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16
118.전조 (1)
아르니아—.
알레테이아 서포터와의 수상한 대화 이후로 벌써 며칠이 흘렀다.
서포터는 시스템 메세지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전보다 조금 더 훌륭한 서포터’가 되었다.
애석하게도 서포터는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그때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도, 이전과는 조금 변하고 말았다.
스스로가 짊어져야하는 무게를 다시 한 번 체감한 까닭이었다.
– ‘나의 기사님이 되어줘? 단장.’
서포터와 약속을 맺었다.
짧은 약속.
허나, 그것은 오래전의 맹약으로부터 이어진 것이었다.
알레테이아에 숨어있는 진실의 단편을 보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멈출 수 없었다.
– ‘하늘에 새로운 별을 새길때마다, 어둠이 그 저주를 집어삼키리라.’
기사단장실에 존재하는 원판.
그곳에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리면서 별을 새겨나가야만 했다.
그것이 인류의 존속을 위해 내가 선택한 유일한 해답이면서, 또 잊어버리고 있던 누군가를 되찾기 위한 유일한 정답이었다.
– [15 / 32]
이번 임무를 클리어하며 원판에 새겨넣은 별은 총 15개.
아직은 절반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나아가야하는 길이 많이 남아있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다.
그 과정은 무척이나 험난하고, 또 무척이나 고단할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나는 자신이, 그리고 칠흑기사단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것을 위해 모인 기사단이었으며, 또 그것을 위해 맺어진 인연이었을테니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자신이 해야하는 일에 몰두하기로 결심했다.
계속해서 과거에 젖은 채 멈춰서있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테니까 말이다.
“백염이라······.”
미니 곰돌이가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제육덮밥을 만들고 있는 저녁.
섬뜩한 식칼소리를 들으며 나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알레테이아의 풍경이 띄워져있는 스마트폰의 화면 위쪽.
그곳에는 자그마한 창과 함께 언젠가의 내가 획득했던 특성이 저장되어있었다.
.
백염을 지배하는 거미, 아트라스크를 쓰러뜨리고서 내가 손에 넣은 특성이었다.
“우선은 이걸 먼저 단원들에게 나누어주는게 중요하겠지.”
위신을 쓰러뜨리는 행위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성역의 권한에 영향을 미친다.
신격의 본질에 가까운 권능을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다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위신과의 전투를 통해서 신격으로부터의 성역을 습득한 단원의 숫자는 둘.
그림자와 연관된 성역을 얻은 이오와, 피와 관련된 성역을 얻은 아리엣이 전부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위신의 불꽃과 관련된 성역을 획득했다.
이 성역을 누구한테 주어야만 할 것인가.
그러한 고민을 하던 내 머릿속에, 백염의 성역에서 치른 전투의 풍경이 스쳐지나갔다.
“그러고보니, 레온의 업화가 백염을 억누르는 효과가 있었지.”
아트라스크가 지배하는 백염의 영토.
나는 그곳에서 업화를 이용해 몇차례나 녀석의 불꽃을 억누르고는 했다.
업화를 이용하면 의도적으로 백염을 제어하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성역의 제어에 있어서는, 백염을 다루기 위한 수단이 필연적으로 뒤따라야만 할 터.
성역에 대해 고민하던 내 생각이 레온에게로 향했다.
“레온에게 주는 편이 나으려나?”
이오와 아리엣을 제외하고 성역을 받을 수 있는 단원의 숫자는 총 다섯이다.
레온. 시온. 세페이드. 아스티야. 리네어.
그중에서 불꽃을 다루는데 적합할만한 인원을 찾아보라고 하면, 레온을 제외하고는 딱히 어울리는 인물이 없기는 했다.
그렇다고 시온이나 다른 단원들에게 주기도 애매했으니, 역시 업화를 다룰 수 있는 레온에게 주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고민끝에 결심을 마친 나는 스킬을 공유하기 위한 아이콘을 터치했다.
툭-.
내 손가락이 화면 구석의 아이콘을 터치하자, 이내 화면에 대상을 지정하라는 메세지가 떠올랐다.
– 를 부여할 대상을 선택해주세요.
나는 세번째로 한계돌파를 받을 캐릭터, 레온을 향해 커서를 옮겼다.
스윽-.
수련실에서 수련을 하고 있던 레온을 향해 커서를 조준하고, 특성을 완전히 공유하기 위해 캐릭터를 터치한다.
그러자 화면의 하단에 자잘한 메세지들이 연달아 출력되는 모습이었다.
– [레온(EX)]에게 를 부여했습니다.
– RANK UP! [레온(EX)]의 랭크가 다음과 같이 변화하였습니다.
– RANK : EX → RANK : EX+
레온 크로스비트.
기사단의 세번째 기사가 EX+ 랭크에 도달하게 되었다.
앞으로 남아있는 숫자는 넷.
아르니아를 향한 나의 여정도, 이로서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 * * * *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 수련실.
단장에게서 받은 다섯자루의 검들 중 하나를 뽑아서, 허공에 휘두르던 레온의 손이 멈추어섰다.
검술을 단련하던 레온이 갑작스럽게 멈추어선 이유는 하나.
수련실에서 홀로 단련을 거듭하던 레온에게, 갑작스러운 손님이 찾아온 까닭이었다.
끼익-.
수련실의 문을 열고 레온을 찾아온 손님의 정체.
그것은 푸른 안광을 내보이고 있는 거대한 곰인형이었다.
“서포터? 무슨 일이야?”
레온은 휘두르던 검을 멈추어 세우고서는, 그것을 검집으로 되돌리며 서포터를 향해 이야기했다.
평소부터 청소를 할때가 아니면 수련실에 찾아오지 않던 서포터였다.
그런 서포터가 갑작스럽게 수련실에 들어왔으니, 무언가의 용건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단장에게서 무언가 지시를 듣고서는, 그것을 레온에게 하달하기 위해 찾아왔으리라 짐작한 것이다.
– “단장이 선물을 보내왔음.”
“선물? 나한테?”
자신에게 임무를 맡길 것이라고 예상하던 레온의 생각과는 다르게, 서포터가 찾아온 이유는 단장의 선물 때문이었다.
선물.
그 단어를 듣기 무섭게 레온의 머릿속에 오래전의 추억이 스쳐지나갔다.
정체불명의 포션을 한가득 입에 집어넣으며 강해지던 기억.
레온이 단장에게 처음으로 받았던 선물에 대한 기억이었다.
“설마 포션이라도 가져온건가?”
단장에게 포션을 선물받은 이후로도 ‘분열하는 아성’같은 특별한 선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레온에게 있어서 가장 인상깊은 선물은 당연히 포션이었다.
그런 레온의 반응이 의외였던 것일까.
레온을 보며 잠시 고민하던 서포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보이는 모습이었다.
단장이 보낸 선물이 포션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 “이번에는 단장이 특별한 선물을 보내왔음.”
“특별한 선물?”
더군다나 서포터가 직접 ‘특별한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는 상황이었다.
어지간하면 특별하다는 말을 잘 꺼내지 않는 서포터였기에, 서포터의 이야기를 들은 레온의 눈에 기대감이 서렸다.
대체 어떤 선물을 주기에 특별하다고 지칭하는 것일까.
새로운 검. 아니면 훌륭한 갑옷.
온갖 귀중한 장비들이 레온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가운데, 서포터가 푸른색 눈을 빛내며 이야기했다.
– “선물을 받기 전에 가장 소중한 물건을 하나 골라야함.”
“가장 소중한 물건을 고르라고?”
– “단장의 선물을 받기 위해 필요한 일임.”
서포터의 질문을 받은 레온이 의문을 표하자,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는 서포터였다.
레온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물건.
그것을 고민하던 레온의 손이, 자연스럽게 허리춤에 매여있던 다섯자루의 검으로 향했다.
정확히 똑같은 형상으로 만들어진 다섯자루의 검은 그 특성을 다른 검과 공유한다.
레온이 단장에게 처음 받은 검은, 기사 레온에게 있어서 동반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역시··· 가장 소중한 물건이라고 하면 이거겠지.”
툭. 스윽-.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 한자루를 풀어서 내미는 레온이었다.
다섯 자루가 하나의 검을 이루는만큼, 한 자루를 서포터에게 건네주더라도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레온이 검을 풀어 그것을 서포터에게 내밀면, 레온의 검을 바라보던 서포터가 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톡.
뭉툭한 곰인형의 손이 검에 닿자, 이윽고 레온의 검에서 강렬한 파동이 퍼져나갔다.
“자, 잠깐만··· 이건 대체······!”
– “단장이 주는 선물임.”
“뭐라고······?”
파앗-!
눈부신 빛이 흘러나오는 검을 내버려두고서, 서포터는 문을 향해 몸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전부 다 끝마쳤다고 주장하려는 것일까.
서포터는 당황한 레온을 내버려둔 채로, 홀로 수련실의 문밖으로 나서는 모습이었다.
레온은 밖으로 나가는 서포터를 멈춰세우려고 했지만, 금세 빛이 새어나오는 검을 향해 시선을 돌릴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거야······?”
지이이이잉-.
한자루의 검이 빛을 머금은 채로 흔들리자, 나머지 네자루의 검도 함께 흔들리기 시작했다.
찬란한 광채를 흩뿌리며 이루어지는 검들의 공명.
거칠게 흔들리며 공명하는 검을 쥐고 있던 레온의 머릿속에, 갑작스럽게 낯선 풍경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그것은 레온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주한 풍경이었다.
“······.”
새하얀 순백.
백색으로 뒤덮힌 땅.
모든 것이 새하얀 그곳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그에게 있어서는 분명 처음으로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친숙한 듯한 기분이 들고 있었다.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풍경을 감상하던 레온의 입이, 본능적으로 자신이 해야하는 말을 찾아내었다.
스릉-.
검집에 되돌렸던 날카로운 검을 뽑아낸 레온은, 자신의 앞에 검을 세우며 입을 열었다.
“성역선포—— 백염정토(白炎淨土).”
레온의 입에서 낯선 한마디가 흘러나온 직후.
화아아아악-!
거센 백광이 수련실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 * * * * *
제국의 동부에 위치한 청록마탑.
마탑의 최상층에 위치한 천구의에는 어린 아이의 외견을 가진 대마법사가 기거하고 있었다.
천리안의 현자, 헤이즐 오르네스.
일찍이 차원 너머의 누군가를 관측하는 것으로 너무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던 그녀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관측을 반복하고 있었다.
세계는 넓고 하늘은 미지로 가득차있다.
그리고 닿지 않는 미지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은, 현자라는 이들에게 끊을 수 없는 도박과도 같았다.
물론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준비해야하겠지만 말이다.
“음······.”
헤이즐에게 있어서는 관측이야말로 미지를 탐구하는 행위였다.
그렇기에 오늘도 천구의 안에서 세계를 관조하고 있었을 터지만.
지금 헤이즐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그것은 헤이즐이 방금 마주하고 왔던 풍경들이, 그녀의 생각보다도 당혹스러웠던 까닭이었다.
“흐으음······.”
어두운 안색의 헤이즐이 계속해서 난해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관측은 그녀의 일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관측은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 단장을 보았을때만큼의 충격도 아니었고, 그 대상이 그만큼 강력한 존재도 아니었던 까닭이었다.
그럼에도 헤이즐의 심기는 편하지 않았다.
대륙에 실로 강대한 존재들이 넷이나 더 늘어난 까닭이었다.
“용사··· 용사가 강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헤이즐이 발견한 네명의 초인들 중 하나는 신성교단의 용사였다.
용사는 본래 가장 찬란한 빛으로부터 힘을 받아 신벌을 대행하는 존재.
그러한 용사가 전례없는 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헤이즐에게 있어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가 놀란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대륙을 전역을 떠도는 강자들 중 세명.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들이 위신에 필적할만한 격을 갖추고 있던 까닭이었다.
“어찌하여 셋이나··· 아니, 그것도 격이 낮은 위신에 비교할만한 존재가······.”
헤이즐의 시야에 관측된 이들은 저마다 드높은 성취를 갖춘 이들이었다.
장벽의 주위를 떠도는 격이 낮은 위신들과 비교할 정도였으며, 심지어는 성역마저 발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 전원의 내력에서 칠흑기사단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칠흑기사단.
강대한 업을 이룩한 단장이 이끄는 기사단원들 중 셋이 위신에 필적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뿐이었다.
“단장의 도움을 받는다면 인간의 벽을 허물 수 있다는 것일테지.”
제국에서 전무후무한 현상금을 달고 있는 칠흑기사단의 수장.
—단장.
그는 일개 인간을 위신에 필적한 존재로 탈바꿈시킬 방법을 찾아낸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대륙에 존재하는 세명의 기사들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사도와 비견되거나 그 이상의 존재를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고 있다.
그 방법을 단장이 가지고 있는 이상, 머지않아 마탑을 다스리는 현자들의 입지는 예전과 크게 달라질 터였다.
“조만간 다시 한 번 단장과 얼굴을 마주할 필요가 있겠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헤이즐은 다시 한 번 단장에게 방문할 필요성을 느꼈다.
인간의 몸으로 성역을 만들어낼 권능을 빚어낼 수 있다면, 단장을 관측하는데 필요한 대가쯤이야 어느 정도 감수할 의향이 있었다.
그녀 역시 인간의 탈을 넘어서 그 이상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니까 말이다.
탈각(脫却).
다섯번째 계단을 넘어서 그 너머에 도달하는 것만이, 다가올 격동에 대비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일 터였다.
“시간이 많지 않다. 용사도, 다른 이들도··· 가능한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좋을테지.”
헤이즐의 눈이 천구의의 한구석에 존재하는 어둠을 바라보았다.
일찍이 별이 존재하던 자리에는, 이제 그것을 집어삼킨 거대한 어둠이 대신하고 있었다.
장벽 너머에 존재하는 칠흑의 바다.
그곳에 대륙을 노리는 거대한 어둠이 존재하고 있다.
바-데르도. 별을 삼키는 어둠.
그리고 인류가 여태껏 마주하지 못했던, 인지를 초월한 ‘눈’의 개념.
저것이 진정한 야욕을 드러내기 전까지, 대륙의 모든 존재들은 제 힘을 갈고닦아야만 할 터였다.
“저것이 오기 전까지는 최대한 대비를 해야할테니.”
진정한 격동이 다가오는 순간.
대륙의 정세따위는 제 의미를 상실하는 시간이 시작될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