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02
105.피를 자아내는 거미 (1)
“슬슬 때가 다가오고 있군요.”
대륙 동부.
자유도시 발리토르의 부근에 위치한 산맥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가 눈앞에 놓여있는 보석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모닥불의 현자, 글라이온.
플레이아데스의 수장인 그가 구태여 자유도시 발리토르 부근까지 움직인 것은, 최근에 들어서야 이 부근에 위치한 봉인석의 실마리를 찾은 까닭이었다.
그리고 지금, 글라이온이 오랜 시간에 걸쳐 노력한 정수가 그의 앞에 놓여있었다.
“금방 찾아낼 수 있는 물건이면서, 뭘 그리 뜸을 들인게냐.”
그런 글라이온의 옆에서, 이제는 완전히 몸이 나은 알데어가 그를 보며 물었다.
한동안 거짓된 신격의 힘을 받아들이는 작업에 집중한 까닭이었을까.
이제 알데어에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음산한 기백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렇게 알데어가 글라이온을 향해 물으면, 글라이온은 지팡이의 말단으로 봉인석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저 물건은 평범한 봉인석보다도 조금 더 특별한 물건입니다.”
“특별한 물건이라고?”
“강대한 신격을 묶어놓는 닻으로 사용하기에 충분하면서, 또 저희같은 이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물건이죠.”
툭, 툭.
글라이온의 지팡이가 봉인석을 두드리자, 막대한 마력의 편린이 터져나오며 주변을 뒤흔드는 모습이었다.
미약한 편린조차도 대마법사의 전력을 상회하는 듯한 강대한 힘.
글라이온은 눈앞에서 맥동하는 봉인석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틀어올렸다.
“이것만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을 할 수 있을겁니다.”
“이 자체로 다음단계가 아니라, 그곳에 도달하기 위한 실험이라고 말할 생각이냐?”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첫단추에 모든 것을 이룰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봉인석을 사용한 실험조차 고작해야 첫단추에 불과하다는 글라이온의 이야기.
그것을 들은 알데어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하여간 마법사란 족속들은······.”
“항상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죠. 그거야말로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스스로를 갈아넣어서 만드는 결과물을 합리적으로 이야기하기에는 어렵지 않느냐.”
“그 과정에서 저 역시 부품으로 남을 뿐이겠지요.”
터벅, 터벅.
글라이온을 따라 이곳에 찾아온 마법사들이, 눈앞에 놓여있는 봉인석을 향해 움직였다.
그들이 언데드를 시켜 운반하고 있는 것은, 봉인석을 중심으로 제단을 쌓아올리기 위한 재료였다.
서서히 다음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제단을 준비하는 마법사들을 보며, 글라이온의 시선이 다시금 알데어에게로 향했다.
“알데어. 그런 의미에서 오랜 친구인 당신에게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라··· 명령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더냐?”
“당신이 제 ‘명령’을 들어줄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슨 부탁이더냐.”
새하얗게 물들기 시작한 알데어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을 모습을 바라보며, 글라이온은 그를 향한 부탁을 이야기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실험을 마지막까지 지켜봤으면 합니다. 혹여 문제가 생기더라도······.”
“죽을때까지 지켜보라는 이야기더냐.”
“예,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죽을때까지. 당신의 역할을 지켜줬으면 합니다.”
피식-.
알데어의 입꼬리가 짙은 호선을 그렸다.
“노년에 퍽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구나.”
“너무 서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머지않아 당신을 따라갈테니 말입니다.”
* * * * * *
“슬슬··· 새로운 적에게 도전할 때가 되기는 했지.”
창문 너머로 도시의 야경이 비추어지는 자취방.
나는 그곳에서 미니 곰돌이가 해준 제육볶음을 먹으면서, 눈앞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모여있는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로비.
그 위로 불투명한 창이 띄워져있는 게임의 화면에는, 내가 한참 전부터 눈여겨왔던 임무의 상세정보가 표시되고 있었다.
[신화 임무].칠흑기사단의 모든 임무를 통틀어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하면서, 또 가장 좋은 보상을 가지고 있는 임무였다.
“이전에 마주했던 녀석을 생각해보면, 지금 전력으로도 충분히 토벌 가능성이 높아보인단 말이지.”
칠흑기사단의 설립 목적은 지속적으로 침공해오는 바깥세계의 위신들과 맞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잠정적인 위협으로 자리하고 있는 위신들을 토벌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위신을 잡는 것으로 칠흑기사단에도 상당한 전력강화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임무라면, 기회가 될때마다 쉬운 것부터 처리하는 편이 나았다.
“그리고 임무를 수행한다면 지금이 적기야.”
부상을 입은 단원도 존재하지 않고, 임무를 나갔던 단원들도 모두 알레테이아에 돌아와있는 상황.
참가 조건만 맞출 수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신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적기에 가까웠다.
그것을 위해 단원들에게 사전에 임무에 대한 언질까지 마치고 온 상황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신화 임무]의 목록에 존재하고 있던 ‘가장 쉬운 임무’ 하나의 임무 개요를 확인했다.
[신화 : ■■■■■의 첨병, ‘아벤티스’ 토벌 ]– 최대 참가인원 : 10명
– 최소 참가조건 : 운명개화 포인트 +70 이상
* 최소 참가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사단원은 토벌대상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 제한시간 : 16시간
– 임무 개요 : 칠흑의 바다를 돌아다니는 거미, 아벤티스는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며 움직이고 있습니다. 약해져가는 결계의 너머에서 그가 새로운 사냥감을 포착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 보상 : 신규 특성 , 운명개화 포인트 +1000
– WARNING! [신화 임무]가 개시된 이후부터 재생 및 치유계통의 효과가 제한됩니다!
– WARNING! 진행중인 [신화 임무]가 종료되기 전까지 새로운 임무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 WARNING! [신화 임무]의 목표를 충족하기 전까지 작전지역에서 이탈할 수 없습니다!
– WARNING! 관련 정보를 반드시 숙지하십시오! [신화 임무]의 실패는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해당 임무의 이름은 [신화 : ■■■■■의 첨병, ‘아벤티스’ 토벌 ].
이전과 마찬가지로 격이 높은 녀석의 이름이 가려져있는 모습이었다.
이 토벌 임무는 내가 임무 페이지에서 확인했던 [신화 임무]들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참가조건이 낮은 편이었다.
요구하는 운명개화 포인트는 +70.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리네어를 제외한 모든 단원들이 투입될 수 있는 임무였다.
“보상으로 주어지는 포인트가 1000이라······. 참여조건이 높아서 그런지 보상도 탁월한 편이긴 하네.”
요구하는 수치가 높은만큼 난이도도 높은 까닭이었을까.
이번 임무의 [운명개화 포인트] 보상은 무려 4자리수나 되는 수치였다.
여태껏 수행했던 모든 임무를 아득히 상회하는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다.
높은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만큼 임무의 난이도가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이전에 치뤘던 [신화 임무]와 비교한다면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는 일이었다.
“임무의 난이도가 높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오가 있어서 괜찮겠지.”
지난 [신화 임무]를 포함해, 그동안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은 다양한 경로로 성장을 지속해왔다.
더군다나 이오의 경우에는 성역을 공유받아 EX+ 랭크에 도달했을 뿐더러, 보유하고 있는 [운명개화 포인트] 역시 압도적이었다.
참가조건을 아득히 상회하고 있는 이오의 업.
이오 하나만으로 위신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꾸준한 성장을 거듭한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을거라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아직 나에게는 4분 17초나 되는 시간이 남아있었다.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면,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경우라면 서포터가 나서서 말리겠지만, 문제가 생기더라도 최악까지는 치닫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단원들도 성장한데다가 보험까지 있으니 마다할 필요는 없을 터.
나는 사전에 단원들에게 고지했던 대로, 모든 임무가 중단된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을 이번 임무의 참여인원에 배정했다.
– 기사단원 [이오(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아리엣(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레온(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시온(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세페이드(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아스티야(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이번 임무의 참여인원은 총합 6명.
이전에 [신화 임무]에 참여하지 못했던 시온을 포함해서, 칠흑기사단의 전력 대부분이 참여하는 셈이었다.
툭-.
임무를 배정하고 화면을 터치하자 알림음과 함께 화면이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화면속에서 곰돌이와 마주하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며, 짧은 심호흡을 하고는 양손을 마주잡았다.
“후··· 제발 다들 문제없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조금 과장하자면 내 손으로 먹이고 입혀서 키운 단원들이다.
누구 하나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슴속에 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진지한 눈으로 화면을 응시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하나씩 눈에 새겨넣었다.
한때는 어쩔 수 없이 제 역할을 부정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자신의 역할에 몰두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틀림없는 칠흑기사단의 단장이었다.
* * * * * *
– 차원간의 연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성역과의 충돌에 대비하십시오.
알레테이아의 로비에 울려퍼지는 익숙한 소리에, 이오는 긴장한 표정으로 눈앞의 포탈을 바라보았다.
거짓된 신.
바깥세계를 유영하는 신격을 처단하는 일은, 칠흑기사단에게 있어서 두번째로 경험하는 일이었다.
지난 전투에서 처음으로 신을 상대하면서, 이오는 많은 것들을 느껴야만 했다.
위신들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가.
그리고 위신들의 성역이 얼마나 불합리한 공간인가.
한차례 수많은 것들을 겪어왔기에, 이전보다는 더 잘 해낼 수 있을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쉽게 볼 수 있는 적들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신들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인지 잘 알고있기에, 이오를 포함한 기사단의 전원이 긴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꿀꺽-.
적막으로 가득차있는 칠흑기사단의 로비에 침을 삼키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면, 비장한 얼굴의 레온이 이오의 눈에 비추어지고 있었다.
– 차원간 연결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사전에 고지된 임무내용을 반드시 숙지하십시오.
– 성역과의 충돌에 대비하십시오.
레온은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계속해서 허리춤에 매인 검을 어루만지는 모습이었다.
긴장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레온뿐만이 아니었다.
아리엣. 아스티야. 시온. 세페이드.
이 자리의 모두가 다가올 싸움을 대비하며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바깥세계의 신격들은 강대하고 무자비하며, 또 그 악랄함을 숨기지 않는다.
이미 한 번 위신과의 싸움을 겪어보았다고 하더라도, 기사들은 결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 포탈 개방까지 앞으로 5초.
– 4초.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에 익숙한 카운트다운이 울려퍼졌다.
오직 바깥세계의 존재들과 전투를 벌일 때만 울려퍼지는 경고음이었다.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는 카운트다운에, 이오는 전신에 마력을 순환시키며 전투에 대비했다.
그와 동시에 서로 다른 한쌍의 눈이 포탈의 너머를 주시했다.
– 3초.
– 2초.
– 1초.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카운트다운.
순식간에 감소하던 숫자는 어느덧 바닥을 드러내었고, 그 순간 이오의 눈앞에 비추어지던 포탈이 강렬한 빛을 퍼뜨렸다.
쿠구구구궁-!
알레테이아 전체가 뒤흔들리는 듯한 거대한 굉음.
귀를 흔드는 폭음속에서 초월적인 존재의 성역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 경고! 신화적 존재가 성역을 선포했습니다.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가 [성역 : 확산하는 선혈의 바다]에 진입합니다.
지이이이잉-.
뒤틀리기 시작한 포탈이 그 너머에 새로운 풍경을 비추었다.
그것을 바라보던 이오의 자색 눈동자 역시 새로운 광경을 새겨넣었다.
차원의 너머에 새롭게 개방된 포탈.
붉은 색으로 뒤덮힌 포탈의 너머로, 이오를 포함한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발걸음을 옮겼다.
– 포탈이 개방되었습니다.
– 임무를 개시하십시오.
묵직한 중압감을 발하는 포탈의 너머.
그곳에 도달한 칠흑기사단의 기사들은, 머지않아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어떠한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인세에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도래해서도 안되는 미증유의 풍경.
가히 지옥이라고 부를만한 광경이 그들의 앞에 펼쳐져있었다.
낯선 풍경을 마주한 레온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건 설마··· 피······?”
피로 뒤덮힌 바다.
모든 것이 살의로 가득차있는 공간에서, 홀로 고고하게 빛을 발하는 거대한 형체.
거미.
그것은 여덟개의 다리를 움직이며, 먹잇감을 탐하는 시선을 기사단을 향해 보내고 있었다.
– “미천한 필멸자들이 감히 누구의 영지를 범하느냐.”
그리고 그런 거미의 뒤에는, 끈적거리는 피로 만들어진 무수한 숫자의 거미줄이 늘어져있었다.
코를 찌르는 혈향이 넘치는 혈해속에서 군림하는 이형의 신격.
핏빛 거미줄을 늘어뜨린 거미의 눈동자가 번쩍이며 그들을 노려보았다.
—피를 자아내는 거미, 아벤티스.
이름모를 위신의 권속이 제 영지로 걸어들어오는 사냥감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