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0
“자네, 신인류라고 들어 본 적이 있나?”
“네. 청룡 산맥의 변이체 중에서 지성을 가진 자들이 스스로를 칭하는 이름이죠. 지금은 격리된 상태지만 지옥의 일이 마무리되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네.”
시로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도 이제 막 첩보를 접했네. 황성이 제시한 영역을 벗어나 병력을 궤멸시켰다더군. 산맥의 북쪽과 동쪽 관문이 뚫렸고, 변이체들이 인근 도시를 공격하는 상황이야.”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북쪽 관문은 유청, 동쪽 관문은 황이성이 맡고 있잖아요.”
오룡장을 직접 파견한 이유는 그만큼 위험 요소가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란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모양이야. 모르겠네, 그들이 어떻게 개체 수를 증식시켰는지. 하지만 이렇듯 갑자기 튀어나올 정도라면, 둘 중의 하나지.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거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거나.”
“그렇지. 전자도 후자도 가능성이 있어. 어쨌든 신인류는 인간과는 다르니까.”
‘인간과 다르다.’
그건 사실이었다.
“반란을 수습해 주게. 그들의 세력이 확장되면 황성까지 쳐들어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어.”
“네. 직접 가 보겠습니다.”
시로네의 입장에서도 진천의 황권이 유지되어야 성전에서 싸울 수 있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기에 그길로 짐을 꾸려서 황성을 벗어났다.
지룡 가이탄과 백룡 아스라이커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출발하시나요?”
“응. 청룡 산맥으로 갈 거야. 내일 아침까지는 도착하도록 속도를 조절하자.”
하늘로 날아오른 시로네는 산맥이 있는 방향을 돌아보며 광익을 펼쳤다.
‘생물학적 돌연변이.’
마계가 열리고 시간이 꽤나 지났으니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일 터였다.
“가자.”
광익을 폭발적으로 밀어내며 비행하는 시로네의 뒤로 사도들이 바짝 따라붙었다.
청룡 산맥 너머로 아련하게 동이 텄다.
“해가 뜨는군요.”
그 아래에 비친 풍경은 시로네가 당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오직 노동력으로 만든 장벽이 톱니처럼 허물어졌고 시체들이 밭을 이루었다.
아스라이커의 눈빛이 변했다.
“바로 진입할까요?”
신인류라는 기치를 내걸고 반란을 결행했다면 반드시 주동자가 있을 터.
‘속전속결로 머리를 부순다.’
일리가 있었으나, 시로네는 지상의 피해 규모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정황부터 파악하자. 예감이 좋지 않아.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거야.”
가장 피해가 큰 북쪽 관문으로 날아간 시로네는 폐허가 된 곳에 착지했다.
“오대성님!”
생존자를 찾아 무너진 건물을 뒤지고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장군께서는 어디 계시죠?”
“의무 병동에서 휴식을 취하고 계십니다. 심각한 부상을 당했으나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심각한 부상?”
오룡장의 대검호 유청이 당했다는 말인가?
“가이탄, 현장에 남아 정보를 수집해 줘. 어젯밤의 정황부터 꼼꼼하게.”
“알겠습니다.”
아스라이커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병사의 안내를 받아 의무 병동으로 들어가자 유청이 힘든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오대성님.”
가슴부터 복부까지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냥 누워 계세요.”
“아닙니다. 무인에게 이 정도 상처쯤은…… 크윽!”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으나 신음 소리가 튀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아스라이커는 의무 병동의 구석에서 시선을 내린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시로네에게 혼쭐이 난 뒤로 가급적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녀였다.
그럼에도 유청의 마음에는 그녀가 전부였다.
‘정말로 아름답구나. 내가 그녀의 정인이 될 수 없는 게 한탄스러울 뿐이다.’
거의 넝마 수준으로 찢어진 복부의 상처마저 지금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구한테 당했죠?”
하지만 시로네의 질문을 받는 순간, 꽃밭을 거니는 듯하던 기분은 악몽으로 변했다.
“…….”
백룡에 대한 마음마저 닫힐 정도의 공포.
유청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아른거렸다.
“아니, 외형은 인간이었죠. 하지만 느낌 자체가 다릅니다. 동물도, 인간도, 식물도, 곤충도 아니에요. 그건 어떻게 설명을 드릴 수가…….”
“그 녀석이 반란의 주동자인가요?”
“모르겠어요. 어느 틈엔가 그들은 관문에 숨어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본색을 드러냈고, 닥치는 대로 해치우기 시작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사들이 전부 종이처럼 찢겨 나간 상태였어요.”
유청이 두 주먹을 움켜쥐자 감고 있는 붕대에 피가 천천히 번졌다.
“제 검은 스치지도 못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죠. 놈은 가까이 오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이런 상처를 입었죠?”
“눈이 변했습니다.”
유청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느낌이 아니라, 눈동자 전체가 검게 변했어요.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마치 해부당한 개구리처럼 배가 갈라진 상태로 사지를 펼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자신의 비명 소리가 기억의 장막을 찢고 나오자, 유청이 몸을 웅크렸다.
“크윽! 제길! 빌어먹을!”
필사적으로 외면했던 사실이 표면으로 떠오르자 그의 정신이 망가져 갔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 있는지! 심지어 그때는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길, 나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괴물이, 그 괴물이…….”
시로네가 물러서자 뜻을 헤아린 아스라이커가 유청의 등을 다독였다.
“괜찮아요. 당신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우리에게 맡기고 편히 쉬도록 하세요.”
“아, 아아…….”
눈물을 흘리며 감격에 겨워하던 유청이 점차 졸린 눈으로 눈꺼풀을 닫았다.
아스라이커는 부드럽게 그를 눕혔으나 붕대에 스며든 피를 보니 조치가 필요할 듯했다.
“신인류라.”
의사가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시로네는 의무대의 구석에서 생각에 잠겼다.
아스라이커가 다가왔다.
“메시아님, 눈의 기술은 정신에 영향을 미칠 뿐, 물리적인 효과를 낼 수는 없습니다.”
시로네가 의심하는 부분도 그 지점에 있었다.
“그래. 단지 보는 것만으로 사람의 배를 가를 수는 없지. 만약 가능하다면…….”
마음의 기술.
“양자 신호를 이용하는 걸까요?”
“모르겠어. 지옥에도 돌연변이의 능력을 가진 마족이 있었지. 4세대 격변으로 초월적인 지능을 얻었지만, 양자 신호를 이용하려면 최소한 7세대는 넘어야 할 텐데?”
인류 전체가 천 년 동안 돌연변이를 일으켜도 될까 말까 한 진화였다.
가이탄이 들어왔다.
“메시아님, 보고드릴 사안이 있습니다.”
“응. 말해 봐.”
“신인류의 변이체들이 새벽 무렵 동쪽으로 갔다고 합니다. 지도를 토대로 했을 때 가장 가까운 도시는 북전으로, 대략 70만 명이 살고 있습니다.”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북전으로 가자. 신인류를 먼저 확인하고 아지트를 치는 게 순서야.”
“네. 그런데…….”
가이탄이 덧붙였다.
“관리의 말에 의하면 진천응급국에서 전문가를 불렀다고 합니다. 지금쯤이면 북전에 도착했을 겁니다. 미리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시로네는 미간을 찌푸렸다.
“전문가라고? 오룡장의 장군도 손조차 쓰지 못한 적인데 무슨 전문가?”
“그것이…….”
가이탄의 표정이 난감하게 변했다.
“메시아님이 아는 자들일 겁니다.”
상아탑의 주민이 북전의 성문에 도착했다.
“하하하! 간만의 출동이로군요. 역시 현장에서 뛰는 것만큼 신나는 건 없지요.”
2미터가 넘는 거구에 판관복을 입은 자가 부채를 펄럭이며 소리쳤다.
율법부 소속의 1성급, 대법관 탄주라였다.
“이렇게 바람을 쐬니까 마음까지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보르보르 님?”
이쑤시개처럼 마른 여성이 검은색 일색의 옷을 입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
반쯤 벌어진 입술과 초점 없는 동공은 그녀가 실제로 아무 생각이 없음을 증명했다.
모라이 보르보르.
연체동물이라는 별칭을 가진 균형부의 2성급 주민이었다.
“보르보르 님?”
보르보르가 홱 하고 고개를 틀었다.
눈웃음을 짓고 있는 탄주라를 빤히 쳐다보던 그녀가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우하하하! 우하하하!”
“껄껄껄! 그렇지요? 푸하하하하!”
웃음이 뚝 하고 끊어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보르보르가 다시 전방을 돌아보았다.
‘섬뜩하군. 섬뜩해.’
연체동물이라는 별칭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정신적 유동성에서 나온 것.
폭군, 살인마, 요부 등, 그녀가 대응하지 못하는 정신 취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지. 누구냐?”
성문의 경비대가 멈춰 세우자 탄주라가 부채를 펄럭거리며 호탕하게 말했다.
“특산물을 사들이는 장사꾼이오. 북전의 명물을 살피고자 왔는데 들어가도 되겠소?”
“장사꾼?”
시선을 교환한 경비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북전은 치안 통제 상태다. 누구도 들이지 말라는 태수님의 명이 있으셨다. 돌아가든가, 통제가 풀릴 때까지 야영하도록 해라.”
“흐음, 치안 통제라.”
탄주라가 혀를 끌끌 차는 가운데 보르보르의 눈에 순간 초점이 잡혔다.
‘이미 먹혔구나.’
북쪽 관문을 궤멸시켰을 때와 마찬가지로 내부 장악을 시도하는 듯했다.
‘특정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지휘부를 파괴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미지의 무력을 가졌음에도 이런 귀찮은 짓을 하는 건…….’
효율이 떨어지는 수단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신인류인가.’
“이보게나, 사실 우리는…….”
탄주라가 상아탑의 패를 꺼내려고 하자 보르보르가 손을 들어 말렸다.
그리고 경비에게 다가가 한껏 불쌍한 표정으로 무언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흐음.”
눈빛이 흔들린 경비는 다시 동료에게 말했고, 그 상태로 한참 동안 쑥덕거렸다.
“좋아. 일단 확인부터 해 보지.”
2명의 경비는 보르보르를 성문 옆에 설치되어 있는 임시 초소로 데려갔다.
탄주라가 발을 까닥거리며 기다리는 가운데 낄낄 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것들이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순간 엄청난 탄성이 터지더니 괴성이 되었고, 이내 서러운 울음으로 돌변했다.
잠시 후 2명의 경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며 걸어 나왔다.
“들어가죠.”
아무 말 없이 문을 개방하는 경비들은 인격을 상실한 듯했고 내일조차 없어 보였다.
보르보르의 뒤를 따르며 탄주라가 물었다.
“대체 저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당장 자살한다고 해도 믿겠는데요?”
“아무것도.”
보르보르의 초점이 다시 풀려 갔다.
“자신들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았을 뿐이에요.”
신인류 (2)
***
라비에트의 도시에 눈덩이가 굴러간 자국처럼 일자의 홈이 길게 파였다.
우르르르릉!
천둥을 방불케 하는 굉음과 함께 손유정은 도시의 끝에서 끝까지 날아갔다.
“아우, 씨…….”
지면과 벽 사이에 처박힌 그녀가 수직으로 꺾인 고개로 전방을 노려보았다.
붉은 피부의 마족이 뒷짐을 지고 걸어오고 있었다.
“짜증 나 미치겠네.”
손유정의 화안금정에 비친 시로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진리가 밀려드는 듯했다.
“키이이이!”
얼굴을 일그러뜨린 그녀가 위협을 가하자 시로네가 쯧쯧 혀를 찼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내가 뭘 어쨌다고 난리야!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겠다는데 왜 너희들이 지랄이냐고! 난 친구를 구하러 온 거야! 지옥 따위에는 관심 없어!”
“바로 그게 문제야. 앞뒤 가리지 않고 말썽만 일으키니 상황이 계속 악화되지.”
“뭐래? 너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잖아! 나네도, 이미르도, 전부 자기 힘을 휘두르며 사는데 왜 나만 안 된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