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49
50.흑룡 (1)
[버닝타임 이벤트]가 시작된지 어느덧 사흘이 지났다.48시간이라고 고지되었던 경험치 이벤트가 종료되었음에도, 나는 하루종일 캐릭터를 파견하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다음 레벨에 도달하기까지 경험치가 약간 부족했던 탓에 레벨업을 위해 시간을 더 써야만 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70시간 가까이를 소모한 끝에야 목표 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하··· 이거 찍는다고 시간을 얼마나 쓴건지 모르겠네.”
12레벨.
그토록 열망하던 레벨에 이제서야 비로소 도달한 것이다.
나는 반쯤 감긴 눈으로 화면에 떠오른 레벨업 축하메세지를 바라보았다.
완전히 채워지기까지 얼마 안남은 것처럼 보이던 잔여 경험치통에 농락당하기를 십수번.
방구석에서 손가락을 딸깍거리며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넘어선 끝에 도달한 결과물이 지금 눈앞에 떠올라있었다.
하암-.
한차례 하품을 내뱉은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화면에 떠오른 메세지를 하나씩 확인해보았다.
– 단장님의 레벨이 [12]레벨이 되었습니다.
– [드림 커넥터]의 활성화 빈도가 소폭 증가합니다.
– 식당에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었습니다.
– 레벨이 상승하며 다음과 같은 기능이 새롭게 해금되었습니다.
– NEW! 알레테이아에 기사단원들을 위한 도서관이 추가되었습니다.
– NEW! 알레테이아에 새로운 기사단원을 위한 방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남은 시간 : 7시간 59분)
이번에 12레벨을 달성하며 생겨난 변화는 크게 세가지였다.
첫째. [드림 커넥터]의 활성화 빈도가 증가했다.
물론 빈도가 증가했다는 메세지가 떴다고는 해도, 지금까지의 내 체감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알레테이아 내부에 캐릭터들을 위한 도서관이 추가되었다.
해당 메세지를 확인한 나는 가장 먼저 아리엣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꿈속에서 나와 마주쳤던 아리엣이 나에게 책의 숫자를 늘려달라고 요청해왔던 것이다.
“새로 추가된 도서관에 책이 좀 많이 들어있으려나. 아리엣이 충분히 만족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알레테이아 내부를 비추는 화면을 옮겨, 새롭게 추가된 도서관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화면에 비추어진 도서관은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책장으로 가득찬 모습이었다.
드넓은 도서관과 고급스러운 책장.
누가 보더라도 만족할만한 도서관의 풍경이었다.
놀랍게도 책장에 단 한 권의 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도서관이 추가되었지만 거기에 필요한 책은 직접 채워넣어야만 하는 모양이었다.
허탈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로비로 이동했다.
“무슨 도서관에 책이 하나도 없냐? 설마 내용물도 내가 직접 채워넣어야 되는건가?”
한숨을 내쉰 나는 지금까지 12레벨을 기다려왔던 가장 큰 이유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신규 기사단원 슬롯의 해금.
12레벨에 도달하는 것으로 새로운 기사단원을 모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기사단원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8시간을 기다려야한다는 조건이 붙어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도서관은 일단 내버려두고, 남아있는 대기시간 동안 어떻게 하지.”
알레테이아의 한구석에서는 서포터가 신규 기사단원을 위한 방을 열심히 뜯어고치는 중이었다.
공사가 완료되기까지 남아있는 시간은 이제 7시간 58분.
8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마냥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사흘동안 기사단원들을 혹사시켰던 탓에, 기다리는 동안 새로운 임무를 진행하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남아있는 대기시간을 보며 고민하던 나는, 이내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서 침대에 집어던졌다.
“······사흘동안 고생했으니 다들 하루쯤은 쉴때도 됐지.”
단순한 게임 캐릭터라면 아무리 굴려도 피로하지 않을테지만, 상대가 사람이라면 상황이 다르다.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게 휴일을 선물해주기로 결정한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에 몸을 던졌다.
공사가 완료되기 전까지 잠이라도 좀 자두려는 생각이었다.
밤을 새어가면서 게임을 플레이했더니 조금 피곤한 느낌이었다.
“잠이나 자야겠다.”
딸깍-.
손을 움직여 버튼을 끈 나는 이불로 눈을 가린 채 침대에 누웠다.
귓가에 들려오는 숨소리와 함께 의식이 가라앉더니, 이내 천천히 잠에 빠져들었다.
다행히도 짧은 꿈을 꾸는동안 [드림 커넥터]가 발동하는 일은 없었다.
* * * * * *
12레벨을 달성하고서 8시간이 지난 이후.
저녁식사를 컵라면으로 해결한 나는 책상에 앉아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기나긴 대기시간이 지난 끝에, 그토록 고대해왔던 뽑기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
시온을 얻었던 당시에는 티켓을 사용해 캐릭터를 쉽게 얻었던 만큼, 뽑기 특유의 손맛이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몇시간동안 뽑기를 돌리다보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고생 끝에 최고 등급 캐릭터를 뽑았을 때의 만족감 역시 존재하는 법이었다.
“EX랭크··· 이번에는 얼마만에 나오려나.”
나는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풀며 버튼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마주한 버튼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후우-.
짧은 심호흡을 마친 나는 버튼을 눌러 뽑기를 시작했다.
뽑기를 진행하는 화면이 반짝이더니, 캐릭터 하나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 [바르칸(A)]이 기사단에 새롭게 합류했습니다.
– 해당 기사단원을 등용하시겠습니까?
– 모집한다 / 방출한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지팡이를 들고 있는 노인이었다.
남자 캐릭터인데다 EX랭크도 아니었으니 내가 데려올 이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를 누르고 해당 캐릭터를 쫓아내려고 했다.
칠흑기사단은 EX랭크가 아닌 녀석들은 결코 받아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고보니 뽑기에서 방출되면 어떻게 되지?”
[바르칸(A)]을 방출하려던 내 머릿속에 문득 한가지 의문점이 떠올랐다.이오나 아리엣 같은 캐릭터들이 ‘대륙’이라고 지칭하는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사실은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뽑기를 통해 모집된 캐릭터는 알레테이아에 들어와 기사단에 가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입하지 못하고 방출된 캐릭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러한 의문이 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냥 아무일 없이 끝나려나? 그게 제일 가능성이 높은 편이기는 한데.”
내가 짐작하기에는 를 누르는 경우에만 모종의 이벤트가 일어나지 않을까 싶었다.
뽑기를 통해 나오는 캐릭터가 몇명인데, 그 캐릭터들에게 전부 이벤트를 발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일테니까 말이다.
몇가지 가능성을 떠올리던 나는 잠시 화면을 보며 고민하다가, 금세 다시 버튼을 터치했다.
EX랭크를 뽑기 위해서는 고민하는 도중에도 손가락이 놀고 있어서는 곤란했다.
“뭐, 내가 방출한다고 해서 별일은 없겠지.”
빠르게 결론을 내린 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화면을 연타했다.
그 이후로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방출과 모집을 반복할 뿐이었다.
책상에 앉은 채로 스마트폰의 액정을 터치할 뿐인 단순작업.
하지만 이 방출작업도 누군가에게는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나는 열심히 기준에 미달하는 캐릭터들을 방출했다.
훌륭한 기사단에는 훌륭한 기사들이 필요한 법이다.
서로에게 목숨을 맡겨야하는 역할에 아무나 뽑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왠지 느낌이 좋은데? EX랭크가 금방 나올지도 모르겠어.”
툭-. 툭-.
나는 계속해서 화면을 움직여가며, 기사단의 새로운 단원이 되기에 적합한 인물을 기다렸다.
내 바람에 걸맞는 캐릭터가 출현한 것은 그로부터 2시간 후의 일이었다.
* * * * * *
대륙 서부. 레벤디어스 대협곡.
살아있는 인간의 흔적이라고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오지에서, 흑마법사 바르칸은 언데드를 묶어놓은 마차를 몰고 있는 중이었다.
바르칸은 흑마법사들 중에서도 이단아라고 여겨지는 ‘플레이아데스’의 일원이었다.
바깥세계의 신비를 탐구하며 강대한 힘을 쌓아올리고자 노력하는 이 비밀결사에서 바르칸의 입지는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다.
본신의 전투능력도 변변치 않은 편이었으며, 쌓아올린 연구성과 역시 대단치 않은 것들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까지의 이야기일뿐.
바르칸이 끌고 있는 이 짐마차가 바르칸의 연구실에 도착하고 나면, 머지않아 플레이아데스의 모두가 바르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것이 분명했다.
그가 이번에 발견한 것은 그만큼이나 대단한 물건이었으니까 말이다.
“파네스. 또 졸고 있는 것이냐!”
바르칸이 앉아있는 마부석의 오른쪽에서는 파네스라는 이름을 가진 제자가 꾸벅 졸고 있었다.
바르칸은 옆에서 졸고 있던 파네스를 향해 크게 호통을 쳤다.
파네스는 그가 뒷골목에서 데려온 실험체였는데, 싹수가 보여 흑마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마도의 두번째 계단에 이르러있었다.
파네스의 성취는 사람을 보는 바르칸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바르칸의 마차에 실려있는 ‘그것’은, 바르칸 자신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고 가치를 재단한 물건이었다.
바르칸은 자신이 운좋게 발견한 보물이 스스로의 인생을 바꿔놓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바르칸님··· 아직 대협곡을 못벗어난게 아니었습니까······?”
귓청을 울리는 바르칸의 목소리에 눈을 뜬 파네스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것인지, 비몽사몽하며 대답을 늘어놓는 모습이었다.
그런 파네스의 모습에 바르칸은 혀를 차며 이야기했다.
“쯧쯧, 멍청한 것. 아무리 사령술로 소생시킨 언데드라고는 하지만, 술자가 되어서 말이 가는 것을 방치하고 있어서야 되겠느냐.”
“그, 그렇지만, 며칠동안 밤새서 연구를 진행했더니 너무 피곤해서··· 악······!”
쿵-!
바르칸의 지팡이가 파네스의 머리를 내리쳤다.
바르칸의 지팡이에 얻어맞은 파네스는 자신의 이마를 움켜쥐며 고통을 호소했다.
허나 바르칸은 그런 파네스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해 타박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지금 우리가 연구중인 물건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모르는게냐?”
“저 호문클루스가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용족에 가까운 마력기관을 가지고 있는걸 확인했으니까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며칠이나 밤을 새가면서 연구를 진행하는건······.”
“용족의 성체가 자신의 영혼을 담아내기 위해 만들어낸 그릇이다. 실험을 위해 제 피와 살을 아낌없이 들이부었단 말이다! 저만한 결과물을 우리가 손에 넣은 것은 천운에 가까운 일인게야!”
바르칸이 이번 여정에서 손에 넣은 것.
그것은 노쇠해가던 흑룡이 진행하던 생명연성의 연구일지와, 흑룡이 죽기 전에 완성한 한 체의 호문쿨루스였다.
연구일지도 충분히 값진 물건이었지만, 마차안에 있는 호문쿨루스의 가치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성체의 흑룡이 제 피와 살을 넣어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완성한 걸작.
그 본질이 용족과 거의 유사한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제대로 된 조정을 거친다면 바르칸이 직접 다룰 수 있는 용족을 손에 넣는 것과 다를게 없는 셈이었다.
“그런 영광스러운 연구에 동참시켜준 것에 감사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고작 며칠 밤을 샌 것 가지고 허덕이는 것이냐!”
“바, 바르칸님······.”
“이 얼마나 위대한 연구더냐. 내가 네놈이었다면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이 영광스러운 연구에 참여하기 위해 스스로를 언데드로 만들 고민까지 했을 것이다.”
바르칸은 그런 대단한 연구에 참여시켜주었음에도, 잠을 재워주지 않았다 불평하는 파네스가 참으로 한심해보였다.
마법의 경지가 늘어도 여전히 어수룩한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파네스였다.
더 높은 경지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하는 흑마법사의 마음가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네놈의 경지가 미천해 언데드로 만들면 아무런 쓸모도 없는 개뼈다귀가 되어버린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구나.”
끌끌-.
혀를 차던 바르칸은 그런 파네스에게 이참에 제대로 정신교육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실험체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제자가 경지만 높은 머저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레벤디어스 대협곡을 벗어나 그의 연구실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남아있을 터.
그 시간동안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곁들여, 진정한 흑마법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해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협곡을 벗어나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 흑마법사가 뭔지 네놈에게 제대로 알려주마. 내가 처음 흑마법에 입문한 것이 언제인줄 아느냐?”
그렇게 바르칸은 뼈다귀만 남아있는 말을 조종하며 파네스를 향해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는 먼 옛날, 바르칸이 뒷골목을 전전하던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뒷골목의 부랑아로 살아가던 이야기.
성실하게 살아보려 노력했으나, 연인을 잃고 무력함에 좌절했던 이야기.
역병으로 죽은 이들의 시체를 목숨걸고 정리하던 이야기.
머나먼 과거에 대한 이야기부터 비롯된 바르칸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이야기가 길게 이어져나갈수록 파네스의 고개 역시 점점 아래로 숙여져갔다.
“제국의 국경을 벗어나던 당시에는 다섯 명의 기사가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해 기사들을 상대한게다.”
“······.”
“졸고 있는 거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네놈을 언데드로 만들어주마.”
“드, 듣고 있습니다······.”
자신의 위업을 담은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흑마법사로서의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바르칸은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던 모든 것들을 제자에게 털어놓았다.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억만금을 지불해도 듣지 못할 귀중한 이야기들이었다.
그렇게 대협곡을 가로지르며 한참동안 이어지던 이야기가 슬슬 막바지에 다다른 이후.
바르칸은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던 마지막 한마디를 파네스에게 이야기했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인게다. 흑마법사가 추구해야되는 길은 그러한 것이라는 말이다.”
끄덕. 끄덕.
바르칸의 마지막 한마디가 끝나자, 마부석의 옆자리에 앉아있던 실루엣이 고개를 끄덕였다.
몇차례나 조는 모습을 보았건만, 의외로 마지막에는 감명깊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양이었다.
바르칸은 그런 제자의 모습에 흡족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잘 알아들은 모양이구나.”
“······.”
“더 듣고 싶겠지만 아쉬워하지 말거라. 연구실에서 시간이 나면 틈틈히······ 음?”
그리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제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스윽-.
바르칸이 마부석의 오른편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자신을 보며 고개를 움직이는 거대한 곰인형이 앉아있었다.
끄덕. 끄덕.
그것은 바르칸을 보며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다.
제자를 대신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곰인형의 모습에, 바르칸은 굳은 얼굴로 곰인형을 빤히 바라보았다.
“······.”
– “······.”
침묵속에서 곰인형과 바르칸의 시선이 서로를 응시했다.
“······.”
– “······.”
“······.”
– “······.”
“······.”
– “너는 방출되었음.”
한참동안 이어지던 침묵을 끝낸 곰인형은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등장방법과 마찬가지로, 눈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감추는 퇴장방법이었다.
곰인형이 사라지며 옆자리가 비어버린 바르칸은 자신의 마차를 멈춰세웠다.
끼이익-.
언데드를 정지시켜 마차를 세운 그가 뒤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 멀찍이 떨어진 협곡의 바닥에 누워있는 파네스의 모습이 보였다.
“······?”
바르칸은 멍하니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유령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 * * * * *
곰인형과의 만남으로부터 두시간 뒤.
바르칸은 왠지 모를 불안함에 마차의 내용물을 점검해보았다.
그가 직접 설치한 봉인이 호문쿨루스를 지키고 있을테지만, 그럼에도 바르칸의 가슴속에는 서늘한 감각이 맴돌고 있는 까닭이었다.
아무래도 한참 전에 보았던 곰인형의 허상이 그 원인인 것 같았다.
이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마차를 열어 봉인의 상태를 확인해보아야만 했다.
철컥-.
마차의 문을 열어 인식저해장벽을 해제한 바르칸은 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바르칸님? 대체 왜 지금 당장 그걸 봐야한다고······.”
“······아.”
“이, 이럴수가!”
바르칸이 호문쿨루스를 가리고 있던 인식저해장벽을 해제한 이후.
두 사람은 텅 비어있는 거대한 유리관을 마주하고 입을 다물었다.
원래대로라면 검은 뿔이 달려있는 호문쿨루스가 들어있었을테지만, 지금은 산산히 조각난 유리파편만이 보일 뿐이었다.
운반중이던 호문쿨루스를 탈취당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바르칸이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 아아··· 아아아아악······!”
깨진 유리의 파편이 울부짖는 바르칸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산산히 부서진 채, 태양빛과 그 아래의 마법사들을 비추고 있을 뿐인 파편들.
깨어지고 조각난 유리가 마치 바르칸의 미래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