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60
61.대공 (3)
“이건, 오래전에 세계를 위해 육신이 찢어발겨진 위대한 존재의 신체(神體)다.”
신의 유해.
오래 전에 수갈래로 찢겨나간 신격의 잔해.
아데온의 입에서 흘러나온 충격적인 말에 아리엣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신체(神體)라고······?”
“처음부터 이 물건이 목적이라고 생각했건만, 의외로 잘 모르고 있었던 모양이군.”
“맞아. 당신이 말하기 전까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였으니까.”
“저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럼에도 신체(神體)를 노리고 이곳까지 찾아온거냐.”
“······그게 단장의 명령이니까.”
아리엣은 그렇게 말하며 정면을 향해 백은을 겨누었다.
그녀가 기나긴 잠에 들었던 사이에, 대륙은 빠른 속도로 뒤바뀌었다.
밤의 제국은 몰락해 잊혀졌으며, 그를 대신해 인간들의 영토가 대륙 전역을 아우르고 있다.
이제는 그녀의 존재마저도 서서히 옛날이야기속에 파묻혀 사라져갈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지금에 와서, 아리엣이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단장.
칠흑기사단을 이끄는 수장이 내린 명령이, 결코 가볍지 않은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단장이라. 너희들을 이끄는 그 단장이라는 자는 왜 이 물건을 원하는거지?”
“단장의 생각을 우리라고 해서 전부 이해할수는 없는 노릇이거든. 물론, 그 물건이 단장이 꿈꾸는 비원에 가까운 것만은 틀림없겠지만.”
“무척이나 위험한 자로군. 너희같은 이들을 수하로 부리면서도, 신마대전의 흔적을 더듬어 손에 넣으려고 하다니.”
아리엣으로서도 그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면이 있기는 했다.
단장은 무척이나 위험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단장이 그리는 이상조차도, 무척이나 무모한 꿈을 담아내고 있었다.
단장에 대한 아데온의 평가에 아리엣이 그를 응시하고 있으면, 무거운 표정의 아데온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너희의 단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물건만큼은 결코 이 자리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지극히 수호자다운 발언인걸.”
“이미 세계를 격리하는 장벽에 서서히 균열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그 균열을 틈타 바깥세계의 괴물들에게서 힘을 빌리려는 이들마저 나타나고 있다.”
“······.”
“세계에 내려앉은 종언으로부터 한차례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초대 용사와 신성교단의 치부 덕분이다. 그리고 내 역할은 그 과오에서 비롯된 언약을 수호하는 것.”
철컥-.
금속 특유의 마찰음이 심처에 메아리친다.
“세계에 종언이 도래하도록 내버려둘 생각은 없다. 더 이상 그 누구도 이 너머로 나아갈 수 없을거다.”
아데온의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투기는 이미 희미하게 흩어져가는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전투를 벌인다고 하더라도, 어느쪽이든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양쪽 다 처절하게 사투를 벌여야 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아데온은 목숨을 건 항전을 선택한 셈이었다.
“임무를 받고 내려온 내가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겠지만,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별 의미는 없을거야.”
“무슨 소리지?”
“단장은 특별한 사람이거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누구보다 커다란 그림을 그리면서, 실패같은건 처음부터 고려하지도 않는 사람이야.”
“지극히 오만한 대답이다.”
“단장은 내가 보았던 누구보다도 그런 오만함에 어울리는 사람이었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거지?”
아리엣의 눈동자가 선명한 빛을 머금었다.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결국은 전부 단장의 뜻대로 이루어질거라는 이야기야. 단장은 그럴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이미 알고 있잖아. 결계가 열린 시점에서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다는거.”
아데온과 아리엣 사이에 벌려져있는 거리는 좁혀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공간을 짓누르는 신의 권능은 초인들조차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허나 아리엣은 제 역할이 이미 이곳에서 끝났음을 이해하고 있었다.
안개를 펼쳐 성채의 병사들을 교란시키는 것.
그리고 결계를 수호하는 아데온의 시선을 끌어 봉인을 완전히 해체하는 것.
아리엣의 역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다음은 공간에 대해 조예가 깊은 그녀의 동료가 알아서 해줄테니까 말이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거지?”
“이미 우리에게 내려진 임무가 전부 끝났다는 이야기야.”
“방금 전부터 무슨 말을······.”
석문의 앞을 가로막던 아데온이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아데온의 고개가 돌아간 그 순간.
석판을 바라본 아데온의 눈에 비추어진 것은, 사슬이 묶여있는 팔을 들고 움직이는 거대한 곰인형의 모습이었다.
총. 총. 총. 총.
거대한 팔을 붙잡은 곰인형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벽면에 열려있는 포탈에 들어가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던 아데온이 황급히 몸을 돌리며 경악에 젖은 목소리를 토해내었다.
“언제 저런 아티팩트를 준비한거냐! 당장 멈춰라! 더 이상 세계를 격리하는 장벽에 균열이 생겨서는 안된단 말이다!”
다급해진 아데온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곰인형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신체(神體)의 여파로 동작이 느려지기는 했지만, 어떻게든 돌진하면 때를 맞출 수 있을거라는 판단에서였다.
허나 그런 아데온의 계획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철컥-.
발걸음을 내딛은 아데온의 다리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그를 잡아당긴 까닭이었다.
“족쇄가 걸려있다고······? 대체 어느 틈에 이런걸 채워넣은거냐!”
“마력의 운용에 문제가 생긴 시점에서 마지막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거든. 업을 가져다 쓰니까 어떻게든 성공한 것 같네.”
“빌어먹을··· 방해하지 마라! 저 물건이 잘못되었다간 대륙의 모두가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거란 말이다!”
마력으로 만들어진 족쇄에 붙잡혀 발걸음을 봉쇄당한 아데온이 분노에 젖어 외쳤다.
아데온의 목에 솟아오른 핏대는 그의 다급한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는 정반대로, 아리엣은 침착한 표정으로 자신의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이이잉-.
어느새 신의 유해를 옮겨놓은 서포터가, 아리엣과 이오의 뒤에도 포탈을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포탈을 열고 나온 서포터는 아리엣과 이오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 “이번 임무가 완전히 종료되었음. 이제 알레테이아로 귀환해도 괜찮음.”
“그렇다는 모양이네. 돌아가자, 이오.”
“응.”
서포터로부터 흘러나온 임무의 종료 선언.
그 이야기에 이오는 열려있는 포탈의 너머로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아리엣은 묶여있는 아데온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백은을 흔들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가기 전에 축하해둘게. 당신이 말했던 언약의 수호라는 업에서 오늘부로 해방된 모양이네.”
“당장 멈춰라—! 지금이라도 그 물건을 반환하지 않으면, 대륙 전체가 엄청난 위험에 직면하게 되는······!”
아리엣은 아데온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 않은 채, 열려있던 포탈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여유와 기품이 서려있는 발걸음으로 아리엣이 포탈 너머에 들어간 직후.
지이잉-.
아리엣이 들어간 포탈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그와 동시에 아데온의 발목에 매여있던 족쇄 역시 마력을 잃고서 흩어졌다.
“아, 아······.”
소란이 벌어졌던 대공저의 심처에 남아있는 것은, 이제 지켜야할 대상을 잃어버린 아데온 하나뿐이었다.
언약의 수호자는 신의 유해가 사라진 빈자리를 허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 * * * *
– 기사단원 [이오(EX)], [아리엣(EX)]이 [전설 : ‘루터니온’의 유물 회수] 임무를 클리어했습니다.
– 보상 : 10,000 EXP
–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운명석 500개가 추가로 지급되었습니다.
서포터가 벽면에 걸려있던 거대한 팔을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떠오른 클리어 화면.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방금 전의 임무를 머릿속에 되새겨보았다.
임무의 목표가 숨겨져있던 거대한 성채.
그곳에 잠입한 아리엣과 이오가 봉인을 풀고 괴물의 팔 하나를 회수한 상황이었다.
다만 그곳에서 무언가 중요한 대화를 나누었던 것인지, 전투가 소강상태에 이르러서도 아리엣이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화 내용을 들을 수 있다면 좋았을텐데.”
게임 속의 캐릭터가 도전하는 [전설 임무]는 단순히 기사단을 시험하기 위한 임무가 아니다.
무언가의 목적을 가지고 수행해야만 하는 중요한 임무.
하나같이 칠흑기사단의 궁극적인 목표와 맞닿아있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아리엣이 저런 표정을 지을만한 것이라면, 분명 중요한 비밀과 엮여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면 알레테이아의 중요한 비밀을 하나 알아냈을지도 모른다.
나는 캐릭터들의 대화를 엿듣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손가락을 넘겼다.
– [전설 임무]의 클리어에 따른 [운명개화 포인트]가 다음과 같이 정산되었습니다.
– 이오(EX) : + 24
– 아리엣(EX) : + 26
임무를 클리어하면서 배분된 [운명개화 포인트]의 정산비율은 24대 26.
시스템은 아리엣의 기여를 조금 더 높게 쳐준 모양이었다.
메세지를 확인한 나는 다시 한 번 손가락을 넘겼다.
이번 임무의 클리어에 따른 보상이 하나 더 남아있는 까닭이었다.
스윽-.
화면을 넘기자 이번에는 역사의 분기점에 관한 메세지가 출력되었다.
– WARNING! 해당 [전설 임무]가 새로운 역사의 분기점을 발생시켰습니다.
– 역사의 분기점이 발생함에 따라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 포탈의 발생 범위가 증가합니다.
– [드림 커넥터]의 관리 권한이 해금되었습니다.
역사의 분기점에 도달함에 따라 찾아온 알레테이아의 기능 강화.
그 결과로 이번에는 2가지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하나는 포탈의 발생 범위 증가.
그리고 다른 하나는 [드림 커넥터]의 권한 해금.
나는 메세지의 하단에 적혀있는 권한에 대한 문구를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작동 권한이라는게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런건 아니겠지?”
[드림 커넥터]는 간헐적으로 알레테이아의 꿈을 꾸게 만들어주는 기능이다.그런 [드림 커넥터]의 관리 권한을 얻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겠는가.
적어도 내가 짐작할 수 있는 형태는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손을 움직여 알레테이아의 로비로 돌아갔다.
그리고 메인 화면의 한구석에 위치해있는 새로운 아이콘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그 권한인가?”
툭-.
새로 추가된 아이콘을 터치하기 무섭게, 낯선 페이지가 화면에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모래시계의 형상과 함께 출력된 페이지의 안내 문구.
나는 화면에 떠오른 정보들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드림 커넥터 제어시스템]– 현재 축적율 : 87%
– 잔여 시간을 소모해 [드림 커넥터]를 강제로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 강제로 활성화한 [드림 커넥터]는 축적율을 전부 소모하는 경우 종료됩니다.
– [드림 커넥터]를 강제로 활성화 하시겠습니까?
– 예 / 아니오
제어시스템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페이지의 내부에, 축적율이라는 수치가 표시되고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설명은 해당 페이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드림 커넥터]의 활성화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
그것이 이번에 추가된 [드림 커넥터 제어시스템]의 역할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제부터는 [드림 커넥터]를 내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알레테이아에 내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인 모양이네.”
역사의 분기점을 달성한만큼 분명 의미있는 보상이 찾아올거라는 사실은 짐작하고 있었다.
허나 [드림 커넥터]에 대한 제어권한은 나로서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언제라도 기사단의 단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난해한 혜택이었다.
나는 고민에 빠진 눈으로 스마트폰을 바라보다가, 우측 상단에 위치해있는 [분기점 계산기]에 시선이 닿았다.
– [6 / 32]
화면에 보이는 숫자를 확인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변화가 일어난 것은 [드림 커넥터]의 관리 권한만이 아니었다.
시야에 보이는 [분기점 계산기]의 진행도는 어느새인가 6이라는 숫자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지난번과 비교했을때 3이 뛰어오른 수치.
지금까지의 증가폭과는 확연히 다른 변화가 그곳에 나타난 것이다.
* * * * * *
성도, 오르스케이프.
아무도 없는 산책로를 홀로 거닐던 성 알칸디오가 발걸음을 멈추었다.
성 알칸디오의 시야에 보이는 하늘의 기세가 심상치 않은 까닭이었다.
성도의 날씨는 대부분 화창한 편이었지만, 드물게 이런식으로 먹구름이 몰려오는 때가 있었다.
하늘에서 몰려오는 먹구름의 모습에 성 알칸디오는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평소라면 성 아스티야가 이 근처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었을텐데.’
오르스케이프에 항상 머물던 성인 중 하나, 성 아스티야는 비가 오는 날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비가 내릴 때마다 신나서 맨발로 산책로를 돌아다닐 정도였다.
교황청의 성직자들은 그녀를 볼때마다 체통을 지켜달라 부탁하지만, 성 아스티야는 자중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인물이었다.
적어도 원탁의 성인들중에서 가장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리고 그랬던 성 아스티야가, 지금은 이 거리에서 완전히 모습을 감춘 상황이었다.
칠흑기사단과의 교전에서 패배하고 실종되어버린 것이다.
‘사도님이 그렇게 화내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지.’
성 아스티야의 실종 이후, 성도에는 연일 무거운 분위기가 감도는 중이었다.
성인들 중 하나가 죽음을 맞이했음에도 성 아스티야쪽에 더욱 시선이 향하는 것은, 그녀를 잃어버린 사도 에드거스의 심상치않은 반응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성 아스티야를 자식처럼 아끼던 사도 에드거스가 반쯤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다.
오래된 소문으로만 들었던 그의 불같은 성정을 직접 마주한 성직자들은 그제서야 소문의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만큼 사도 에드거스에게 있어서 성 아스티야는 각별한 존재였다.
‘칠흑기사단··· 처음 그 이름을 알게된 것이 아리엣이라는 흡혈귀를 마주했던 때였던가.’
이번에 성 아스티야를 패퇴시킨 칠흑기사단의 이름은 성 알칸디오에게 있어서도 특별한 것이었다.
그가 라케일 알렌바흐의 승격의식을 저지하고자 벌였던 전투에서, 성 알칸디오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의식을 강행시킨 흡혈귀가 칠흑기사단의 일원이었으니까 말이다.
심지어는 의식이 끝난 뒤, 라케일을 그에게 던져주고 봉인석을 챙겨나가기까지 했던 아리엣이었다.
지금도 성 알칸디오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치를 떨고는 했다.
‘다음에 만나서도 그때처럼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한 일이겠지. 적어도 성 아스티야의 복수를 할 정도로는 강해져야 할 터.’
꽈악-.
과거의 일을 회상하던 성 알칸디오가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그날 이후로 성 알칸디오는 매일같이 기도와 훈련을 반복하고 있었다.
흑마법사들 사이에서 이미 악명을 떨치던 성 알칸디오지만, 현재에 만족한 채로 같은 자리에 머물러서는 곤란했다.
신성교단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라도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상념에 빠져있던 성 알칸디오가 산책로에서 몸을 돌리려던 순간.
콰릉!
하늘에 드리워진 먹구름 사이로 낙뢰가 떨어지며, 산책로에 서있던 성 알칸디오의 손등을 꿰뚫었다.
“크흐윽······!”
손등을 타고 퍼져나가는 강렬한 격통.
번개에 꿰뚫린 손을 붙잡은 성 알칸디오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갑작스러운 낙뢰로부터 전해져오는 고통을 버텨내기 위함이었다.
치이이이익-.
낙뢰가 떨어져 붉게 달아올랐던 성 알칸디오의 손등은, 하늘에서 떨어져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에 젖어 식어가는 모습이었다.
후우.
입술을 깨문 채로 숨을 고르던 성 알칸디오가, 자신의 손등에 어렴풋이 남은 붉은 자국을 바라보았다.
“윽.”
눈살을 찌푸린 성 알칸디오가 낙뢰가 새겨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이내 그곳에서 희미한 빛이 번지며 무언가의 형상을 그려나갔다.
별을 꿰뚫는 칼날의 형태.
교황청에 방문한 적이 있는 성직자라면, 누구라도 그 정체를 알만한 문양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성 알칸디오의 눈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어느 순간 손등에 번지던 빛이 빠져나가며, 성 알칸디오의 손등에는 선명한 검은 문양이 새겨진 모습이었다.
– “빛의 수호자여. 신앙의 적을 멸하라.”
성전을 이끄는 용사의 상징.
그리고 신성교회와 인간을 수호하는 인류의 빛.
헤리오바르의 미친 성기사, 성 알칸디오의 귓가에 선명한 목소리가 스쳐지나갔다.
그가 이번 대의 새로운 용사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