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3
‘숫자.’
그를 이루고 있는 정보를 수학적으로 표현했을 때 생기는 현격한 모순.
‘우리와 다른 숫자를 가지고 있다.’
우주 어디에도 없는 것.
그녀의 생각은 미카에게 전달되었고, 전기만큼 빠르게 판단이 떨어졌다.
“도망쳐!”
탄주라와 대호가 자리를 이탈하고, 보르보르가 전방으로 돌진했다.
‘죽는 건 상관없지만…….’
이 자리의 모두가 전멸해서 상아탑에 보고하지 못하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미카에게 뇌의 통제권을 넘기자 보르보르의 육체가 고무처럼 휘어졌다.
팔다리가 채찍처럼 날아들어 메뚜기 인간의 육체를 휘감으려는 그때.
-인식 불가능.
적의 모습이 증발하더니 보르보르의 뒷덜미에 강력한 충격이 전해졌다.
“컥!”
미카가 전달했다.
-뇌 기능의 89퍼센트가 마비되었습니다. 당분간 코마 상태에 들어갑니다.
‘안 돼. 최대한 시간을 끌어.’
-거부합니다.
“…….”
의식을 잃은 보르보르를 허리춤에 끼운 메뚜기 인간이 성문 쪽을 바라보았다.
“쫓을까.”
잠시 갈등하는 그였으나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피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살아 있을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
내성 문이 닫혔다.
“으…….”
탄주라의 두 눈이 붉게 타올랐다.
“으아아아! 고얀 놈들!”
정신없이 도망치고 있지만 마음만은 메뚜기 인간을 천 번이나 찢어발겼다.
“고정하십시오. 보고가 우선입니다.”
대호의 능력 작두가 외성 문을 쪼개자 확 트인 벌판이 눈에 들어왔다.
“응?”
탄주라의 눈썹이 꿈틀하더니, 두 사람 모두 황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오대성님?”
시로네가 두 사도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신인류 (4)
***
“다녀왔습니다.”
바드벨브는 피리의 앞에 기절한 보르보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야호, 고기다.”
보르보르를 살피는 소녀의 눈이 흑요석처럼 검게 물들더니 작은 빛이 떠올랐다.
‘피리의 눈.’
바드벨브는 전율했다.
‘그녀의 시선은 관찰의 행위에 해당되지 않아. 따라서 율법에서 완벽하게 자유롭다.’
무려 양자 신호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어디 먹어 볼까?”
피리가 보르보르의 팔을 뜯어내려는 그때 내실의 문이 쾅 하고 열렸다.
“피리 님.”
메뚜기 인간들이 울고 있었다.
“분합니다. 저 여자에게 동료들이 무참하게 당했습니다. 분합니다. 부디 복수할 기회를.”
메뚜기 인간과 보르보르를 번갈아 지켜보던 피리가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데려가라.”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도 어차피 식량.
“우리는 신인류다. 서로 더 먹겠다고 동족상잔이나 저지르는 인간과는 다르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메뚜기 인간들이 보르보르를 질질 끌고 가자 바드벨브가 머쓱하게 어깨를 들었다.
“마음에 드실 줄 알았는데요.”
“나눌 줄 알아야지. 여태까지 인간은 행성의 모든 것을 먹으며 지배해 왔다. 이제는 우리가 인간을 가축으로 삼는 것뿐이야.”
신인류에게 인간은 고작 그 정도였다.
“크아아아!”
그때 바깥에서 들린 비명 소리에 바드벨브는 창문으로 다가가 성벽을 살폈다.
“더 좋은 놈으로 잡아 오겠습니다.”
실바람이 내실을 휩쓸었을 때, 메뚜기의 육체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크르르. 크르르.”
빛의 연기가 아지랑이처럼 올라가는 시로네를 보며 탄주라는 전율했다.
‘이것이 야훼의 능력인가?’
300명이 넘는 메뚜기 인간을 궤멸시킨 것은 핸드 오브 갓의 일격이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하나의 조형으로 보는 경지. 가히 깨달음의 끝이라 할 수 있지만…….’
백룡 아스라이커가 말했다.
“너무 놀랄 것 없습니다. 메시아는 인류를 구원하실 분. 격이 다른 건 당연하지요.”
탄주라가 부채를 펄럭거렸다.
“흠흠, 놀라기는 무슨. 오대성의 실력을 대인배의 눈으로 확인했을 뿐이오.”
아스라이커의 극호가 부담스러운 그는 차마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메뚜기라…….”
시로네가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지룡 가이탄이 걸음을 옮겼다.
“걸리는 일이 있으십니까?”
“동방에서 메뚜기 떼는 재앙의 상징이야. 벼를 망가뜨리거든. 따라서 이 돌연변이의 형태는 우연이 아니야. 인간에게 전하는 메시지지.”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크게 위협적이지는 않아 보이는데요.”
“문제는 돌연변이를 통제했다는 거야.”
그게 핵심이었다.
“헥사는 율법을 바꿀 수 있지만, 돌연변이까지 통제할 수 는 없어. 인간은 마음을 가진 존재니까. 서로의 양자 신호가 충돌하는 중간값이 나오게 되겠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수많은 형태로 변이할 터였다.
아스라이커가 나섰다.
“우리가 상대할 적이 인간의 마음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건가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관측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가이탄이 덧붙였다.
“마음은 양자 신호죠. 돌을 던졌을 때의 궤적은 율법에 의해 이미 정해지게 되지만, 인간이 1초 뒤에 어떤 마음을 가질지는 확률로만 존재합니다. 굶주린 자에게 빵을 내밀어도 100퍼센트 그것을 먹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죠.”
시로네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마음의 불확정성을 구현하는 것이 양자 신호이고, 그렇기에 인간이 세계를 정의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 존재라면…….”
가이탄은 섬뜩한 결론에 입을 다물었다.
‘바깥 세계.’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관측할 수 있는 유일한 위상은 우주의 바깥이다.
‘그리고 그 말은…….’
인간의 마음조차 그곳에서는 정확하게 측정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메시아님.”
“알아.”
시로네는 생각을 끝냈다.
“우리는 마음인가, 프로그램인가. 달라질 것은 없어. 마음에도 실수는 있고, 프로그램에도 오류는 있다.”
미라클 스트림이 일렁거리더니 거대한 핸드 오브 갓으로 탈바꿈했다.
“어때요, 탄주라 씨?”
탄주라가 부채질을 멈추고 되물었다.
“네? 뭐가 말입니까?”
“천외천을 느꼈다는 돌연변이. 그 변이체를 핸드 오브 갓으로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나요?”
한참 후에 대답이 들렸다.
“……아마 어렵겠지요.”
두 사도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으나 시로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알 것 같아요. 이제부터 지시를 내리겠습니다. 탄주라 씨는 상아탑에 보고하세요. 그리고 지룡과 백룡은 보르보르를 구출해.”
“하오나 메시아님을 두고 갈 수는…….”
“어려운 건 너희들이야. 보르보르의 정신적 유동성은 인류에 꼭 필요한 무기야. 지금 희생시킬 수는 없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살려서 데려와.”
두 사도가 여의치 않은 표정을 짓는 그때 하늘에서 거체가 쿵 하고 떨어졌다.
낯익은 메뚜기의 형체에 탄주라의 몸이 굳었다.
“나는 바드벨브.”
“……먼저 가겠습니다.”
아스라이커와 가이탄이 땅을 박차고 솟아올라 하늘 끝으로 멀어졌다.
그 모습을 눈으로 추격하던 바드벨브가 다시 탄주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아까 그놈이군. 더 강한 인간을 데려왔나? 역시 풀어 주기를 잘했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했으나 감정을 고려할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크윽!”
탄주라가 땅을 박차며 멀어지자 바드벨브의 발성기관이 부르르 떨렸다.
“크크크! 그럴 줄 알았지. 하지만 두 번 풀어 주는 건 나도 싫어서 말이야.”
느낌조차 없이 사라진 바드벨브가 탄주라의 등 뒤에서 잔상처럼 나타났다.
‘이건 죽여서 데려가도 되겠지.’
메뚜기의 손톱이 탄주라의 목덜미를 뜯어내려는 그때 측면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응?”
정신을 차렸을 때는 빛에 휩싸여 있었고, 그 상태로 의식이 진동했다.
콰르르르르릉!
북전의 건물을 전부 뚫고 날아간 바드벨브가 땅 위를 투박하게 뒹굴었다.
“…….”
차가운 흙에 한참이나 머리를 처박고 있던 그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넌 뭐냐?”
시로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어디서 온 존재야? 왜 이 세계에 있는 거지?”
피리의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네가 인간의 왕인가?”
사지를 땅에 붙이고 허리를 세운 바드벨브는 영락없는 메뚜기의 자태였다.
“크크크, 그렇다면 잘됐군. 우리의 왕에게 극상의 맛을 보여 줄 수 있겠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약한 바드벨브가 시로네를 향해 손톱을 휘둘렀다.
양자적 움직임이 발동되고.
“크윽!”
시로네의 모든 확률이 메뚜기의 손톱에 걸리며 초당 수백 번의 충격파가 일어났다.
‘역시 이 녀석은…….’
미라클 스트림의 방어벽을 뚫고 들어오는 힘 앞에서 시로네는 깨달았다.
‘다르다.’
마치 그림의 특정 부분을 오려서 전혀 다른 그림에 붙인 듯한 위화감.
‘이 세계의 우주 상수에서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야. 절대적으로 다른 신호다.’
태초에 우주가 탄생했을 때 에너지 총량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말로 풀이하자면 우주의 수학적 한계, 물리량의 한계는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바깥 세계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세계는 유리수의 장벽에 막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폭발, 가장 빠른 속도의 한계가 99의 수치로 정해져 있다면.
‘그 어떤 현상도 99를 넘을 수 없어. 넘는 순간 오류가 되고 시스템은 세계를 수정하게 될 것.’
그런데 지금 상대하고 있는 바드벨브는 그 한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 같다.
“…….”
수치의 총량은 비슷할지 모르나 특정 부분에서 시로네를 압도하는 게 있었다.
‘특히 시간 감지 능력.’
궁감의 양자 신호마저 뚫고 들어오는 시폭감.
‘위험한데.’
발생 초기의 형태라는 점에서 더욱 위기를 느낀 시로네는 위력을 끌어 올렸다.
“키이이이!”
핸드 오브 갓이 쿵 하고 땅을 내리찍자 얼굴을 막은 바드벨브의 몸이 와짝 조여들었다.
‘굉장하다.’
아무리 가축이라도 이런 경지라면 박수를 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니. 지배자는 우리다.’
신인류의 철학을 되새긴 바드벨브가 더욱 빠르게 몸을 움직여 공격을 가했다.
도시의 사방에 빛이 번쩍거리고 기와집들이 열기만으로 퍽 하고 증발했다.
‘여기다.’
바드벨브는 그 장벽을 뚫고 자신의 주먹을 시로네에게 내질렀다.
버섯구름이 솟구쳤다.
반경 수백 미터가 깨끗하게 닦인 공터에서 시로네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우우!”
바드벨브의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막았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현상.
‘설마 피리 님과 같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가축 따위가 그런 능력을…….’
핸드 오브 갓-손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