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60
161.쌍천 (3)
“무슨 북극곰이 이글루도 가지고 있냐?”
비스듬히 기울어진 스마트폰 액정의 너머.
그곳에서 나는 눈에 뒤덮힌 마을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눈이 잔뜩 쌓여있는 마을의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이글루가 세워져있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이글루의 안쪽에서는 익숙한 인상의 얼음곰이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위신 베오도르.
거대한 얼음의 형체가 태연한 얼굴로 전장에 다시 복귀한 것이다.
– ······.
그리고 내 무릎에 앉아있던 미니 곰돌이는 그런 북극곰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오랫동안 곰 모드로 지내다보니 눈앞의 곰에게서 동질감이라도 느낀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얼음으로 만들어진 곰의 모습이 신기한 것일까.
어느 쪽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내 입장에서도 얼음으로 만들어진 곰은 신기해보였다.
특히나 그 곰이 불사조로 물을 끓여서 온수목욕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말이다.
“뭐··· 아무런 문제 없이 이기겠지.”
나는 이글루를 통해 복귀한 베오도르를 바라보다가, 이내 헛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타닥. 타다닥.
분주하게 움직이는 내 손가락은 게임 속의 몬스터들을 학살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 * *
“재생? 아니, 그거랑은 조금 다른 것 같은걸.”
거대한 이글루를 통해 되돌아온 베오도르를 눈앞에 두고서, 아리엣은 베오도르의 권능에 대한 짤막한 평가를 남겼다.
베오도르의 육신이 산산히 부서졌음에도 불구하고, 베오도르는 이글루 안에서 새로운 육신을 들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매끄러운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체.
누가 보더라도 이전의 베오도르와 동일한 존재였다.
“부활과 비슷한 개념일지도 모르겠어. 생명체로서의 육체가 없다는게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 “후우··· 나 화났음.”
“정확한 정보는 계속해서 저 얼음덩어리를 부숴보면 알 수 있겠지.”
결정을 내린 아리엣이 어느새 영역을 넓혀나간 피를 움직였다.
무수한 피로 베오도르를 옭아매어, 그를 단단하게 구속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아리엣이 성역의 피를 흘려보내 제압을 시도하려던 순간.
베오도르가 자신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렸다.
– “단단한 얼음.”
콰앙! 쩌저저저적-.
육중한 얼음이 지면을 후려치는 것과 동시에, 냉기가 확산하며 다리 근처의 모든 것들이 얼어붙었다.
베오도르를 구속하기 위해 다가가던 아리엣의 핏줄기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쩌적, 쩌저적.
길쭉하게 뻗어나가던 그 모습 그대로 순식간에 피가 얼어붙어버린 것이다.
주변반경에 빙결효과를 거는 권능은 아리엣의 공격을 얼린 채로 묶어놓은 모습이었다.
제대로 이동하지 못하고 굳어버린 얼음의 모습에, 아리엣은 입술을 깨물며 백은을 들어올렸다.
“······아무래도 나랑 상성이 좀 안좋은 것 같네.”
“아리엣! 뒤로 물러서세요!”
“그래야겠어.”
얼어붙은 핏줄기는 형태를 변형시키는 것조차 어려운 모습이었다.
피를 매개로 사용하는 밤의 일족의 권능 전반을 봉쇄하는 기술.
본격적으로 권능을 사용하기 시작한 베오도르의 움직임이, 아리엣에게 까다롭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백은을 쥔 아리엣의 너머에서는 시온 역시 성역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파직, 파지직-.
선명한 뇌광을 터뜨린 시온은 먹구름과 함께 번개를 불러들였다.
“성역선포—— 포효하는 뇌운.”
거대한 뇌운이 하늘 위에 자리잡은 직후.
콰앙! 콰과과과광-!
눈이 아파올만큼 뇌광이 번쩍이며, 수차례 천둥소리가 겹쳐서 울려퍼졌다.
시야 전부를 뒤덮는 청광.
무자비한 번뜩임이 지상을 거닐던 위신을 노리고 터져나온다.
낙뢰의 비가 쏟아져내리며 부활한 베오도르를 두들기는 모습이었다.
– “그아아아악······!”
치익, 치이이이익-.
낙뢰의 폭격에 맞은 베오도르는 짙은 연기를 흩뿌리더니,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정면을 향해 걸어나왔다.
육신에 막대한 충격이 전해진 것은 분명했지만, 그럼에도 베오도르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움직였다.
얼음과 뇌전. 그리고 피를 다루는 권능.
그 모든 공격과 최악의 상성을 가진 채로, 베오도르는 칠흑기사단의 앞으로 전진해왔다.
“공격이··· 통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우리가 가진 권능이랑은 상성이 안좋은 것 같지?”
아리엣과 시온이 다루는 대부분의 공격과 상성이 맞지 않는다.
칠흑기사단의 화력을 담당하는 두 사람이 빠져버린 이상, 이제 정면에 나설 수 있는 인물은 하나밖에 없었다.
제3석, 레온 크로스비트.
전열에서 두자루의 검을 뽑아든 레온의 불꽃이 터져나왔다.
“타올라라.”
전진하는 베오도르를 향해 불꽃의 검을 치켜든 레온이 달려들었다.
타다다다닥-.
미끄러운 눈길을 밟으며 걸어나가는 그는 전신에 백염을 두르고 있었다.
흑과 백.
대비되는 색의 불꽃을 휘두르는 레온의 검이, 거대한 불기둥을 만들어내며 휘둘러졌다.
다가오는 레온의 모습을 지켜보던 베오도르 역시, 한쪽 팔을 움직여 주먹을 휘두르기 위한 자세를 잡았다.
– “베오도르 3식, 단단한 얼음!”
“업화······!”
육중한 힘이 실린 강펀치와, 그를 저지하기 위해 터져나오는 불꽃.
거대한 불과 얼음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레온의 검이 산산히 깨져나갔다.
콰아아아앙-!
서로를 부정하는 두가지의 힘이 얽혀들면서, 폭발과 함께 짙은 수증기가 뿜어져나왔다.
레온은 부서져버린 검을 허공에 던져버리며, 나머지 한자루의 검을 들어올렸다.
레온이 가지고 있는 ‘분열하는 아성’의 특성은, 망가지더라도 마력을 통해 복원할 수 있는 것.
박살난 베오도르가 다시 되돌아왔던 것처럼, 레온의 박살난 검 역시 얼마든지 되살아날 수 있었다.
“얼음째로 녹여주마! 업화!”
– “그워어어어! 멍청한 침입자놈들!”
불꽃의 검이 폭음을 터뜨리며, 베오도르에게 이끌려가듯이 파고들어갔다.
그러한 레온의 검을 응시하던 베오도르가, 능숙하게 가드를 올리며 몸을 기울였다.
베오도르의 좌측.
이오의 그림자가 그를 잘라내기 위해 파고드는 공간이었다.
거대한 그림자의 선이 허공을 베어가르며, 회피동작을 마친 베오도르가 반격을 퍼부었다.
– “베오도르 오의! 단단한 얼음!”
콰앙! 파아아아앙-!
수축했던 공기를 찢어발기며 뻗어나온 베오도르의 발바닥이, 무지막지한 파공성을 터뜨리며 휘둘러졌다.
빠른 속도로 뻗어오는 주먹의 모습에 레온이 검을 들어올렸지만, 레온의 검이 통째로 충격에 밀려나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육중한 얼음의 거체는 인간의 육신으로 힘대결이 가능한 종류가 아니었다.
베오도르와 힘으로 상대가 가능한 유일한 기사는 세페이드 하나뿐.
레온은 날아가는 자신의 검을 보며, 검술로 공격을 저지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것인지를 실감했다.
“레온! 뒤쪽으로 물러서세요!”
“윽······!”
무기가 날아간 레온을 향해서, 예지를 활성화한 아스티야의 경고가 울려퍼졌다.
레온은 곧바로 지면을 박차며 뒤로 물러섰고, 이내 레온이 서있던 자리에 거대한 발자국이 찍혀나갔다.
쩌저저저적.
베오도르의 다리가 내려찍은 지면으로부터 한기의 폭풍이 몰아치며, 다리의 아래에서는 크레바스가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레온은 육신을 휘감은 백염을 더욱 강하게 끌어올리면서, 베오도르의 한기폭풍에 휘말리지 않도록 대비했다.
“이오! 세페이드!”
“응. 준비하고 있었어.”
베오도르가 공격을 내지르는 사이.
그를 둘러싸고 있던 칠흑기사단의 전력도 가만히 두고보지만은 않았다.
베오도르가 레온을 노리는 빈틈을 타고서, 세페이드와 이오의 공격이 베오도르의 몸을 두드렸다.
콰앙! 쾅! 카가가가각-!
창과 검.
괴물을 잡기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병기들이 베오도르를 후려치며 파고들었다.
– “그워어어억······! 아, 아픔!”
한명이 물러서며 생겨난 빈틈을 두명이 들어가 파고드는 광경.
두명의 공격이 포착당해 뒤로 물러서면, 그 다음을 파고드는 것은 아스티야의 참격이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창격과 검격.
오랫동안 이어진 전투경험은 이제 서로간의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아스티야! 빨리······!”
“세페이드, 물러나서 2초 후에요!”
“네.”
기사 개개인이 끊임없는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그럼에도 이 자리의 모두는 하나의 집단이었다.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 모인 기사단.
무수한 전투를 거치며 성장해나간 기사들의 사냥방식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스티야의 찌르기가 베오도르의 어깨를 꿰뚫은 뒤에는, 다시금 검을 빚어낸 레온의 화염이 파고들었다.
“레온! 지금이에요!”
콰앙! 콰아아아앙-!
한층 더 출력을 높여낸 불꽃이 베오도르의 얼굴을 타격하며 밀어내었다.
작열하는 불꽃의 여파가 얼음을 휩쓸며, 베오도르의 전신에 균열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 “다, 단단한 얼음······!”
“업화—!”
수증기가 만들어지고, 그 뒤를 불꽃이 뒤덮으며, 그 여파로 다시금 수증기가 만들어진다.
불꽃과 얼음이 만들어내는 부조화의 연쇄.
이를 악문 레온이 검을 휘두르며 사이를 파고들면, 베오도르는 가드를 움직이며 가능한 공격을 저지하는 모습이었다.
촤악! 카가가가각-!
불꽃을 휘감은 팔뚝이 녹아내리고, 상공에서는 정수리를 노리는 창격이 다시금 파고들었다.
세페이드가 그려내는 종말의 궤적.
그녀가 전력으로 내던진 투창이 베오도르의 머리를 꿰뚫고는, 폭발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균열을 확산시켰다.
– “아아아아악! 너무 아픔··· 으윽, 으아아아아악!”
머리를 꿰뚫는 일격에 통증을 호소한 베오도르.
전신을 뒤틀며 녹아내리던 베오도르가 비명을 내지른 이후.
쩌적, 쩌저저저적-.
베오도르를 이루던 육신에 균열이 벌어지면서, 베오도르가 산산히 부서져내리는 모습이었다.
“후우······.”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숴졌군. 이걸로 위신의 육신이 완전히 부서진건가?”
두번째의 파괴.
형상을 유지하지 못하고 망가진 베오도르가 무너져내렸다.
그 사실을 확인한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구석에 있던 이글루로 향했다.
베오도르의 두번째 육신이 나왔던 장소.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베오도르가 나오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저곳에서 다시 한 번 그 곰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말이지.”
동료들과 함께 이글루를 바라보던 아리엣의 입에서는, 성역의 이글루에 대한 그녀의 예상이 흘러나왔다.
과연, 이글루의 안쪽에서는 또 다른 베오도르가 걸어나올 것인가.
모두가 고심하면서 베오도르의 이글루를 바라보고 있던 도중.
아리엣을 포함한 기사단의 단원들은 눈앞에 놓여있던 이글루로부터 이변을 발견했다.
“······.”
지직, 지지직-.
멀찍이 보이던 이글루의 실루엣이 뒤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수상쩍은 상황.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한 모두가 무기를 이글루에 겨누었다.
그리고 그 직후, 베오도르의 이글루가 갑작스러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뭔가 이상해요! 다들 공격에 대비하세요!”
쿠구구구구궁.
크레바스가 갈라지며 대지가 진동하는 모습.
섬뜩한 소리를 내며 갈라진 지면의 아래에서는, 거대한 곰발바닥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전의 베오도르와는 그 크기조차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하기 짝이 없는 발바닥의 형상.
저 거대한 것이 건물이 아니라 곰발바닥이라는 것부터가 모두의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에 모두가 필살기라도 날아오는 것인가 하며 고민하고 있던 찰나.
크레바스 아래에서 뻗어나온 손바닥이 이글루를 강하게 두들겼다.
“아······?”
콰아앙!
거대한 곰발바닥이 이글루에 육중한 충격을 전한 것이다.
묵직한 소리가 터져나오며 베오도르의 이글루가 위쪽으로 밀려났다.
귓가를 뒤흔드는 굉음.
그 뒤에 충격을 전달받은 이글루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베오도르의 공격을 받은 이글루는 떠올랐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하늘의 위에는 어느새 균열이 벌어지며, 거대한 우주의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날아가는 이글루.
우주를 포착한 채 수직으로 움직이는 그 광경에 모두가 긴장한 시선으로 그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이글루의 아래로 무언가를 쏟아내려는 걸까?’
권능을 가진 위신들의 힘은 하늘을 뒤흔들고 대지를 뒤엎을 정도.
그러니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은 그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베오도르가 숨겨둔 마지막 발악을 경계한 것이다.
그렇게 베오도르의 이글루는 계속해서 벌어진 균열의 위쪽으로 넘어갔으며-.
어느 순간 완전히 균열의 안쪽에 들어서고서는, 균열을 완전히 닫아버리는 모습이었다.
곰발바닥에 의해 날아가던 이글루가 균열과 함께 사라진 이후.
파스스스슷-.
지상을 뒤덮고 있던 얼음의 성역 역시 완전히 제 모습을 감추었다.
“베오도르의 성역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요.”
– “으음··· 그야 당연히 그렇겠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라지는 성역을 보던 시온의 시선이 감상을 늘어놓던 셀레스에게 향했다.
셀레스라면 방금 전에 일어난 일을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리고 셀레스는 그런 시온의 기대에 충실히 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셀레스, 대체 어떻게 된건가요?”
– “칠흑의 바다로 도망갔어.”
“······?”
– “지상과 연결된 닻을 스스로의 의지로 끊어버리고서, 다시 원래 있던 우주로 되돌아간거야.”
베오도르가 도망갔다.
셀레스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이야기에 정적이 칠흑기사단을 휩쓸었다.
허나, 그 누구도 셀레스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맥동하는 유빙, 베오도르.
그들이 마주했던 위신이라면 그런 행동을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지역을 점유하던 두 위신들 중 하나가 도망갔으니, 결론적으로 이곳에 남은 적은 하나뿐이었다.
“—빛이여!”
– “까악-!”
불꽃을 휘감은 새. 라드리오.
동료에게 버려져 혼자남은 위신이 마지막 남은 토벌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