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29
30.천리안의 관측자 (3)
유령과의 짧은 대화를 끝마친 이후.
나는 이오와 함께 알레테이아에서 시간을 보냈다.
듣자하니 아리엣은 방에서 자고 있는 중이었고, 뒤늦게 들어온 캐릭터 하나는 임무를 위해 밖으로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모양이었다.
임무에 나섰다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레온인 것 같았다.
새로운 캐릭터가 나오면 꿈속에서도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어느덧 레온 역시 내 꿈속세계의 일원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결국은 나와 이오 둘이서 알레테이아를 돌아다니게 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첫번째 코스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것이 되었다.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었군.”
오랜만에 찾은 알레테이아의 식당을 둘러보면, 메뉴판에는 이전과 다른 메뉴들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제육덮밥이나 국밥같이 기존에는 없던 메뉴들이 대거 등장한 것이다.
친숙한 메뉴가 새롭게 추가되자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시선이 향하는 것을 느꼈다.
꿈속에서 먹어보는 국밥의 맛.
솔직히 어떤 맛인지 궁금한 기분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주문하는 곳’에 서있는 곰돌이에게 다가가, 신메뉴인 국밥을 주문해보았다.
“국밥을 준비해라.”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아니, 단장은 국밥먹으면——.”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하지만 단장필터에 막혀 국밥에 대한 이야기를 한마디도 꺼내놓을 수 없었다.
꿈속의 단장필터가 국밥이 포함된 단어를 일체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에 당황해 곰돌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국밥을 포기했다.
주문이 안되는 음식을 억지로 주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밥을 포기한 나는 그 옆에 있던 제육덮밥으로 타겟을 바꾸었다.
“제육덮——.”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아니, 제육——.”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제육덮밥이 대체 왜 안되는——.”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아무거나 내오도록.”
단장필터에 일체의 자비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대신 곰돌이를 향해 특별한 음식을 주문했다.
한국에서 가장 잘팔린다는 음식, ‘아무거나’를 주문한 것이다.
내 주문을 받은 곰돌이는 머리에 모자를 쓰며 이야기했다.
– “2분만 기다리셈.”
“2분······?”
– “내 요리는 이전보다 한단계 진화했음.”
이전보다 한단계 진화한 곰돌이라서 그런 것일까.
조리시간이 3분에서 2분으로 줄어들었다.
기존과는 다르게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려 33%나 줄어든 셈이었다.
나는 그 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곰돌이의 대답에 맥없이 수긍하고서는, 근처에 있던 식당의 테이블을 골라 자리를 잡았다.
곰돌이에게 요리를 주문하던 이오 역시 금세 주문을 끝마치고 내 앞에 자리잡았다.
그렇게 내가 테이블에 앉아 이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표정을 살펴보던 이오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왔다.
“단장.”
“듣고 있다.”
“아까 전에 찾아왔다는 사람은 누구야?”
이오는 내가 만났던 유령에 대해 묻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유령의 정체를 묻는다고 해도, 애석하게도 나는 이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조차 유령의 정체를 모르는 까닭이었다.
뭔가 긴 이름을 듣기는 했는데, 제대로 기억조차 나지 않는 상황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오를 향해 적당히 둘러대는 수밖에 없었다.
“모른다.”
“······.”
“이름을 외울 가치조차 없는 녀석이더군.”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이오의 반응을 살펴보면, 이오는 왠지 모르게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내 대답의 어디가 기쁜 것인가.
기뻐하는 이오의 반응을 보며 아무리 고민해보아도, 명확하게 대답이 나오는 일은 없었다.
대신 나를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이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게 전부였다.
“그래서 그날은 아리엣이 그렇게 이야기한거야.”
“흥미롭군.”
“그때 서포터가 나와서 아리엣에게······.”
그렇게 이오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한지 2분정도 지났을 즈음.
나는 곰돌이가 가져온 나와 이오의 음식을 마주할 수 있었다.
2분만에 두가지 음식을 모두 만들어낸 곰돌이가 음식을 서빙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다.
“고마워, 서포터.”
이오는 곰돌이가 가져온 음식을 보며 그에게 감사인사를 표했다.
이오가 주문한 음식은 새하얀 까르보나라였다.
그리고 그에 반해 내가 주문한 ‘아무거나’의 경우에는, 시뻘건 국물이 있는 정체불명의 음식이었다.
가만히 봐서는 무슨 음식인지 짐작조차도 가지 않았다.
나는 곰돌이가 가져온 음식을 한스푼 떠서 입에 넣어보다가, 이내 무언가를 느끼고 조용히 숟가락을 아래에 내려놓았다.
혓바닥에서 뜨거운 맛이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단장, 그거 맛있어?”
“······.”
“단장?”
“이건 먹지말도록.”
나는 이오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녀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음식이 지나치게 매운 까닭이었다.
고작 한입을 넣었음에도 속이 뒤집히며 천불이 올라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편이었다.
“단장, 괜찮아? 왜 주먹을 세게 쥐고······.”
“······아무것도 아니다.”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이 금지됩니다.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이 금지됩니다.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이 금지됩니다.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이 금지됩니다.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행동이 금지됩니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편이었다.
* * * * * *
식당에서 식사를 끝마친 이후에는 이오와 함께 창고를 구경하거나, 이오의 방에 찾아가 그녀의 방을 구경하거나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이오를 처음 만났을때와 비슷한 양상으로 일정이 흘러간 것이다.
물론 지난번과 비슷한 꿈이라고 해도, 이오와 보내는 시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오는 알레테이아의 꿈이 시작될때부터 나와 함께하던 캐릭터였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 슬슬 시간이 다 되었다고 느꼈을 즈음.
나는 꿈에서 깨어있는 자신의 상태를 자각할 수 있었다.
“······아침이네.”
짹짹-.
창밖에서부터 들어오는 햇살과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는 방의 풍경.
다크게이머가 된 이후로 매일같이 마주하던 광경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근처에 있던 스마트폰을 주워들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을 켜서 시간을 확인해보면 현재 시각은 8시 42분.
직장에 다니던 시절에는 지각이라는 사실에 경악했을 시간이었다.
“참··· 프리랜서가 좋긴 좋아.”
나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계형 다크 쌀먹 게이머가 프리랜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늦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프리랜서의 특권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키면, 어느새 지문이 닿아 잠금이 해제된 스마트폰의 화면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스마트폰의 바탕화면에 저장되어있는 게임의 아이콘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오와 아리엣, 그리고 레온이 기다리고 있을 알레테이아의 세계로 나를 안내해줄 아이콘.
잠시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내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이는 직감이 스쳐지나갔다.
“흠.”
누구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 지르면 뜬다.
명확한 이유도 없고 단순한 직감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들어맞을때가 찾아오고는 하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지금이 그런 순간이었다.
지금 아이템 뽑기를 돌리면 EX급의 아이템이 나올 것 같다.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었다.
“오늘은 아이템부터 뽑을까.”
침대에 앉아서 고민하던 나는 이내 알레테이아의 아이콘을 터치해 게임에 접속했다.
평소와 같은 로딩화면이 나오며 알레테이아로 이동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게임속의 시스템 메세지는 오늘도 나를 [단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러주고 있었다.
잘못 지정된 닉네임은 여전히 바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게임에 접속해 알레테이아의 로비에 들어온 나는, 곧장 인벤토리를 열어 [랜덤 아이템 박스]의 개수를 확인해보았다.
– [랜덤 아이템 박스] x 53
현재 내 인벤토리에는 [랜덤 아이템 박스]가 53개나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굳이 새로운 상자를 구매하러갈 필요는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뽑기를 돌리면 무언가 나올 것 같은 감각에, 나는 망설임없이 [랜덤 아이템 박스]를 사용했다.
번쩍!
아이템을 사용하자 화면이 번쩍이며 새로운 아이템이 화면에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메세지 역시 화면의 하단에 함께 출력되었다.
– 아이템 박스에서 [장비 : 얼음장미(EX)]가 나왔습니다.
[랜덤 아이템 상자]를 개봉하기 무섭게 상자에서 EX랭크의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오늘만큼은 내 감이 기가막히게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새로 나온 EX랭크 아이템은 얼음을 조각해 만들어낸 꽃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어딘가에 착용하는 장신구처럼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해당 아이템을 터치해 아이템의 상세설명을 확인해보았다.
– 얼음속성 마법의 지속시간이 2배 증가합니다.
– 얼음속성 마법의 위력이 2배 증가합니다.
– 얼음속성 마법의 마력소모가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이번에 뽑기에서 뽑은 아이템의 이름은 [얼음장미(EX)].
얼음속성 마법을 강화하는 종류의 장비아이템이었다.
[얼음장미(EX)]의 효과는 강력한 편이었다.얼음속성 마법의 지속시간이 2배 증가하며, 위력 역시 2배 증가하고, 마력의 소모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사실상 얼음속성 마법의 효율이 8배 가까이 증가하는 셈이었다.
해당 장비아이템이 가지고 있는 파격적인 옵션을 볼때, 아무래도 무기 카테고리에 속하는 장비가 아닌가 싶은 모습이었다.
“이러면 슬슬 얼음속성 마법사도 필요하려나.”
새롭게 나온 EX랭크의 아이템을 바라보던 내 머릿속에 이전에 뽑은 장비아이템이 떠올랐다.
장신구의 형상을 하고 있던 해당 아이템 역시 얼음속성의 마법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이 두가지 아이템을 온전히 사용하기 위해서는 얼음속성에 특화되어있는 마법사가 필요할 터.
다시 말해 지금 당장은 해당 아이템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나는 새로 나온 장비아이템을 바라보다가, 이내 스마트폰을 들고 컴퓨터의 앞으로 향했다.
“뭐, 12레벨 되면 마법사 하나쯤은 뽑을 수 있겠지.”
툭-.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서 자리에 앉은 나는 턱을 괴고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내가 EX랭크 캐릭터를 뽑는데 소모하는 것은 시간밖에 없었다.
때가 되면 EX랭크의 마법사를 뽑을만한 가능성도 찾아올 터.
아직 찾아오지 않은 미래에 벌써부터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 * * * *
제국과 자유도시연합의 경계에 위치한 백색마탑.
얼음속성의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백색마탑의 지하에는 귀중한 아티팩트를 보관하는 보물고가 존재하고 있다.
그곳에는 백색마탑에서 만들어진 아티팩트부터, 외부에서 들여온 고대의 유물까지 수많은 물건들이 보관되어있었다.
사실상 백색마탑의 가장 귀중한 재산들이 놓여있는 장소인 셈이었다.
그리고 그런 보물고의 한켠에는, 새로 찾아올 보물을 위한 공간 역시 마련되어있었다.
바로 백색마탑에서 심혈을 들여 완성한 아티팩트, ‘얼음장미’를 들여놓기 위한 장소였다.
“다들 철저히 주변을 경계하게. 보물고까지 이동하는 동안 얼음장미에 문제라도 생겼다간, 우리들 모두 무사하지 못할테니까 말일세.”
백색마탑의 장로, 빙경(氷景)의 현자 로덴은 자신을 뒤따르는 마법사들을 바라보며 주의를 당부했다.
마탑의 보물고는 원래 그 누구도 오갈 수 없게 차폐되어있는 공간이었다.
외부에서의 침입이나 전이를 방지하기 위해 마법을 통해 공간을 격리해놓은 것이다.
허나 그런 보물고의 보안이 단 한차례 약해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보물고에 새로운 물건이 들어갈 때였다.
그렇기에 백색마탑의 마법사들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물건을 옮기는 중이었다.
“걱정마십시오, 장로님. 네번째 계단의 마법사 둘이 뒤따르고 있지 않습니까.”
“백색마탑의 보물고는 우리 마탑 최대의 자산일세. 아무리 네번째 계단의 마법사라고 하여도 문제를 일으켰다간 중징계를 받는 곳이란 말일세.”
“명심하고 있습니다, 장로님.”
“어떠한 문제도 생겨서는 안됨을 머릿속에 새겨두게나.”
로덴은 그렇게 말하면서, 결계가 씌워진 채로 운반중이던 ‘얼음장미’를 바라보았다.
해당 아티팩트는 백색마탑에서 5년이라는 시간과 막대한 촉매제를 들여 연성해낸 물건이었다.
얼음속성의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에게 있어서는 이만큼이나 도움이 되는 물건도 드물었다.
이만한 물건이 밖으로 반출될만한 상황은 중요한 실험이나 외부와의 무력충돌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지간한 일로는 밖으로 내보내는 것조차 금지해야하는 물건인 셈이었다.
그런 귀중한 물건이기에 장로인 로덴이 직접 책임을 지고 운반하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백색마탑 내부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적겠지만··· 그래도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마법사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운반행렬에 앞장서는 로덴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로 경계하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로덴이 굳게 닫혀있던 보물고의 문앞에 서면, 사전에 진행된 절차에 따라 보물고의 결계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위이이이잉-.
결계와 함께 문이 열리며 드러난 너머에는 각종 보호마법이 설치되어있는 보물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결계 너머로 보이는 보물고에는 그들이 평생을 벌어도 구매하지 못할만한 귀중한 마법무구들로 가득차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보물고의 한구석에는, 아직 아무것도 올려져있지 않은 빈 진열대가 존재하고 있었다.
얼음장미를 보관하기 위해 사전에 만들어두었던 공간이었다.
저곳에 얼음장미를 올려놓고서 보호마법을 기동시키면 그것으로 그들의 임무는 끝이었다.
“저곳에 얼음장미를 올려놓도록.”
“예, 장로님.”
로덴에게 명령을 받은 마법사들은 운반중이던 얼음장미를 비어있던 진열대의 위에 올려놓았다.
얼음장미가 진열대의 위에 올라가자, 사전에 걸어두었던 결계마법이 사라지며 얼음장미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보호를 위한 보호마법을 설치하기에 앞서, 조건을 충족한 결계가 소멸한 것이었다.
로덴은 그런 얼음장미를 바라보며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얼음장미는 그것이 놓여있어야 하는 장소에 완벽히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로덴이 얼음장미에 보호마법을 걸어 저것을 완벽하게 보존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다들 물러서도록. 보호마법을 기동시키겠네.”
“모두 뒤로 물러서십시오!”
얼음장미의 근처에 있던 마법사들이 물러서면, 로덴이 들고 있던 지팡이가 빛을 발했다.
진열대에 새겨져있던 마법진 역시 로덴의 마력에 반응해 작동하기 시작했다.
백색마탑의 정수이자 외부로부터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하는 보호마법.
그것이 로덴의 손에서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로덴이 보호마법을 기동하려고 시도하면, 갑작스럽게 얼음장미의 뒷편에서 공간이 벌어졌다.
쩌적, 쩌저적-.
보물고의 벽면에 주먹만한 크기의 공간이 열리며 그 너머로 짙은 어둠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
– “······.”
눈앞에 보이는 균열의 모습에 당황한 로덴이 굳어있던 찰나.
갑작스럽게 얼음장미가 균열의 너머로 모습을 감추며 사라졌다.
균열 너머로 사라진 얼음장미의 모습에 마탑의 마법사들은 제대로 된 반응조차도 하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1초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지이이이잉-.
로덴을 포함한 마법사들이 멍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열려있던 균열마저도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로덴이 기동시킨 보호마법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보호하는 모습이었다.
현장에 있던 마법사들은 헛것을 마주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
“······?”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마법사들의 시선은 서로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렇게 마탑의 마법사들이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털썩.
이내 정신을 차린 로덴이 머리를 붙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음장미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는 로덴의 눈은 거칠게 떨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 아니, 얼음장미가······!”
백색마탑의 보물고가 건설된 이래.
마탑의 장로인 그가 최초로 외부에 아티팩트를 도둑맞은 것이었다.
그것도 성채를 팔아도 사지 못할만한 엄청난 아티팩트를 말이다.
주저앉은 로덴의 입에서는 짙은 절규가 섞인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수년을 바친 연구의 결과물이 하루만에 사라진 것에 대한 비탄의 음성이었다.
눈이 뒤집힌 로덴의 목소리가 보물고 내부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아아아아아악! 어, 얼음장미가······! 5년간의 노력이······!”
그로부터 하루 뒤.
빙경의 현자 로덴은 백색마탑의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