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15
117.설령, 그대가 나를 잊어도 (2)_삽화有
알레테이아 서포터.
그녀가 처음 눈을 뜬 것은 거대한 어둠속에서였다.
캄캄한 어둠으로 가득차있는 공간.
그곳에서 그녀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채로, 어둠속에 홀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 “······.”
눈을 뜬 서포터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주변에 있는 몇개인가의 곰인형들뿐.
어느 순간 그곳에 존재하게 되었을뿐인 곰인형에게 기억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빈자리를 채워야할 기억을 대신해 몇개인가의 명확한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첫째. 자신은 차원요새 알레테이아를 관리하고 ‘단장’을 지원하기 위한 서포터였다.
둘째. 자신은 마법사였다.
셋째. 이곳에 단장은 아직 없다. 그럼에도 자신은 언젠가 찾아올 단장을 기다리고 있다.
– “단··· 장······?”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에는 단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단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한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허나, 아직 단장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포터에게 허락된 일은, 그저 이 어두컴컴한 공간을 탐험하고 관리하는 일뿐이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요새를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 총. 총. 총. 총.
팔다리가 뭉툭한 곰인형이 앞으로 걸어나갔다.
허나, 서포터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걸음걸이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총. 총. 총-. 꽈당-.
균형을 잃어버린 몸이 기울어진 채로 바닥을 나뒹굴었다.
바닥을 뒹굴던 서포터가 뭉툭한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몸이 어색했다.
불이 꺼진 채로 움직이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 “마···법······?”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포터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관련된 기억은 없었지만, 어찌되었든 서포터 자신은 마법사였다.
짝!
바닥에 주저앉은 서포터의 뭉툭한 손이 허공에 박수를 쳤다.
그 직후, 환한 빛이 허공에 피어올랐다.
파앗-!
앞에 불빛이 생기자 서포터는 그제서야 주변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온통 철로 되어있는 거대한 공간에 서포터 혼자만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
서포터가 서있는 이 공간 전체가 분명 차원요새 알레테이아라고 부르는 공간일 것이다.
단장을 위해 준비되어있는 장소이면서, 또 서포터가 관리해야만 하는 장소였다.
다만, 관리를 위해서는 알레테이아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야만 할 터였다.
다행인 것은 아직 미숙한 서포터가 단장을 마주할 일은 없다는 점이었을까.
단장이나 다른 손님들이 오기 전까지는, 이 몸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 “쉽지··· 않··· 음······?”
조그마한 빛속에서 몸을 일으킨 서포터의 입에서, 어딘가 어색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까닭일까.
그게 아니면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던 경험이 부족한 까닭일까.
서포터는 자신의 말투가 조금 이상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그것을 고치기는 쉽지 않을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들을 사람도 없는 자신의 말투보다는, 아무도 없는 알레테이아를 알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했다.
– 총. 총. 총. 총.
자그마한 빛을 만들어낸 서포터의 발이 다시금 알레테이아를 탐색하기 위해 움직였다.
서포터의 낯선 발걸음이 완전히 균형을 맞추기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 * * * * *
알레테이아 서포터.
그녀가 알레테이아에서 지낸지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서포터는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본 경험은 없지만, 적어도 그정도의 시간이 흘렀다는 것은 이해했다.
지난 일주일동안 서포터의 걸음걸이는 완전히 숙련되었다.
그리고 또 그녀는 알레테이아 내부를 돌면서, 한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게되었다.
– “단장이 아직 안왔음.”
단장이 없는 알레테이아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서포터의 마법을 이용해 만들어낸 조악한 빛만이 그것을 대신할 뿐이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알레테이아를 탐험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단장이 오지 않는 알레테이아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알레테이아 자체가 단장을 위해서 존재하는 공간인 까닭이었다.
– “단장··· 언제 옴?”
뭉툭한 발로 요새를 걷던 서포터의 발걸음이 어느 방앞에서 멈추어섰다.
툭. 툭.
서포터가 찾아간 방은 아직 그 기능이 완전히 활성화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공간이 완전히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단장이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단장은 그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였다.
– “단장. 보고 싶음.”
서포터는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어색한 말투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단장에 대한 갈망을 전했다.
내일이 되면 단장이 찾아올까.
모레가 되면 단장이 이곳에 올까.
아니면,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야 단장을 만나볼 수 있을까.
서포터의 머릿속에는 단장에 대한 온갖 고민들이 스쳐지나갔다.
허나, 그중에 정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 * * * * *
일주일이 지나도.
그리고 한달이 지나도.
단장이 알레테이아에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기약없는 기다림이 반복되기를 한참.
어느덧 서포터가 알레테이아에서 눈을 뜬지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 “빛 나오셈.”
그동안 서포터는 꾸준히 마법을 연습했다.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마법을 숙달시킨 덕분에, 서포터는 제법 훌륭한 마법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짝짝-.
서포터가 뭉툭한 손으로 박수를 치면, 알레테이아 전체를 환하게 비추는 빛이 흘러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조그만 빛에 기대지 않아도 알레테이아 전체를 탐색할 수 있었다.
서포터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도우미에 조금은 가까워진 셈이었다.
– “······.”
그렇게 환하게 빛을 밝힌 서포터는, 알레테이아의 한가운데에 놓여있는 유리관의 앞에 멈춰섰다.
서포터가 몇달 전에 발견한 그것은, 서포터와 같은 귀를 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사람.
서포터는 단 한번도 사람을 본적은 없지만, 눈앞에 있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존재가 지나치게 익숙하다는 사실도 말이다.
– “이거··· 나임······?”
유리관속의 누군가를 바라보던 서포터의 눈이, 유리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거대한 곰인형을 닮은 동체.
푸른 눈동자는 선명한 빛을 발하며 유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모두 자신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유리에 비추어지는 거대한 곰인형도.
그리고 유리관 안에 존재하고 있는, 서포터를 닮은 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전부.
– “내가 봐도 예쁜 것 같음.”
끄덕. 끄덕.
유리관속에 비추어지는 사람을 바라보던 서포터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서포터가 보기에 유리관속에 있는 사람은 확실히 예쁜 편이었다.
다만, 이게 서포터 자신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서포터가 저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단장이 하늘에 별을 새겨주어야만 가능했던 것이다.
알레테이아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포터는 로비 한가운데 자신이 놓여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 “그래도 구석에 옮겨놔야겠음. 부끄러움.”
결심을 마친 서포터는 유리관을 천천히 밀어서 옮기기 시작했다.
끼익, 끼이익-.
서포터의 손에 닿은 유리관은 어렵지 않게 밀리는 모습이었다.
역시 알레테이아를 지원하기 위한 최첨단 서포터다운 능력이었다.
그렇게 서포터는 사람의 형상을 한 육체를 원하던 장소에 옮겨놓았다.
– “이제 됐음.”
서포터가 사람이 든 유리관을 옮겨놓은 장소.
그곳은 빛이 들지 않는 알레테이아의 한쪽 구석이었다.
* * * * * *
1년이 지나도, 10년이 지나도.
서포터가 기다리던 단장은 찾아오지 않았다.
물론 정말로 10년이 지난건 아닐지도 몰랐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서포터의 체감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서포터는 자신의 체감시간이 생각보다 정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알레테이아 서포터는 뭐든지 잘해야함. 시간도 잘 계산할 가능성이 높음.”
알레테이아의 기술력은 서포터가 생각하기에도 무척이나 뛰어났던 까닭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지금의 서포터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서포터는 상당히 훌륭한 마법사였다.
단장이 알레테이아에 돌아오기만 해도 이차원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어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사실을 빨리 단장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애석하게도 단장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대신에 서포터는 비밀공간에서 엄청난 것을 찾아내었다.
그것은 지금 서포터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 “이건 단장도 인정하는 사실임.”
서포터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람의 한쪽 손을 자신의 머리에 올려놓았다.
툭.
서포터의 머리 위에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누군가의 손을 머리 위에 올려놓은 서포터는, 반짝이는 파란색 눈으로 그 상대를 바라보았다.
– “단장.”
서포터의 눈앞에 있는 제복차림의 남자는, 서포터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단장이었다.
하지만 이건 단장의 껍데기에 불과할뿐, 아직은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서포터가 기다리는 것은 이 안에 단장의 내용물이 들어오는 일이었다.
언젠가 단장의 영혼이 이곳에 들어온다면, 서포터를 향해 자랑스러운 칭찬을 안겨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단장이 없는 동안 알레테이아를 꾸준히 관리했으니까 말이다.
단장이 없어도 서포터는 열심히 움직였다.
단장이 돌아오는 날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 “■■?”
그렇게 서포터의 눈이 단장을 유심히 바라보던 도중.
그녀는 어째서인지 하나의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말았다.
—■■.
단장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서포터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
이유는 모르겠지만, 서포터는 그것이 단장의 이름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 어려운 이름은 아님.”
짧은 이름을 입으로 되뇌이던 서포터의 머릿속에서, 그것은 완전히 단장의 이름으로 확정되었다.
어떻게 자신이 단장의 이름을 알게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유능한 서포터라면 단장의 이름을 알아내도 이상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기억나지 않을 것처럼 흐릿한 이름을 서포터는 몇번이나 되뇌었다.
그것이 단장과 자신을 이어주는 유일한 증표같은 기분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 “단장이 오면 불러줘야겠음.”
– “이게 이름이 아니면··· 그럼 단장이 용서해주셈.”
짧은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듯이.
서포터는 계속해서 단장의 이름을 이야기했다.
* * * * * *
단장이 찾아오지 않은지 100년이 흘렀다.
알레테이아와 서포터, 그리고 단장의 육체마저 이곳에 있는데도, 그녀가 기다리던 단장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오랜 시간동안 알레테이아에서 그녀는 혼자였다.
기나긴 시간.
서포터는 계속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마법을 쓰고, 시설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알레테이아 전체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처음의 그녀보다도 더욱 훌륭한 서포터로 거듭난 것이다.
– “오늘도 전부 청소했음.”
알레테이아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서포터는 단 하루도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일 단장이 찾아올 수도 있으니까.
서포터가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은건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 대신 매일 청소가 끝날때마다, 그녀가 ‘기사단장실’이라 명명한 곳에 찾아가 단장을 만났다.
아무런 기운없이 늘어져있는 단장에게 보고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 “근데 미안함. 단장의 이름 까먹음.”
다만, 100년이나 되는 시간이 지나는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서포터는 처음 떠올렸던 단장의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
서포터가 단장의 이름을 게을리 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이름을 결코 떠올려서는 안된다는 것처럼, 어느 순간 완전히 서포터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서포터는 단장의 이름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 “이게 다 단장이 늦게와서 그런거임.”
서포터는 자신이 이름을 잊어버린 이유를 단장에게서 찾았다.
단장이 조금만 더 빨리 찾아와줬으면, 서포터가 단장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장은 서포터가 이름을 잊어버릴때까지 알레테이아에 찾아오지 않은 것이다.
이건 분명 단장의 잘못이었다.
– “단장. 언제옴.”
의자에 앉아있는 단장을 바라보던 서포터가, 맥없이 단장의 팔에 뺨을 짓누르며 말했다.
알레테이아와 서포터는 단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알레테이아의 감정을 이어받은 서포터는, 단장이 없는 알레테이아가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서포터 자신의 마음속에도 외로움이 느껴지고 있었다.
서포터는 처음부터 혼자였다.
그럼에도 서포터는 혼자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외로웠다.
– “단장. 나 외로움.”
단장의 뺨에 팔을 짓누르던 서포터의 눈이, 책상과 의자, 그리고 수정구 하나만이 놓여있는 기사단장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째서인지 서포터는 단장도 외롭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포터가 매일 기사단장실에 찾아오지만, 단장의 방이 너무 삭막하게 보였던 것이다.
단장은 아직 알레테이아에 돌아오지 않았지만, 이곳에 있는 단장의 육체만은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머리에 떠오른 생각에, 서포터는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 “단장의 방을 꾸며줘야겠음.”
단장이 쓸쓸하지 않도록 방을 꾸며주자.
그런 생각이 서포터의 머릿속에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고민하던 서포터가 결심을 마치기까지는 그리 오랜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서포터는 곧장 이리저리 움직이며 멋들어진 가구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단장의 방에 놓아둘만한 물건들은 멋있고 세련된 것들로만 골라두었다.
– 샤샥. 샤샤샥.
서포터가 빠르게 움직일 때마다, 삭막하던 단장의 방이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몇몇 물건들의 경우 서포터가 가지고 있던 알레테이아에 대한 권한으로 채워넣었다.
서포터의 손이 닿는 공간에 사람의 생기가 더해지고 있었다.
기사단장실이 그 이름에 걸맞게 기사단장에게 어울릴만한 멋진 방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 “이걸로 끝났음.”
그리고 방꾸미기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언젠가 서포터가 구석에 박아두었던 유리관이었다.
서포터의 또 다른 육체가 들어있는 유리관에는, 여전히 눈을 감은 사람이 존재하고 있었다.
서포터는 유리관을 움직여 단장의 옆에 세워두었다.
유리관에 잠든 서포터와 그 옆에 잠들어있는 단장.
나란히 놓여있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잠에 빠진 모습처럼 보였다.
– “이걸로 서포터와 단장은 항상 함께임.”
이제는 서포터가 청소를 하러 가더라도, 또 다른 서포터가 단장을 도와줄 것이다.
다른 곰인형을 놓아두어도 괜찮겠지만, 서포터는 그것보다도 유리관을 단장의 옆에 세워놓는 편이 더 좋았다.
잘 어울리는 한폭의 풍경을 서포터의 푸른 눈동자가 비추었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서포터의 마음속에 뭉클한 감정이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 “항상··· 함께임······.”
부디, 이런 풍경이 영원히 이어지기를.
서포터는 짧은 소망을 가슴속에 품었다.
* * * * * *
오랜 시간이 흘렀다.
단장이 알레테이아에 돌아오고서, 차원 너머의 요새는 화려한 빛을 되찾았다.
이제는 매일같이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알레테이아에서, 서포터는 조금의 기억을 되찾은 채로 단장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포터는 이러한 시간이 오래 이어지지 않을 것을 알았다.
서포터에게 내려진 저주는 어디까지나 그녀를 영락시키는 것.
이미 오래전에 말소되었어야할 자신을 붙들고 있는 것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기적은 아니었다.
– “단장은 오래 전의 동화를 기억하고 있어?”
그렇기에, 그녀는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전하기로 결심했다.
알레테이아의 서포터로 일하면서 단장을 돕는 일은 무척이나 행복하지만, 그럼에도 지금 전하지 않으면 후회할만한 이야기가 가슴속에 남아있었으니까.
그녀가 아르니아로서 존재할 수 있는 동안.
단장이 궁금해하는 서포터의 진실에 대해 기꺼이 입을 열기로 한 것이다.
단장은 그런 서포터를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니아.”
– “저주에 걸려 곰이 되어버린 공주님을 멋진 기사님이 구해주는 이야기 말이야.”
그것은 한때 아르니아가 좋아하던 동화였다.
멋진 기사님이 나타나서, 위기에 처한 공주님을 구해주는 것.
그녀와 함께하던 또래의 여자아이들도 좋아하던 영웅의 이야기.
언젠가의 아르니아는 단장과의 여정에서 그러한 이야기를 꺼냈을 터였다.
– “단장. 이건 타락해버린 성직자에게 주어진 천벌이야.”
“천벌이라고 했나.”
– “응. 이건 나에게 주어진 벌이야.”
그녀는 일찍이 가장 찬란한 빛의 사도였다.
그녀가 빛의 사도로서 발탁된 것은, 단장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단장의 여정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다만, 가장 찬란한 빛은 자신의 사도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제 신앙을 증명해 기적을 얻어낸 성인과는 다르게, 사도의 길은 스스로의 영혼을 신앙에 매다는 것이다.
순교할지언정 배교를 해서는 안되는 자리.
그렇기에 그날의 사도 아르니아는 저주를 받아 짐승으로 영락하고 말았다.
– “모든 과오를 제자리에 되돌리고서, 속죄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벌.”
기구하게도 그런 그녀가 서포터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새로운 사도로 삼은 마신 덕분이었다.
마신의 힘을 받으며 배교자가 되었다.
허나 마신의 기적을 받아 가능성이 생겼다.
마족과 짐승을 제 사도로 삼는 마신의 업이 나누어지며, 아르니아에게 주어진 저주는 다른 것으로 변모했다.
칠흑기사단의 단장이 제 과오를 정리할 때마다, 아르니아의 기억은 점점 완전해진다.
스스로의 과오를 정리해나가는 참회의 길.
짐승이 되어 단장을 도와가는 것으로, 그녀는 점점 온전한 자신이 되어갈 수 있는 것이다.
– “원판에 별이 하나 새겨질 때마다, 내가 잃어버렸던 기억들을 하나씩 되찾는거야.”
“······.”
– “동화속의 공주님은 1000일이 되어서야 저주에서 깨어났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공주님이 아니니까, 무척이나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하나봐.”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가는 서포터의 입에서, 단장을 향한 짖궂은 농담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오래전의 동화를 좋아했다.
허나 그녀는 동화속의 공주님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신앙조차 배반한 채로, 스스로의 죄를 짊어지고 있을 죄인에 불과했다.
그리고 죄인이 있어야하는 장소는, 차원 너머에 격리되어있는 자그마한 감옥뿐이었다.
“내가 그 저주를 풀어내겠다. 그러니······.”
– “그렇지만, 단장······!”
지직—.
이야기를 꺼내던 서포터의 정신이, 억지로 쥐어짜낸 목소리가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이야기를 전하는 것은 이르다.
자신에게 남아있는 저주가 그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 “나, 단장을 도와줄 수 있어서 행복해.”
그렇지만 아르니아는, 알레테이아 서포터는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하고싶었던 말을 전할 수 없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단장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걸 알고 있기에——.
서포터는 어떻게든 제 목소리를 쥐어짜내려고 노력했다.
– “가끔은 심술궂은 일도 시키고는 하지만······!”
짧은 추억.
오랜 기다림보다는 짧은 기억속에서, 단장과 함께 보내던 나날이 스쳐지나간다.
– “그리고, 또 가끔은 이런 식으로··· 정신을 놓아버리기는 일도 있겠지만······!”
이야기가 흐려진다.
말이 되어야할 의지가 흩어지는 것을, 강렬한 감정이 억지로 붙잡아 이어붙였다.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
단장에게 들어야만 하는 대답이 있다.
그걸 위해서, 쥐어짜낸 목소리가 기사단장실에 울려퍼졌다.
– “그래도, 나는— 단장과 함께하는 지금이 좋아!”
지직, 지지직—.
노이즈가 낀 목소리가 흩어져내린다.
알레테이아 서포터의 이야기가 아닌, 아르니아의 이야기를 무너뜨리려는 방해였다.
번져나가는 노이즈속에서 단장의 떨리는 눈동자가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아르니아.”
– “그러니까 말이야······.”
듣고 싶었던 대답이 있다.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을 위한, 서포터의, 아르니아의 마지막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 “나의 기사님이 되어줘? 단장.”
툭-.
그것을 마지막으로 아르니아의 이야기는 완전히 끊겨나갔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조금 더 훌륭해진 알레테이아 서포터가 대신했다.
서포터의 시선이 단장을 보았다.
그녀를 보는 단장의 눈동자는, 전혀 단장답지 못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지.”
물기에 젖은 채 일그러진 단장의 얼굴은, 알레테이아 서포터가 난생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서포터의 시선이, 다시금 단장의 뒤를 바라보았다.
단장의 뒤에 선 서포터의 다른 육신이, 한방울의 눈물을 흘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