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83
84.용사 (4)
– “알데어 크로우라이트. 칠흑기사단의 편을 들 생각인가?”
성검을 쥔 알칸디오의 눈이 알데어를 노려보았다.
화륵-!
맹렬한 불길과도 같이 작열하는 날개가 막대한 열기를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알데어는 그런 알칸디오의 모습을 마주하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은 채 앞으로 나섰다.
파스스-.
앞으로 걸어나가는 알데어의 주변에는 옅은 그림자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나.”
– “뭐······?”
“내가 칠흑기사단의 단장이라는 작자에게 갚아야하는 빚이 하나 있으니 말이다.”
뻗어나오는 묵빛의 궤적이 허공에 색채를 더해나갔다.
알데어의 주변을 휘감은 맹렬한 그림자.
그런 그림자로부터 느껴지는 기세에, 알칸디오가 자신의 눈살을 찌푸렸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이 노부가 네놈과 손을 잡을 일은 없지 않겠더냐?”
– “분명, 플레이아데스에 전향했다고 했나.”
“칠흑기사단의 기사. 네가 원하는 물건을 챙겨서 이곳을 벗어날 기회를 주마. 물론, 다음에 만나면 이런식으로 보내주는 일은 없을게다.”
주먹을 움켜쥔 알데어가 자세를 잡았다.
알데어의 눈에서 강렬한 살기가 뻗어나오며, 무인의 기백이 주변의 분위기를 뒤바꾸었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 완벽한 자세.
알데어의 주먹으로부터 확산하는 그림자는, 세계를 칠하는 먹물이 되어 흩뿌려지고 있었다.
아스티야는 그런 알데어의 태도에 의문을 표하려다가, 이내 다시 고개를 저으며 알칸디오를 바라보았다.
‘단장이라면 천하의 알데어에게 빚을 지워놓았어도 이상하지 않아.’
그녀가 아는 단장이라면, 북방의 붉은 까마귀에게조차 빚을 달아놓을 수 있을 터였다.
그렇기에 아스티야는 알데어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서 알칸디오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그녀에게도 단장에게도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 터였다.
쥐고 있던 검을 아래로 내린 아스티야가 알칸디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성흔기사라고 소개했나요? 어느새 용사가 되었나보네요, 알칸디오.”
– “······그래.”
“축하해요. 물론 알칸디오가 새로운 용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제 답은 결코 바뀌지 않을테지만요.”
아스티야의 선명한 시선이 알칸디오의 금빛 눈동자를 마주했다.
일그러지는 대기속에서 무겁게 가라앉은 알칸디오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 “대체··· 단장이라는 인물이 어떤 자이기에 널 그렇게까지 만든거지? 내가 용사라는걸 알면서도, 그런 대답을 내어놓는다는게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군.”
“초대 용사.”
– “뭐라고······?”
“칠흑기사단의 단장은 자신의 입으로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믿고 따를 뿐이니까요.”
철컥-.
뽑아놓았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아스티야의 눈동자가, 바다와도 같은 푸른 빛으로 물들었다.
알칸디오에게 있어서는 낯선 눈동자가 지상에 재림한 신의 대행자를 비추고 있었다.
아스티야의 입에서 나온 단장의 정체에, 알데어와 알칸디오의 얼굴이 동시에 딱딱하게 굳었다.
그만큼 그 정체가 이 자리의 모두에게 있어서 충격적이었던 까닭이었다.
– “초대 용사가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는건가?”
“적어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어요.”
– “하······.”
아스티야를 마주한 알칸디오의 눈에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 “설령 단장의 정체가 초대 용사라고 하더라도, 대체 왜··· 마신의 봉인을 풀려고 시도하는거지?”
“글쎄요. 그것만이 그가 선택한 유일한 정답이기 때문이겠죠.”
– “그게, 네가 아는 단장의 생각인가.”
알칸디오의 싸늘한 눈동자가 알데어와 아스티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화르륵-!
화려하게 타오르는 신앙의 불길이 성검을 휘감으며 그들을 겨누고 있었다.
– “······아스티야. 나는 이번대의 용사로 선정되고 나서, 교황성하로부터 비밀리에 전해져오던 과거의 일면을 들을 수 있었다.
– “그리고 그중에는, 초대 용사에 대한 이야기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 “초대 용사는 이미 한차례 영락했다. 모든 위업을 수행한 이후의 그는,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끝내 제 동료마저도 마신에게 제물로 바쳤지.”
알칸디오가 이야기하는 교단의 비밀에, 아스티야가 그를 향해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런가요? 역시 성하께서는 교단의 여러 가지 비밀들을 알고 계셨던 모양이네요.”
– “그러니 네가 말하는 것에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 “설령 단장의 정체가 선대의 용사라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런 광인(狂人)의 이야기를 곧이 곧대로 들을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 “제정신이 아닌 미치광이의 그릇된 행동은, 누군가 바로잡지 않으면 안돼.”
일찍이 단장이 해주었던 옛날 이야기가, 이 자리에 있는 아스티야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한차례 실패를 마주했던 잊혀진 영웅의 과거.
그 속에서 단장은 스스로의 치부마저 밝힌 채로, 그녀에게 자신이 가진 기억의 단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아스티야는 제 손으로 칠흑기사단과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다.
적어도 그녀가 가지고 있는 ‘눈’으로 바라보았던 단장은, 세계를 구원하겠다는 열망을 진심으로 불태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미 하늘의 보호는 끝났어요, 알칸디오. 스스로의 손으로 맞서싸우지 않으면, 결국 마지막에는 무엇 하나 남아있지 않은 순간이 찾아올거예요.”
– “······.”
“저는, 적어도 제 손으로 세계를 지키고 싶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것도 못한 채로 후회하고 싶은 생각은 없네요.”
“——쓸데없이 이야기가 길군.”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돌려주는 아스티야의 앞을, 알데어의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가로질렀다.
카가가가각-!
아스티야와 알칸디오.
두 사람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상흔.
경계를 그어내듯이 지면에 상흔을 새겨넣은 알데어가 아스티야를 향해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성직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아. 왜냐하면, 빌어먹을 성직자들이 제 믿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이야기가 끝도 없이 길어지더군.”
“조금 길었나요?”
“둘이서 나누던 이야기는 썩 흥미로웠다만, 애석하게도 내 인내심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구나. 신앙에 미친 용사라는 놈과 계속해서 언쟁을 벌일바에야, 네 주인이 시킨 일을 먼저 마치는게 낫지 않겠느냐?”
아스티야를 바라보는 알데어의 태도는 완고한 편이었다.
더 이상 이야기를 길게 끌지마라.
그게 아스티야에게 호의를 권하는 알데어의 마지막 제안이었다.
처음부터 알데어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한 이상, 굳이 이 이상으로 알데어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다.
끄덕-.
알데어를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인 아스티야가, 알칸디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움직였다.
“신성교단의 용사에게도, 칠흑기사단의 기사에게도 양립할 수 없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는거겠죠. 그리고 사도님에게는··· 알칸디오가 잘 말해줄거라고 믿을게요.”
– “아스티야! 이대로 도망가게 놓아둘 것 같으냐······!”
통로를 향해 몸을 돌린 아스티야가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 터벅-.
통로에 울려퍼지는 아스티야의 발걸음 소리를 앞에 둔 채로, 격노한 알칸디오의 노호성이 복도에 울려퍼졌다.
허나, 아스티야가 그를 다시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봉인석을 향해 나아가는 아스티야를 대신해 나선 것은, 주먹에 그림자를 두르고 있는 알데어 쪽이었다.
“애송아. 그건 나를 꺾고 난 이후에 해야하는 이야기가 아니더냐?”
– “알데어! 나를 방해하지 마라——!”
“껄껄. 젊은 녀석이라 그런지 기운이 좋구나.”
치이이익!
사방으로 뻗어나가던 알데어의 권역이, 알칸디오가 발하는 신성력과 충돌하며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알데어는 자신을 노려보는 알칸디오를 응시하면서, 여유가 담겨있는 호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 노부는 언쟁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있느냐?”
– “알데어 크로우라이트······! 더 이상 나를 방해한다면 죽여버리겠다!”
“그런 귀찮은 것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없이, 투쟁에서 이겨버리면 그만인 이야기이지 않느냐.”
알데어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칠흑의 그림자가 사방을 덮으며, 유적 내의 모든 것들이 그 색채를 잃어버렸다.
잿빛으로 뒤덮힌 세계에서 빛을 발하는 것은, 제 신앙을 불사르고 있는 용사 알칸디오 뿐.
그런 알칸디오를 앞에 두고서, 알데어의 수도가 매섭게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용사라··· 완전히 성장한 건 아닌 모양이지만, 용사와는 한번쯤 겨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 “—빛이여! 당신의 적을 멸할 힘을 내게 주소서!”
“어디, 그 실력이 인세의 수호자를 자처할 정도인지 확인해보자꾸나.”
우우우우웅-!
색채를 잃어버린 세계가 진동하는 가운데, 알데어의 수도가 그림자를 휘두르며 내려꽂혔다.
종으로 그어지는 일섬.
일찍이 제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그림자의 혈족이, 용사를 향해 자신의 전력을 드러내었다.
“—파계.”
알데어의 일격이 뻗어나간 직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사방에 퍼져나갔다.
* * * * * *
안데르크 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동굴.
그곳에서 알데어는 피를 흘린 채로, 시커멓게 물든 팔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알데어의 앞에는, 로브를 뒤집어 쓰고 있는 남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모닥불의 현자, 글라이온.
플레이아데스의 수장이자 흑마법의 정점에 달한 마법사가, 알데어의 상처를 바라보며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
“무모한 짓을 벌였군요. 알데어.”
“무모한 짓이라. 전부 네놈이 이야기했던 계약이 불완전한 탓이 아니더냐.”
껄껄-.
알데어는 그렇게 말하며 괴사해가던 팔을 글라이온에게 내밀었다.
용의 유적에서 벌어졌던 용사와의 싸움에서, 알데어는 그를 쓰러뜨리기 위해 위신의 권능까지 끌어내었다.
용사가 쌓아올린 업과, 그가 휘두르는 신벌에 대항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신성교단의 용사와 벌였던 치열한 투쟁 끝에, 알데어의 한쪽 팔은 시커멓게 물들어버린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용사라도, 사도급에 필적하는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계약으로 맞서는건 바보같은 판단이었죠. 거기서는 봉인석을 챙겨 물러나는 편이 나았을겁니다.”
“위신의 권능은 도구에 불과하다. 그를 다루는 것은 온전히 내 무학이 아니더냐.”
“물론, 그 실력덕분에 용사를 물러서게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네놈이 준 권능이 조금만 더 멀쩡했더라도, 용사를 자처하는 녀석을 제대로 짓뭉개놨을텐데 말이다.”
파앗-!
글라이온의 지팡이에서 뻗어나온 빛이 알데어의 팔을 휘감아 치유했다.
알데어는 팔에서 전해져오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결코 비명이나 신음소리를 밖으로 흘리는 법이 없었다.
까드득.
이를 갈며 통증을 버티는 알데어를 향해, 상처를 치유하던 글라이온이 질문을 던졌다.
“알데어. 칠흑기사단의 기사에게 봉인석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래. 어쩔 수 없이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대체 왜 그런 선택을 한겁니까?”
알데어를 향한 글라이온의 질문.
그것은 칠흑기사단의 기사에게 봉인석을 내어준 일을 추궁하는 것이었다.
플레이아데스의 의사에 반하는 일임에도, 알데어는 칠흑기사단에 순순히 봉인석을 넘겨준 것이다.
글라이온이 그 이유를 캐물으면, 알데어는 호탕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로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단장이라는 자에게 빚을 졌다.”
“빚이라··· 당신이 혈족의 기술을 전수하던 기사를 이야기하는 겁니까?”
“그것을 포함해서, 가볍지 않은 빚이었지. 빚을 갚는 일은 이걸로 마지막이다.”
그런 알데어의 답변에, 글라이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분명 이번이 마지막이겠죠.”
“그리고 그곳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 어디 한 번 들어볼테냐?”
“재미있는 이야기··· 무슨 이야기를 듣고 온겁니까?”
“칠흑기사단의 단장이 초대 용사라더군.”
알데어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
그것을 들은 글라이온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순식간에 돌변한 글라이온의 표정에, 알데어는 피식 웃으며 그를 향해 이야기했다.
“네놈이 그런 표정을 짓는건 처음 보는 일이군.”
“초대 용사라··· 그렇군요. 알데어, 생각보다 괜찮은 정보를 가져오셨습니다.”
“퍽 흥미로운 이야기였지. 물론,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좋아하지 않지만 말이다.”
알데어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왼손에 들고 있던 육포를 거칠게 물어뜯었다.
으적, 으적-.
귀족의 품위같은 것은 완전히 내다버린 채로, 야성적인 모습으로 허기를 채우는 알데어.
그런 알데어의 팔에 간단한 치료를 마친 글라이온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당신은 언제나 그런 성격이었죠. 마법사의 잔소리도 싫어하지 않습니까?”
“글쎄. 그럴지도 모르겠군.”
“제가 할 수 있는 치료는 이정도가 전부겠군요.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줄겁니다.”
“또 다른 봉인석을 찾아나설 생각이냐?”
글라이온은 지팡이를 휘저어, 동굴의 근처에 쌓여있던 눈을 흩어버렸다.
그리고는 알데어의 질문에 짧은 답변을 돌려주었다.
“알데어의 빚 덕분에 봉인석을 놓쳐버리지 않았습니까. 이제부터 그걸 대신할 물건을 찾아봐야겠지요.”
“그건 제법 미안하게 됐군.”
“그리고, 당신에게 들은 이야기 덕분에 고민할 거리가 새롭게 생긴 것 같으니 말이죠.”
고개를 돌린 글라이온의 시야에 눈에 뒤덮힌 설산의 풍경이 들어왔다.
새하얀 풍경.
그 속에서 글라이온의 시선은 검게 물든 무언가를 뒤쫓고 있었다.
* * * * * *
성도, 오르스케이프.
신성교단의 사도 오르니오를 필두로, 그를 따르는 몇몇 성인들이 심각한 얼굴로 원탁을 바라보았다.
부상을 입은 용사 알칸디오로부터 전해져온 충격적인 소식.
교단의 성인들에게 있어서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벌어진 까닭이었다.
“성 아스티야가··· 신앙을 저버리고 배교를 선택했다는 말입니까!”
콰앙-!
사도 오르니오의 주먹이 원탁을 강하게 내려쳤다.
사도의 주먹에는 선명한 광휘가 흘러나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사도 오르니오를 향해, 성인들 중 하나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시성받은 성인이, 그것도 칠흑기사단에 전향했다는 이야기를 보고받아야 한단 말입니까!”
격노한 사도 오르니오의 시선이 성인들을 훑으며 지나갔다.
시성받은 이가 신앙을 저버렸다.
신성교단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타격으로 다가올만한 이야기였다.
꽈악-.
원탁에 놓인 사도 오르니오의 주먹이 그 핏대를 뻣뻣하게 드러내었다.
“그저, 성 아스티야의 신앙이 저희의 예상보다······.”
“차기 사도 후보로 거론되던 인물입니다! 그런 자가 신앙을 버리고 이단에게 넘어갔단 말입니다!”
“며, 면목이··· 없습니다.”
평소부터 사도 에드거스와 함께 아스티야를 지도하던 성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성 아스티야는 성도의 성인들 중에서도 입지가 남다른 인물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더 강력하고 유용한 기적을 지녔으며, 그 검기는 숙련된 성기사조차 어린아이마냥 가지고 놀 수 있는 수준이었다.
충분히 성장한다면 신성교단의 다음 기둥이 될 수 있는 존재.
거기에다가 원탁 내에서도 신탁을 자주 내려받는, 가장 찬란한 빛에게 사랑받는 성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성인이 칠흑기사단에 넘어갔으니, 교단이 뒤집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이러한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대체 어떻게 성인을 관리했길래, 그만한 재목이 순교를 포기하고서 배교를······.”
“······.”
“에드거스 사도와 당신들에게 성도를 맡기고서 돌아다니지 않았습니까! 이제 어떤 낯짝으로 하늘을 올려다봐야 한다는 말입니까!”
“사도님······.”
“에드거스 사도는 상태가 어떻습니까? 성 아스티야의 지도를 담당한건 그분이 아닙니까.”
흉흉한 빛을 머금은 사도 오르니오의 시선이 성인들에게 사도 에드거스의 상태를 추궁했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압박당하는 듯한 강렬한 기백.
사도가 발하는 분위기에 짓눌린 성인들이, 제 입술을 곱씹으며 보고를 이어나갔다.
“에, 에드거스 사도님께서는 어제 밤에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현재 안정을 취하며 치료를 받고 계신다고 합니다.”
“에드거스 사도가 눈을 뜬겁니까?”
“······예.”
“당장 에드거스 사도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십시오. 지금 바로 에드거스 사도와 이야기를 나누어야겠습니다.”
펄럭-.
원탁에서 몸을 일으킨 사도 오르니오가 제 망토를 휘날리며 성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사도 오르니오의 지시를 받은 성인들 중 하나가, 쩔쩔매며 그를 향해 대답을 늘어놓았다.
“사, 사도님··· 일어난지 얼마 안되어 안정이 필요하신 분인데······.”
“허. 교단의 최고위 사제들이 한참동안이나 달라붙어있었는데, 그 이상 정양이 필요하다는 말입니까?”
“이제서야 의식을 차리신게 아닙니까······.”
“에드거스 사도는 그리 나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그를 향해 안내하십시오.”
그렇게 말한 사도 오르니오가 손을 뻗어, 제 앞에 있는 성인의 어깨를 감싸쥐었다.
힘이라고는 전혀 들어가있지 않은 부드러운 손길.
그럼에도 어깨를 붙잡힌 성인은, 제 목에 칼이 겨누어진 듯한 서늘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성인을 향해 사도 오르니오가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지금 바로 그에게 전해야 하는 이야기가 생겼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