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19
서포터의 창고정리 (3)
나는 어렸을때부터 임기응변에 있어서 유독 능숙한 편이었다.
면접이나 발표가 필요한 상황이 찾아올 때마다 커다란 문제 없이 애드리브로 대화를 마치고는 했던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면접에서 고득점을 받은 덕분에 이전의 형세를 뒤엎어버린 경험이 존재하기도 했다.
어찌되었던 사람과의 대화에 있어서 ‘그럴싸한 대답’을 이어나가는 것은 나의 특기인 것이다.
눈치를 보는 능력과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계산하는 능력이 합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두 사람에 대해서부터 설명해야만 했다.
“단장. 좋아하는 꽃이 뭐야?”
“글쎄. 꽃을 좋아했던 기억은 없는 것 같군.”
“단장은 어느 정도로 부자인건데?”
“내가 가진 재산을 제대로 세어본 기억은 없다.”
이오. 그리고 아리엣.
두 기사단원이 모두 식당에서 식사를 끝마친 후에, 나는 알레테이아의 로비에 붙잡힌 채로 두 사람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야만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어버린 원인을 따지고 보면, 아무래도 아리엣의 기여가 큰 편이었다.
식사를 마친 아리엣이 나에게 알레테이아와 칠흑기사단에 대해서 묻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솔직한 마음을 말하자면 나보다는 곰돌이가 아는 것이 더 많을테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아리엣의 질문을 거절할만한 여유는 없었다.
일단은 단장으로서의 롤플레잉이 계속해서 이어져야하는 탓이었다.
내 의사소통을 제어하는 ‘단장필터’가 거절의 의사를 일절 허용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로비에 앉은 채로 이오와 아리엣의 질문을 번갈아서 들어야만 했다.
“알레테이아는 무슨 목적으로 만든거야?”
“제대로 된 칠흑기사단의 거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단장이 알레테이아를 만든 이유는 알겠어. 그러면 칠흑기사단은 대체 무슨 이유에서 설립한건데?”
“칠흑기사단을 만든 이유라······. 나는 대륙에서 내 수족이 되어줄만한 기사들이 필요했다.”
이오와 아리엣이 건네오는 질문은 하나같이 알레테이아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원래의 내가 아닌, 칠흑기사단의 단장으로서 존재하는 나를 향한 질문말이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질문에 기사단장의 흉내를 내며 그럴듯한 대답을 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러한 꿈에서 내게 주어지는 자유는 지나치게 제한적이었던 탓이었다.
기사단장으로서의 내가 입밖으로 내뱉을 수 있는 단어는 나 자신의 품위를 위반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의도적으로 제대로 된 대답을 회피하는 행위처럼 말이다.
단장필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이정도가 한계인 셈이다.
“단장이 직접 포탈 밖으로 움직이지는 못하는거야?”
“이미 해답은 알고 있지 않나.”
“······그럼 단장의 진정한 목적은 대체 뭔데?”
“칠흑기사단의 모든 것은 단 하나의 대계를 위해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꿈속의 내가 거짓말을 들키더라도 곤란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만큼 이런식으로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때에는 그럴싸한 헛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그동안 듣고 보았던 모든 것들이 두 사람의 질문에 그럴듯한 헛소리로 대답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대단한 의미가 없는 말들로도 단장으로서의 롤플레잉을 이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오와 아리엣의 질문에 계속해서 아무 의미없는 헛소리로 대답했다.
정확한 대답을 어떻게든 회피할 뿐, 제대로 된 알맹이라고는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대답들이었다.
아리엣은 그런 내 대답에도 불구하고 한치의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 듯한 분위기였고 말이다.
“대계······? 단장이 생각하는 대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야기해줄 수 없는거야?”
“아직은 너희가 알아도 괜찮은 때가 아니다.”
“그렇구나. 단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대단한 일을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네.”
아리엣은 대계에 대해서 말해줄 수 없다는 내 말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허나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더라도 정확히 말해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왜냐하면 나에게 대계라고 할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아리엣이 나에게 진정한 목표에 대해서 묻는다고 한들, 내 목표라고는 오로지 플레이어 레벨을 올리는 것밖에 없었다.
게임의 플레이어로서 다양한 임무를 클리어하면서 계정의 레벨을 올려나간다.
게이머로서의 내가 지향하는 목표는 그것이 전부였던 것이다.
다만 레벨이나 스킬에 대한 이야기는 금칙어로 지정되어있는 탓에, 내 마음대로 두 사람에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두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의도적으로 대답을 뭉개어 들려주는 것을 선택했다.
어차피 솔직한 대답을 돌려주어봤자 단장필터에 걸릴 것이 분명한만큼, 둘러대는 것을 거리낄만한 이유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필요한 때가 다가온다면 결국 너희도 모두 알게될거다.”
“아직 우리는 단장이 말하는 대계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안되는거구나. 알았어.”
“아리엣 크레이들. 실망할 필요는 아무것도 없다. 마지막 순간에 일선에 서는 것은 너희가 될테니까 말이다.”
“그래, 그 대계가 그만큼이나 중요한거겠지. 그렇다면 일개 기사단원인 내가 납득해야지 어쩌겠어.”
로비에서 나와 의미없는 대화를 나누던 아리엣은 이내 스스로 타협하고 돌아서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리엣과 함께 내 대답을 기다리던 이오만큼은 그녀와 다르게 순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오는 한창동안 아리엣의 질문을 받던 나를 기다리더니, 이내 반장갑을 낀 손을 뻗어 내 손가락을 붙잡았다.
그리고는 나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이야기한 것이다.
“단장. 나는 단장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함께할테니까 괜찮아.”
“······이오.”
“설령 단장이 대륙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되더라도, 나는 끝까지 단장이랑 함께 있을게.”
한참동안 나와 두 사람 사이에 이어진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문답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이오는 나와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혀오는 모습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간에 그녀는 진심으로 받아들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이오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르게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하던지 나를 끝까지 따라와줄 사람이라.
마지막으로 그런 사람을 보았던 것이 언제였는지, 이제는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만큼이나 꿈속의 이오는 나에게 충실하게 따르고 있던 것이다.
“그런 대답을 듣는건 오랜만이군.”
“단장.”
“적어도 내가 칠흑기사단의 단장으로 지내는 동안은, 너희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일은 없을거다. 그럼 질문시간은 여기에서 끝내도록 하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로 벌써 두번째로 맞이한 알레테이아의 꿈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이 부질없는 꿈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게임속 캐릭터와 기사단장의 입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꿈이라.
솔직히 말해서 내 나름대로는 흥미가 생길만한 역할극이었다.
이오도 아리엣도 다들 저마다의 이야기에 충실한 캐릭터들이었다.
그런 두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시 한 번 이 꿈을 이어나가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잠깐, 어디에 가려는거야?”
로비에서 대화를 나누던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면, 아리엣이 당황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아리엣의 얼굴을 보건데 아무래도 자리에서 벗어나려는 내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런 아리엣을 향해 내 목적을 제대로 이야기해주었다.
“창고에 찾아갈 생각이다.”
“창고?”
“그래.”
지난번의 꿈을 통해 이미 대략적인 시간을 가늠하는 것에는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그런만큼 이제는 꿈에서 깨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완전히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알레테이아의 다른 시설들을 찾아가보려는 생각이었다.
어느새인가 곰돌이가 내 주변에서 없어진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창고까지 이동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터였다.
왜냐하면 지금 내 옆에는 이오와 아리엣, 두 사람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자신의 정면에 서있던 이오를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이오. 창고로 안내해라.”
“응.”
내 명령을 받은 이오는 앞장서서 나를 창고로 안내하는 모습이었다.
터벅. 터벅.
알레테이아의 복도를 걷는 내 발걸음 소리의 뒤로, 이오와 아리엣의 발걸음 소리가 번갈아 울려퍼진다.
셋이서 함께 복도를 걷자 처음의 적막함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오는 로비로부터 이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양쪽에 문이 달려있는 어떤 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단장의 명령대로 창고에 도착했어.”
아무래도 이곳이 내가 부탁했던 창고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오의 안내를 받아 창고로 이동한 나는, 이오가 안내한 창고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끼이익-.
붙잡은 문이 활짝 열리며 그 너머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밤에 내가 아이템을 잔뜩 부어넣은 창고의 풍경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마주한 풍경은, 내가 보기에 실로 불균형한 모습이었다.
‘여기가 알레테이아의 창고인가?’
화려한 물건들이 가득차있는 거대한 진열장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위치한 거대한 돌더미.
둘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불균형의 사이에는 곰돌이 인형이 서있는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친 이후 어디에 갔나 싶었던 녀석이, 알고보니 혼자 창고에 들어가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곰돌이는 바닥에 떨어진 돌맹이를 손으로 줍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바닥에서 돌을 줍고 있는 곰돌이를 바라보며 녀석을 향해 물었다.
“뭘 하고 있는 중이지?”
– “단장의 명령을 따르고 있음.”
곰돌이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돌탑의 위에 돌을 올려놓는 모습이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무표정한 곰돌이였지만, 그럼에도 오늘만큼은 그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말도 안되는 기예로 석탑을 쌓고 있는 곰돌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곰돌이가 쌓고 있는 무수한 돌들의 출처는 어디인가.
그야 당연히 내가 창고에 버린 쓰레기들이었다.
내가 창고에 쳐박아둘 생각으로 투척해놓은 쓰레기들을 녀석은 최선을 다해 정리하고 있던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게임에서 벌였던 행동이 자신의 눈앞에서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재현되고 있는 중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이 한순간의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완전하게 떨쳐낼 수 없었다.
나는 바닥에 굴러다니는 쓰레기를 정리하는 곰돌이의 모습을 아무말조차 하지 못한 채로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 “조금만 더 하면 정리가 끝남.”
“······.”
그런 녀석을 바라보는 내 행동은 한참동안이나 계속해서 이어졌다.
임기응변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이런 상황에는 어떤 대답을 돌려주어야만 하는지 제대로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멍하니 곰돌이의 모습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후에야, 곰돌이의 창고 정리는 비로소 끝을 맺었다.
* * * * * *
다음날 아침.
나는 창밖에서 울려퍼지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짹-. 짹-.
열려있는 창밖으로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그런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채로 상체를 일으키면, 침대 위를 나뒹구는 스마트폰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유달리 잠기운이 빨리 가시는 느낌인데.”
나는 방금 전까지 꾸고 있던 꿈의 내용을 떠올리다가, 이내 침대 위를 굴러다니던 스마트폰을 주워들어 잠금을 해제했다.
그리고는 바탕화면에 있는 게임의 아이콘을 터치해 게임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평소와는 다르게 컴퓨터를 대신해 스마트폰의 게임에 먼저 손을 뻗은 것이다.
간밤에 꾸었던 알레테이아의 꿈이 상당히 기억에 남았던 탓이었을까.
나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알레테이아에 접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게임에 접속한 나를 반겨주는 것은 언제나와 같이 떠오르는 환영의 메세지였다.
– [단장]님,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 환영메세지는 내가 몇번을 들어와도 바뀌지를 않는구나.”
평소처럼 내가 고르지도 않은 닉네임으로 나를 불러주는 로딩화면을 넘어가면, 이내 알레테이아의 로비가 화면에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로딩이 완료되고 나타난 알레테이아의 화면에는 평소와 같이 제복차림의 이오와 아리엣, 그리고 거대 곰돌이 인형이 존재하는 모습이었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화면에는 평소와는 다른 점도 몇가지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화면의 하단에 떠오르기 시작한 메세지들이었다.
나는 게임의 하단에 떠오른 메세지들을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았다.
– NEW! 기능이 새롭게 추가되었습니다.
– 기능은 알레테이아의 구성원이 별도의 조작없이 자발적으로 특정 행동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 [단장]님은 알레테이아의 기능을 통해 해당 구성원의 요청을 수락하거나 거절할 수 있습니다.
– 현재 대기중인 청원은 총 2개입니다.
화면에 새롭게 떠오른 메세지를 읽어보면, 게임의 인공지능이 나에게 우선적으로 활동을 권유해오는 기능이 추가되었다는 모습이었다.
이오나 아리엣같은 캐릭터들이 기능을 사용해 나에게 직접적으로 임무 혹은 행동의 요청이 가능해진 것이다.
게다가 나에게 도착한 의 실행여부는 내 의사로 결정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다시 말해서 캐릭터들의 요청은 어디까지나 그들 나름의 추천행동일뿐, 그에 대한 선택은 내가 책임지고 결정하는 셈이었다.
나는 새로운 기능에 대한 안내메세지를 바라보다가, 안내메세지의 하단에 있는 알림표시로 시선을 향했다.
“벌써 2건이나 청원이 도착했잖아······?”
안내메세지의 하단에는 이미 2건의 이 도착해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버튼을 눌러 도착해있는 의 자세한 내용을 확인해보았다.
툭.
화면을 터치하자 이 나오며 개별적인 의 승인여부를 물어보는 모습이었다.
나는 첫번째로 도착한 부터 천천히 그 내용을 읽어보았다.
– [이오(EX)]가 [수집 : 자유도시 ‘아르크’ 탐색] 임무를 요청했습니다.
– 해당 청원을 수락하시겠습니까?
– 수락한다 / 거절한다
처음으로 마주한 의 내용은 이오로부터 전해져온 [수집 임무]의 요청이었다.
아무래도 이오가 단독으로 [수집 임무]를 진행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오가 혼자 있던 시절이었다면 [수집 임무]에 보내는 것을 재고했겠지만, 지금이라면 이오가 부재중이더라도 아리엣에게 다른 임무를 맡길 수 있었다.
게다가 [수집 임무]는 문제가 생기는 경우 곧장 임무를 중단하고 되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다.
나로서는 굳이 이오의 요청을 거절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수집 임무를 진행하려는거면 당연히 거절할 필요가 없기는 하지.”
나는 이오가 보낸 에 버튼을 눌러 수락의 의사를 표했다.
툭.
내가 수락버튼을 누르자 화면 하단에 임무와 관련된 메세지가 줄줄이 떠올랐다.
을 수락하는 것만으로도 임무를 할당하는 절차가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이었다.
– [수집 : 자유도시 ‘아르크’ 탐색] 임무를 선택하셨습니다.
– 기사단원 [이오(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이오의 을 수락하자 이오에게 임무가 하달되며 곰돌이가 나타나는 모습이었다.
퉁-.
하늘에서 떨어져내린 곰돌이는 곧장 이오의 앞에 포탈을 만들어주었다.
이오가 지금부터 [수집 임무]를 시작할 새로운 스테이지로 연결되는 포탈이었다.
이오는 자신의 앞에 열린 포탈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 너머로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이오가 보내온 청원을 수락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처음 보는 이름의 캐릭터가 보내온 청원을 마주할 수 있었다.
– [알레테이아 서포터(Unknown)]가 [작은 돌(F)], [큰 돌(E)], [무늬가 있는 돌(E)], [평범한 돌(F)]의 처분을 요청했습니다.
– 해당 청원을 수락하시겠습니까?
– 수락한다 / 거절한다
알레테이아 서포터.
해당 캐릭터가 내 창고에 있는 무더기 돌들의 처분을 요청해온 것이다.
내가 뽑은 캐릭터는 이오와 아리엣 이외에는 없었으니, 평범한 캐릭터가 청원을 보내온 것은 아니었다.
짐작이 가는 캐릭터라고는 곰돌이밖에 없었지만,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는 내용이었기에 나는 곧장 수락버튼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었다.
툭.
내가 버튼을 터치해 또 하나의 을 수락하면, 이내 하늘이 열리며 다시 한 번 곰돌이가 자리에 나타났다.
이번에 자리에 나타난 곰돌이의 머리 위에는 무수한 돌들이 놓여있는 쟁반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 탈탈탈탈.
곰돌이는 그런 쟁반을 들어 새롭게 개방한 포탈에 들이부었다.
돌을 처분하는 방법이 뭔가 했더니, 아무도 없는 포탈에 돌을 투기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가지고 있던 돌을 투기한 곰돌이는 홀가분한 얼굴로 포탈을 닫았다.
지이잉-.
닫힌 포탈의 너머로 보이는 곰돌이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 (만족)
나는 을 이행하고 걸어가는 곰돌이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총. 총. 총. 총.
돌을 투기하고 돌아가는 곰돌이의 모습은 묘하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느낌이었다.
* * * * * *
대륙의 동부에 위치한 자유도시 아르크.
그곳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윌터는 오전부터 자신의 가게를 살펴보는 중이었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에 술집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장사꾼의 기본이었다.
윌터의 아버지가 아르크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하던 시절부터 가르쳐오던 기본기인 것이다.
비록 지금의 가게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것보다 더 크고 화려해졌지만, 그럼에도 윌터는 자신의 아버지가 말한 기본기를 결코 잊지 않았다.
윌터는 오늘도 깨끗하게 정돈되어있는 자신의 가게를 살펴보면서 그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았다.
“오늘도 훌륭하군. 평소보다 손님만 조금 더 와주면 좋으련만.”
며칠 전에 윌터와 직원들이 대청소를 벌였던 덕분이었을까.
윌터의 눈에 보이는 가게는 오늘따라 유달리 더 깔끔해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윌터가 자신의 가게를 보며 만족하고 있는 것도 잠시.
윌터는 이내 허공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이상현상을 발견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윌터가 서있던 곳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공간에서, 갑작스럽게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저건··· 대체 무슨 일이지?”
쩌적. 쩌저적-.
허공에서 공간이 벌어지는 모습에 윌터가 당황하는 것도 잠시.
이내 벌어지기 시작한 균열에서 푸른 안광을 흘리는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균열의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람만한 덩치를 가진 거대한 곰인형이었다.
그리고 그런 곰인형의 머리위에는 돌이 무수히 쌓여있는 쟁반이 놓여있는 모습이었다.
“······?”
– “······.”
균열 너머의 거대 곰인형과 윌터가 시선을 마주하는 것도 잠시.
이내 거대 곰인형은 윌터의 가게에 쟁반의 내용물을 털어넣기 시작했다.
털털털털-.
곰인형의 쟁반에서 굴러떨어지는 내용물은 무수한 숫자의 돌무더기였다.
쟁반에서 떨어진 돌무더기들이 윌터의 가게 안에 나뒹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곰인형이 수많은 돌을 윌터의 가게에 전부 털어놓고 나면, 그것은 짧은 한마디를 남기며 사라지는 모습이었다.
– “방출.”
지이이이잉.
공간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이내 허공에 벌어졌던 균열이 완전히 소멸되었다.
윌터는 곰인형이 사라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가게에 나타났던 곰인형.
그것이 사라진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바닥을 굴러다니는 무수한 돌맹이들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