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45
46.운명개화 (3)
성도, 오르스케이프로 향하는 가도의 위.
가도의 한가운데에 서서 대기하던 칠흑기사단의 첫번째 기사, 이오의 시선이 눈앞의 마차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마주하고 있는 마차에서는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마차에 보관되어있는 화물과, 그런 마차를 호위하고 있는 사람들.
어느쪽이든 상당한 기운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파스스슷-.
마차를 마주한 이오의 손이 허공에 그림자의 검을 빚어내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마차를 바라보던 이오는 그림자의 검을 쥔 채로 자세를 잡았다.
“레온. 뒷쪽에 있는 적들을 처리해줘.”
“······그러지, 뭐.”
자신을 향한 지시에 답한 레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크롤을 찢었다.
찌익.
찢어진 스크롤이 빛이 되어 흩날리며, 레온의 전신을 반짝이는 빛무리가 한차례 휘감았다.
스릉-.
레온의 허리춤에 매여있던 ‘분열하는 아성’ 역시 날렵한 소리를 내며 뽑혀나왔다.
이번에 단장이 그들에게 내린 임무는 신성교단에서 운반중이던 화물의 회수.
제정신이 박힌 이들이라면 신성교단의 물건에 손을 대지는 않겠지만, 속내를 모를 단장의 명령이기에 그러려니 하는 단원들이었다.
“이오. 슬슬 적들이 온다.”
“응.”
검을 들어 자세를 잡은 이오의 주위로 그림자가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에 맞닿은 마차에서 파악된 적의 숫자는 도합 열명.
그중 여섯은 그럭저럭 훈련된 이들이었지만, 나머지 네 사람은 그 기세부터가 남다른 편이었다.
누구를 경계해야할지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속도를 줄이며 다가오는 마차를 확인한 이오는 쥐고 있던 검을 내질렀다.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뻗어나가는 검격.
그 직후 이오의 그림자가 열갈래로 갈라지며 정면을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촤아아아악-!
분열하는 그림자가 열명의 적에게 동시에 검을 밀어넣으며, 마차를 호위하던 이들 중 다섯이 이오의 검에 꿰뚫렸다.
“크아악······!”
“커헉! 쿨럭, 쿨럭······.”
“적습이다! 다들 조심하도록!”
카앙-! 캉! 캉! 캉!
사절단 중에서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흘리던 이들은 하나같이 이오의 선공을 막아서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몸에서는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성인(聖人).
신성교단의 교황으로부터 시성받아 신의 축복을 검증받은 이들이었다.
“그림자를 다루는걸 보니 당신이 칠흑기사단의 제1석, 이오 크로우라이트라는 기사인 모양이네요?”
이오의 검격을 막아선 성인들 중 하나, 성 아스티야가 이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성 아스티야의 눈동자는 황금빛 광채를 내보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이었다.
눈앞의 적이 아닌 다른 곳을 파악하고 있는 듯한 시선.
상대의 반응을 확인한 이오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검을 지면에 내려찍었다.
이오에게서 뻗어난 그림자가 다음 동작을 이어나가며, 이내 지면을 타고 검은 마력이 선명한 실선을 그었다.
콰과과과광—!
검끝에서부터 뻗어나간 그림자의 참격은 마차를 끌던 말과 함께 마부를 베어버리는 모습이었다.
“커허억······!”
쿵. 그림자의 참격에 베여져나간 말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주변에 있던 성인들조차 마부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을 취하지 못했을만큼, 재빠르면서도 날카로운 공격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말을 잃어버린 성인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말이 죽어버린 이상 화물을 운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시선을 주고받는 모습이었다.
“성 아르티오! 말을 몰던 사제와 말이 죽었습니다!”
“신성주문으로 치료는 불가능해보이나?”
“즉사했습니다! 이런 상처는 치료가 불가능해요!”
“일단은 진형을 유지해라! 물건을 지키는게 먼저······!”
말을 잃은 사절단은 이오를 경계하면서도 계속해서 화물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을 취해나갔다.
그렇게 사절단의 성인들이 화물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던 도중.
지면을 밟고 있던 이오의 한쪽 발이 그림자속으로 깊숙히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이오의 몸이 뒤집히며 그림자의 실루엣이 남아있던 자리에서 솟아올랐다.
그림자의 검을 들어올린 이오의 모습에 정면에 있던 성인이 당황하며 신성주문을 읊으려던 순간.
이오의 검이 성인을 향해 파고들었다.
카앙! 카가가가각-!
금속을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성인의 검이 이오의 검을 다급하게 막아내었다.
“어, 어느새 여기까지······! 빛이여, 위대한 의지로 나를 보호······!”
“—팔중섬격.”
성인과 이오의 시선이 허공에서 서로 마주했다.
얽혀나가는 검.
교착상태에 도달한 두 검의 팽팽한 압력속에서, 이오의 주변에 여덟갈래의 그림자가 피어올랐다.
제국의 붉은까마귀, 알데어 크로우라이트가 애용하던 그림자를 이용한 일제타격.
주변의 모든 각도를 점유하는 검격들이 쏟아져나오며, 피할 공간을 잃어버린 성인의 몸이 순식간에 난도질당했다.
촤악! 촤아악-! 콰드득-!
섬뜩한 소리가 연달아 울려퍼지며 검에 베인 성인이 비명을 터뜨렸다.
“끄아악··· 아아아아악······!”
여덟 갈래의 검이 동시에 쏟아부은 참격.
날카로운 검에 베여 피를 쏟아낸 성인이 빛을 발하며 자리에 무너져내렸다.
터져나오는 섬광속에서 이오는 이상현상을 발견했다.
이오의 검격에 당한 성인의 몸이 흐릿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변 공간을 진동시키며 막대한 신성력이 퍼져나오는 모습에, 이오는 그것을 경계하며 검을 찔러넣었다.
푸욱-!
허나 이오의 검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빈자리를 파고들 뿐이었다.
“······없어졌어.”
빈사상태에 몰린 성인의 몸이 갑자기 자리에서 사라진 것이다.
휘릭-.
다시 검을 되돌린 이오의 귓가에 다른 성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성 아르티오! ‘긴급귀환’ 신성주문입니다! 사도 에드거스께서 사전에 손을 써두신 것이 이제서야 발동한 모양입니다!”
“적들을 경계하라! 결코 이 물건을 칠흑기사단에게 넘겨서는 안된다!”
그렇게 말하는 성 아르티오의 바로 앞에서는, 검은 불꽃을 휘감은 레온이 달려드는 모습이었다.
카앙!
두 사람의 검이 충돌하며 사방에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검은 불꽃과 뒤엉키는 신성한 광채속에서, 이오는 눈앞의 성인들에 대한 한가지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방금 전에 죽은 성기사들과는 다르게, 이 자리에 있는 성인들에게는 특별한 조치가 취해져있는 모양이었다.
죽음의 위기에 해당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경우, 곧바로 안전한 곳에 육체를 대피시키는 것이다.
아마도 귀환과 동시에 긴급하게 치료를 진행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오가 해야할 일도 명확하게 정해져있었다.
성인들이 이곳에서 대피하더라도 회복하지 못하도록 일격에 적을 죽여야만 했다.
“성 아스티야! 당신이 저 여자를 맡도록!”
“아무래도 그래야겠네요. 성 아르티오,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지금 누구한테 그런 말을 하는거냐!”
전투에 나선 성인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졌다.
그들을 보던 이오는 다시 한 번 그림자를 강하게 밟았다.
그림자에 잠겨있던 이오의 몸이 사라지면서, 화물을 등지고 있던 다른 성인의 바로 앞에서 솟아올랐다.
마력을 통해 묶어놓은 그림자를 타고 이동하는 크로우라이트의 그림자 이동이었다.
성인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오의 검은 곧바로 성인의 목을 노렸다.
“빌어먹을 이단자 녀석! 내가 누구인줄 아느냐!”
“······?”
“—빛이여! 당신의 적을 베어넘길 힘을 나에게 내려주소서.”
카앙-! 캉! 캉! 캉!
목을 노리는 이오의 그림자 검과, 그를 막아서는 성인의 검이 허공에서 충돌했다.
신성주문을 사용한 성인의 검은 밝은 광채를 흩뿌리며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허나 그런 성인이 앞에 두고 있는 것은, 그 재능이 검의 끝자락을 겨누고 있는 기재였다.
천부적인 검술을 타고났으며, 거기에 자신의 격을 한단계 뛰어넘기까지한 불세출의 천재.
이오의 검이 검격의 흐름을 읽어내며 그 틈새를 강제로 비집고 들어갔다.
투웅-.
성인의 검을 옆으로 밀어낸 이오의 그림자가 크기를 키워나가며, 상대의 머리를 노리고 매섭게 쇄도하려던 순간.
“자, 여기까지.”
이오는 누군가의 기색을 느끼고 황급히 몸을 뒤로 빼내었다.
카가가가가각-!
뒤로 물러서며 휘두른 이오의 검을 막아선 것은, 황금빛의 광채를 눈에 담고 있는 소녀였다.
성 아스티야.
오르스케이프에서도 유명한 검의 천재가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나선 것이다.
그녀가 뽑아든 보검은 은은한 광채를 내뿜으며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당신도 검을 제법 잘 다루는 모양이네요. 저도 성도에서 검으로 져본 적은 한번밖에 없거든요.”
“당신··· 이름은?”
“아스티야. 원탁의 스물 일곱번째 자리를 부여받은 성인이랍니다.”
이오는 자신의 검을 멈춰세운 성 아스티야의 검을 응시했다.
상대의 검은 이오의 그림자를 아슬아슬하게 밀어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미묘한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이오 역시도 검을 다루는 일에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이오는 물러났던 걸음을 앞으로 내딛으며, 그림자의 검을 빠르게 휘둘렀다.
“검술이 제법 날카로운걸요?”
이오가 휘두르는 그림자의 검이 성 아스티야의 검과 충돌하려던 찰나.
스슥-.
그림자가 한순간 흐릿해지더니, 이내 신성력으로 가득찬 보검을 관통하며 움직였다.
물리적인 실체를 가지지 않는 그림자를 활용한 기예였다.
가드를 돌파한 이오의 검이 성 아스티야의 목을 노리며 휘둘러지면, 그녀는 이오의 검이 움직이는 궤도를 피해 몸을 숙이는 모습이었다.
휘익-.
자세를 낮춘 성 아스티야의 보검은 매끄럽게 방향을 전환하더니, 이오의 다리를 노리며 빠르게 하단으로 쇄도했다.
이오는 빗나간 자신의 공격에 입술을 깨물며 뒤로 몇발자국 물러섰다.
절대로 빗나가지 않을 것 같았던 공격이 목표를 베지 못한 까닭이었다.
“······어떻게 피한거야?”
“저는 눈이 조금 좋거든요.”
“눈?”
방금 전의 공격은 눈이 좋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이오의 시선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는 성 아스티야의 눈동자로 향했다.
눈앞에 있는 성인의 눈은 결코 이오를 바라보는 법이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성 아스티야는 이오의 공격을 어렵지않게 피해내는 모습이었다.
이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 아스티야를 향해 검을 휘둘러보았다.
캉! 카앙-!
수차례 허공에서 검이 부딪히면서, 신성력과 마력이 충돌하는 파동이 퍼져나갔다.
이오의 검격이 변칙적인 궤적을 그리며 끊임없이 움직였지만, 성 아스티야는 그러한 공격마저도 막아내는 모습이었다.
마치 이오의 움직임을 사전에 읽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검술이 능숙해.’
그런 성 아스티야의 유려한 움직임은,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오의 검을 막아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틈을 노리고 반격을 감행해온 것이다.
카앙!
정확한 타이밍을 알지 못하면 보일 수 없는 위협적인 공격이 성 아스티야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검을 감싸고 있는 신성주문의 위력은 다른 성인들에 비해 미약한 편이지만, 그럼에도 천부적인 검술 실력이 그 단점을 상쇄하고 있었다.
정면의 적을 보지 않음에도 정확하게 공격의 흐름을 끊는 검술.
성 아스티야의 황금빛 눈동자가 이질적인 무언가를 보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림자를 밟고 움직이는거, 상당히 성가신 능력이었네요. 검으로 우위를 점하는 상황인데도 이렇게까지 공격을 맞추는게 어려울줄은 몰랐거든요.”
“······!”
“이래서 사도님이 더 많은 경험을 해야한다고 했던걸까요.”
카가가각!
이오의 검이 좌측에서 뻗어오는 성 아스티야의 검격을 막아내었다.
직접 검을 나누며 가늠한 성 아스티야의 실력은 최소한 이오와 동격이었다.
다만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인지, 이상하리만치 반응이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카앙! 캉!
계속해서 성 아스티야와 검을 섞던 이오는 한가지 가정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계속해서 검의 궤적이 미리 보이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어. 설마 저 눈이 보고있는게······.’
콰악.
한쪽 발로 그림자를 강하게 밟은 이오가 그림자를 다시 세워올렸다.
이오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가능성을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이전보다 매서워진 이오의 기세에 성 아스티야 역시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황금빛 눈동자가 주변의 모습을 한차례 훑어보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직후.
이오의 주변에서 여덟개의 그림자가 솟아오르며 검을 휘둘렀다.
성인 하나를 순식간에 난도질했던 그림자의 연격이었다.
“—팔중섬격.”
카앙-! 캉! 캉! 캉! 캉!
성 아스티야의 검이 빠르게 움직이며 그림자의 검들을 순차적으로 막아내었다.
막아내지 못한 검격의 경우에는 몸을 기울여 피해내는 모습이었다.
그림자가 나타나는 정확한 방향과 타이밍을 알고서 방어하는 듯한 움직임.
그런 성 아스티야의 모습을 보며 이오는 강하게 확신했다.
“······미래를 볼 수 있는거구나.”
“벌써 그걸 알아챈건가요? 대단하네요.”
“미리 궤적을 확인하고서 내 공격을 피하고 있는거야?”
“맞아요. 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걸 볼 수 있거든요.”
성 아스티야는 그렇게 말하며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는 이오와 생사를 다투는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주변에서 레온의 불꽃을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 다른 성인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딘가 머리가 이상한 것이 분명했다.
이오는 성 아스티야에 대해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다만, 이오가 생각하기에도 그녀의 실력만큼은 진짜였다.
미래를 보는 눈. 그리고 머릿속의 생각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는 검술실력.
그것들이 합쳐져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알데어라면 이런 상대도 쉽게 쓰러뜨렸을거야.’
상대는 막아내거나 피하는 것에 도가 튼 검객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오가 그녀를 잡을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동안 이오는 알데어에게 그림자에 대해 배우면서, 그가 가진 사상과 무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생각으로 전투에 임하는지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알데어가 걸어온 길은 압도적인 힘에 의존한 패도(霸道)였다.
역경을 만나면 제 손으로 그것을 부수고,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개척해나간다.
그것이 알데어 크로우라이트가 살아온 길이었다.
“후······.”
한차례 심호흡을 한 이오의 눈이 황금빛의 광채를 마주보았다.
알데어는 일찍이 이오에게 이야기했다.
힘을 다스리는 것은 기술이라고.
그러나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모든 기술이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다는 말 역시 덧붙였다.
검술은 이오가 가진 기술이었다.
그리고 그림자는 이오가 가진 힘이었다.
알데어는 이오에게 기술에 대해 가르치면서도, 그 너머의 힘에 도달하는 법에 대해서도 전해주었다.
이오가 그림자를 다루며 배운 것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그러한 압도적인 힘에 대한 것이었다.
“그림자가 갑자기··· 자, 잠깐만······.”
마력을 끌어올리는 이오를 바라보던 성 아스티야가 당황하며 뒤로 몇발자국 물러섰다.
허나 이오는 그녀를 따라 앞으로 한걸음을 더 내딛었다.
검을 휘두르면 막아낸다.
막을 수 없는 궤적을 마주하면 피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답은 간단했다.
피하지도 막지도 못할 일격을 휘두르면 그만이었다.
그것이 일찍이 제국의 공포로 여겨졌던 알데어와, 그에게 사사받은 하나뿐인 제자 이오가 내린 결론이었다.
“—비, 빛이여! 어, 신성한 힘으로··· 아, 아니, 이게 아닌데······?”
미래를 보는 성 아스티야가 당황하는 사이.
이오의 주변을 휘감고 있던 그림자가 폭발적으로 뻗어나갔다.
거대한 마력의 파도와 함께 주변의 모든 풍경이 색채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빛과 어둠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흑백의 세계.
잿빛으로 물들어버린 세계속에서 이오의 검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공간을 장악한 그림자의 영역속에서 이오의 머릿속에 알데어의 말이 스쳐지나갔다.
‘무릇 그림자란 스스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
그림자는 현실을 비추는 하나의 상이다.
그리고 알데어 크로우라이트가 만들어낸 ‘파계’는 그러한 상을 무너뜨려 실체에 타격을 가하는 기술이었다.
새하얀 백지를 가로지르는 먹물과도 같이, 그림자를 흩뿌리는 이오의 검이 허공에 어둠을 그려나갔다.
흑백으로 가득찬 세계를 베어나가듯, 이오가 쥐고 있는 그림자의 검이 색채를 잃어버린 풍경을 양단했다.
콰앙-!
공기를 찢어발기며 움직인 참격이 파공성을 터트리며 바닥에 내려앉은 직후.
공간 전체가 진동하며 사방에 굉음이 퍼져나갔다.
“—파계.”
콰과과과과광—!
공간의 틈새에 괴리가 일어나며 사방의 모든 것들이 뒤흔들렸다.
터져나오는 빛과 소리가 일그러지고, 바닥이 갈라지며 균열이 뻗어나갔다.
그림자의 영역 아래에 놓여있던 모든 공간을 가로지르는 일격.
그 여파는 사방의 모든 것들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콰직!
마차가 부서지고 나무가 부러졌으며, 이오의 공격에 휘말린 성인들이 내장이 짓눌린 채 피를 토했다.
“커허억!”
“아아아아아악······!”
제대로 된 방어에 실패한 그들의 몸은 빛에 휩싸여 전송되는 모습이었다.
생명의 위기에 처한 성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버틴 것은, 검을 휘둘러 최대한 충격을 상쇄했던 성 아스티야 뿐이었다.
그녀가 파계의 여파를 막아내지 않았더라면 이 자리에서 전원이 즉사했을 것이다.
허나 이오의 파계를 버텨낸 성 아스티야의 모습도 멀쩡하지만은 않았다.
“하아, 하······.”
털썩-.
머리가 헤집어지고 코피가 터져나온 성 아스티야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온힘을 다해 파계의 여파를 상쇄했던 탓에, 더 이상 서있을 힘조차 없는 것이다.
손에 쥐고 있던 성 아스티야의 보검 역시 바닥을 나뒹굴었다.
전신에 힘이 풀린 성 아스티야의 눈에서 황금빛이 사그라들었다.
치명상을 입은 정도는 아니었지만, 지금 당장 전투를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오. 이 여자는 어떻게 하지?”
“······.”
전신이 흑염에 불타는 성 아르티오를 전송시킨 레온은 불이 붙은 검을 들고서 성 아스티야를 향해 다가갔다.
이오 역시 숨을 고르며 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를 향해 다가가는 중이었다.
성 아스티야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전장에서 이탈한데다가, 파계에 맞은 채로 업화에 타오른 한명은 회복조차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성 아스티야 하나뿐이었다.
눈앞에 있는 성인만 정리하면 모든 임무가 끝나는 셈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홀로 자리에 남아있는 성 아스티야를 바라보던 이오가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던 순간.
지이이이잉-.
두 사람의 바로 앞에서 포탈이 열리며 서포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든 적이 전투불능이 되어 임무가 끝났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포탈을 열고 빠져나온 서포터는 곧장 성 아스티야를 향해 다가갔다.
“서포터? 이제 임무가 끝난거야?”
– “현 시간부로 임무는 종료되었음.”
“······그럼 이 사람은 어떻게 해?”
– “사악한 성인들은 감옥에 들어가야함.”
그렇게 말한 서포터가 주저앉아있던 성 아스티야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열려있는 포탈의 너머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었다.
총. 총. 총 .총.
성 아스티야를 머리 위로 들고 포탈 너머로 이동하는 서포터를 보던 이오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서포터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까닭이었다.
“사, 사, 살려주세요! 주님! 저 고문은 절대 못버텨요! 일주일에 한번씩은 꼭 예배에 참석할게요! 제가 잘못했······!”
이오의 옆에 있던 레온은 서포터에게 붙잡혀 감옥으로 이송되는 성 아스티야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자신감으로 가득차있던 방금 전의 모습과는 무척이나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끌려가는 성 아스티야의 마지막 발악에 이오는 성직자의 마지막치고 조금 추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성교단의 성인.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추앙받는 고위 성직자에 대한 이오의 인식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