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88
89.첫번째 신화 임무 (1)
일곱번째 기사, 리네어가 칠흑기사단에 합류하고서 사흘.
그동안 나는 [랜덤 아이템 박스]를 이용해 수차례 아이템 뽑기를 반복해왔다.
리네어에게 쓸만한 검을 선물해주고, EX랭크의 장비를 통해 기사단의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서였다.
[신화 임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전력보강이 필수일 터.그렇기에 나는 사흘동안 계속해서 장비 뽑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지난 사흘간 쏟아부었던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일까.
몇개인가 EX랭크의 장비를 획득하고서, 버튼을 누르는 정신조차도 슬슬 지쳐가기 시작할 즈음.
나는 비로소 검의 형상을 한 EX랭크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 아이템 박스에서 [장비 :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가 나왔습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화면속에서 비추어지는 불길한 외형의 검.
장비의 이름에서부터 ‘마검’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있는, 누가봐도 검처럼 보이는 물건이 등장한 것이다.
사흘만에 이룬 쾌거에 나눈 화면을 바라보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EX랭크 검이 기어이 나오긴 나오는구나.”
나는 반쯤 감겨있는 눈으로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리네어에게 선물하기 위해 EX랭크 아이템을 찾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선물하는 검은 단순히 리네어만을 위한 물건이 아니었다.
을 통해 모든 검을 공유받는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장비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만큼 리네어에게 선물할 명검의 옵션을 확인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툭-.
나는 아이템의 이름을 터치해 해당 장비의 상세정보를 확인해보았다.
내가 아이템의 이름을 누르는 것과 동시에, 새로 획득한 마검의 효과가 화면에 출력되는 모습이었다.
[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 ]– 모든 종류의 부정적인 효과를 긍정적인 효과로 변환합니다.
–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에 덧씌워진 투기의 위력이 50% 감소합니다.
–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에 덧씌워진 투기의 효율이 50% 감소합니다.
– 장착 캐릭터가 받는 피해가 50% 증가합니다.
* RANK S 이상의 모든 장비에 다음과 같은 효과가 추가됩니다.
– 장착 캐릭터의 물리방어가 50% 감소합니다.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의 효과를 읽어보던 나는, 지금까지의 장비들과는 전혀 다른 효과에 졸음이 달아나는 기분이 들었다.장비 아이템에 붙어있는 모든 효과가 부정적인 내용으로 가득차있다.
하나부터 열까지, 장착 캐릭터의 능력치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만 이루어져있는 것이다.
물론 아이템에 그런 효과들만 붙어있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가 가지고 있는 첫번째 기능.‘부정적인 효과를 긍정적인 효과로 변환’하는 능력 때문이었다.
“부정적인 효과라··· 이러면 디버프에도 완전히 면역인건가?”
디버프 효과를 받는 경우 그것을 버프 효과로 전환하는 능력.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질적이었지만,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상당한 메리트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었다.
게다가 아이템의 자체 능력치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EX랭크에 놓일만한 수준이었다.
내가 투기를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리네어가 사용하기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아이템을 리네어에게 건네주기로 결심했다.
“이건 검이니까 무조건 정령에게 먹이면 되는거겠지. 뭐, 며칠동안 수확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이만하면 됐나.”
당연하지만 사흘동안 리네어에게 줄 아이템만 수확한건 아니었다.
그 외에도 뽑기에서는 다양한 EX랭크의 아이템들이 나왔으니까 말이다.
예를 들자면 이번에 획득한 [아트로니어의 차원가방(EX)]같은 아이템이 그러했다.
자그마한 가방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아이템은 특정 상황에서 전투에 도움이 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 아트로니어의 차원가방(EX) ]– 스크롤에 적혀있는 마법을 고정합니다.
– 고정된 스크롤은 소멸합니다.
* 하루에 한 번, 다음과 같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 고정되어있는 마법과 동일한 효과를 가진 스크롤을 생성합니다.
– 동일한 종류의 스크롤은 하나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스크롤에 적혀있는 마법을 고정하는 효과.
얼핏 봐서는 어디에 쓰는지 난해해보이는 효과지만, 그 진가는 아래쪽에 있는 효과에서 드러난다.
하루에 한 번, 스크롤 가방을 서로 다른 스크롤로 가득 채워주는 효과다.
다시 말해서 이 가방에 스크롤을 고정해놓기만 한다면, 매일같이 스크롤을 리필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평소에 스크롤을 수집하고 다니는 레온에게 있어서 무척이나 도움이 되는 장비 아이템인 셈이다.
“특히나 이건 레온 전용 아이템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물건이었지.
[역천마검 – 아르티우스(EX)]를 제외한다면 이번에 뽑은 아이템들중에서 최고의 수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하기야, 이런 효과를 가지고 있으니까 EX랭크로 분류될 수 있는거겠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이번 뽑기를 통해 상당한 전력상승을 거친 것만은 틀림없었다.
그와 더불어 화면의 우측 상단에 표시된 마이너스 운명석 역시 상당히 그 체급이 불어난 모습이었다.
‘-4,378,900.’
마이너스 사백 삽십 칠만 팔천 구백 운명석.
머지않아 마이너스 5백만의 고지에 도달할만한 수치였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숫자를 살펴보다가, 이내 다시 인벤토리로 시선을 돌렸다.
목표로 하던 뽑기를 끝마쳤으니 이제는 아이템을 분배해 전력을 강화할 차례였다.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아이템을 착용하거나 상태를 점검하고 나면, 그 다음에 해야할 일은 이제 하나뿐이었다.
[신화 임무].그동안 유예해왔던 최상위 임무에 비로소 도전할 차례가 찾아온 것이다.
“아이템을 전부 선물하고 나면, 드디어 신화 임무에 도전해볼 차례인가.”
툭-.
화면을 터치해 인벤토리를 닫아버린 나는, 알레테이아의 로비를 돌아다니는 단원들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아이템을 선물하는게 먼저였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단원들을 창고로 보내 필요한 물건들을 선택하게 하는 일이었다.
어느쪽이든 준비는 철저해야만 했다.
이것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기억속에서조차, 끊임없이 나를 향해 경고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신화 임무라······.”
과거도. 지금도.
저 하늘의 너머는 온갖 위험들로 가득차있으니까 말이다.
* * * * * *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이 모두 정비를 끝마치고 난 이후.
나는 긴장한 얼굴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내가 쥐고 있는 스마트폰의 화면에 떠올라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임무] 페이지였다.
그리고 해당 페이지의 활성화 카테고리에는 [신화 임무]라는 이름이 적혀있는 모습이었다.
“······.”
처음 이 페이지를 보았을 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해왔다.
지금의 칠흑기사단이 도전할 수 있는 임무가 맞는걸까.
[신화 임무]에 도전한다고 한다면, 단원들이 무사히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바깥세계의 괴물들을 토벌하는 임무를 앞두고서, 수많은 걱정이 내 머릿속을 뒤덮었던 것이다.
“언제까지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결심을 내리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필요로했다.
허나, 아직까지도 걱정이 완전히 가시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시선으로 화면속의 페이지를 훑어본다.
한차례 간단하게 확인만 해둔채로 유기해두었던 임무탭에는, 몇가지 [신화 임무]가 보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가장 난이도가 낮아보이는 임무쪽이었다.
– [신화 : ■■■■의 권속, ‘누크타트’ 토벌]
목록의 최상단에 보이는 해당 임무는 내가 이곳의 신화 임무들 중 유일하게 해볼만하다고 여긴 것이었다.
다른 [신화 임무]의 요구조건이 비현실적으로 까다로웠던 것에 반해서, 해당 [신화 임무]만이 유일하게 도전해볼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던 까닭이었다.
후-.
화면을 보며 짙은 한숨을 내쉬던 나는, 눈앞에 보이는 [신화 임무]를 터치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했다.
화면을 터치하는 것과 동시에, 해당 [신화 임무]의 개요가 표시되는 모습이었다.
[신화 : ■■■■의 권속, ‘누크타트’ 토벌 ]– 최대 참가인원 : 10명
– 최소 참가조건 : 운명개화 포인트 +40 이상
* 최소 참가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기사단원은 토벌대상에게 유효한 피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 제한시간 : 18시간
– 임무 개요 : 칠흑의 바다를 유영하는 잔영의 눈동자 누크타트는 그 거대한 눈으로 계속해서 대륙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누크타트의 시선이 격리장벽의 완전한 붕괴를 포착하는 순간, 대륙은 다시 한 번 거대한 혼란으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 보상 : 신규 특성 , 운명개화 포인트 +500
– WARNING! [신화 임무]가 개시된 이후부터 재생 및 치유계통의 효과가 제한됩니다!
– WARNING! 진행중인 [신화 임무]가 종료되기 전까지 새로운 임무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 WARNING! [신화 임무]의 목표를 충족하기 전까지 작전지역에서 이탈할 수 없습니다!
– WARNING! 관련 정보를 반드시 숙지하십시오! [신화 임무]의 실패는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긴장감이 느껴지는 경고문구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처음 보았을 때에도 압박감을 느꼈던 내용이지만, 다시 한 번 보더라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바깥세계에 존재하는 괴물을 토벌하는 임무.
단순히 누군가를 토벌하라는 내용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그 보상만큼은 무척이나 파격적이었다.
지금까지의 임무들과는 그 난이도부터 차원이 다르다는 증거였다.
“실패하면 기사단 전체가 사라질 수 있는 임무··· 이런걸 보여주면 도전하는 입장에서 압박감을 안느낄수가 없는데 말이지.”
헛웃음을 지으며 화면속의 문장을 다시금 곱씹어본다.
이런 경고를 나에게 보여주는 취지야 뻔한 것이었다.
바깥세계의 괴물을 결코 우습게보지 말 것.
그러한 경고를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비록 그 상대가 바깥세계의 존재들 중에서도 한없이 약한 녀석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대체 그 주인이라는 녀석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름조차 안보이는건지 모르겠네.”
더군다나 임무의 내용중에서도 가장 내 시선을 끄는 것은, 블라인드 처리되어있는 누크타트의 주인이었다.
—■■■■.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라도, 그 이름이 온전히 표시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신성교단이나 마신에 대한 내용이 시스템에서 가려졌을때와 비슷한 광경이었다.
격이 높은 존재는 시스템에서 그 이름을 제대로 표시할 수 없는 것일까.
알레테이아의 수준이나 나 자신이 쌓아올린 업에 그 해답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젠가는 저런 녀석과도 싸워야만 하는건가.”
나는 가려져있는 위신의 이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임무의 설정화면으로 시선을 되돌렸다.
이번 임무에 참여가능한 인원은 10명.
허나 그 10명을 내가 전부 채울 수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칠흑기사단의 정원이 아직 10명에 다다르지 못했을 뿐더러, 더군다나 [신화 임무]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운명개화 포인트 40 이상.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기사는 현재 기사단에 다섯명밖에 없었다.
이오 크로우라이트. 아리엣 크레이들. 레온 크로스비트. 세페이드 델타.
마지막으로 아스티야.
이렇게 다섯명만이 이번 임무에 참여할 조건을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임무에 참여하는건 다섯명. 뭐, 기준치를 넘긴 녀석들이니까 분명 잘해주겠지.”
임무에 파견할 인원을 고르는데 그 이상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신화 임무]에 도전하기 위해 단원들을 전부 알레테이아에 모아둔 상황이기도 했다.
나는 현재 임무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캐릭터를 차례대로 임무에 배정했다.
스윽-.
손가락을 옮겨 캐릭터를 선택할 때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가슴속에 얹히는 느낌이었다.
임무에 파견하는 것이 게임속의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의 존재라는 사실이 걸리는 것이다.
이곳에서 죽으면 더는 돌이킬 수 없다.
그럼에도, 임무를 마주하지 않고서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했다.
대륙을 혼란에 몰아넣을 바깥세계의 존재들을 격멸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만이 내가 단장으로서 알레테이아에 존재하는 이유였으니까 말이다.
“내가 아는 너희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동료들을 믿고 전장에 내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모든 캐릭터를 지정한 나는 [신화 임무]를 수락하는 버튼을 향해 손가락을 옮겼다.
그리고는 무거운 마음을 담아 화면을 터치했다.
임무 설정을 마친 내가 버튼을 터치한 직후.
지이이이잉-!
커다란 굉음과 함께 화면속에서 기이한 광채가 터져나오는 모습이었다.
– 기사단원 [이오(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아리엣(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레온(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세페이드(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 기사단원 [아스티야(EX)]에게 해당 임무가 부여됩니다.
쿠구구구궁-!
눈이 멀어버릴 것처럼 빛나는 광채.
그 앞에서 나는 굳은 얼굴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미지라는 것은 때로는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법이다.
그것이 인류에게 있어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했다.
허나, 그걸 알면서도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
“······부탁한다. 이오.”
* * * * *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
모든 기사단원들이 모여있는 로비에서, 이오의 시선이 거대한 포탈을 바라보았다.
푸르스름한 빛에 뒤덮혀있는 포탈은 아직 그 너머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허나, 그 너머에 어떠한 풍경이 다가올지는 이 자리의 모두가 예상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오는 눈앞에서 준비되고 있는 포탈을 바라보면서, 어딘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단장의 이름을 불렀다.
“······단장.”
이오의 뒤에 선 다른 기사단원들 역시 긴장한 눈으로 포탈을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이번에 받은 임무의 내용은 지령서를 통해 전달되지 않았다.
단지, 서포터의 입을 통해 이곳에 존재하는 모두에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모두가 그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었지만, 그에 대한 서포터의 대답은 간단한 편이었다.
– “신격의 본명, 외형, 상징, 능력에 대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허락되지 않음. 최악의 경우 알레테이아 자체가 공격받을 수 있음.”
단순히 기록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차원요새 알레테이아가 공격받을 수 있는 상대.
그들이 맞서싸워야할 바깥세계의 괴물이란 그런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단장은 충분히 맞서싸울 수 있는 상대라고 판단하고 임무를 내렸겠지만, 거대한 무게감이 단원들의 가슴속을 짓누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거짓된 신을 죽인다.
그 거대한 사명자체가 하나의 위업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 차원간의 연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성역과의 충돌에 대비하십시오.
포탈의 활성화를 기다리는 단원들을 앞에 두고서, 알레테이아 전역에 경고음이 울려퍼졌다.
모든 기사단원들이 이곳에 다가와서 처음으로 듣는 목소리.
차원요새 전체가 이번 임무를 위해 동원되고 있음을 알리는 목소리였다.
일렁이는 포탈을 바라보던 이오가 심호흡을 하며, 칠흑기사단에 처음 들어왔을때의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 날, 어둠속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준건 칠흑기사단 이외에는 없었어.’
레긴델트 교도소에 갇혀있던 나날.
그곳에서 좌절하고 있던 이오를 바깥으로 데려와준 것은 단장의 제안이었다.
단장이 있었기에 지금의 그녀가 있었고, 비로소 누군가를 위한 날카로운 검이 될 수 있었다.
알레테이아에서 처음 단장을 마주했을 때부터, 이오가 가지고 있던 결심은 하나뿐이었다.
단장을 위한 기사가 되겠다.
단장의 검이 되어 그를 위해 검을 휘두르겠다.
‘그러니까, 단장의 앞을 가로막는 어둠은 내가 전부 베어내겠어.’
지금도 해야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장을 가로막는 적을 베어낸다.
단장이 지키고자 하는 세계를 지킨다.
그것만이 칠흑기사단의 기사인 이오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명이었다.
그리고 이오 크로우라이트가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 차원간 연결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사전에 고지된 임무내용을 반드시 숙지하십시오.
– 성역과의 충돌에 대비하십시오.
– 포탈 개방까지 앞으로 5초.
– 4초.
이오의 시선이 진동하기 시작한 포탈을 바라보았다.
우우우우웅-.
일렁이는 포탈의 너머로 짙은 어둠에 뒤덮힌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지금부터 칠흑기사단이 상대해야하는 괴물, ‘누크타트’가 머무는 공간이 분명했다.
이질적인 눈동자 한쌍이 뚜렷한 의지를 내보인 채 선명하게 반짝였다.
– 3초.
– 2초.
– 1초.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카운트다운 속에서, 이오의 손이 허공의 그림자를 붙잡았다.
그와 동시에 포탈 너머의 풍경 역시 그 선명함을 드러내었다.
뚜렷해지는 상을 제 눈에 담은 이오가 자신의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의 눈에 비추어지는 광경은 이오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서는 무언가였다.
– 경고! 신화적 존재가 성역을 선포했습니다.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가 [성역 : 무너지는 그림자 정원]에 진입합니다.
우주를 유영하는 신격이 자신의 사상을 덧씌운 이질적인 공간.
수많은 업을 뒤집어쓴 육신 자체를 닻으로 삼아, 칠흑의 바다에 현현시킨 새로운 위상.
—성역.
흐트러진 그림자들이 피워올리는 꽃 사이로,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눈동자.
그들이 도달한 성역의 군주가 이오의 모습을 직시했다.
– 포탈이 개방되었습니다.
– 임무를 개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