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growth into SSS-class safety zone RAW novel - Chapter 135
135화. 진혼곡 (3)
* * *
“아? 정말 너무하네.”
“뭘 너무하긴 너무해! 신발 신고 들어오면 바닥 물걸레로 닦아야 한다고.”
“자아도취가 심해도 너무 심한데?”
“뭐, 뭐?!”
이 자식이 지금 뭐라는 거야.
자아도취라니. 내가 언제 자뻑을 했다고!
“정말 리얼하네. 나도 처음에는 깜짝 놀랐어. 순간이동이라도 한 줄 알았지 뭐야.”
“뭐가?”
“이 집, 이 동네, 이 세계 말이야.”
“하아?”
“박해인. 설마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못 깨닫고 있는 거야?”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박해인이 맞다. 이곳은 나와 진호의 소중한 보금자리이고.
그런데 나는 데모아를 알고 있다.
내 주제에 언제부터 저런 값비싼 정장을 입은 외국인을 알았다고.
아무튼 알고 있었다.
“아……!”
뒤늦게서야 이 모든 게 현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비상식량이, 던전, 각성, 이세계인, 그리고 로엘라이도…….
“여기는 내가 만든 건가?”
“그렇지. 맥길로이의 환상술은 최고라고 했잖아.”
“행복하던 순간이 현실화 되었다…….”
무의식중에 동생과 보낸 즐거운 시간을 구현해버린 모양이었다.
단순하게 방뿐만이 아니라, 집 밖의 거리는 물론 마을 전체를.
다행히도 사람까지는 구현하지 못했고, 이곳에는 나와 데모아 그리고 막 잠이 든 진호뿐이었다.
“진호는 돌아온 건가. 맥길로이는 죽었고?”
“응. 진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사라지는 걸 봤어. 그러고 나더니 갑자기 주변으로 마을이 생겨나더군. 이곳을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고.”
라면을 끓인 것도, 같이 먹고 잠든 것도 진짜 진호였다.
우리 둘은 아무래도 서로에게 있어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돌아온 걸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고 즐겼던 모양이었다.
“어때? 진짜 ‘근원’이 된 기분이?”
“딱히.”
생명력의 흐름도, 내 몸도 큰 차이는 없었다.
다른 점이라면.
내가 손을 들어 천장을 향했다.
곧이어 작던 원룸은 쾌적한 거실로 바뀌었다.
지층이던 집은 단독 주택이 되었다.
흔들림도 위화감도 없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뭐야 여기는?”
“잠깐 살던 곳.”
창문을 열자 울창한 숲이 보였다.
던전에 있던 거실 딸린 투룸, 우리 집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생각한 대로 환경이 바뀌고, 사물이 생겨난다.
모든 것은 실존했다.
찬장 안에 있는 라면이나 비상식량은 전부 먹을 수 있었고, 화장실 변기도 잘 내려간다.
데모아는 넋을 놓고 밖을 바라보았다.
“맥길로이가 만든 환상과는 너무 다르군. 아니, 이걸 환상이라고 불러야 하나.”
녀석이 만든 공간은 디테일이 떨어졌다.
골목을 만들 수는 있지만, 벽을 타고 창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는 없었다.
창문 안의 또 다른 공간까지는 설계해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해.”
그가 시선을 돌려 박해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신’이나 다름없었다.
무한한 생명력에, 이제는 공간과 사물을 창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섹터 04에서도 섹터 05에서도 그런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근원’에 가까이 가고자 노력한 자들이었지, ‘근원’ 그 자체가 된 자는 없었으니까.
“진호야. 이제 집에 가야지.”
내가 진호를 흔들어 깨웠다.
“웅? 형? 벌써……?”
진호가 눈을 비비며 깼다.
“후아암. 알바 갈 시간이야?”
“녀석. 너 S급 각성자인 거 다 까먹었냐?”
“응? 각성?”
진호가 눈을 뜨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원룸이었는데 언제 이런 널찍한 거실이 딸린 집으로 옮긴 건지. 심지어 익숙하기까지 하다.
“아앗, 여기는!?”
“이제야 기억나?”
“분명 집이었는데 언제 던전으로 온 거지?”
“던전 아니야. 비슷하게 만든 거지.”
진호가 놀랄 만큼이나 집 안도, 밖의 풍경도, 심지어 습하고 더운 날씨마저 던전의 그것이었다.
멍한 얼굴로 밖을 쳐다보는 동생의 등을 두드렸다.
“고생했어.”
* * *
나는 마을을 없앴다.
미국 뉴욕 근처에 갑자기 거대한 숲이 생겨버리면 곤란했다.
처음과 같이 너른 공터에 흉물스럽게 마른 나무들만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형, 누나는…….”
진호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설마 쪼개진 로엘라이를 보기라도 한 건가.
내가 입술을 질끈 물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내 무의식이 작용한 것일까, 그곳은 볼록하게 솟은 흙무덤이 있었다.
로엘라이를 묻은 곳이었다.
흙무덤 위에는 그녀의 순백색 검이 꽂혀있었다.
진호와 데모아는 멀찍이 자리를 피해줬다.
저물어가는 석양을 등지고 나 홀로 무덤을 바라보았다.
“시끄럽긴 했어도 시원시원한 성격이 싫지는 않았어.”
상상으로 만들어낸 꽃다발을 내려다봤다.
국화 대신 흰 장미였다.
“네가 좋아하는 장미꽃이야. 장미향 입욕제 좋아했지? 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으면 좋아하는 목욕이라도 실컷 시켜줬을 텐데.”
무덤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고마웠어. 그리고…….”
말을 잠시 멈췄다.
만약 로엘라이가 계속 옆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어떤 관계로 남았을까.
어쩌면 붉은 머리카락에 얼굴을 날 닮은 아이가 하나 있을지도 모르지.
“하하. 무슨…… 너라면 훨씬 멋진 남자를 만났겠지.”
[지아비를 버리라는 게냐?]“그거야 세상에는 나 말고도 멋진 남자가 많으니까. 그나저나 네가 보고 싶나 봐. 환청이 들리는 걸 보니.”
[이 몸과 평생 함께하겠느냐.]“하하. 물론이지. 돌아만 온다면…….”
거기까지 말을 하던 내가 입을 다물었다.
눈앞의 흙무덤이 꿈틀거렸다.
설마?
내 바람이 간절한 나머지 로엘라이가 살아난 건가?
아직까지 생명체를 만들어 낸 경우는 없었는데.
“로, 로엘라이? 정말 너야?”
[맹세할 수 있느냐?]“돌아만 와준다면 물론이지!”
그래. 로엘라이 정도면 감지덕지해야지.
외모면 외모, 몸매면 몸매, 게다가 성격까지 화끈하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평생의 반려로 부족할 게 없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흙무덤이 들썩였다.
세상에.
그녀가 살아만 돌아온다면 당장 껴안고 키스를 퍼붓고 싶었다.
“로엘라이!”
[주인놈!]감동의 상봉에 차가운 날붙이의 느낌이 들었다.
“로엘…… 라이…….”
나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검을 껴안았다.
[죽기 직전 정신체만 검으로 빙의할 수 있었네! 오랫동안 검에 붙어있던 덕분인지 어렵지 않았지! 호호호!]“너…… 손잡이를 잡아야 목소리가 들리는 거 아니었어?”
[그건 검에 걸린 일종의 제약이었고. 이 몸 의지로 검에 들어온 것이니 이제는 모두가 이 몸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야! 호호호호!]“하하하……하…….”
나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방금 전 뭐라고 했더라.
한평생 로엘라이와 함께하겠다 하지 않았나.
그러면 여자친구는, 결혼은…… 어떻게 하면 좋지.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 * *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나는 식량이를 만나러 갔다.
“식량아! 형아 왔다!”
ㅡ꼬이이이익!
아공간에 마련된 임시거처에서 식량이가 안겨들었다.
“녀석. 보고 싶었지?”
ㅡ꼬이이익!!
식량이의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다들 고생이 많구나.”
아공간은 비좁고 열악했다.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살기에는 턱도 없이 좁았다.
식량이가 무력으로 잠재워서 이 모양이지, 영역 몬스터들은 진즉에 본능에 따라 다른 몬스터를 죽이고도 남았을 정도였다.
“게다가 공기도 탁하고, 물도 맑지 않구나.”
내가 손을 휘저었다.
곧이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들고 알프스산맥에서나 맛볼 수 있는 맑고 선선한 공기가 가득 찼다.
흙탕물이 가득한 물웅덩이도 투명해졌다.
ㅡ꼬이이익!
ㅡ꾸어어어엉!
ㅡ꿰에에익!
몬스터들이 갑자기 변한 환경에 환호했다.
“아직 기뻐하기는 이른데.”
ㅡ꼬익?
“새집으로 가야지.”
내가 다시금 손을 저었다.
곧이어 공간 한 곳에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구멍 너머로는 푸른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앞으로 너희들이 살아갈 곳이야.”
내 말에 몬스터들이 앞다투어 달려갔다.
그곳은 내가 처음에 식량이를 만났던 던전과 흡사한 곳이었다.
몬스터 개체 수에 맞게 크기를 조금 더 키웠지만, 환경은 최대한 나무와 물이 많게끔 했다.
ㅡ쀼쀼!
“그래, 그래. 너네가 살만한 곳도 있단다.”
돌 골렘의 물음에 내가 먼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이곳의 유일한 사막 지형이었다. 거대한 바위도 많아 골렘들이 살기에 딱 좋았다.
물론 보석 뱀과 파충류 계열 몬스터들도 행복해했다.
ㅡ꼬익!!
“식량이 집도 잊지 않고 준비했지.”
나는 숲에 난 오솔길을 따라 길 끝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집에 도착했다.
“가끔 놀러 오려면 묵을 곳이 필요하잖아. 별장 하나 지었지.”
작은 마당이 딸린 집이 마음에 드는지 식량이가 그 주변을 맴돌았다.
ㅡ킁킁, 킁킁!?
“고구마 말이야? 그건 집 근처에 없어. 대신 조금만 가면 고구마밭이 있으니 거기서 먹어. 알았지?”
ㅡ꼬익!!
고구마밭으로 신나게 달려가는 식량이의 뒷모습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저들이 이곳에서 사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번식을 못 해서 그렇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전의 섹터 05가 세팅해 둔 던전처럼, 죽으면 다시 소환되는 형태로 공간을 만들 수는 없었다.
“소환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아레나에서 소환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요람 ‘천가을’에 살던 누군가가 그 자리를 메꾼 것일지도 몰랐다.
“대신 너희는 이제 늙지도 않아. 그러니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산다면 아주아주 오래 살 수 있어.”
식량이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 * *
맥길로이가 죽고 나서 나는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었고, 믿을 수 없는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근원.
세상의 이치, 인과율.
부르는 명칭이야 뭐든 상관없었다.
그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있었다.
눈을 감고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집중했다.
곧이어 내 정신세계는 어딘가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빨간 물이 가득 찬 바다가 있었다.
생명력으로 이루어진 바다는, 내 심장과 이어진 곳이었다.
무한하리라 생각했던 생명력은 이곳에서 끌어다 쓰던 것이었다.
“생명력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이 바다가 메마르면, 또 누군가가 영생을 위해 다른 세계로 가려고 할 테고.”
원치 않는다.
생명에는 순리라는 게 있다.
언젠가 이 생명력이 메마르면, 이 세계는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섭리고 순리겠지.
내가 손을 들어 올렸다.
심장이 미친 듯 벌렁거린다.
내가 지금부터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주머니에서 구슬이와 연기도 나타났다.
그들은 내 강한 생명력에 끌려 따르는 녀석들이다.
녀석들이 애처롭게 울었다.
“걱정 마. 영원히 헤어지는 게 아니야. 그래도 너희들은 여기에 있는 게 좋겠다.”
천천히 심장에 난 구멍이 좁아지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강하게 이어졌던 이곳과의 연결고리도 희미해졌다.
“연기야, 구슬아. 혼자 있는 것보다는 둘이 낫지. 잘 지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