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59
60.대공 (2)
“너, 알데어 크로우라이트와 무슨 관계냐.”
아데온의 날카로운 시선이 이오를 훑었다.
제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북방의 붉은까마귀, 알데어 크로우라이트.
그 이름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알데어에게서 사사받은 이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카가가가각-!
아데온의 검을 옆으로 빗겨낸 이오가 눈앞에 있던 아데온을 향해 물었다.
“알데어를 알아?”
“우스운 질문이군. 제정신으로 하는 이야기인가?”
“······.”
“대륙에서 그 자를 모르는 이가 얼마나 되겠냐만, 우리의 악연은 그것보다도 더 깊은 편이지.”
알데어에 대해 논하는 아데온의 얼굴에서는 수많은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오가 무언가 말하려던 순간.
이오의 귓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단순히 목소리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이오의 머리에 직접 의지를 투사하는 개념이었다.
– “봉인을 풀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필요한 것 같은데. 마침 너한테 신경이 가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가능한 시간을 끌어주는 편이 좋겠어.”
이오에게 의지를 전달한 것은 어느새인가 흐릿하게 모습을 숨긴 아리엣이었다.
성채의 내부에 깔아놓은 환영마법을 강화해 제 모습을 숨긴 것이다.
그 사실을 눈치챈 이오가 다시 아데온에게 시선을 돌리면, 아데온은 무거운 감정에 젖어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자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대단한 자였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내가 마주하던 그 누구보다도 위험한 인물이 되어있지.”
“그건······.”
“알데어와 관련이 있어보이는 인물마저도 누구하나 경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키잉-!
아데온의 검에 맺혀있던 투기가 한층 더 강렬한 빛을 발했다.
검에서 퍼져나오는 투기는 단순히 검을 감싸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 공간과 함께 아리엣의 환영 일부를 뒤흔드는 모습이었다.
그런 아데온의 이야기에 이오는 상황의 전말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눈앞의 아데온은 알데어와 깊은 악연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알데어가 대륙에서도 가장 악명높은 범죄자라는 사실과, 그 성정을 살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신, 알데어와 악연이 있는거구나.”
“그래. 그리고 네가 그림자를 다루는 방식은, 알데어가 스스로 개량했다는 그림자 제어술과 크게 다르지가 않군. 너는 알데어 크로우라이트와 정확히 무슨 관계인거지?”
아데온의 질문에 이오는 조용히 검을 기울였다.
그녀와 알데어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해야만 할까.
그것은 스승이라고도 부르기에는 너무 편협하며, 또 가족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감이 있는 관계였다.
그저 보은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을뿐인 관계.
명확한 이름이 없는 그 관계를 표현할 방법을 이오는 아직 찾지 못했다.
“······글쎄.”
“굳이 말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상관없다. 어차피 너희들을 쓰러뜨리고 나서, 말할 생각이 들게 만들면 되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이오의 이야기를 들은 아데온은 안광을 흘리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직후, 거대한 섬광과 함께 아데온의 검이 주변을 휩쓸었다.
“내가 직접 심문해서 들어보도록 하지.”
콰과과과광-!
검에서 뻗어나온 투기가 사방을 뒤흔들며 이오를 향해 쇄도한다.
흉포한 기세로 뻗어나가는 섬격.
그 일격은 정면에서 받아내기에는 너무나도 위협적인 것이었다.
아데온의 공격을 마주한 이오는 그림자속에 깊숙히 발을 집어넣었다.
휘릭.
이오의 위상이 한차례 반전하는 것과 동시에, 이오의 신형이 아데온의 뒤쪽에서 솟아올랐다.
“같잖은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그림자를 통한 이동.
자신의 후방에서 튀어나오는 이오의 모습에, 아데온은 다급하게 전신에 투기를 방출했다.
콰앙-!
아데온의 투기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그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이오를 밀어내었다.
아데온의 기세를 받아낸 이오는 허공에서 한차례 몸을 뒤집은 후, 충격을 줄여 바닥에 발을 착지시켰다.
이오가 쥐고 있던 그림자의 검은 어느새 그 형체가 흐트러져있었다.
‘예리한 기감을 가지고 있어.’
짧은 공방을 교환한 이오가 아데온에 대한 평가를 마쳤다.
그녀가 마주한 루터니온의 수호자는 무척이나 예민한 기감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기척이나 마력의 흐름을 이해하고, 이오의 행동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데온이 가지고 있는 검술의 재능 역시 이오와 비교해서 부족해보이지 않았다.
무의 극의에 오르는 것을 허락받은 기재.
그런 아데온의 근간을 이루는 패도적이고 강건한 검술은, 분명 오랜 세월 수호자의 업을 맡았던 유클레이스의 비전일 터.
거기에 아데온의 흉포한 투기가 어우러지며, 공격과 방어 양쪽에서 완벽한 균형이 맞추어지는 모습이었다.
– “길어야 2분정도. 그정도만 시간을 끌어주면 될 것 같아.”
끄덕.
귓가에 들리는 아리엣의 목소리에 이오는 작은 동작으로 수긍해보이며, 손아귀에 다시 그림자의 검을 빚어내었다.
알데어와 악연을 가지고 있다는 대공의 무용은 충분히 그와 비견될만한 것이었다.
괜히 수호자라는 거창한 이명으로 불리고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눈앞의 상대를 쓰러뜨려면 제법 시간이 걸리겠지만, 시간을 끄는 일이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림자의 검을 쥔 이오가 자세를 낮추는 것과 동시에, 그림자의 실루엣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팔중섬격.”
전방위에서 조여드는 그림자의 검격.
그것을 마주한 아데온이 사방에 투기를 쏟아내며, 손에 쥔 검을 현란하게 움직여 검격을 받아내었다.
카앙-! 캉! 캉! 캉!
아데온의 검은 무척이나 안정적인 동작으로 그림자의 참격들을 틀어막는 모습이었다.
미래를 보고서 움직이던 성 아스테야와는 다르게, 특유의 기감을 이용해 공세의 빈틈을 찾아내는 것이다.
검격을 전부 받아낸 아데온이 자세를 잡자, 다시 한 번 사방에 투기의 폭풍이 퍼져나갔다.
“그러고보니, 방금전부터 네 동료의 모습이 안보이는군.”
“읏······!”
“이곳에 들어온 쥐새끼의 숫자는 분명 둘이었을텐데, 언제 감쪽같이 모습을 감춘거냐.”
콰앙-!
터져나온 투기가 대기를 밀어내며 대공저의 심처를 훑고 지나갔다.
모습을 감춘 무언가를 찾으려는 듯한 행동.
흉포한 투기가 제 먹잇감을 탐색하며 거칠게 날뛰었다.
아리엣의 환영마법은 아데온의 눈을 완벽하게 속이고 있었지만, 아데온이 발산하는 투기는 그런 환영의 허점을 찾아내기 위한 공격이었다.
“과거의 언약을 수호하는 것이 유클레이스의 후예에게 주어진 숙명.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는 몰라도, 봉인의 너머를 더럽히는 것을 내가 용납할 것 같으냐!”
대기가 일렁이며 환영이 한차례 흐트러졌다.
대공의 주위를 둘러싸던 안개들은 어느새인가 바깥으로 밀려나있는 모습이었다.
전신을 뒤덮은 투기가 가지는 강한 마력저항이, 점점 그 기세를 더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이이이잉-.
아데온이 밟고 있던 지면에서부터 무수한 파동이 터져나오며 확산한다.
아리엣의 환영을 헤집으려는 아데온의 시도에, 이오는 검을 휘두르며 아데온을 압박하려고 노력했다.
– “······앞으로 40초. 이제 얼마 안남았어.”
“—팔중섬격!”
남은 시간은 40초.
아리엣에게 잔여 시간을 통보받은 이오가, 아리엣의 환영을 건드리지 않을만한 방식으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카앙-!
이오의 실루엣과 아데온의 검이 허공에서 검격을 주고받는다.
이오가 가진 가장 강력한 기술은 그림자의 비전절기인 파계지만, 지금 당장 파계를 이 자리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려웠다.
파계를 사용하는 순간 아리엣이 펼치고 있는 안개에도 문제가 생길 터.
이번 작전의 우선순위는 어디까지나 유물의 회수였으니, 이오가 해야하는 것은 아데온을 쓰러뜨리는게 아니라 움직임을 묶어두는 것이었다.
“그림자의 혈통답게 하는 짓도 그 괴팍한 노인네와 다를게 없구나!”
시간차로 실루엣을 보내 아데온과 검을 맞대게 한다.
그러면서도 이오의 머릿속은 계속해서 남은 시간을 가늠하고 있었다.
카앙! 캉-!
아데온은 연달아 날아오는 이오의 압박을 받아내면서도, 사방에 투기를 발산해 아리엣의 위치를 찾아내고자 시도했다.
행동을 억제하려는 자와, 그를 돌파해 어떻게든 탐색을 진행하려는 자.
두 기사의 수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져나갔다.
‘이제 얼마 안남았어.’
그리고 그러한 싸움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서있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되는 이오 쪽이었다.
카가가가각!
날아오는 아데온의 투기를 빗겨낸 이오는, 그림자를 정교하게 운용하며 아데온을 공격해나갔다.
파앗-!
그림자를 휘두르는 이오의 귀에 걸려있던 자수정 귀고리가 빛을 발하며 공명한다.
단장이 그녀에게 선물해준 아티팩트가, 전투에 임하는 이오의 마력을 증폭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종경 7식, 에디오르!”
아데온 역시 그런 이오에게 맞서 더욱 기세를 끌어올렸다.
선명하게 일렁이던 투기가 순차적으로 응집되며, 쥐고 있던 검에 광채를 계속해서 더해나갔다.
풀리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데온이 자신의 성명절기를 꺼내든 것이었다.
그림자의 마력과 수호자의 투기.
두 강대한 기운이 서로 맞물리며 서로를 집어삼키려고 준비하던 도중.
“고생했어, 이오. 이제서야 결계의 해체가 끝나버렸네.”
안개를 펼치고 숨어있던 아리엣이 두 사람의 사이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카아앙-!
아리엣이 전개한 방어벽이 양쪽에서 다가오는 참격을 억누르며 막아세웠다.
“······뭐라고?”
“이곳을 지키던 결계가 완전히 제 효력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야.”
“그게 대체 무슨······.”
환영을 풀고 돌아온 아리엣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입을 연 직후.
쿠구구구궁-.
그들이 서있던 공간 전체가 진동하며, 벽면을 막고 있던 결계에 균열이 벌어졌다.
쩌적, 쩌저적.
가지가 뻗어나가듯 확산하는 균열은 순식간에 결계 전체를 집어삼켰다.
진입을 가로막던 결계의 표면에 일어난 거대한 균열.
그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찾아올지는, 이 자리에 있는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대의 대현자 아르타스가 설치한 항마봉인이다! 그만한 물건을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해체했다는 말이냐!”
“그래봤자 짧은 인생을 사는 필멸자의 결계잖아?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해체할 수 있어.”
“말도 안되는 짓을······.”
거대한 진동과 함께 무너져내리는 결계의 모습에, 아데온의 눈에 망연자실한 기색이 깃들었다.
산산히 부서져 파편이 비산하는 결계의 너머.
침입자로부터 유물을 보호하던 결계가 사라진 자리에는, 굳게 닫혀있는 석문 하나가 존재하고 있었다.
석문을 지키던 결계가 사라진 덕분이었을까.
쿠구구궁-.
맞물려있던 석문이 서서히 진동하며 열리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저게 당신이 그렇게나 지키려고 했던 유물이구나?”
“······.”
“단장이 가져오라고 말한걸 보면 안에 어떤 물건이 있을지는 대충 짐작이 되네.”
아리엣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열리기 시작한 석문을 바라보았다.
푸른 광채와 함께 벌어져가는 석문의 너머.
그곳으로부터 정체불명의 기운이 흘러넘치며 심처를 향해 역류하기 시작했다.
“역시, 봉인석이라고 불리던 광석이 틀림없는 것 같아. 흘러나오는 기운부터가 범상치 않은데······.”
아리엣과 이오는 석문의 너머에서 뻗어나오는 강대한 기운에,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려 저항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력을 끌어올리던 아리엣이 무언가의 이변을 느끼고서 미간을 찌푸렸다.
아리엣이 운용하던 마력이 빠른 속도로 무언가에 짓눌려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력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소용없다. ‘저것’이 풀려나버린 이상, 심처를 벗어나기 전까지는 제 능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을거다.”
석문의 너머에서 뻗어나오는 기운이 아리엣의 마력을 억누르고 있었다.
심처에 나타난 이변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데온의 몸을 감싸고 있던 투기 역시 순식간에 흩어지는 모습이었다.
당황한 아리엣의 시선이 열리기 시작한 석문의 너머를 바라보았다.
“저건··· 봉인석이 아니야.”
진동하는 문의 저편.
아리엣이 고대하고 있던 장소에 위치한 것은, 그녀가 기대하고 있던 봉인석같은게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가지 물건 뿐이었다.
알수없는 문자가 새겨져있는 거대한 석판.
그리고 사슬에 묶여있는 채로 매달려있는 거대한 짐승의 팔.
그것이 결계의 너머에 존재하는 전부였다.
“······당신. 대체 이곳에 뭘 넣어두고 있던거야?”
“수위에 이른 흑마법을 다루고 있건만, 의외로 대륙의 신화에 대해서는 무지한 모양이군.”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리는 짐승의 유해에, 아리엣의 시선이 뒤에 있던 아데온에게로 향했다.
아데온 유클레이스.
대공저의 주인이자 언약의 수호자는 무거운 눈으로 석문의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신성교단이 숨기고자 하는 치부다. 너희같은 침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내 유약함으로 인해 일이 이렇게 되고 말았군.”
“신성교단의 치부라고?”
“그래. 오래 전에 내 선조가 나눠가진 언약의 일부이자, 마신을 섬기는 흑마법사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모독적인 물건이지.”
터벅. 터벅.
검을 늘어뜨린 아데온의 발걸음이 열려있는 석문의 앞으로 향했다.
공간을 장악하는 미증유의 힘에 짓눌리면서도, 아데온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것이 가문이 지키고자 했던 언약이었기에.
아데온은 위압감에 짓눌리는 육신을 움직여, 석문의 앞에 서서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나는 신성교단을 별로 좋아하지않아. 하지만 그들이 맡은 역할에 대한 존중은 가지고 있다.”
“언약의 수호자라는게 설마······.”
“신마대전의 비밀을 나눠가진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아. 더군다나 그 결과로 인해 이 세계가 존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그러하지.”
카가가가각-.
아데온의 검이 바닥에 선명한 검흔을 새겨넣었다.
칠흑의 제복을 입은 기사들과, 아데온의 사이를 가르는 듯한 흐린 경계선.
그 너머에서 아데온의 눈동자가 낡은 결의를 토해내었다.
“이건, 오래전에 세계를 위해 육신이 찢어발겨진 위대한 존재의 신체(神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