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17
119.전조 (2)
성도, 오르스케이프.
교황청에 위치한 거대한 홀에서, 용사 알칸디오는 법복을 입은 교황을 마주했다.
현 교황, 카르니오 2세는 정갈한 옷을 입은 채 당대의 용사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지금까지의 용사들이 모두 거쳐왔던, 동료와의 인연을 쌓기 위한 여정.
여정에 나섰던 용사가 수많은 동료를 데리고 귀환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온 용사의 눈은, 어딘가 피곤해보이는 기색을 안고 있었다.
“용사 알칸디오. 고생이 많았네.”
“······아닙니다. 오히려 마땅한 수확이 없어 면목이 없을 정도입니다.”
카르니오 2세를 마주한 알칸디오가 고개를 푹 숙이며 이야기했다.
그동안의 여정을 통해 알칸디오는 수많은 성장을 거쳐왔지만, 그럼에도 그는 봉인석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칠흑기사단과 플레이아데스의 본거지를 밝혀내는 일에도 실패했으니, 알칸디오는 떳떳하게 고개를 들 자신이 없었다.
이교도를 토벌하겠다는 자신의 사명에 부응하지 못한 까닭이었다.
“······아닐세. 오히려 알칸디오 공이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봐야겠지.”
“그렇습니까.”
“봉인석을 잃고 사도를 잃어버린데다가, 이번에는 일시적으로 바깥세계의 존재가 닻을 내리기까지 했네.”
후우-.
카르니오 2세가 근심가득한 목소리를 내뱉으며 알칸디오에게 이야기했다.
사도의 사망.
그리고 위신의 강림.
어느쪽이든 교단에게 있어서 절망적인 이야기였다.
교단의 최고전력 중 하나가 죽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위협적인 적이 찾아왔다는 사실도 교단에게 있어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알칸디오 역시 그 사실에 대해 이미 언질을 들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칠흑기사단의 충돌 이후에 위신이 물러갔다는 사실일세.”
“칠흑기사단과 위신이 충돌했다는 말입니까······?”
사도가 죽은 이후에 일어난 일.
칠흑기사단이 위신을 격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알칸디오의 눈동자가 휘둥그래 변했다.
카르니오 2세는 그런 알칸디오를 향해 친절한 설명을 더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정확히는 단장이라는 자의 손에 격퇴된 모양일세. 칠흑기사단의 목적은 마신의 부활이지, 위신이 돌아다니는걸 방치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더군.”
“그렇다면 플레이아데스는······.”
“허나 그들은 다르네. 바깥세계의 존재가 지상에 내려앉는 것을 유도하고, 또 바깥세계의 존재들에게 권능을 빌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지.”
바깥세계의 존재.
오래전의 이야기를 아는 성직자들이라면, 신마대전 당시의 참상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에 내려앉은 신격들은 무도하고 잔악하다.
가장 찬란한 빛을 제외한다면, 그들 모두가 인간을 배척하고 죽이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마족과 신격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인간들은 오랜 세월동안 치열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 존재들이 재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바깥세계의 괴물들은··· 신성교단의 입장에서 마신 못지않게 경계해야할 대상이네. 그들은 사이하고, 잔혹하며, 또 위험한 존재들이지.”
“······.”
“그리고 용사가 짊어져야하는 책무중에는··· 지상에 내려온 바깥세계의 존재들을 토벌하는 역할도 있네.”
“오래 전의 용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까.”
알칸디오의 눈이 교황을 바라보았다.
끄덕-.
카르니오 2세는 인자한 웃음을 지운 채로, 진중한 얼굴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칠흑기사단 못지않게 플레이아데스에 대한 경계도 늦출 수 없다.
그러한 이야기를 전하는 셈이었다.
“초대 용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일세.”
“알겠습니다.”
“알칸디오 공. 그 등에 짊어진 책무가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고있네. 마신을 부활시키려는 칠흑기사단의 음모를 저지해야하고, 또 바깥세계의 존재들을 끌어들이는 플레이아데스 역시 토벌해야만 할테지.”
“······예.”
“허나, 지금의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일일세. 앞으로 더 강해져야만 하네. 칠흑기사단의 단장을 저지하고, 그 앞의 미래를 약속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무거운 책무.
그럼에도 용사 알칸디오는 제 등에 짊어진 역할을 탓할 생각은 없었다.
어떤 때가 찾아오더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만이 용사가 해야할 역할이었다.
비록, 그 곁에 성 아스티야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알칸디오는 제 손으로 그녀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교황청의 지하신전을 개방하겠네.”
“지하신전······?”
“그곳이 자네의 성장에 도움을 줄걸세. 물론, 자네가 데려온 동료들에게도.”
그리고 카르니오 2세는 그런 알칸디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꺼냈다.
교황청의 지하신전.
그동안 알칸디오가 마주하지 못했던 미지의 영역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당황한 알칸디오가 교황을 올려다보는 것도 잠시.
쿵, 쿵-.
대답을 마친 카르니오 2세의 지팡이가 바닥을 내려찍었다.
* * * * * *
타닥, 타다닥-.
조용하던 자취방에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미니 곰돌이를 무릎위에 앉혀놓은 내 책상위에는, 분주하게 사냥하는 캐릭터와 함께 알레테이아의 모습이 띄워져있었다.
한동안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생계형 게이밍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비록 내가 방구석에서 칠흑기사단을 움직이는 단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주어진 할일은 해내야만 했다.
마침 디렉터의 대참사로 추락했던 쌀값도 원래 자리를 되찾아가는 추세였으니, 나로서는 쌀먹을 망설일 이유가 없는 셈이었다.
“오, 뭐야. 레온도 많이 성장했네.”
그렇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오른쪽에는, 거치대에 세워져있는 스마트폰이 놓여있었다.
알레테이아의 풍경 위에 띄워져있는 정보창에 보이는 것은, 이번에 EX+ 랭크에 도달한 레온의 상세정보였다.
새로운 성역을 획득하며 성장한 레온에게도 모종의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나는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며 사냥을 하면서도, 레온의 캐릭터 정보를 확인하는 작업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 캐릭터 정보 ]– 캐릭터 이름 : 레온
– 캐릭터 등급 : EX+ RANK
– 성장 진행도 : EX+ RANK
[ 캐릭터 고유 특성 ]– 레온은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지옥의 업화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 타오르는 업화는 강력하지만 그것을 다루기 위한 심지를 필요로 하며, 업화는 심지가 되는 무기마저도 망가뜨릴만한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 레온의 업화는 스스로가 쌓아올린 업에 비례해 성장합니다.
– 검술에 평범한 자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이미 한차례 강화된 특성입니다.
– 모든 종류의 금전적인 손실이 그에 상응하는 행운으로 돌아옵니다.
– 모든 종류의 행운이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인 손실로 돌아옵니다.
– 소모한 행운에 비례해 소모성 아이템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 위신 아트라스크를 처치하고 습득한 권능입니다.
– 성역을 선포해 현실을 침식하는 새로운 위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EX+ 랭크에 도달한 레온에게 나타난 변화는 크게 두가지였다.
첫째. 레온의 업화가 EX+ 랭크에 도달했다.
둘째. 아트라스크에게서 획득한 새로운 성역이 레온의 캐릭터 정보에 추가되었다.
그동안 레온이 업화를 꾸준하게 다뤄온 덕분인지, 아니면 성역이 레온의 불꽃에 영향을 미친 것인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칠흑기사단의 입장에서 긍정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어차피 업을 쌓을때마다 강해지는 녀석이니까, 시간만 조금 더 지나면 이오나 아리엣 못지않은 위력을 보여주겠지.”
– ······.
“안그래, 아르니아?”
– ······.
내가 레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무릎에 앉아있던 미니 곰돌이를 흘깃하면, 그것은 묵묵부답하며 제자리에 멈춰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내 이야기에 반응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런 미니 곰돌이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이내 혹시나 싶은 마음에 명칭을 바꿔보았다.
“안그래, 서포터?”
– 끄덕. 끄덕.
그러자 이번에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는 미니 곰돌이였다.
문제가 전부 해결되기 전까지는 서포터로 살아가기로 결심했기에, 아르니아에 대한 이야기에 냉정하게 대응하기로 결심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지금의 그녀에게는 제대로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는 것일까.
어느쪽이든 내 마음이 착잡해지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나는 미니 곰돌이의 머리 위에 턱을 올려놓은 채로, 화면속에 놓여있는 캐릭터를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르니아.”
– ······.
“서포터.”
– 끄덕. 끄덕.
“······진짜 계속 그럴거야?”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키보드를 두드렸다.
물론, 지금 그녀의 역할은 서포터가 맞다.
그녀도 그 사실에 만족하고 있으며, 나와 함께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사람이 곰인형처럼 살아서야 곤란한 일이다.
비록 지금의 내가 서포터가 없으면 하루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는 처지라고 해도—.
나에게 있어서 아르니아는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르니아.”
– ······.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그냥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테니까.”
나는 무릎위에 있는 곰인형을 향해, 입을 열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컨트롤. 쉬프트. A키. 마우스.
번갈아 움직이는 손이 심란한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딸깍. 딸깍.
마우스를 움직여 획득한 아이템을 확인한 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확고한 생각을 미니 곰돌이에게 이야기했다.
“몇달이 지나도, 몇년이 지나도 상관없어. 나는 어떻게 해서는 너를 구해낼 생각이야.”
타닥, 타다닥-.
현란한 손가락이 키보드의 자판을 두드리며 화면속의 몬스터를 도륙했다.
“지금 떠오른 이야기도 아니고, 그때 널 만나서 생각하게 된 이야기도 아니야.”
– ······.
“무덤 앞에서 맹세했던 것도, 결국은···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거겠지.”
딸깍. 딸깍-.
재빠르게 움직인 마우스가 화면의 우측에 떠오른 매크로 방지 시스템을 해제했다.
“오래 전의 그날도, 지금도. 너는 내 소중한 동료야.”
타닥, 타다닥-.
딸깍. 딸깍-.
컨트롤. 시프트. A키. Z키.
“지금의 영락한 네 모습도, 결국은 과거의 내가 저지른 과오의 일부겠지.”
타다다다다닥-.
딸깍.
시프트. A키. A키. 시프트. 시프트.
고정키 바로가기 단축키 해제.
“그러니까 나는, 어떻게 해서든 너를······!”
– ······.
“반드시 너를 되찾아서, 두 번 다시 잃어버리지 않겠어.”
레벨 업.
캐릭터의 레벨이 올랐음을 알리는 메세지에, 빠르게 움직인 손가락이 스킬을 분배했다.
딸깍. 딸깍딸깍-.
“아르니아. 너도, 이제는 조금은 내 말을··· 와아, 씨 미쳤다. 여기서 이게 뜬다고······?”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한 내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희귀한 아이템이 드랍되었다.
평소에도 쉽게 마주할 수 없던, 최상급의 아이템이 필드에서 출현한 것이다.
현금가로 따지면 무려 5만원짜리.
드랍된 아이템을 발견한 나는 그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성을 내질렀다.
“와··· 어떻게 이게 여기서 이렇게······!”
– 꾸욱.
“······.”
허나, 이내 내 뺨을 짓누르는 서포터의 손길에 감탄사를 그만두었다.
아무래도 내가 조금 과했던 것 같다.
하아-.
짧게 심호흡을 한 나는 진정한 채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미니 곰돌이의 머리에 다시 턱을 기대어 놓으려던 찰나.
내 시야에 곰돌이의 뭉툭한 손이 들어왔다.
“어······.”
손.
미니 곰돌이에게는 손이 달려있었다.
비록 뭉툭하고 투박한 편이지만, 미니 곰돌이는 그러한 손으로도 능숙하게 가사활동을 하고는 했다.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주려고 하는 서포터.
그런 서포터를 바라보던 내 머릿속에, 무언가의 파격적인 아이디어가 스쳐지나갔다.
“······서포터.”
– 끄덕.
“지금의 서포터는··· 단장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거지?”
– 끄덕. 끄덕.
“좋아. 지금부터 여기에 손을 올려봐.”
나는 미니 곰돌이의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자 미니 곰돌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내 지시에 순순히 따르는 모양새였다.
그런 곰돌이의 손을 움직여, 이번에는 키보드의 버튼을 눌러보았다.
꾸욱.
곰돌이의 손이 버튼을 누르자, 화면속의 캐릭터가 순조롭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미니 곰돌이는 캐릭터를 움직일 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내 머릿속에 한가지 가능성이 스쳐지나갔다.
“서포터.”
– 끄덕.
“이제부터 우린 영원히 함께야.”
– 끄덕끄덕끄덕끄덕.
* * * * * *
다음날.
나는 컴퓨터 한대를 추가로 방에 들여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미니 곰돌이는 대부분의 시간을 내 무릎 위에서 보내게 되었다.
미니 곰돌이가 메인컴퓨터를 조작하고, 내가 서브컴퓨터를 조작하는 방식.
나와 곰돌이의 팔길이 차이를 이용해 두개의 조작을 동시에 이루어낸다.
내 방에서 게임캐릭터 두마리가 동시에 사냥터를 누비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면 돈이 두배로 벌리잖아?”
– 끄덕.
바야흐로, 아르니아와의 게임 데이트—.
아니,
투컴쌀먹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