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47
48.단장 (1)
– [드림 커넥터]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 [드림 커넥터]는 간헐적으로 단장의 꿈과 알레테이아를 연결하는 기능입니다.
– [드림 커넥터]가 활성화되는 빈도는 단장의 레벨에 따라 달라집니다.
– [드림 커넥터]에서는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 [드림 커넥터]에서는 일부 단어가 금칙어로 설정됩니다.
– [드림 커넥터]의 활성화중에는 상호간에 위해를 끼치는 행동이 전면금지됩니다.
* * * * * *
익숙한 꿈.
몇번이고 보아 눈에 익은 알레테이아의 정경이 나를 맞이했다.
아무도 없는 알레테이아의 로비.
혼란스러운 눈으로 조용히 주변을 훑어보고 있으면, 이내 누군가 내 어깨를 붙잡았다.
창백한 손가락을 뻗어 내 어깨를 붙잡은 것은 백은을 손에 쥐고 있는 아리엣이었다.
“오랜만이야, 단장. 이번에는 내가 먼저 발견했네?”
“······아리엣.”
아리엣은 그렇게 말하며 우쭐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모습이었다.
지난번에 내가 놀래켰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톡.
손가락으로 가볍게 어깨를 두드린 아리엣이 근처에 있던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무언가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태도였기에, 나 역시 그런 아리엣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지난번에 단장에게 임무를 받고 나서, 나도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
“고민이 필요한 일이었나?”
“단장이 왜 그만한 힘을 가지고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건지. 그리고 왜 막대한 재산을 투자해 기사단원들을 육성하고 있는 건지. 어느쪽이든 오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인건 틀림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아리엣의 태도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조차도 그녀가 말하는 부분들에 대한 자세한 이유를 모르는 까닭이었다.
내가 꿈속의 알레테이아에 다시 돌아오기를 원했던 이유도, 이곳에서 곰돌이와 기사단장실에 대해 조사해보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허나 나는 그러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태연함을 연기하며 아리엣을 향해 물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어땠지?”
“그 덕분에 이제는 조금이나마 단장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
“리어나이트에 나를 보냈던 것도 분명 그런 이유에서였겠지.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랬던거잖아?”
아리엣은 내가 그녀를 [전설 임무]에 파견한 것에 대해 대단한 이유를 찾아낸 모양이지만, 애석하게도 사실 특별한 이유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 해당 [전설 임무]가 흡혈귀의 나라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그녀를 파견했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리엣은 홀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모습이었다.
“그런 단장의 배려를 받아서, 나도 제법 고심해본 끝에 내린 결론이야. 앞으로도 계속 단장의 기사놀음에 어울려줄게.”
“······기사놀음?”
“아, 물론 이건 지금의 칠흑기사단에 대한 이야기야. 단장이 설계하고 있는 원대한 미래에는 분명 우리도 훌륭한 기사단이 되어있겠지.”
“내가 도대체 어떤 미래를 설계한거냐?”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아리엣은 내가 설계해놓은 기사단의 미래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주장하는 미래는 나와 하등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다.
왜냐하면, 이 기사단의 비전도 미래도 내 머릿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었다.
그저 임무가 나오는 족족 레벨이나 올릴 생각으로 터치하고 있을 뿐.
큰 그림이라고 부를만한 것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기사단의 미래를 깨우친 아리엣이 기사단에 대한 감상을 추가로 늘어놓았다.
“처음 기사단에 합류했을때는 제대로 된 보수도 없이 억지로 끌려왔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단장과 함께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 억지로 온거였냐?”
– 단장의 품위에 어긋나는 발언이 금지됩니다.
“단장과 함께 일하다보면 분명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 미래가 있을테니까. 다른 누구도 아닌 단장이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인거겠지.”
“······.”
“그러니까, 앞으로는 나도 단장을 위한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볼게.”
그렇게 말한 아리엣은 나를 향해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항상 남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아리엣이, 내 앞에서만큼은 웃으면서 기사단의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녀를 바라보는 내 머릿속에서는 의문으로 가득찬 물음표가 계속해서 생겨나는 중이었다.
억지로 데려온 기사단원.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급여체계.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단장.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임무.
비전과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기사단.
듣다보니 이보다 흉악한 블랙기업이 존재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 기사단에 어울리는 훌륭한 기사가 되기를 고대하지.”
그리고 나는 그런 블랙기업의 꼭대기에 있는 사장이었다.
그것도 단장 필터에 걸려 건방진 말투 이외에는 전혀 내뱉을 수 없는 사장말이다.
결국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리엣의 선언에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블랙기업에 뼈를 묻겠다는 인물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말을 꺼내도 단장이라면 그런 반응을 보일거라고 생각했어.”
“후회하고 있나?”
“아니. 이래야지 내가 아는 단장인걸.”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아리엣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언젠가 다가올 기사단의 미래.
지금은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아리엣이 칠흑기사단으로부터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앞으로도 나를 위한 기사가 되어주겠다는 아리엣의 약속.
나 역시 그런 기사단원들의 기대에 보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하지. 제2석.”
나는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 질문을 대신해, 눈앞의 아리엣을 향해 짧게 화답했다.
그것이 아리엣에게 있어서 충분한 대답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 * * * * *
아리엣과의 대화를 마친 이후.
다른 기사단원들을 찾아 움직이던 나는, 복도 끝자락에 위치해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서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벽면을 가득채우고 있는 매끄러운 쇠창살.
그 너머에서 안색이 파리해진 금발의 소녀 하나가 창살을 붙잡고 있던 것이다.
그녀는 창살 너머를 향해 파들파들 떨리는 손을 뻗으며 이야기했다.
“배··· 고··· 파아······.”
“······.”
“이, 이틀이나··· 굶었··· 어요······.”
철퍽-.
바닥에 주저앉으며 손을 뻗는 소녀의 눈은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창살 너머로 보이는 소녀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감옥에 갇혀있을만한 캐릭터는 하나.
얼마 전에 감옥에 들어왔다는 ‘성 아스티야’라는 캐릭터가 분명했다.
“먹을 것 좀··· 제··· 발······.”
그리고 눈앞에 있는 성 아스티야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이곳에 들어오고서 이틀가량을 굶었다는 모양이었다.
떨리는 손이 그 굶주림의 강도를 짐작하게 하는 모습이었다.
평소에 얼마나 잘먹고 다녔는지는 몰라도, 이틀간의 굶주림에 제대로 정신조차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창살앞에 선 내가 조용히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근처를 지나가던 곰돌이 역시 창살의 앞에서 멈추어섰다.
발걸음을 멈춘 곰돌이는 그 너머에 있는 성 아스티야를 바라보았다.
– “포기하셈.”
“바아아아압······.”
성 아스티야를 바라보는 곰돌이의 얼굴은 어째서인지 뿌듯해보이는 모습이었다.
미묘한 차이지만 그럼에도 표정에서 그러한 감정이 묻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몸부림치는 성 아스티야는 끊임없이 식사를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두 짐승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가벼운 테스트를 겸해 곰돌이를 향해 명령을 내렸다.
“······제육덮밥을 하나 가져다주도록.”
제육덮밥.
평소에는 품위 문제로 주문할 수 없었던 음식.
그것을 타인에게 가져다달라는 이야기에 대해서, 단장 필터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해보려는 생각이었다.
단장 필터의 한계를 확인해보는 일종의 테스트인 것이다.
– “단장의 지시에 따르겠음.”
내가 곰돌이를 향해 명령을 내린 직후.
곰돌이는 내 명령에 따라 식당으로 향하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제육덮밥을 못먹는건 나 혼자뿐이었던 모양이다.
* * * * * *
“당신이 칠흑기사단의 단장이었군요?”
우물우물-.
자신의 앞에 놓인 제육덮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한 성 아스티야가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어딘가의 귀족 아가씨같은 외견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도 제육덮밥은 입에 잘 맞았던 것일까.
성 아스티야는 허겁지겁 음식을 떠서 입에 넣는 중이었다.
나는 자세를 낮춰 그런 성 아스티야와 시선을 마주했다.
“음식은 입에 맞나?”
“상당히 맛있는 음식이네요. 저를 굶겨서 죽이려는줄로만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에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
“흐음··· 그나저나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젊어보이는 얼굴인걸요.”
계속해서 입에 제육덮밥을 집어넣던 성 아스티야가 내 외견에 대한 평가를 늘어놓았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젊어보이는 얼굴이라.
다른 기사단원들을 처음 만났을때도 그랬지만, 하나같이 내가 젊어서 의외라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다들 나를 만나기 전에는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노인이라도 튀어나올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니지. 그래서 실망했나?”
“아니요. 오히려 젊어서 놀랐어요. 배후에서 기사단을 움직이는 흑마법사가 있을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성 아스티야는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푼을 멈추지 않았다.
반응만 보아서는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은 굶은 듯한 모습이었다.
남아있는 제육덮밥이 모두 떨어지면 접시조차 핥아먹을 듯한 기세였으니까 말이다.
달그락. 달그락.
수저와 그릇이 맞닿는 소리가 반복해서 감옥 안에 울려퍼진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제육덮밥을 비운 성 아스티야는 그제서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 내용물은 분명 범상치 않겠죠. 이런 요새를 세우고 기사단을 운영하는건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
“그리고 이 요새를 둘러싸고 있는 차단기술··· 아마도 공간 자체를 격리하고 있는게 틀림없겠죠. 고위 마법사를 대동하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유지하고 있는 술식인거죠?”
그동안 감옥에 갇혀서 마냥 바닥을 기어다니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가 자리잡고 있던 감옥에 대해 나름대로 판단을 내리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성 아스티야가 건더기 하나 없이 그릇을 비워놓으면, 곰돌이가 와서 그것을 다시 가져가는 모습이었다.
곰돌이가 그릇을 치우면서 자리에 두사람만이 남게되자, 성 아스티야는 그제서야 나를 향해 자기소개를 건네왔다.
“제 이름은 아스티야. 원탁의 스물 일곱번째 자리를 물려받은 성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칠흑기사단의 단장을 마주하게 될줄은 몰랐네요.”
“나에 대해 익히 들어본 모양이군.”
“칠흑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대륙 어디에 있겠어요. 현상금이 무려 10만··· 아, 아니 올라서 20만 골드였나?”
나에게 걸려있는 현상금이 20만 골드.
20만 골드가 어느 정도 되는 금액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적은 금액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짐작해보자면 성 아스티야가 속한 단체나, 그 주변에서 나에게 현상금을 건 모양이었다.
나와 직접 엮이는 일이 없었을텐데도 현상금을 걸줄이야.
나로서는 기가 차는 일이었다.
“현상금이라. 많이도 걸었군.”
“제국에서 건 현상금은 사실상 명목상의 금액에 가깝지만요.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당신과 만나보고 싶었어요.”
“나를 만나보고 싶었다고? 어째서지?”
“그야 궁금하잖아요. 신성교단을 적대하는 칠흑기사단의 수괴가 누구인지, 또 제 눈에는 당신이 어떻게 비추어질지 말이에요.”
성 아스티야의 말이 끝난 직후.
그녀의 양쪽 눈동자에서 환한 광채가 터져나왔다.
마주하는 이의 시선을 빼앗을만큼 아름다우면서도 거룩한 광채.
성 아스티야는 화려하게 빛나는 두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금빛 머리카락을 나풀거리며 눈을 빛내는 그 광경은 신화에나 나올법한 천사가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제 눈에는 특별한게 보이거든요.”
눈앞에 보이는 소녀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음에도, 스스로의 몸에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한 감각은 없다.
아무래도 나에게 적대하기 위한 행동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순수한 호기심의 발로.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를 노리는 것이겠지.
가만히 멈춰선 채로 성 아스티야를 마주하고 있으면, 나를 응시하던 성 아스티야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말도 안될 정도로 운명이 크게 뒤틀려있네요. 이정도라면 교단의 사도들 정도··· 아니, 이미 그런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그 눈으로 무언가를 볼 수 있는건가. 확실히 평범한 눈은 아니군.”
나를 바라본 성 아스티야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익숙한 이야기였다.
운명이 뒤틀려있다.
마이너스 백만이 넘어가는 내 운명을 직시하기라도 한 것일까.
나와 마주하던 성 아스티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이런 반응을 두번이상 마주한 것을 보니, 더 이상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경시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나를 바라보던 성 아스티야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이게 대체······.”
“나에게서 무엇을 본거냐.”
“이, 이런건 말이 안되잖아요······.”
마치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성 아스티야.
언젠가 알레테이아에서 마주했던 정체불명의 유령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짧은 침묵속에서 성 아스티야는 잠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입술을 깨물고 있던 성 아스티야의 고민이 끝난 이후.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조금 떨리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혼자서 모든 업을 짊어지고서 대륙에 나가는 것을 완전히 포기한거군요. 지금 상태로 대륙에 나가봤자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분 정도겠죠. 그 이상 버티려고 시도하면 존재자체가 소멸할테니까요.”
“2분이라······.”
“차원의 틈새에 몸을 숨겨서 인과를 격리하고 있었나요. 그렇다면 제가 신성교단과 연결이 되지 않는 이유도 이해가 가요.”
대륙에 나갈 수 있는 시간이 대략 2분.
익숙한 수치에 나는 지난번에 기사단장실에서 보았던 시계를 떠올렸다.
어느정도 차이는 있지만 그때 보았던 시계에도 비슷한 시간이 적혀있었다.
지금으로서 가늠이 가는 것은 그 시계의 시간 뿐이었다.
그 말은 내가 꿈속의 알레테이아뿐만이 아니라, 알레테이아의 바깥에도 나갈 수 있을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칠흑기사단이 필요한 이유도 당신 스스로가 대륙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어서겠죠.”
다만 2분이라는 시간은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었다.
설령 이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진짜라고 하더라도, 내가 그 대륙이라는 곳에서 무언가를 하기에는 큰 의미가 없는 시간일 것이다.
고작해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얼굴이나 보고 마는 수준일 터였다.
황금빛 광채를 이용해 나를 살피던 성 아스티야의 표정이 점점 무너져갔다.
그것은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또 어딘가 슬퍼보이는 모습이었다.
“윽···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단순히 칠흑기사단이 마신의 부활을 노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
“그런데 여기서 당신같은 사람이 나와버리면··· 대체, 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거죠······?”
성 아스티야가 어떤 풍경을 보고있는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색에 잠겼다.
공포. 비탄. 탄식. 절망.
그리고 그 끝에 다시 돌아오는 희망.
무수한 감정이 순차적으로 표출되며 성 아스티야가 자신의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단신으로도 이미 칠흑기사단의 모두를 합친 것보다 강한데, 그런데도 계속 스스로의 운명을 비틀어 업을 쌓아올리고 있군요.”
“······.”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업을 쌓아올리는 이유는 역시 하나밖에 없겠죠.”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고 있나?”
“당신 스스로가 인간들을 베기 위해서 벼려진 칼날이 아니니까요.”
촤르르륵-.
바닥에 묶여있는 족쇄를 잡아당기며 일어난 성 아스티야가 쇠창살을 붙잡았다.
성 아스티야의 눈을 밝히고 있던 황금의 광채는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그렇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만큼은 이전보다도 훨씬 강렬했다.
신성교단의 성인, 성 아스티야.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더도 없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 설마 바깥 세계의 위신(僞神)들과 진심으로 맞서려고 하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