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89
90.첫번째 신화 임무 (2)
그림자의 정원.
사방에 피어오른 그림자의 꽃이 흔들거리며, 질퍽한 어둠의 늪이 칠흑기사단을 반겼다.
철퍽-.
앞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이오의 눈이, 주변의 풍경을 훑으며 전장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주변의 공간 전체가 왜곡된 채로 이질적인 영역을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림자······.”
공중에 부유하고 있는 거대한 눈동자.
누크타트의 형체를 바라보던 이오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파스스슷-.
주변에 넘실거리던 그림자가 모여, 이오의 손에 한자루의 검을 빚어내었다.
그림자의 혈족으로 태어난 이오 역시 그림자를 제어하는 일에는 능숙하지만, 그럼에도 이런식으로 지형 전체를 그림자로 뒤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잔영의 눈동자, 누크타트의 제어능력은 명백히 이오가 제어하는 그림자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 “너희는··· 누구지······?”
우우우우웅-.
공간이 진동하며 묵직한 목소리가 성역 전체에 울려퍼졌다.
그 주인의 의사를 대행하듯이, 사방에 메아리치며 흩뿌려지는 목소리.
머릿속에 사념을 때려박는 듯한 웅혼한 목소리를 마주한 이오가 검을 들어올렸다.
지금의 그녀는 기사였다.
적을 상대함에 있어 당당함을 버릴 필요는 없었다.
“칠흑기사단 제1석, 이오 크로우라이트.”
– “칠흑··· 기사단······?”
“단장의 명령에 따라 너를 토벌하겠어.”
칠흑기사단의 모든 단원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뽑은 채로,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적을 겨누었다.
스릉-.
분열하는 아성을 뽑아든 레온의 검이 칠흑의 불꽃에 휘감겼다.
가방에 들어있던 스크롤은 전부 찢어져 산산히 흩날려지는 모습이었다.
후열에 선 아리엣은 백은을 들어올렸으며, 세페이드는 죽음의 궤적을 겨눈 채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뒤로, 황금빛 광채를 머금은 아스티야가 눈을 떴다.
– “재미있는··· 녀석들이군······.”
– “고작해야··· 미물주제에··· 나를··· 죽이겠다고······?”
“아스티야. 지휘를 부탁해.”
“알았어요! 사람을 다루는데 자신은 없지만, 일단은 최대한 열심히 해볼게요!”
이번 전투에 참여한 칠흑기사단의 단원들을 조율하는 것은,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스티야의 몫이었다.
하모니아를 뽑아든 아스티야가 긴장한 얼굴로 누크타트를 바라보았다.
후우-.
긴장한 단원들의 입에서 거칠어진 숨결이 터져나왔다.
“······전투 개시!”
아스티야의 검이 맹렬한 빛을 터뜨리는 것과 동시에, 아스티야의 입에서 전투의 개시선언이 흘러나왔다.
타다다다닥-!
아리엣과 세페이드를 제외한 전원이 그림자의 늪을 밟으며 누크타트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했다.
누크타트는 그런 칠흑기사단을 내려다보며, 거대한 눈동자의 핏줄을 선명하게 드러내었다.
꿈틀-.
보랏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기사단의 모습을 시야에 담으며 회전했다.
– “어리석은··· 것들··· 소멸을··· 알려주겠다······.”
“세페이드!”
단원들 중에서 가장 먼저 공격에 나선 것은 세페이드였다.
투창을 위한 자세를 잡은 세페이드는, 검은 투기를 끌어올려 죽음의 궤적을 완전히 뒤덮었다.
어둠에 공명한 창이 거칠게 진동하며, 세페이드의 손이 크게 떨렸다.
우우우우웅-.
막대한 양의 투기가 창에 집속되며, 주변의 대기마저 왜곡시키기 시작하는 모습이었다.
한계까지 힘을 불어넣은 창을 준비한 세페이드는, 그것을 들어 누크타트를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을 퍼뜨린 세페이드의 창이 검은 궤적을 그리며 앞으로 뻗어나갔다.
– “소용··· 없다······.”
누크타트를 향해 날아가는 칠흑의 섬광.
그것을 마주한 누크타트의 안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직후, 허공에서 막대한 양의 그림자가 쏟아져내리는 모습이었다.
하늘을 뒤덮듯이 무너져내리는 그림자.
흘러내리는 그림자의 일부가 손의 형상을 빚어내어, 누크타트를 노리던 죽음의 궤적을 틀어막았다.
콰앙! 카가가가각-!
선명한 투기를 발산하던 세페이드의 투창이 그림자의 손아귀에 가로막혀 멈춰서는 모습이었다.
단순한 투창으로는 통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달은 세페이드가 굳은 얼굴로 창과 위치를 뒤바꾸었다.
“······!”
허공에 떠오른 세페이드의 손아귀에, 어느덧 죽음의 궤적이 되돌아와 자리를 매꾸었다.
공격을 위한 자리를 잡은 직후, 투기를 잔뜩 머금은 세페이드의 창격이 누크타트를 향해 쇄도했다.
콰앙-! 쾅! 쾅! 쾅! 쾅!
매섭게 움직이는 창격이 연달아 누크타트의 그림자를 두드린다.
허나, 단단하게 응집되어있는 누크타트의 그림자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철옹성과도 같은 견고한 방어.
세페이드의 연격은 그곳에 흠집을 내는 것조차도 실패하고 말았다.
“공격이··· 안먹혀······!”
한차례의 공격을 쏟아낸 이후, 기세를 잃어버린 세페이드의 몸이 지상으로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누크타트를 타격하기 위해 도달한 장소는, 발을 디딜 곳이라고는 없는 아득한 상공.
공격에 실패한 세페이드의 몸이 착지점을 찾지 못하고 낙하하는 것이다.
낙하하는 세페이드에게 도움을 준 것은, 후방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아리엣의 몫이었다.
파앗-!
아리엣의 손에 쥐어진 백은이 빛을 발하며, 허공에 수많은 발판을 만들어내는 모습이었다.
“세페이드, 착지해!”
극한에 다다른 환영이 일시적으로 현실을 침식해 물리력을 행사한다.
타앙-!
커다란 소리를 퍼뜨린 세페이드의 다리가 아리엣의 발판을 딛고 멈춰섰다.
발판을 딛은 세페이드의 다리는 압박감에 후들거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창을 쥔 채 멈춰선 세페이드는 누크타트를 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후우, 후······.”
발판에 멈춰선 세페이드의 눈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누크타트를 공략하기 위한 다음 타격점을 찾으려 시도했다.
지상에 있던 아스티야 역시 자신의 ‘눈’으로 상대를 쫓으며 약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아스티야의 눈이 누크타트를 바라보는 것도 잠시.
하늘 위의 누크타트를 응시하던 아스티야가, 당황한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외쳤다.
“세페이드!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나요!”
“아스티야······!”
“지금 당장!”
아스티야의 목소리를 들은 세페이드는 그녀의 태도에 의아해하면서도, 망설이지 않고 곧장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을 선택했다.
발판을 밀어내고서 움직이는 한걸음.
공중에 머무는 것을 포기한 세페이드의 육신이, 누크타트로부터 멀찍이 거리를 벌리며 움직였다.
가능한 빠른 속도로 현재 위치에서 이탈한다.
그런 목적으로 내딛은 한걸음이었을 터였다.
그러나, 창을 들고 뛰어내리던 세페이드의 기감에 거대한 무언가가 걸려드는 모습이었다.
– “감히··· 내 앞에서··· 성역을··· 개변하려고··· 드는가······.”
누크타트의 눈이 거칠게 떨며, 보랏빛의 시선으로 아리엣을 노려보았다.
쿠구구구궁-!
공간이 진동하는 소리와 함께, 세페이드의 오른쪽에서 거대한 압박감이 전해져왔다.
성역 전체를 뒤덮는 듯한 끝을 모를 힘.
입을 벌린 세페이드의 시선이 한쪽에서 다가오는 무언가를 눈에 담았다.
“아······.”
파도.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그림자의 파도가, 세페이드를 포함한 주변 반경을 뒤덮기 위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마주한 세페이드가 황급히 창을 던지려고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스스로가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다가오는 파도가 타격하는 범위는 단순히 세페이드가 있는 장소만이 아니었다.
누크타트를 향해 다가오고 있던 기사단원 전원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공격.
처음부터 멀찍이 거리를 벌리고 있던 아리엣조차도, 눈앞의 괴물이 보내오는 파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세페이드!”
“레온! 이오! 충격에 대비해야만 해요······!”
아스티야의 다급한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졌다.
까드득-.
이를 악문 세페이드가 전신을 덮기 위한 투기를 끌어올렸다.
검은 기운이 확산하며 순식간에 세페이드의 몸을 뒤덮는다.
지상에 있는 기사들 역시, 저마다의 방법으로 파도를 저항하려고 시도했다.
신성한 빛이 뻗어나오고, 날카로운 그림자가 확산하며, 칠흑의 불꽃이 그림자를 밀어내기 위해 타올랐다.
그 사이에서 세페이드는 최대한 투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이었다.
“이게, 위신······.”
투기를 끌어올리던 세페이드의 머리 위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야 전체를 뒤덮는 듯한 끝없는 어둠.
막대한 질량을 갖춘 그것이 어느덧 세페이드가 있는 곳을 따라잡은 모습이었다.
콰아아아앙——!
밀려오던 거대한 파도가 세페이드와 충돌한다.
칠흑기사단 전체를 집어삼키듯이, 몰아치는 파도가 막대한 중압감으로 전신을 짓눌러왔다.
“으, 으윽······!”
파도를 마주한 세페이드의 입에서 거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금방이라도 몸이 터져나갈 듯한 압박감.
중압감에 억눌린 폐가 호흡을 유지하지 못한 채로 세페이드에게 고통을 호소했다.
귓가에 연신 울려퍼지는 굉음.
그 뒤를 이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뒤흔들리는 평형감각.
세페이드를 짓누르는 힘이 점점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세, 페이, 드——!”
파도에 휩쓸려 뒤흔들리는 세페이드의 귓가에, 아스티야의 목소리가 끝없이 번져나갔다.
지이이이잉-.
이명에 뒤덮힌 귀가 세페이드에게 통증을 호소해왔다.
균형을 잃어버린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숨을 참고, 눈을 감은 채로, 한도까지 투기를 끌어올릴 뿐인 상황.
그럼에도 피부를 짓누르는 살기가 상대와의 차이를 헤아리게 한다.
“크, 흐읍······.”
칠흑의 바다에 제 둥지를 틀고, 성역이라는 이름의 영지를 다스리는 신.
위대한 신격이 다스리는 영지의 위에서 상대해야하는 것은, 그들을 내려다보는 오만한 눈동자만이 아니다.
발을 딛고 있는 대지가, 들이마시고 있는 공기가, 올려다보고 있는 하늘이——.
그 모든 것이 전부 그들의 적이었다.
신을 상대한다는 것은 그러한 의미였던 것이다.
– “내··· 영지에··· 발을··· 내딛은··· 죄······.”
– “영혼의··· 소멸로··· 갚아라······.”
귓가를 짓누르는 이명속에서도, 위신의 의지만큼은 그녀의 뇌리에 선명하게 파고들었다.
성역 전체가 투사하는 의지는 그 어떤 것으로도 가로막을 수 없었다.
비틀거리는 몸으로 어딘가에 창을 꽂아넣으려고 하지만, 그럼에도 전신을 짓누르는 압력때문에 육체를 고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세페이드는 파도속에서 이리저리 휩쓸리며, 그녀를 기사단에 데려온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렸다.
단장.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남자는, 인간의 육신을 지니고서도 저러한 괴물을 상대하려고 했다.
—신을 베어내겠다.
오만함으로 가득찬 결의에 공감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세페이드는 제 육신에 전해지는 압박감으로 인해 뼈저리게 깨닫고 말았다.
‘단장은··· 대체 어떤 사명을······.’
스스로의 모든 생애를 바쳐서라도, 세계를 위협하는 모든 신격을 토벌하겠노라 주장하는 자.
단장이 짊어지고 있는 무게는, 결코 한낱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 * *
“세페이드!”
자취방에 세워놓은 스마트폰의 너머.
화면을 통해 기사단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던 내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전해지지 않을 목소리였지만, 그럼에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목소리였다.
잔영의 눈동자, 누크타트.
녀석은 [신화 임무]에 속한 위신들 중 가장 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위용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격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의미였다.
“빌어먹을······.”
토벌 임무가 생각보다 어려운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적은 우리의 예상보다도 강력했고, 성역이 가져오는 디메리트는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더군다나 녀석이 쏟아낸 파도 한번에 기사단원 전체가 휩쓸려버린 상황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토벌이 실패할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깨달은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화 임무의 실패는 기사단의 붕괴로 이어져.’
모든 임무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신화 임무]는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바깥세계의 괴물에 대항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
과거의 내가 찾아낸 유일한 해답이자, 칠흑기사단의 유일한 지향점이었다.
실패하면 안되는 임무다.
어떻게 해서든 성공해야만 했다.
임무가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 내가 직접 개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서포터. 내가 직접 개입해야겠어.”
아직까진 내가 개입할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있을터였다.
내가 짐작하기로 대략 2분이 조금 넘는 시간.
그 시간을 사용한다면, 내 손으로 누크타트를 무찌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이번 임무에 대한 보상은 받을 수 없겠지만, [신화 임무]를 클리어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을 터였다.
나는 옆자리에 서있던 미니 곰돌이를 붙잡고서, 녀석에게 들리도록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서포터. 이번 작전이 실패할지도 몰라.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개입하는 편이······.”
– 절레. 절레.
“······뭐?”
나는 임무에 개입하겠다는 내 의사를 서포터에게 이야기했다.
허나, 녀석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마치 내 이야기를 부정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서포터의 푸른 안광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금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서 입을 열었다.
“설마 내가 개입할 수 없다는거야?”
– 절레. 절레.
“개입할 수 있으면 개입하는게 낫잖아? 실패하면 알레테이아가 무너진다면서!”
– 절레. 절레.
“왜? 대체 무슨 이유로 나를······?”
턱-.
내 손에 들려있던 미니 서포터의 팔이, 갑작스럽게 내 어깨를 붙잡았다.
가벼운 손길.
그럼에도 그것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내 어깨를 붙잡은 서포터는, 푸른 안광으로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더 이상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나를 향해 무엇인가 이야기하는 일은 없었다.
단지, 녀석의 앞에 있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서포터는 나와 눈을 마주친 채로, 계속해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허나, 그럼에도 나는 그런 서포터의 눈에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읽어낼 수 있었다.
—기사단의 동료들을 믿어라.
서포터의 눈은 나에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