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4
바드벨브가 무언가를 확신하고 있다면, 시로네도 그의 마음을 속일 수 있다.
“어디서 유치한 장난을!”
수법을 짐작한 바드벨브가 반대편 손을 드는 순간 하늘 저편에서 공기를 가르는 파공음이 들렸다.
백광을 발하는 한 자루의 검이 메뚜기의 옆구리에 정통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아아!”
시로네의 눈이 커졌다.
‘이건……?’
설법-문.
괴성을 내지르며 수십 미터를 밀려난 바드벨브가 몸을 떨며 꿈틀거렸다.
“아파! 이게 뭐야!”
잠시 후, 하늘보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남자가 시로네의 옆에 착지했다.
“나네.”
“오늘도 열심히 달리는구나, 시로네.”
서로 악수하며 웃는 사이는 아니었기에 시로네가 경계하며 물었다.
“갑자기 여기는 왜?”
“저것.”
나네가 메뚜기 인간을 가리켰다.
“월면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느낌이 좋지 않더군. 너하고 상의할 것도 있고.”
“상의?”
“바깥 세계 말이야. 네가 들쑤시고 다니는 통에 상황이 훨씬 복잡해졌어.”
시로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건 너의 입장이겠지. 애초부터 네가 생각을 달리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잖아.”
“이 하찮은 가축들이!”
바드벨브가 온몸을 떨며 소리쳤다.
“감히 신인류의 미래를 이끌 나에게 위해를 가해! 토막을 내 주마! 잘근잘근 씹어 먹을 거야!”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피리 님에게 산 채로 바치겠다는 말은 철회하겠다! 대신에 고통을 주마! 엄청난 고통을! 살아 있는 존재로서 느낄 수 있는 최악의……!”
“시끄러.”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바드벨브의 고함 소리가 뚝 하고 그쳤다.
“우선, 이것부터 처리하고 얘기하자.”
“그러지.”
시로네가 먼저 몸을 돌리고 나네가 그 뒤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뭐, 뭐야?’
바드벨브는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
‘내가 가축 따위에게 공포를 느낀다고? 아니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럼에도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저것들은 뭐야?’
야훼의 핸드 오브 갓이 하늘을 가리고 부처의 설법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키아아아아!”
태어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바드벨브는 처음으로 삶을 택한 것을 후회했다.
‘안 돼! 안 돼!’
섬광이 폭발하고, 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아야 될 것이 무로 돌아갔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미세 조정 (1)
바드벨브가 소멸한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 어둠을 지켜보고 있던 시로네가 나네에게 돌아섰다.
“왜 이곳에 왔지?”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나네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나에게도 다리가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말 돌리지 마.”
시로네가 단호하게 내뱉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다리도 움직이지 않지. 여태까지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던 네가 어째서 갑자기 이곳을 찾아온 거야?”
“저곳에…… 이상한 게 있다.”
나네는 북전의 내성을 가리켰다.
“이 세계와 다른 우주 상수를 가진 존재. 또한 이것은 미세 조정이 가해졌다는 뜻이다.”
“미세 조정?”
“우주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결과에는 한계가 있어. 예를 들어 작은 공이 움직이는 세계를 창조한다면, 그 공의 속도, 질량, 방향성을 무한으로 설정하는 건 불가능하지.”
“창조의 범주를 넘어서니까.”
“그렇다. 따라서 모든 특성을 수치로 환산한다면, 그 수치의 한계는 이 세계가 가진 설정의 한계와 정확히 같게 된다. 그 한계에 가장 근접한 존재가 이미르지.”
나네가 검지를 들었다.
“물론 위력만 놓고 보면 초신성 폭발이나 블랙홀이 있지만, 자연의 순환에 따르는 율법의 노예. 전체적인 총합은 이미르가 크지. 자유의지는 그만큼 압도적인 능력치다.”
“어린아이조차 태산을 불태울 수 있다……라는 건가?”
“그래. 하지만 신인류는 그 수치에서 벗어나 있지. 물리, 감각, 정신, 논리, 어떤 것이든 미세 조정이 가해진 존재. 막아 내기 쉽지 않을 거야.”
시로네 또한 바드벨브를 통해 깨달았다.
‘나네가 아니었다면 전투는 더 어려웠겠지. 그건 나네도 마찬가지.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어째서 나를 돕는 거지? 이 세계를 닫는 것이야말로 네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나?”
“상황이 바뀌었어. 닫혀 있는 상태에서 나는 유일한 옳음일 테지만, 네가 천장을 열어 버렸다. 열린 상태라면 이곳의 진리는 절대성을 상실하게 되지. 부처인 내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은 일이야.”
나네는 내성으로 향했다.
“가자. 결정을 내리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게 있다. 너도 눈으로 봐 두는 게 좋아.”
끔찍한 진실을.
***
“으음.”
보르보르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천장의 밧줄에 두 손이 묶인 상태였다.
“…….”
눈을 깜박거리는 그녀의 시야에 메뚜기 인간의 얼굴 수십 개가 담겼다.
“키이이. 동지의…… 원수.”
특별한 무기도 없이 턱과 손톱을 세우고 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보르보르는 씁쓸했다.
‘나, 살아 있네.’
삶은 고통이고 죽음은 공포라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메뚜기 인간이 다가왔다.
“쉽게 죽여 줄 거라 생각하지 마라.”
다른 신인류보다 체구가 큰 것이 리더처럼 보였다.
놈이 흉악한 턱을 내밀었다.
“잘근잘근 토막을 내 주마. 네 살점이 우리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는 것을 지켜봐라, 하등한 가축아.”
‘또다시…….’
인류의 모든 죽음은 고독사일 것이다.
‘살아가야 하는 거네.’
고독한 삶이다.
필사적으로 살아가도, 지금 당장 사라져도 달라질 게 없는, 허공에 삽질하는 인생.
‘죽는 게 짜증 나는 거지, 사는 게 달콤한 게 아니잖아? 꿀 발라 놓은 세상도 아니고.’
“짖어 봐! 짖어 보라고!”
메뚜기 인간의 손톱이 옆구리를 찌르자 보르보르의 눈에 전기가 튀었다.
표정의 변화는 없었다.
“크크! 제법 버티는군. 그럼 이건 어때?”
살이 갈라지고 뼈가 무언가에 긁히자 보르보르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아아아아!”
메뚜기 인간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좋아! 아주 좋은 소리야!”
동지의 웃음에 흥이 돋은 리더가 더욱 깊숙하게 손톱을 박아 넣었다.
“자! 이건 어떠냐? 이……!”
리더가 말을 멈춘 이유는 여전히 차가운 보르보르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뭐야?’
그녀의 동공에, 아무 표정도 지을 수 없는 곤충의 얼굴이 선명하게 비쳤다.
“…….”
리더가 천천히 고개를 기울이자 보르보르의 고개가 똑같은 각도로 떨어졌다.
‘아니, 아니야.’
리더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이 가축을 따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의 감정을 빌리지 않고서는 정체성을 찾을 수 없는 보르보르가 말했다.
“내 눈알을 파.”
리더는 조금 전에 들린 목소리가 그녀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그래!”
피아의 경계가 사라진 지점에서 그는 보르보르의 눈을 향해 두 손을 내밀었다.
“눈을 파내 주마!”
“어? 어?”
메뚜기 인간들이 경악했다.
“어이! 잠깐!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외치는 것과 동시에 메뚜기 인간의 리더가 자신의 눈알을 손톱으로 움켜쥐었다.
“으아아아! 죽어라, 더러운 가축아!”
보르보르가 소리쳤다.
“으아아아! 죽어라, 더러운 가축아!”
푹 하고 메뚜기의 눈알이 터지고, 걸쭉한 덩어리를 두 손에 든 리더가 비틀거렸다.
“하아! 하아! 해냈어! 내가 복수했다고!”
“미친…….”
메뚜기 인간들이 멍하니 지켜보는 가운데, 보르보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다음.”
***
문을 열었을 때, 시로네와 나네를 기다리는 것은 순박한 인상의 소녀였다.
누군가의 팔을 뜯어 먹는 소녀의 눈자위는 검었고 작은 빛이 박혀 있었다.
시로네는 소름이 돋았다.
‘모르겠다.’
오메가를 가진 시로네도, 아카식 레코드를 가진 나네도 그녀를 정의하지 못했다.
“확실히 특이하군.”
나네가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율법이 어떻게 변해도 이런 건 만들어지지 않지. 진리에서 벗어난 존재여, 너는 뭐냐?”
맛있게 살점을 뜯어 먹으며 피리가 말했다.
“신.”
증명은 필요 없었다.
“내가 존재한 순간부터 전부 내 아래다. 그러니 곱게 팔다리나 내놔.”
피리의 말이 끝나는 순간, 전에 겪어 보지 못한 살기가 내실에 가득 퍼졌다.
‘재앙이군.’
야훼와 부처가 철학을 양분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닫힌 세계가 정명했기 때문.
‘인간을 위한 철학이고, 인간이 정의하는 세계다. 그 외의 존재가 정의해서는 안 돼.’
나네가 설법의 검을 펼치며 다가갔다.
“실력 좀 볼까?”
시로네 또한 헥사를 깨트리며 핸드 오브 갓을 띄웠으나, 피리는 태연했다.
“흐음, 나랑 싸우게?”
“싸움이라고 해야 하나? 너와 우리가 충돌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는 하던가?”
“하긴…….”
마지막으로 살점을 뜯은 피리가 뼈만 남은 팔을 내동댕이치며 일어섰다.
“덤벼.”
그녀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찢어지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와 나네가 돌진했다.
‘부디…….’
핸드 오브 갓을 어깨 너머로 장착한 시로네가 이를 악물고 팔을 휘둘렀다.
‘남아나는 것이 있기를.’
굉음을 초월한 정적 속에서, 북전의 도시가 섬광으로 불타올랐다.
쿠르르르릉! 쿠르르르릉!
상공 500미터 지점에서 아스라이커와 가이탄은 지상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들이 끼어들 판이 아니었다.
기절한 보르보르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가이탄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특이한 눈을 가졌군.”
아스라이커가 동의했다.
“음. 광자 신호를 받아들이고 양자 신호로 상상하면 그렇게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인과를 무시하고 있어.”
산이 싹둑 잘려 나갔다.
아마도 피리는 거대한 가위를 상상하며 풍경을 난도질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야훼의 주관성과 부처의 객관성을 합쳐 놓은 것 같은 능력. 하지만 그런데도…….”
밀리는 쪽은 오히려 피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