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25
26.현상수배 (2)
성 알칸디오.
교황청의 일곱번째 검이자 흑마법사들에게 미친 성기사라고 불리는 청년은 현재 대삼림을 수색하고 있었다.
수려한 금발이 어울리는 청년에게 미친 성기사라는 이명이 붙은 것은, 그가 천여구의 언데드들과 사투를 벌였던 헤리오바르 산맥에서의 전투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독실한 인생을 살아왔으며, 술과 여색을 멀리하고 이단들을 심판하는 것을 즐겼다.
성 알칸디오는 이단과의 전투에 나서면 무슨 일이 있어도 결코 등을 보이고 도망치지 않았다.
이단과의 전투가 벌어지면 어떻게든 그 뒤를 쫓아 기어이 숨통을 끊어놓고야 마는 것이다.
시성이 끝난 지금에 이르러서는 이전보다는 훨씬 잠잠해졌지만, 그럼에도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그는 여전히 공포의 대명사로 통하는 중이었다.
“수색이 점점 길어지는구나.”
“알칸디오님, 흑마법사들이 이미 크로테오스 대삼림을 벗어났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
“흑마법사들의 은신처는 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이런 복잡한 숲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성 알칸디오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무가 우거진 대삼림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이끄는 토벌대가 대삼림에 들어선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허나 토벌대는 아직까지도 라케일의 은신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마법적인 조치에 민감한 성 알칸디오가 직접 수색을 지휘하고 있는데도 그러했다.
그만큼 흑마법사들의 은신처는 무척이나 은밀하게 숨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 알칸디오는 여전히 라케일 알렌바흐가 이곳에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녀석은 제물의 확보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마도 승격의식이나 그에 필적하는 거대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겠지.”
“······.”
“녀석이 이미 제단을 구축해놨다면 이곳에서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의식이 시작된다면 은신처를 온전히 감추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동안 확인한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 성 알칸디오는 이미 목표가 여기에 숨어있다고 결론을 내린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대삼림 곳곳에서 흑마법 특유의 사이한 마기가 확인되고 있는 모습이었다.
상대적으로 최근에 마법을 발현한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이는 흑마법사들이 아직까지 크로테오스 대삼림에 남아있다는 명확한 증거였다.
그는 라케일이 다섯번째 계단에 오르는 것을 앞둔 마법사기에 치밀하게 은폐해놓았을 뿐, 라케일의 은신처는 분명 대삼림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규모 의식이 개시되는 순간 마력의 흐름이 뒤바뀔거다. 이 근처를 수색하는 것만으로도 녀석을 잡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 찾아온다.”
“알칸디오님······.”
“시간을 조금 더 쓰더라도 대삼림의 수색을 이어나가겠다.”
자신을 따라오는 이단심문관들을 향해 선언한 성 알칸디오는 다시 고삐를 당기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이단을 멸하고 온땅에 신성교단의 이치를 전파하는 것.
그것만이 성 알칸디오가 가지고 있는 사명이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희생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알칸디오는 자신의 본분을 이어나갈 것이다.
결코 부러지지 않는 강렬한 신앙만이 지금까지 그를 지탱해왔던 유일한 기둥이었다.
“다들 긴장을 늦추지마라. 마법사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니 말이다.”
“예.”
다그닥-. 다그닥-.
크로테오스 대삼림을 이동하는 토벌대의 말발굽 소리가 계속해서 숲속에 울려퍼졌다.
주변에 둘러앉았던 새들은 그런 토벌대의 말발굽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었다.
* * * * * *
“역시··· 다섯번째 계단에 다다르신 마법사다운 식견이십니다.”
대삼림에 위치한 라케일의 은신처.
라케일을 돕기 위해 찾아왔던 아리엣은 현재 수많은 흑마법사들에게 둘러싸여 칭송을 받는 중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스승인 라케일의 위업도 대단하지만, 그를 뛰어넘는 진혈의 귀족은 우러러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존재였던 까닭이었다.
거기에 더해 라케일의 입으로 아리엣의 편의를 봐달라고 분부해두었던 이유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리엣은 제물의 피를 모아온 잔을 받으며, 그녀를 극진히 대접하는 흑마법사들을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다들 진혈의 귀족을 대할때의 예의에 대해서만큼은 잘 알고 있는 모양이네.”
“여태껏 보아왔던 흡혈귀들과는 격이 다른 분이시군요. 저번에 봤던 란시어 백작은 자신의 수준에 비해 무척이나 괴팍한 요구를 하는 흡혈귀였는데 말입니다.”
“오래 산다고 해서 모두가 다 지혜로운건 아니니까 말이야. 다른 이들을 이끄는 입장에서 보여야하는 품격도 있는거겠지.”
아리엣은 그렇게 말하며 와인잔에 따라져있는 피를 홀짝였다.
그런 아리엣을 지켜보던 라케일 역시 안심한 채로 의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진혈의 귀족은 원래라면 그들이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위의 존재였다.
용족과 마찬가지로 마법을 다루는 것에 있어 특화되어있는 개체다.
흑마법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은 태생부터 다른 개체의 위에 군림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인 것이다.
더군다나 진혈의 흡혈귀가 라케일을 비호해주겠다고 자처한 상황이었다.
그것도 다섯번째 계단에 올라 자신만의 고유마법체계를 완성시킨 마법사가 말이다.
‘분명 칠흑기사단이라고 했나.’
칠흑기사단.
아리엣은 그곳의 단장에게서 명령을 받아 라케일에게 찾아왔다고 밝혔다.
여태껏 그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점을 생각해보면 유서깊은 비밀기사단이 틀림없었다.
칠흑기사단은 아리엣 정도의 거물이 고작해야 일개 단원으로 속해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저만한 거물을 부리는 기사단의 단장이 호의를 가지고 보호를 약속했다.
사실상 그녀가 속해있는 집단 전체의 총의라 보아도 무방할 터.
성 알칸디오에게 의식의 현장을 들키더라도, 시간을 끄는 정도는 문제가 없을거라는 것이 라케일의 판단이었다.
‘대체 비밀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자가 왜 그런 결심을 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역시도 새로운 다섯번째 계단의 마법사와 우호관계를 원하는거겠지.’
라케일 알렌바흐는 지금 다섯번째 계단으로의 승격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다섯번째 계단의 마법사는 특별하다.
그들이 어느 세력에 서는지에 따라서 세계의 판도가 변할정도로 말이다.
단장이라는 사람은 그런 무게추를 흑마법사쪽에 기울이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성인과 충돌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에게 전력을 붙여줄 이유가 없었다.
“밤의 일족이여.”
“응? 준비가 끝난거야?”
“칠흑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자에 대해 물어보아도 괜찮은가?”
눈에 보이는 선이 있다는 것은,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도 그들과 접촉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라케일은 칠흑기사단과 연결될 가능성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그들이 만들어낼 사건으로부터 떨어질 이득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아리엣을 향해 칠흑기사단의 단장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그의 호의를 살 수 있는 선물이라도 준비해보려는 생각이었다.
단장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아리엣은, 라케일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향하며 입을 열었다.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리려고하면 큰일날걸?”
“그게 무슨······?”
“우리 단장은 자신이 바라는건 전부 이루려는 사람이거든. 신앙이니 황금이니, 단장의 목표 앞에서는 전부 부질없는 것들이라서.”
“······.”
“흑마법사 하나가 다섯번째 계단의 마법사가 된다고 하더라도, 단장에게 있어서는 결국 중요한 장기말도 못된다는 이야기야.”
그렇게 말하는 아리엣의 손에는 어느새 새하얀 지팡이가 들려있는 모습이었다.
범상치않은 기운을 품고 있는 지팡이는 그 가치가 어느정도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수준이었다.
어지간한 성채를 팔더라도 구매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라케일은 자신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는 아리엣의 모습에 등줄기에 소름이 끼치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 전체가 라케일의 영역이었지만, 그럼에도 라케일은 이 영역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휘릭.
쥐고 있던 지팡이를 가볍게 내던진 아리엣은 허공에 뜨는 지팡이를 지켜보면서 다리를 교차했다.
“단장의 심기를 거스르기 싫으면 의식이나 최대한 빨리 준비하라는 이야기를 하려는거야.”
“······다가오는 새벽에 의식을 거행할 계획이다.”
“좋네. 너무 오래 시간을 끌지않는게 좋아.”
고개를 끄덕인 아리엣은 다시 한 번 들고있던 와인잔을 기울였다.
잔에서 전해져오는 비릿한 혈향은 그녀가 알레테이아에서 마시던 것보다 훨씬 질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 * * * * *
의식이 예정되어있던 새벽.
라케일은 모든 제자들을 모아놓은 채로, 의식을 진행하기 위한 제단의 위에 올라섰다.
그가 서있는 제단의 각 귀퉁이에는 의식을 위한 제물들이 하나씩 놓여있는 모습이었다.
—승격의식.
마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흑마법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이었다.
3년동안 라케일이 모아왔던 모든 것의 집대성이 이제서야 눈앞에서 제대로 펼쳐지려는 것이다.
제단에 선 라케일이 제례를 진행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고 있으면, 제단의 근처에 있던 적당한 바위에 걸터앉은 아리엣이 감상을 늘어놓았다.
“의식 자체는 괜찮게 준비한 것처럼 보이네.”
아리엣이 보기에도 라케일의 제단은 완성도가 상당한 모습이었다.
적어도 제단의 문제때문에 의식이 중단될 가능성은 없을 터였다.
문제가 될만한 것은 외부로부터의 침입뿐이었다.
의식의 도중에 누군가 난입해 마력흐름을 휘젓지만 않는다면, 의식이 강제로 중단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성가신 녀석들이 냄새를 맡고 찾아오고 있지만 말이야.”
아리엣은 자신의 코에 느껴지는 신성력 특유의 불쾌한 향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은신처의 밖에서부터 성기사들의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성기사들의 선두에 서있는 인물의 경우에는 신성력의 밀도가 지나치게 높은 편이었다.
아리엣이 아는 한 이렇게나 진하게 불쾌한 향을 퍼뜨리는 이들은 하나밖에 없었다.
성인(聖人).
신성교단으로부터 시성을 받아 신의 축복을 증명한 이들이었다.
밤의 제국이 몰락하던 당시, 아리엣은 몇번이고 성인들과 마주했던 적이 있었다.
그녀가 마주했던 성인들은 하나같이 불쾌하고 성가신 존재들이었다.
“——라케일 알렌바흐. 마도의 위대한 다섯 계단 중 네 계단을 걸었으며, 마신의 이름 아래 자신을 바친 진리의 추종자가 고한다.”
아리엣이 의식을 직접 보호해준다는 사실에 안심한 것일까.
라케일은 그런 성기사들의 움직임에 전혀 신경쓰지않고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지이이이잉-.
라케일이 서있는 자리로부터 보랏빛이 퍼져나가며 사방에 마력이 뻗어나갔다.
제단의 마법진을 따라서 흐른 마력은 마법진에 새겨진 법칙을 재현하고, 제단 위에 놓여있던 촉매와 제물들은 녹아내리며 마법진을 강화해나갔다.
천상의 신을 향한 제례(祭禮).
초월적인 존재에게 바치는 공양의식과 함께 제단과 신을 잇는 통로가 형성되었다.
“이게··· 이게 바로 승격의식인건가!”
“라케일 장로님······!”
라케일을 둘러싼 채로 의식을 돕던 제자들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경탄했다.
드높은 천공으로부터 내려온 빛의 기둥.
마신과 인간을 잇는 찬란한 자색 광채는 그것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승격의식은 마도의 길을 걷는 이들이 진행하는 제례중에 가장 거대한 것이었다.
도시 하나를 제물로 바치려는 생각이 아닌 이상에야, 흑마법사가 준비할 수 있는 의식중에 가장 경이로운 의식인 셈이었다.
신격과의 통로를 연결한 라케일은 자색 안광을 번뜩인 채로 공중에 부유하기 시작했다.
마신과의 연결을 통해 그가 가진 금단의 지식을 내려받으려는 것이었다.
“——영혼을 불태워 맺은 태초의 언약을 이행하였으니, 이는 끝맺음이요 새로운 시작이라.”
그렇게 라케일이 혼신의 힘을 다해 승격의식을 진행하고 있으면, 이내 은신처를 둘러싸고 있던 결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궁-.
수겹의 결계를 엮어 만들어낸 은신처의 방어결계가 진동하며 굉음이 울려퍼졌다.
외부에서 누군가 강한 힘으로 결계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네번째 계단의 마법사가 한계까지 밀도를 높여 만들어낸 결계다.
그러나 밖에서 전해져오는 충격은 그러한 결계마저 뒤흔들만한 위력이었다.
라케일은 결계의 흔들림에도 시선을 팔지 않고 의식을 계속해나갔다.
“——위대한 어둠이여, 승인하라.”
“외부의 침입입니다! 성기사들이 결계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성 알칸디오다! 헤리오바르의 미친 성기사가 왔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서 외부를 감시하던 흑마법사들이 제단이 있는 방향으로 뛰어들어왔다.
성 알칸디오.
대삼림을 수색하던 성인이 은신처의 존재를 확인하고 침입을 시도한 것이다.
시성받은 성인이 내리치는 검격은 어둠의 결계를 갉아먹으며 뒤흔들고 있었다.
일개 성기사와는 격이 다른 존재였다.
네번째 계단의 흑마법사가 만든 결계라고 해도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업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을 허락하라.”
의식을 진행하던 라케일이 식은땀을 흘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의식이 진행되고 마신과의 연결이 강화됨에 따라 강한 부하를 느끼게 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제단을 보호하던 결계까지 무너지고 있으니, 라케일로서는 심히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지치기 시작한 라케일이 간신히 의식을 붙들어놓으면, 머지않아 은신처의 결계가 완전히 깨져나갔다.
째앵-!
귀가 멍해질만큼 커다란 파열음과 함께 강한 신성력이 뻗어나왔다.
외부에서 결계를 내려치던 성 알칸디오가 드디어 결계를 파괴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슬슬 내가 나설때가 된 모양인걸.”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리엣이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의식을 방해하기 위해 은신처에 찾아온 성인.
그를 막아내고 의식을 보호하는 것이 아리엣의 역할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리엣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소란이 벌어진 방향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사뿐히 길을 걸어가는 그녀의 오른손에는 백은이 들려있는 모습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온 성인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확인해볼까?”
백은을 들어올린 아리엣은 그것을 가볍게 움직였다.
마치 지휘자가 악단을 지휘하듯이, 아리엣의 손에 들려있는 백은은 기품있게 움직이며 선을 그려나가는 모습이었다.
허공에 백은을 휘두른 아리엣의 주변으로 방대한 마력이 뻗어나갔다.
아리엣의 마력은 공간을 뒤덮고 거기에 자신만의 색을 덧칠해나가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에 맞추어 덮어나가는 아리엣의 고유마법체계.
거대한 환영의 세계가 현실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미궁에 온걸 환영해. 불청객들.”
아리엣 크레이들.
환영의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공상유랑자의 머리에 검은 왕관이 자리잡았다.
밤의 일족이며 몰락한 제국의 일곱 공작.
모든 것이 일그러져있는 거짓된 세계에서 그녀는 유일한 군림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