디가 아픈 모양인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몸을 배배 꼬고 있었다.
내가 알던 리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니, 내뱉으려던 말이 절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쟤 오늘 어딘가 아픈가 보다…….’
본능적으로 오늘은 리아에게 뭔가 꼬투리 잡힐 말은 하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 순간이었다.
“자자, 이럴 게 아니라 들어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한 담소를 나누시죠.”
“그래. 바람이 차니까 얼른 안으로 들어가자, 아들아.”
“넵, 들어가자 북극아. 아! 백리아 뭐해? 빨리 들어 와!”
“응! 갈게!”
우리는 ‘그림자 여단’에서 마련해 준 막사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 서로에게 겪었던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과 원룸 건물을 요새화시켜 살아남은 것.
처음으로 감염자를 죽인 경험.
지훈, 지현 남매와 희윤 누나를 만나게 된 과정.
HAM 통신용 안테나를 구하는 과정에서 수백 명의 감염자에게 둘러싸였던 일.
철민 아저씨와 서연이에게 받았던 도움.
원룸 건물과 오피스텔 건설현장을 합쳐, 요새를 증축한 것.
재료를 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일권 아저씨와 수연 아주머니, 그리고 준우에 관한 이야기.
민수가 요새에 들어오게 된 과정.
고속도로 IC에서 태양광 발전 패널을 조달해 오는 작전.
요새를 빠져나와 산길을 넘어 이동하던 과정.
한강을 통해 서울을 빠져나가려 했던 시도.
정부군에게 잡혀 여의도에 구류되었던 일.
.
.
마지막으로 진부령 고개에서 있었던 일까지…….
엄마와 백씨 부녀는 내가 겪었던 사건들을 하나씩 얘기할 때마다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면서 들어 주었다.
“태경아. 네 얘기를 들어 보니까, 요새란 곳에 HAM 통신 장비를 두고 온 거잖냐? 여기도 통신 장비가 있으니까, 요새에 연락을 해 봐.”
“아! 그러네요. 요새에 연락을 해 봐야겠어요.”
“그래, 날 따라와라. 안내해 주마.”
나는 텐트를 빠져나와, 백훈 아저씨의 뒤를 따라나섰다.
스윽- 펄럭-
저벅- 저벅- 저벅-
백훈 아저씨를 따라가다 보니, 우리가 있던 천막 외에도 수백 동의 천막이 우후죽순 세워져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군용텐트에서부터 민간용 텐트까지…….
그리고 각 텐트 사이사이에서는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군용 장비들이 세워져 있었으며, 군복이나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전차, 장갑차, 자주포, 군용 차량 등 여러 종류의 군용 장비들이 심심찮게 보였다.
마치 전쟁이라도 준비하는 것 같은 분위기.
다만, 의아한 점이 있다면, 천막들 곳곳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낮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저씨, 여긴 뭔가요? 다들 나이가 좀 많으신 거 같은데…….”
“여긴 퇴역군인들의 모임인 ‘그림자 여단’의 본부다. 풍력 발전소와 태양광 발전 단지가 있어서 이 정도 규모의 생존자들이 모여서 생활하기에는 이상적인 곳이지.”
“그럼 저기 전차나 장갑차 같은 건 어디서 구하신 거예요?”
“아……. 저건 인근 군부대에서 가져온 장비들이야.”
“마음대로 가져와도 되나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얼마 전에 정부군과 연락이 닿았고, ‘그림자 여단’을 예비군 편제에 넣어 독립된 여단으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정부군이 아직 남아 있었나요? 아까 제가 말씀드렸듯이 여의도에 있던 정부군은 이미 대한민국 정부를 수호하는 군인이라고 할 수 없는데요?”
“아! 너는 모르겠구나? 강지철 소장이라고……. 19보병 사단의 장(長)인데, 그 사람이 정부군의 새로운 수장으로 올랐어. 얼마 전에 정부군과 임시정부의 위치도 강화도랑 영종도로 옮기고 있다는 소식도 전달받았다.”
“아……. 그렇게 됐군요. 그래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을 텐데요?”
“전국에 흩어져 있는 군대나 생존 집단을 규합해서, 대한민국 영토를 수복하자는 제안을 해 왔다고 하더구나. 뭐……. ‘그림자 여단’에서는 진작부터 준비하고 있던 일이니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지.”
결국, 의용군의 수장을 맡게 된 강지철 소장이 썩어 버린 정부군과 국회의원을 끌어내리고, 정부군의 새로운 수장으로 오른 모양이었다.
뜻하지 않은 인연이었지만, 이미 강지철 소장을 만나 본 상황.
그의 인품이라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정부군을 규합하여,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오……! 잘됐네요. 제가 여의도에서 노역할 때, 같이 방을 쓴 분이 강지철 소장님이었거든요.”
“그래? 강지철 소장을 봤어?”
“네, 여의도로 몰려든 시민들을 계속해서 받아 주다가 경질됐었다고 들었거든요.”
“내가 한참 현역으로 뛰고 있을 때는 몇 기수 후배였는데, 소장이라니…….”
“아저씨는 별 사탕 한 개잖아요?”
“크흠! 계급이 뭐가 중요하냐? 육사 기수는 내가 선배인데!”
“피……! 기수가 뭐가 중요해요? 계급이 중요하지. 꼭 계급 낮고 직책 낮은 사람들이 기수 찾고 학번 찾더라…….”
“이 녀석이 오냐오냐하니까, 아주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부는구먼? 저녁에 레슬링 한판 하자. 내가 오늘은 너의 버릇을 단단히 고쳐 놓고 말겠다.”
“하하, 한번 해 보시죠. 저도 과거의 제가 아닙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저벅-
백훈 아저씨와 투닥거리며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워진 천막이었다.
“여기다. 안에 들어가서 사용하면 될 거야. 미리 말해 뒀으니까 편하게 쓰면 된다.”
“네,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뭘……. 네가 여기까지 무사히 와 준 게 더 고맙지.”
스윽- 펄럭-!
저벅- 저벅- 저벅-
천막 안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요새와 통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고출력 무선 통신 장비였다.
하지만, 선뜻 무전기의 스피커를 잡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내가 고성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었지만, 반대로 민수를 잃어버렸다는 나쁜 소식을 전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젠간 해야 할 일을 미룰 수만은 노릇.
요새에 있는 또 다른 가족들에게 민수의 부고(訃告)를 알리는 것도 내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일이었다.
스윽- 드르륵- 드륵-
[치지직- 치직- 치지직-]무전기의 다이얼을 돌려 요새 무전기에 맞춰 둔 주파수와 일치시켰다.
그리고 무전기의 마이크를 집어 든 채, 요새 무전기 앞에 적어 둔 콜사인을 부르기 시작했다.
꽈악- 딸칵-!
[치직- CQ! CQ! 여기는 Delta Sierra Two △△△. 주파수 체크. 누구 계십니까?] [치직- CQ! CQ! 여기는 DS 2△△△. 주파수 체크. 누구 없습니까?]“…….”
두 번의 콜사인을 보낸 뒤에 흐르는 정적…….
혹시나 요새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어, 수많은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그 순간.
[치지직- 여기는 델타 세라? 시에라? 투 ○○○. 수신했습니다. 오버!]통신 장비 스피커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의 목소린지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음질은 아니었지만, 무전에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반가웠다.
[치직- Delta Sierra Two △△△. QHT 강원도 고성. 들립니까? 오버-] [치지직- 예, 잘 들립니다. 오버! 철민 아저씨, 빨리 와 보세요. 제가 대답은 했는데, 이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얼른 갈게. 잠깐만 기다려!]스피커 너머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니, 내 호출에 대답을 한 사람이 철민 아저씨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게다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익숙한 말투와 음성.
[치직- 혹시 민수냐?] [치지직- 어? 태경이 형? 형이에요?] [치직- 그래, 나야. 민수야 네가 어떻게 요새에 있어?] [치지직- 저 말고 민아 누나도 여기 있어요. 한강에 빠졌을 때, 뒤따라오던 의용군이 구해 줘서 살았습니다. 오버!] [치직- 아…….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살아 줘서 고맙다 민수야.] [치지직- 저랑 민아 누나야말로 형이 죽은 줄 알고, 엄청 슬퍼했어요. 형 지금 어디세요? 고성에 도착하셨어요?] [치직- 그래, 지금 막 도착했어. 너랑 민아랑 다친 데는 없는 거지?] [치지직- 예, 멀쩡해요! 뭐……뭐야? 누구랑 연락 중인 거냐? 설마 태경이냐?]곧이어 무전기 스피커 너머에서는 철민 아저씨의 목소리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치직- 철민 아저씨, 안녕하세요. 저 고성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오버-] [치지직- 그래? 무사히 잘 도착했구나?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근데, 북극이가 사라졌다, 태경아. 미안하다.] [치직- 북극이는 저랑 같이 있어요.] [치지직- 그래? 허허, 그 녀석 어떻게 거길 따라갈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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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전을 주고받으며,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묻고 답하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하지만, 통신 장비를 독차지한 상태로 무한정 무전을 주고받을 수는 없었다.
[치직- 그럼 저는 가 보겠습니다. 제가 또 무전 드리겠습니다. 오버.] [치지직- 그래, 항상 건강 잘 챙겨라, 태경아. 형! 내일 또 무전 보내세요!]아쉬움을 뒤로한 채 요새에 있는 사람들과의 무전을 끝낼 수밖에 없었다.
“…….”
일순간, 수많은 감정이 전신을 덮어 왔다.
민수와 민아가 무사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요새에 있는 사람들이 무사히 잘 지낸다는 것에 대한 기쁨.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까지…….
스윽- 펄럭-
저벅- 저벅- 저벅-
통신 장비가 있는 천막을 빠져나오자,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그림자 여단’의 베이스 캠프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이 앞으로 내가 생활할 공간…….’
백훈 아저씨의 말대로 산골짜기에는 풍력 발전소가 세워져 있었고, 해안가에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단지가 조성되어 있었기에 사람이 살기엔 훌륭한 환경이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그림자 여단’ 구성원들과 생존자들.
이들은 감염자가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착실하게 이어 가고 있었다.
DMZ 아래에 있는 대한민국 최북단 영토.
이제 이곳은 수많은 생존자가 모여, 미래를 준비할 기회의 땅이었다.
– 감염병 생존기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