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oods Player RAW novel - Chapter 95
97.영묘 (3)
석관에서 흘러나오는 정체불명의 기운.
벽면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저주의 말.
그리고, 이 무덤을 지키듯이 다가오는 도끼를 든 언데드.
생전에 엄청난 무위를 가지고 있는 전사였던 모양이었는지, 언데드의 도끼에서는 거대한 투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을 단서로 삼아서, 시온이 도출해낸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석관에 남아있는건 성직자의 유해같은게 아니야.’
원래 이 영묘에 안장되었어야할 성직자에게는 안식이 주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그 성직자를 빼돌렸거나, 처음부터 성직자가 안치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제 주인이 남아있지 않은 석관에는, 그를 대체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들어있을 터였다.
휘릭-.
마력을 끌어올리며 허공에 얼음장미를 휘두른 시온이 리네어를 향해 이야기했다.
“리네어. 조금 추워도 이해해주세요.”
“······응?”
“이정도가 아니면 상대하기 힘들 것 같거든요.”
시온은 리네어에게 그렇게 경고하고서는, 얼음장미를 기울여 눈앞의 언데드에게 겨누었다.
후-.
시온의 입김이 폭풍이 되어 휘몰아치며, 적막했던 영묘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차가운 설경.
시온이 마법을 처음 배우고서 몇년만에 스스로 만들어낸 고유마법체계.
다섯번째 계단에 도달하는 것을 허락받은 마법사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설경(雪景).”
사방에 내려앉은 눈이 마력광을 내뿜으며 환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을 무덤의 정경이, 지금은 눈에 뒤덮혀 밝게 빛나는 풍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시온의 주위에 있던 얼음들이 움직이며, 사방에 얼음의 장벽이 세워지는 모습이었다.
쿠구구구궁-.
시온을 에워싸듯이 솟아오른 얼음장벽이 그녀와 언데드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다.
“추, 춥다는게 이런 의미였구나······!”
“언데드는 제가 상대할게요! 석관을 빨리······!”
“알았어! 맡겨줘, 시온!”
시온의 이야기가 끝난 직후, 리네어의 검이 투기를 머금으며 석관에 내려꽂혔다.
콰앙-!
묵직한 충돌음이 터져나오며, 사방에 석관의 파편이 휘날리는 모습이었다.
리네어는 석관을 부숴버릴 기세로 계속해서 쌍검을 휘둘렀다.
물론 영묘를 지키던 언데드 역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 “죽··· 이··· 겠······!”
“넘어가게 두지 않아요!”
쿠구구구궁-.
시온의 주위에 또 다른 얼음방벽이 생겨나며 언데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앞을 가로막은 얼음벽의 모습에 격노한 언데드가 무자비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콰앙! 쾅! 쾅! 쾅!
투기가 실린 도끼가 한차례 휘둘러질때마다, 시온의 얼음방벽이 순식간에 바스라졌다.
무수한 얼음파편을 만들어내며 도끼를 휘두르는 언데드의 안광이 빛을 머금었다.
– “비··· 켜······.”
생전의 무용을 짐작하게 하는, 폭력적이면서도 야성적인 일격.
근육을 잃어버린 지금에서조차도, 자신을 저지하는 얼음장벽을 어렵지않게 파괴하는 언데드였다.
콰앙-!
도끼를 휘두르며 전진하는 언데드가 모든 장벽을 부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두터운 얼음벽이 종잇장마냥 찢겨나가는 모습에, 시온은 마력을 끌어올리며 다른 방벽을 만들어내었다.
“밖에 쓰러져있던 사람들이 당한 이유가 있었네요.”
“시온! 위험하면 말해! 곧바로 합류할테니까!”
“괜찮아요. 저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으니까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화답한 시온이 언데드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사방에 솟아오른 얼음들이 언데드를 저지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자 얼음벽에 갇힌 언데드가 더더욱 격분하며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이었다.
시온은 언데드를 단순히 저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를 향한 공격마법 역시 투사했다.
콰득! 콰아앙-!
지면에서부터 솟아오른 무수한 얼음가시가 언데드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동시에 언데드의 주변에는 수많은 얼음의 칼날이 공중에 떠오른 채 그를 겨누었다.
– “놓··· 아······.”
부유하고 있던 칼날이 불만을 토로하던 언데드를 향해 쇄도했다.
쾅!
쩌적, 쩌저저저적-.
얼음의 칼날이 언데드를 부술 기세로 나아가며, 칼날에 닿은 부위를 서서히 얼려나갔다.
뼈에 닿은 한기가 퍼져나가며 언데드의 움직임을 서서히 억제하는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얼어붙기 시작한 신체의 말단은, 언데드의 움직임을 점점 느릿하게 바꿔놓고 있었다.
‘이것만으로 완전히 끝내기는 어려울거야.’
다만 언데드 역시 얌전히 당해줄 생각은 없었는지, 이제는 전신에 투기를 감은 채 공격을 막아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단순히 견제를 위한 마법으로는 언데드를 완전히 붙잡아놓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결국 시온은 언데드를 쓰러뜨리기 위해 화력을 더 끌어올리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최근들어서 자주 사용하며, 자연재해를 가장해 상단을 괴롭히던 방법.
얼음의 비를 떨어뜨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블리자드.”
얼음장미가 마력의 흐름을 제어하며, 동공 전체를 휘감는 광범위한 마력진이 전개되었다.
쩌저저저적-.
마법진을 중심으로 터져나오는 폭발적인 한기가 공간을 장악했다.
밖으로 새어나오는 숨결마자 얼려버리는 강력한 한기.
그 속에서 무수한 숫자의 얼음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 “······.”
끼이이익.
공중에서 터져나오는 마력에 당황한 것인지, 언데드 역시 고개를 들어올리는 모습이었다.
허나, 천장을 가득 채운 얼음의 형상에 대응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생전에는 강력한 무인이었을지 몰라도, 오랜 세월에 걸쳐 힘을 상실한 그가 이 시대의 천재 마법사를 상대로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시온의 얼음장미가 하늘의 얼음을 조율하더니, 이내 언데드를 향해 겨누듯 내리그었다.
선명한 손동작이 궤적을 그려나간 직후.
콰과과과광-!
무수한 숫자의 얼음들이 유성우와도 같이 떨어져내리는 모습이었다.
“시, 시온······?”
– “커··· 억······!”
콰앙-! 콰과과과광!
하늘을 뒤덮은 얼음이 내려꽂힐때마다 사방으로 얼음의 파편이 튀며 폭발했다.
쉴새없이 내려꽂히는 얼음은 언데드의 전신을 한기로 뒤덮었으며, 그 뒤로 이어지는 폭발은 뼈를 비틀어 무너뜨리는 모습이었다.
시야 전체가 푸른 빛으로 뒤덮힐 것 같은 얼음의 폭격.
굉음을 울리며 동공 전체를 뒤흔드는 청색의 궤적이 언데드의 뼈를 분쇄했다.
– “아··· 아······.”
투둑-. 쩌저저저적.
도끼를 쥐던 팔이 부러지고, 걸어나가던 다리가 산산히 무너져내렸다.
그를 지탱하던 죽음의 마력조차도 유지하지 못할만한 강맹한 폭격.
마력이 흩어진 뼈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바스라졌다.
시야를 뒤덮는 뿌연 안개속에서 언데드가 무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언데드의 의지는 무덤을 향해 나아가고 싶어했지만, 그의 육체는 더 이상의 전진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 “아··· 르··· 니아······.”
무덤의 주인이었던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짧은 발악.
최후의 의사를 남긴 언데드의 고개가 아래로 꺾였다.
끼익-.
귓가에 들리는 섬뜩한 마찰음을 남긴 채로, 언데드가 제자리에서 완전히 정지했다.
바닥을 기어가던 언데드의 육체에서 죽음의 마력이 사라지자, 시온은 그제서야 마력을 거두어들이며 리네어를 바라보았다.
“후우··· 리네어, 다친 곳은 없나요?”
“그, 언데드는 문제가 없는데에······.”
주변을 가득채운 설경이 무너져내리며, 그 속에서 리네어의 검이 선명한 빛을 발했다.
어둠에 뒤덮힌 공간을 밝히는 것은 리네어의 아티팩트 뿐이었다.
다만 석관을 부숴버린 리네어는 입김을 내며 벌벌 떠는 모습이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시온의 이야기에, 리네어는 떨리는 입술로 시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 마법때문에 얼어죽는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아, 죄송해요. 좁은 범위에 사용하기에는 어려운 마법들이라서.”
“그렇구나······.”
“그래도 무사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혹시 석관 안에서 무언가 발견했나요?”
시온은 멀쩡해보이는 리네어의 상태에 그녀에 대한 걱정을 일축하고서, 바로 석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석관의 파괴를 부탁했던만큼 그 결과에 대해 물어본 것이었다.
그에 리네어는 쓴웃음을 보이며 석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네 말대로 성직자의 유해는 없는 것 같아.”
“역시나 그런 모양이네요.”
“대신에 안에서 커다란 돌이 나왔어.”
저벅. 저벅.
눈에 뒤덮힌 동공의 안을 걸어나간 시온의 눈이, 리네어를 따라서 그녀가 바라보고 있던 광경을 확인했다.
리네어의 검에 의해 산산히 부서져버린 석관의 너머.
그곳에는 강한 기운을 머금고 있는 커다란 광석이 보이는 모습이었다.
“봉인석······?”
시온은 그것을 처음으로 마주했음에도, 그 정체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봉인석.
아리엣이 수차례 그녀에게 이야기했던 귀중한 물건이었다.
* * * * * *
시온과 리네어를 파견했던 미궁의 탐색 임무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나서야 제대로 끝을 맺었다.
전투 자체는 그리 길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보다는 주변을 탐색하고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편이었다.
초창기에 지루하게 이오를 기다렸던 것보다도 더 많은 시간이 지체된 셈이다.
물론 그 당시의 이오가 길치 기질을 가지고 있었기도 하고, 벨린저 산맥이 생각보다 넓이가 넓은 탓도 있겠지만 말이다.
“도적과 마법사 조합이라··· 그래도 탐색 측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구성이었던것 같네.”
도적에 가까운 전투스타일을 가진 리네어.
그리고 후방에서 광역마법을 쏟아붓는 스타일의 시온.
두사람이 전투에서 합이 맞았는지와는 별개로, 탐색의 효율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느낌이었다.
어느쪽이든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거나 광범위한 영역을 수색하는데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두 사람이 임무를 헤쳐나가는 방식을 되새겨보던 나는, 어느덧 눈앞을 가득 채운 임무의 정산화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기사단원 [시온(EX)], [리네어(EX)]가 [전설 : 벨린저 산맥의 미궁 탐색] 임무를 클리어했습니다.
– 보상 : 10,000 EXP
– 최초 클리어 보상으로 운명석 500개가 추가로 지급되었습니다.
– [전설 임무]의 클리어에 따른 [운명개화 포인트]가 다음과 같이 정산되었습니다.
– 시온 (EX) : + 72
– 리네어(EX) : + 28
막대한 경험치와 함께 주어지는 [운명개화 포인트]의 정산.
당연하게도 이번 임무에서 기여가 더 높았던 시온쪽이 많은 포인트를 가져갔다.
리네어도 분명 많은 기여를 했지만, 아무래도 전투나 탐색측면에서 시온의 기여가 압도적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번 임무의 보상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 WARNING! 해당 [전설 임무]가 새로운 역사의 분기점을 발생시켰습니다.
– 역사의 분기점이 발생함에 따라 [분기점 탐색]에 새로운 기억이 추가되었습니다.
– 역사의 분기점이 발생함에 따라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기능이 강화되었습니다.
–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의 기능이 강화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 [알레테이아 서포터]가 [VER.3]으로 진화했습니다.
– [알레테이아 서포터]가 한층 진화함에 따라 다음과 같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 식당의 메뉴가 이전보다 다양해집니다.
– 부상당한 단원의 회복에 소요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역사의 분기점에 도달함에 따라 획득하게된 새로운 보상.
분기점의 기억과 알레테이아의 기능 강화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분기점 탐색]에 추가된 새로운 기억을 확인하기에 앞서, 나는 눈앞에 보이는 메세지를 하나씩 읽어보았다.스윽-.
빠른 속도로 스크롤을 내리며 글을 읽다보면, 보상을 확인하던 내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알레테이아 서포터 버전 3······?”
알레테이아 서포터 VER.3.
알레테이아의 기능이 강화되며 곰돌이가 한층 더 진화했다는 내용이었다.
나로서는 상당히 오랜만에 확인하는 유형의 메세지였다.
마지막으로 곰돌이가 진화했던 때가 수개월 전이었으니, 자주 찾아오는 변화가 아니라는 점만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치료와 관련된 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은데. 서포터, 이거 맞아?”
– 끄덕. 끄덕.
내가 옆자리에 있던 미니 곰돌이를 향해 물어보자, 녀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알레테이아를 운영하는 마신이 곰돌이쪽에도 꾸준히 패치를 해주는 모양이었다.
다만, 곰돌이와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때마다 녀석에게 드는 의문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곰돌이의 정체.
항상 알레테이아를 관리하고 있는 녀석의 본질에 관한 의문이었다.
‘서포터는 마신이 만들어낸 권속같은건가? 그게 아니면······.’
알레테이아에 가서 직접 물어본다고 한들, 곰돌이가 유의미한 대답을 돌려줄 가능성은 낮았다.
기껏해야 ‘나는 차원요새 알레테이아와 단장을 보조하는 서포터임.’같은 적당한 이야기나 돌려주고 말 것이다.
곰돌이 본인에게서 의미있는 대답을 들을 가능성은 낮다는 의미였다.
‘뭐, 적어도 마지막까지 내 아군으로 남아있기로 했으니까 상관없나.’
나는 그런 곰돌이의 정체를 고민하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녀석이 나를 배신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하지 않았나.
곰돌이의 정체가 무엇이던간에, 녀석이 해야할 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곰돌이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 역시 마찬가지일테고 말이다.
“서포터. 잠깐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 갸웃.
“내가 잠든 사이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줬으면 좋겠어.”
짧은 고민을 끝마친 나는 스마트폰을 조작해 [분기점 탐색] 메뉴를 열었다.
방금 전의 임무를 클리어하며 추가된 기억을 확인해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는 곰돌이를 향해 간단한 부탁을 전했다.
기억을 탐색하는 동안 문제가 없도록 나를 돌봐달라는 내용이었다.
“가능하겠지?”
– 끄덕. 끄덕.
“좋아. 역시 믿을건 너밖에 없다.”
서포터는 아무런 고민없이 내 부탁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서는, 비어있던 침대로 향해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을 들고있는 채로 침대에 누우면, 어째서인지 곰돌이가 다가와 이불을 덮어주는 모습이었다.
토닥-. 토닥-.
빨리 잠들라고 하는 것처럼 다독이는 곰돌이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잘 부탁한다.”
– 끄덕.
곰돌이와 눈을 가볍게 마주하고서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돌려 화면을 터치했다.
새로 추가된 기억의 이름은 [x14. 사도 아르니아의 영묘].
나는 해당 기억에 손가락을 올려놓고서는, 기억을 확인하기 위한 버튼을 터치했다.
툭-.
손가락이 버튼을 터치한 직후, 나는 의식이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 [x14. 사도 아르니아의 영묘]을 선택했습니다.
– 역사의 분기점 속에 숨겨져있던 기억의 파편을 열람합니다.
어둠속으로 가라앉는 의식.
그 속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푸른 빛을 머금고 있는 서포터의 안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