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59
160.쌍천 (2)
“언행에 속지마라. 이미 저들의 성역에 수많은 이들이 피를 보았다.”
철컥.
허리춤에서 찬란한 성검을 뽑아든 알칸디오가 이야기했다.
건물들의 외견은 멀쩡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사방에는 서리가 낀 동토와 작열하는 대지가 존재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미처 대피하지 못한 이들이 어떠한 결말을 맞이했을지, 이미 이 자리의 토벌대 전원이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의 광채를 퍼뜨리며 검을 뽑아든 알칸디오의 모습에, 칠흑기사단의 단원들 역시 황급히 전투준비를 했다.
“위험한 상대니까 방심하지 마세요.”
– “뭐어, 너희 인간들에게 있어서 우리들이란 언제나 그런 존재니까 말이야. 그저 그 자리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그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마는거겠지.”
알칸디오의 이야기를 들은 셀레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 스스로의 손가락 끝에 빛을 머금었다.
위신들과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한 원시마법의 준비였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전투를 준비한 직후.
그런 토벌대의 모습을 지켜보던 맥동하는 유빙, 베오도르가 하품을 했다.
하암-.
거대한 얼음의 형상은 따분한 시선으로 그들을 보며 제 의사를 전파했다.
– “방해하지말라고 하지 않았음?”
“바깥세계의 부정한 존재여. 너희들이 먼저 대륙을 침공해놓고, 우리에게 방해를 논하려는건가?”
베오도르의 사념을 들은 알칸디오가 곧장 그 이야기를 맞받아쳤다.
곰과 용사.
둘 사이에 팽팽한 시선이 맞부딫혔다.
서로가 서로에게 살의를 내보이고 있는 가운데, 베오도르는 두터운 웅덩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쿠구구구궁-.
얼음의 거체가 움직이며 바닥이 진동하고, 그 덩치로 인해 만들어진 거대한 그림자가 토벌대의 위에 드리워졌다.
생명의 형상을 뒤집어쓴 살아있는 얼음.
그 실체를 마주한 이들이 저마다 경계의 기색을 취했다.
– “까악-! 베오도르! 그냥 다 죽여버리자!”
웅덩이에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베오도르뿐만이 아니었다.
그와 함께 끓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던 위신.
불꽃을 휘감은 새, 라드리오가 날개를 퍼덕이며 일어난 것이다.
라드리오의 크기는 베오도르에 비해서 작았지만, 그럼에도 사람을 깔아죽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덩치였다.
얼음곰과 불사조.
흉폭한 두 위신이 토벌대를 보며 웃었다.
– “우리의 영역에 발을 들였는데도 관용을 베풀었는데, 기어이 싸우기를 바라는 것임?”
“세상에는 그 존재만으로도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위대한 태양과 인류를 대행해······.”
– “까악-! 우리 베오도르의 말에 토달지마라!”
“······.”
– “멍청한 인간! 우리 베오도르가 너희보다 수백배는 더 오래살았다, 까악!”
– “역시 인간은 멍청함.”
위신과 알칸디오가 서로를 노려보며 불만을 표하는 것도 잠시.
알칸디오는 이내 할말을 잃은듯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명확한 의사소통이 된다는 것이 마냥 장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말이 통하는 위신이라는 것도 상당히··· 그렇네······.”
더군다나 그들이 꺼내는 한마디 한마디가 토벌대를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눈앞의 적을 난감한 눈으로 바라보던 알칸디오는, 이내 입술을 깨물며 검에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파앗-!
광륜을 띄운 채로 빛의 날개를 펼친 알칸디오가 앞으로 뛰어나가며 외쳤다.
“내가 저 새쪽을 맡겠다! 베오도르라는 이름을 가진 위신은 너희에게 맡기지!”
“······그래요, 그게 낫겠네요.”
“죽지 않도록 조심해라.”
“대체 누가 할 소리를 하는거야? 네 성역으로 우리를 방해하지나 말아줬으면 좋겠네.”
콰앙!
지면을 박찬 알칸디오가 두 위신의 사이를 향해 돌진했다.
위신과 알칸디오 사이의 거리가 순식간에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베오도르와 라드리오.
두 위신은 그런 알칸디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로를 마주하며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라드리오! 준비는 됐음?”
– “까악-! 물론이지! 베오도르!”
쿠구구구궁-.
베오도르가 발을 딛은 지면으로부터 진동이 번져나가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불꽃을 휘감은 새, 라드리오 역시 하늘로 높이 치솟으며 불길을 퍼뜨렸다.
서로 모순된 두 위신의 권능이 펼쳐지며, 그들의 영역이 힘의 확산에 이끌려 공명했다.
그런 위신들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간 알칸디오는, 정면에 있던 라드리오에게 검을 휘둘러보였다.
“—빛이여!”
화르륵! 콰아아아앙-!
검과 불꽃.
두개의 힘이 충돌하며 후방으로 밀려나가는 모습이었다.
돌진하는 알칸디오의 힘이 라드리오를 불꽃의 성역에 끌고 들어간 것이다.
하늘 높이 치솟은 라드리오가 전투를 개시하며 저 멀리 사라진 이후.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은 혼자남은 얼음곰을 바라보았다.
긁적, 긁적.
짧은 팔로 자신의 머리를 긁던 베오도르는 기사단을 마주하며 자세를 잡았다.
– “다들 덤비셈.”
“성역선포——.”
베오도르의 도발에 호응하며 가장 먼저 앞으로 나선 것은, 칠흑의 창을 쥔 채 성역을 전개하는 세페이드였다.
우우우우웅-.
세페이드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힘이 세계의 풍경을 개변시키며, 깨져나간 하늘의 너머로 우주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너져내린 하늘과 그 아래에 존재하는 무한한 세계.
그 모든 것들이 진정한 용을 위해 준비된 용의 둥지였다.
“드래곤 레어— 아스트로 필드.”
세페이드의 성역이 현실에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 직후.
그녀의 검은 뿔이 한층 더 길어졌으며, 세페이드의 등에서는 거대한 날개가 뻗어나왔다.
쿵. 쿵. 쿵. 쿵.
제 주인을 환영하듯이, 드래곤 하트 역시 웅장한 박동을 퍼뜨리는 모습이었다.
신체의 일부가 비늘에 뒤덮힌 채로 강림한 흑룡의 계승자.
용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아낸 육신으로, 세페이드는 손에 쥔 창을 겨누며 달려나갔다.
“세페이드! 보조할게요!”
“그아아아——!”
갈라진 동공사이로 짙은 투기를 흘린 세페이드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내보이며 베오도르를 향해 창끝을 밀어넣었다.
쇄도하는 궤적.
묵빛의 선이 허공을 가르며 베오도르의 머리를 노리고 찔러들어가는 풍경이었다.
거대한 얼음의 빈틈을 노리며, 날카로운 창끝이 얼음을 깨부수려던 찰나.
휘익-.
세페이드를 상대하고 있던 베오도르가 부드럽게 몸을 기울였다.
– “후우······.”
상체를 젖히며 창대를 피하는 베오도르.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창격을 회피하는 모습이었다.
후웅!
세페이드의 창끝이 아무도 없는 빈공간을 두드렸다.
육중한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숙련된 격투가를 떠올리게 만드는 움직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페이드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
– “베오도르 1식, 단단한 얼음!”
더군다나 베오도르의 움직임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세페이드의 공격을 피해낸 직후, 동작의 빈틈을 노린 베오도르가 주먹을 휘둘러온 것이다.
동작과 동작 사이를 이어가며 뻗어나온 강렬한 주먹.
파앙-!
파공성을 터뜨린 권격이 세페이드와 충돌하며 그녀를 날려버렸다.
베오도르의 주먹에 맞은 세페이드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눈살을 찌푸렸다.
“큭······!”
콰앙! 쩌저저적-.
피격당한 부분이 얼어붙으면서,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세페이드의 몸을 파고들어왔다.
얼어붙은 부분의 감각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세페이드는 빠르게 날개를 펴 감속하고는, 다시금 자세를 바꾸어 측면으로 찔러들어갔다.
‘다시 한 번··· 이번에는 사각을 노리고 파고드는거야.’
휘릭-.
궤적이 비틀린 창끝이 이번에는 거체의 측면에서 파고들었다.
회전이 실린 날카로운 찌르기였다.
– “보고 피하면 쉬움.”
“뭐?”
베오도르는 그러한 궤적마저도 포착하고서는, 다시금 몸을 기울여 아슬아슬하게 피해보였다.
거체에 어울리지 않는 유연하고 빠른 움직임.
그는 수차례 궤적을 바꾸어 내지르는 세페이드의 창을 피하며, 그 뒤편에서 날아오는 마법조차 쳐내는 모습이었다.
파앙! 파아앙-!
휘익. 휙. 휘이익-.
경이로운 움직임을 반복한 베오도르는 고개를 숙인 채로 깊숙히 파고들며, 세페이드를 향해 다시 한 번 카운터를 날렸다.
– “베오도르 2식, 단단한 얼음!”
“으윽······!”
– “아니, 이걸 맞고도 버티다니······!”
콰앙! 파아아아앙-!
베오도르의 묵직한 주먹이 충격파를 터뜨리며 나아갔다.
허나, 베오도르의 주먹은 제 목적을 이루지 못한 채로 허공에 멈춰서버린 모습이었다.
베오도르의 주먹을 세운 것은, 종말의 궤적을 양손으로 붙잡은 세페이드였다.
위력적인 권격을 가로막은 세페이드의 갈라진 동공이 그를 노려보았다.
“하아, 하아······!”
치이이이익-.
입술을 깨문 세페이드의 전신에서는 연기가 새어나오며 얼음을 녹여내고 있었다.
육중한 신체에서 나오는 무게감조차 세페이드는 특유의 괴력으로 저지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더군다나 공격을 버텨낸 세페이드의 뒤에서는 그녀의 동료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재생으로 신체를 치유하며 움직이는 세페이드의 후방.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저마다의 수단으로 베오도르의 구속을 시도했다.
“성역선포—— 범람하는 선혈의 호수.”
“—템페스트!”
“—타올라라, 업화!”
베오도르의 다리를 묶어놓은 핏줄기.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로 휘몰아치는 서늘한 바람.
얼음을 녹여버릴 기세로 터져나오는 강렬한 불꽃.
그리고 그 뒤에서는 두명의 기사들이 검을 뽑아든 채로 내달리는 중이었다.
– “다, 다리가 안움직임······.”
“세페이드, 조금 더 위로 올라가요!”
타다다다닥-.
황금빛을 휘감은 채로 내달린 아스티야의 손에서 성검이 빛을 터뜨렸다.
성역 하나를 통째로 검으로 뒤바꾼 아스티야의 라브로시아는, 그 자체로 어마무시한 위압감을 가지고 있는 물건이었다.
“라브로시아!”
검끝에서 터져나온 빛줄기가 다급하게 가드를 올리던 베오도르의 팔을 파고들었다.
콰득! 콰드드드득!
얼음을 파고들어가며 울려퍼지는 파열음.
그 강도가 단단한 탓에 완전히 관통하지는 못했지만, 베오도르의 반격을 저지하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다.
– “아악! 아아악······!”
“—팔중섬격.”
가드를 올린 베오도르의 뒷편에서는, 그림자를 타고 전이한 이오가 검을 휘둘러왔다.
여덟개의 그림자가 흩어져나오며 저마다의 궤적으로 베오도르를 베어가른다.
콰직! 콰지직-!
매서운 기세로 휘둘러진 검이었지만, 이번에도 베오도르를 양단하기에는 부족했다.
이오의 검은 베오도르의 전신에 잔혹한 생채기를 새겨넣었다.
무자비한 공격에 적중당한 베오도르에게서 섬뜩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 “악! 아악! 너, 너무 아픔······!”
“지금이 기회에요! 빨리 몰아넣어야 해요!”
“아리엣! 베오도르를 덮은 환영이 무너지려고 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10초 후에 다시 복구될거야.”
재빠른 몸놀림으로 공격을 피해가던 베오도르였지만, 움직임이 봉쇄당한 채로도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핀치에 몰린 베오도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
콰앙-! 쾅! 쾅! 쾅! 쾅!
엉성한 가드를 올리며 자신을 두드리는 공격을 감내하는 것만이, 지금의 베오도르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택지였다.
무수한 얼음파편이 사방으로 휘날리며, 굉음과 난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연속된 난타전 속에서도 베오도르는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 공격을 흘려내고자 시도했다.
“그렇게 놔두지않아.”
허나 세페이드는 그런 베오도르를 얌전히 놓아두지 않았다.
콰앙! 콰드득-.
흑룡의 형태로 빚어진 투기가 정면으로 뻗어나가며, 베오도르의 복부를 완전히 파고드는 모습이었다.
굽이치는 흑룡에 꿰뚫린 베오도르가 고통에 신음하면, 공중에 떠오른 세페이드가 투기와 연결된 창을 들어올렸다.
용의 형상을 한 투기는 세페이드와 강력하게 결속된 채로, 그녀의 의지를 따라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 “그아아아악! 곰 살리셈!”
“죽어······!”
베오도르를 구속한 피의 감옥채로 그를 들어올린 세페이드는, 전력을 다해 그것을 휘둘러 지면에 내려쳤다.
콰앙! 콰아앙! 콰아아앙!
철퇴를 휘두르듯이 지면과 충돌하는 베오도르.
그 육중한 거체가 땅과 충돌할 때마다, 지면이 크게 깨져나가며 베오도르의 단면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수많은 공격이 만들어낸 균열이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진 것이다.
– “그악! 그아악! 그아아아악!”
세페이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욱 격렬하게 투기를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콰앙! 콰아아아앙!
지면의 충격이 더해져나갈 때마다 베오도르가 갈라지며 파편이 흩뿌려졌다.
휘두를 때마다 땅이 패이고, 그 위에 아름다운 얼음의 잔해가 주변을 장식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부서버릴 기세로 베오도르를 내려찍는 세페이드.
그 무자비한 폭력이 수분가량 더 이어졌을 즈음.
– “······.”
쩌적, 쩌저저저저적-!
베오도르를 구성하던 파편이 완전히 산산조각나며 흩어져버렸다.
더 이상 베오도르라고 부를만한 형체조차 남지 않은 채로, 모든 조각이 부서져 무너져내린 것이다.
거대한 얼음곰의 형상이 붕괴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세페이드!”
“하아, 하······.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요.”
“고생했어요! 많이 성장했네요!”
베오도르를 부숴버린 세페이드는 숨을 고르며 자신이 만들어낸 참상을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패여나간 지면에 흩어진 얼음덩어리.
누가 보더라도 더 이상 제기능을 하기는 어려워보이는 풍경이었다.
토벌의 성공을 의심할만한 여지가 없는 모습인 셈이었다.
그러한 모습에 아스티야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세페이드를 힘껏 끌어안으려고 했다.
“조금 과격하긴 하지만 그래도 빠르게 끝낸 것 같아 다행이에요!”
“······잠깐만.”
아리엣이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무언가를 의심하는 듯한 목소리.
그것을 들은 아스티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리엣?”
“아직 성역이 무너지지 않았어.”
상황을 의심하는 아리엣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멍하니 동료를 응시하던 아스티야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런 아스티야의 눈은 찬란한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