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00
102.협정 (4)
제국 최강.
그것이 근위대장 알렌타이드에게 붙여진 이명이었다.
그는 검을 쥔 이후, 목숨을 건 사투에서 단 한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다.
오직 승자만이 정점에 설 수 있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투쟁에서 승리만을 거듭해왔던 그가, 기나긴 생애에서 처음으로 거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죽는다.’
단장.
비밀결사 칠흑기사단의 수괴.
그리고 신성교단의 사도를 일격에 쓰러뜨린 일격필살의 괴물.
그를 뒤따르는 수식어들은 하나같이 범인이 허용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그 행적이 불분명하던 남자가, 알렌타이드의 눈앞에 제 모습을 드러내었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찌부러질 것 같은 중압감을 퍼뜨리면서 말이다.
“나를 보고싶다고 했나?”
“······.”
“부디, 지금의 만남이 그 소원에 대한 해답이 되었으면 좋겠군.”
살랑이는 바람이 검은 머리카락을 스쳐지나갔다.
머리카락 아래로 보이는 단장의 시선은, 이 자리의 모두를 선명하게 담고 있는 모습이었다.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순간.
시간감각이 무너져버릴 것 같은 괴리감속에서, 칠흑기사단의 단장이 천천히 손을 들어올렸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단장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였다.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이끌며, 단장이 이 자리의 모두를 향해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업화.”
업화(業火).
단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짧은 한마디.
그럼에도 단장의 그 짧은 한마디가, 근위대의 모두에게는 사형선고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화륵-!
자그마한 불길이 피어오르는 듯한 작열음이 사방에 울려퍼졌다.
허나, 그 소리가 기인한 현상은 실로 모순적인 규모였다.
하늘을 뒤덮은 검은 불꽃.
그 아래에 태양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
하늘을 뒤덮은 지옥의 업화를 마주하기 무섭게, 알렌타이드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막아낼 수 없다.
검은 불꽃은 하늘의 끝까지 맞닿았으며, 시야가 닿는 곳 전부가 불길에 타오르고 있었다.
고요속에서 검은 하늘이 낙하한다.
두려움에 젖은 알렌타이드의 시선이 붕괴하는 흑염의 형상을 눈으로 쫓았다.
‘이건······.’
눈앞에 보이는 세계 전부가 무너져내리는듯한, 실로 파멸적이고 파괴적인 재앙의 풍경.
한낱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압도적이고 광오한 힘이 그곳에 있었다.
침묵하는 불길이 지상에 가라앉으며, 흑염의 융단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뒤덮는다.
지상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영멸의 불꽃.
그것을 마주한 무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의미조차 가지지 못할 발악뿐이었다.
‘—죽는다. 이건 틀림없이 죽는다.’
죽음의 위기를 직면한 알렌타이드의 검이 반사적으로 궤적을 그려나갔다.
전신에서 찬란한 투기가 터져나오며, 손에 쥔 검은 선명한 빛을 그어내렸다.
어둠을 베어가르기를 소망하는 일섬.
최강의 검객이 평생을 걸쳐 갈고닦은 궁극의 일격이 뻗어나왔다.
그럼에도, 하늘을 뒤덮은 열기의 융단을 찢어내기에는 부족했다.
‘분명, 죽을거다.’
인지를 벗어난 압도적인 규모의 화력.
그것은 이미 인간이 규정할 수 있는 상리를 아득히 벗어나있는 모습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쥐어짜낸 일격조차도, 사방을 뒤덮은 흑염에 파묻혀 사라지고 말았다.
왜곡되어가는 시야속에서 작열하는 열풍이 알렌타이드를 휩쓸었다.
“실패··· 했나······.”
뜨거운 열풍이 알렌타이드를 짓누른 직후.
알렌타이드의 눈앞에서 새하얀 빛이 장렬하게 터져나갔다.
콰과과과과광—!
삐이이——.
사방에 메아리치는 굉음을 듣던 알렌타이드의 귀가 제 기능을 하지못하고 멈추어선다.
전신을 뒤덮고 있던 투기마저도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균열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커허억······!”
“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악··· 아아아아악······!”
흑염에 뒤덮힌 대지위를 불이 붙은 근위대원들이 기어다닌다.
들려야할 비명은 이명에 파묻혀 사라지고, 장렬한 소음이 만들어내는 침묵만이 알렌타이드와 함께하고 있었다.
쩌적, 쩌저저적-.
일생일대의 참격을 쏘아내던 검은 그 형체를 잃어버리고 산산히 무너져내렸다.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룩했던 검의 정수는, 눈앞의 남자를 상대로 아무런 의미조차 가지지 못했다.
어느새 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한 알렌타이드의 손이, 바닥의 흙을 그러모으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나, 는······.”
영혼을 불태우는 업화가 알렌타이드의 전신을 뒤흔들었다.
끔찍한 고통이 계속해서 알렌타이드의 정신을 좀먹어왔다.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알렌타이드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색채를 잃은 채로 타들어가는 세계속에서, 그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바닥을 기었다.
금방이라도 의식을 잃을 것 같은 통증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는, 대, 체······.”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다.
고작해야 손짓 한번에 모든 것이 색채를 잃어버리고, 검은 불꽃에 휘감긴 채로 타오르고 있다.
‘저것’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온갖 제약을 뒤집어쓴 채로, 끝없는 굴레를 제 몸에 엮어나가고 있을 뿐인 이상.
인간의 형상을 한 파탄이 알렌타이드의 눈앞에 서있었다.
“그래서, 어떻지?”
“······.”
“바라던대로 직접 마주한 소감은.”
바닥을 기어다니는 알렌타이드를, 단장의 시선이 싸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것이 마치 알렌타이드가 보여야할 마땅한 경의라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파멸이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부정당하는, 실로 파멸적인 운명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이었다.
인간의 운명이 제 허물을 벗고 탈각한,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인 죽음이었다.
“어, 떻게······.”
결코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이, 그 자리에 실재하고 있다.
세상의 무엇보다도 모독적이고 모순적인 실체.
세계가 그를 말소하려 드는 것은 실로 합당한 조치였음이 틀림없었다.
“어, 떻게··· 인, 간, 이··· 이런··· 힘, 을······.”
“애석하게도. 자네의 물음에 납득할만한 대답을 돌려줄 시간은 없을 것 같군.”
바닥을 기어다니는 알렌타이드가 그를 향해 의문을 토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알렌타이드를 지켜보던 단장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알렌타이드가 기대하던 답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그저, 오늘의 교훈이 자네에게 무언가를 남기기를 바라는 수밖에.”
불타오르는 세계속에서 알렌타이드를 응시하던 죽음이 시선을 돌렸다.
펄럭-.
단장의 움직임을 따라 흑색의 망토가 어둠의 궤적을 그렸다.
어지러이 움직이는 망토를 따라, 알렌타이드의 시선이 맥없이 흔들렸다.
세계의 색채를 뒤바꾼 이는, 제 손으로 알렌타이드의 목숨을 끊지 않았다.
대신에 포탈을 향해 몸을 돌려서는,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들리도록 이야기했다.
“기사단의 목적에 방해가 되는게 아니라면, 제국을 상대로 직접 손을 쓰는 일은 없을거다.”
“끄, 으윽······.”
“아리엣. 이오. 회담은 종료되었다. 알레테이아로 귀환하도록.”
말을 마친 단장은 포탈의 너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포탈 너머의 세계를 향해 움직이던 단장의 모습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허나, 그럼에도 단장이 만들어낸 작열하는 대지만큼은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지상의 모두가 바닥을 기어다니며 신음하는 가운데, 단장으로부터 복귀명령을 전달받은 아리엣이 거울을 집어들었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멍청한 짓이 될거라고 말이야.”
“으··· 흐윽······.”
“눈에 보인다고 해서 전부 손에 닿는 것은 아니거든. 뭐어, 당신도 경지에 올랐으니 알거라고 생각하지만.”
거울을 챙긴 아리엣은 알렌타이드를 비웃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바닥을 나뒹구는 근위대장으로서는, 무어라 항변할 기운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아리엣은 그런 알렌타이드를 내버려둔 채로, 단장이 사라진 포탈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알데어의 계승자인 이오 역시 아리엣을 따라 포탈을 향해 이동했다.
“그럼, 다음에는 이런 장난질은 삼가해주길 바래.”
칠흑기사단의 아지트로 통하는 포탈을 바로 앞에 두고서, 아리엣은 쓰러져있는 알렌타이드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이오와 아리엣은 완전히 포탈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파스스슷-.
제 역할을 다한 포탈 역시 흐릿해지며 그 모습을 감추었다.
사라져가는 포탈을 바라보던 알렌타이드가, 떨리는 손을 포탈을 향해 뻗었다.
“아, 아······!”
상처입은 무인의 손은 포탈에 닿지 못했다.
완전히 모습을 숨긴 포탈의 너머에 보이는 것은, 화려하게 타오르는 제국의 대지였다.
타들어가는 요새의 너머.
바스라지는 세계를 바라보던 알렌타이드가 조용히 눈꺼풀을 닫았다.
* * * * * *
제도에 위치한 제국중앙정보국의 건물.
최상층에 자리하고 있는 국장실에서, 아드레인은 어두운 얼굴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근위대장과 재상이 순차적으로 아드레인에게 방문한 이후, 아드레인은 매일같이 어두운 안색으로 출근을 반복하고 있었다.
허나, 지금의 아드레인은 평소보다도 더 안색이 어두워진 상황이었다.
아드레인 자신이 진실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제국의 수뇌부가 오만함으로 결정을 그르친 업보.
그에 대한 뼈저린 결과가 아드레인에게 보고의 형태로 들어오고 있는 까닭이었다.
“황실직할령 플레니아에 칠흑기사단의 단장이 출현했습니다. 모습을 드러낸건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동안 제국의 근위대와 교전을 벌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기어이 그렇게 됐군.”
“일련의 교전으로 인해 플레니아의 아포라이트 요새가 붕괴했으며, 플레니아 전역의 밀밭이 전소되었습니다.”
칠흑기사단과의 불가침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
그 결과물로 돌아온 것은 단장의 출현이었다.
이미 진작부터 말도 안되는 무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는 단장이었다.
그런 단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대가로, 황실직할령 플레니아는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사상자는?”
“근위대원 32명, 국경수비대 417명이 사망. 알렌타이드 근위대장과 프라이언스 후작이 현재 중태에 빠졌으며, 그외의 중상자들은 정확한 집계를 위해 시간이 필요합니다.”
“······.”
“사실상 플레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전병력이 전투불능에 빠졌다고 보아도 무방한 상황입니다.”
치이익-.
타오르는 시가를 바라보던 아드레인이, 그것을 입에 물고 부하를 내려다보았다.
단, 일격.
고작해야 한번의 손짓만으로 황실직할령 하나가 제 기능을 상실했다.
국경지대의 요새가 무너져버린 만큼, 그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반델가드에서 웅크리고 있던 반역자, 파스가르 아이렌포르가 병력을 이끌고 움직일 터였다.
‘곡창지대가 전부 타버렸으니 점령하더라도 식량을 배급해야만 하겠지만··· 그럼에도 플레니아가 가지는 군사적 중요성은 무시할 수 없다.’
더군다나 이번 사태가 불러온 것은 플레니아의 붕괴뿐만이 아니었다.
제국에서도 최강의 전력이라고 손꼽히던 근위대가 통째로 박살났다.
최강의 기사였던 근위대장 알렌타이드는 단장의 손에 쓰러져 의식불명에 이르렀고, 그가 이끌고 나간 근위대원들은 불구가 되어 돌아오고 말았다.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띄는 병력손실이었다.
고작 회담 한번으로 잃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병력이었다.
지속적으로 제국을 향한 사보타주를 시도하던 여우같은 파스가르가 이런 기회를 놓칠리는 없었다.
제국은 반델가드와의 접경지대에서 앞으로 더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높았다.
‘하필이면 이런 방식으로 일이 벌어질줄이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아드레인이 보고를 이어나가는 부하를 바라보았다.
재상이나 근위대장이 실속없는 협상안을 가져와서는, 근거없는 자신감을 보일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집단이란 항상 합리적인 방향으로 움직이지만은 않는다.
하물며 제국같이 거대한 집단이야, 불합리를 만들어내는 요소가 결코 적지 않았다.
“후우······.”
시가를 떼어놓은 아드레인의 입에서 짙은 담배연기가 흘러나왔다.
손에 든 시가뿐만이 아니라, 아드레인의 속도 함께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일렁이는 담배연기 너머로 보이는 부하의 안색도 그리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회담을 요구받기 시작한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고역을 치뤄왔던 까닭일 것이다.
그리고 아드레인을 포함한 제국의 그림자들이 치뤄야할 고역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오늘이 지나기 전에, 황실을 포함한 수많은 부처에서 아드레인에게 연락을 넣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이유로··· 현재 그림자들을 이용해······.”
“자네, 고생이 많군.”
“······국장님?”
“제국의 그림자속에서 살고, 그림자속에서 죽기를 결심했건만··· 가끔씩은 그런 내 결정을 후회하고는 하지.”
갑작스러운 아드레인의 태도에 당황했던 것일까.
보고를 올리던 부하가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로 아드레인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드레인은 시가를 쥔 채, 집무실의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드높은 건물의 아래로 보이는 제도의 풍경이 실로 아름다워보였다.
“그저 지켜보기만 할뿐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국장님······.”
“하물며, 제국에서도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던 남자조차, 칠흑기사단의 단장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
“칠흑기사단의 단장이 말도 안되는 무력을 보유한 까닭입니다. 사도급의 적과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제국에서도 오직 알렌타이드 경만이 가능했을 터입니다.”
“그래, 그렇지.”
“어떻게 인간이 그만한 힘을 가지는게 가능한겁니까? 그건 그저, 사람같은게 아니라······.”
피식-.
아드레인의 입가에서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울다못해 웃음이 터져나온다고 하던가.
실성할 것 같은 기분속에서, 아드레인의 몽롱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탈을 쓴 천벌이지.”
“그, 그렇습니다!”
“플레니아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해야하는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제도에서 그런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에 안심해야되는 것인지 모르겠군.”
아드레인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제도의 웅장한 풍경을 훑고 지나갔다.
그의 눈동자에 비추어지는 제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