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5
“경이로운 협공이다. 두 사람 사이에 정신적 유격이 약간만 발생해도 이미 끝났을 거야. 야훼를 가장 잘 이해하는 자가 부처라니. 아이러니하군.”
아스라이커의 눈동자에 마법진이 새겨지자 지상의 풍경이 크게 확대되었다.
“……끝났다.”
“하아! 하아!”
피리의 상태는 처참했다.
왼쪽 안구 소실, 두 다리는 무릎 아래에서 절단, 오른팔은 기괴하게 부러진 상태였다.
“너희들, 어떻게…….”
이 세계의 신호를 무시하는 그녀였기에 어떤 상처든 비정상적이었다.
“말을 할 줄 알지?”
인류가 내뱉은 99.99퍼센트의 언어는 피리의 귀에 그저 짐승이 짖는 소리일 뿐.
“들렸는가?”
지금 다가오는 시로네와 나네만이 논리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영광이군.”
나네의 등 뒤로 거대한 검이 탄생하자 시로네가 미라클 스트림을 뿜어냈다.
핸드 오브 갓이 설법의 검을 붙들더니 하늘 꼭대기에서 피리를 겨누었다.
“아, 아니야.”
그녀는 인정할 수 없었다.
“너희들은 가축이야! 감히 신인류의 수장인 나를 해칠 수는 없어! 이건 거짓이라고!”
“설법.”
나네가 말하고.
“심心.”
시로네가 수행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붉은 섬광이 시간을 무시한 채 세상을 양분했다.
“컥!”
피리의 단말마가 끊어지고, 검이 박힌 곳을 따라 잘린 목이 데굴데굴 굴렀다.
“다…… 거짓이야.”
죽는 순간에도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그녀의 심정을 시로네는 이해했다.
“강했다고 해야 할까? 이런 존재가 또 나타난다면 그때는 감당이 안 되겠어.”
“이건 포석이다, 시로네.”
“포석?”
“단순히 너를 제압하기 위해서라면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을 만들면 되지. 하지만 그러려면 우주의 초기 단계에서 모든 것이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이 세계를 유지한 상태에서 너를 멸살하는 게 2단계 필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그때는 인류 전체를 소멸시킬 거야.”
어쩌면 그것이 나네였기에, 시로네는 비로소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너, 무슨 생각이야? 북전에는 왜 온 거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잖아.”
“세계가 열렸다. 그렇기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의 답을 찾아야 하지. 대답해 봐라, 시로네. 나는 앙케 라의 꿈을 삼킨 나네인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나네가 물었다.
“아니면 나네의 꿈을 삼킨 앙케 라인가?”
“…….”
“갇힌 세계에서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은 가장 중요하게 되었지. 나는 바깥 세계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도 내가 여전히 인간이라면…….”
나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 또한 마음을 가진 신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 중생의 번뇌를 없앨 것이다.”
“나네…….”
어쩌면 저 바깥 세계에서, 두 사람이 원하는 것은 같은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미소가 사라졌다.
“만약 내가 프로그램이라면 나네라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거야. 그때는 뒤를 부탁한다. 그리고…….”
에이미.
나네는 말을 삼켰으나 시로네는 알고 있었다.
‘내가 바깥 세계를 열었지만, 나네는 열린 천장을 다시 닫을 수도 있었다.’
에이미를 죽인다면.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결국 마음, 그렇기에 영원한 소멸을 각오하는 것이었다.
“차라리 내가 갈게. 내가 지키고자 하는 세상이야. 그러니 내가 가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해.”
나네는 고개를 저었다.
“앙케 라의 꿈을 삼킨 나만이 필터를 통과할 수 있어. 네가 광자계를 벗어나면 인류는 멸망한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를 그냥 날릴 수는 없지.”
“하지만…….”
“내가 심령권을 열었다. 나로 인해 생긴 고통이니 내가 끝내게 해 다오.”
“이제 와 누가 먼저인지…….”
“부탁하마.”
몸을 돌린 나네의 몸이 빛으로 번지더니 무수한 설법의 검이 바깥으로 쏘아졌다.
우주 끝까지 날아간 검이 되돌아오는 소리를 들으며 시로네가 물었다.
“후회하지 않겠냐?”
눈을 감고 있는 나네가 지그시 웃었다.
‘하겠지.’
최후의 최후까지 공으로 돌리지 못한 한 사람의 얼굴이 뇌리에 아른거렸다.
‘미련.’
마음을 가진 채로 떠난다.
나네의 눈이 뜨인 순간, 설법의 검이 공간을 구기듯 밀려들어 몸에 박혔다.
“크으으으으!”
나네의 눈동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온 세상을 백지처럼 하얗게 만들었다.
‘어디 보자. 무엇이 있는지.’
풍경이 본래의 색을 되찾았을 때, 나네는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해 있었다.
미세 조정 (2)
***
월면.
지상에서 불타는 거대한 빛을 바라보며 슈라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부처는…….”
세계의 비밀을 알기 위해 그의 곁에 머물렀던 시간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정말로 가 버리는구나.”
그가 나네였든 앙케 라였든, 천장 바깥에서 터진 충격파가 이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그저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이토록 마음이 공허한 것일까?
“부처시여.”
슈라는 애달픈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즐거운 여행 되시길.”
시간도 공간도 아니다.
나네는 그저 아득한 무를 지나 새로운 유한의 세계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세계의 비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죽음과는 다르다.’
나네가 지금 시도하는 것은 생사의 굴레마저 초월하여 세계를 떠나는 것.
많은 자들이 죽음 직전 경험했던 긴 터널도, 하얀 공간도 보이지 않았다.
태초의 경계선을 넘어.
그저…….
정의할 수 없는 공간.
검은 호수처럼 고요한 수면 위로 나네의 육체가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에 잠긴 느낌에서 질량은 없었고, 빛이 없는데도 보는 데 무리가 없었다.
“…….”
그 순간 나네는 나라는 존재를 깨닫고 자신을 이루는 것에 의식을 집중시켰다.
‘가기여…….’
그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인계세깥바?(*작가 주 : 실제로는 사고의 역전이 발생하지만 편의를 위해 문자의 역전으로 대체합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광자계를 이탈하기 전과 특별히 다를 게 없다는 것.
수면에 누운 상태에서 그대로 직립한 나네는 사뿐히 발을 내디뎠다.
서고자 하는 의지가 깃들자, 수면이 마치 고체처럼 단단하게 몸을 떠받쳤다.
“만지밌재 좀 건이.”
걸음을 옮기는 와중 시야의 높이가 전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네는 고개를 돌렸다.
빛조차 없는 어둠의 장막에 자신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아롱거리고 있었다.
메뚜기의 얼굴.
등은 크게 굽어 있었고, 앙상한 팔다리에 갈고리 같은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는계세깥바…….”
아마도 나네이기에 가능했던 것.
자신의 목에서 나온 소리를 귀로 전해 듣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아아아아아아키!”
어둠의 장막에 새겨진 메뚜기 인간이 흉측한 턱을 벌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
이면 세계.
화공사의 사장 레테는 6명의 대장군을 이끌고 마그리트의 고성에 도착했다.
그들의 뒤편에서는 배신감에 치를 떠는 수많은 마족들이 악을 지르고 있었다.
“배신자 마그리트를 처단하라!”
“마족의 수치! 야훼에게 몸을 판 버러지 같은 놈! 내가 직접 숨통을 끊어야겠어!”
온갖 비난이 빗발치자 대장군들의 몸에서 저마다 살기가 피어올랐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 또한 레테 앞에서는 차마 자신들이 잘했다고 나설 수 없었다.
‘같이 죽는 것뿐. 죄송합니다, 대공님.’
고개를 돌린 레테가 일렀다.
“안내해라.”
대장군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고, 백사가 난처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문을 열라고?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마그리트를 소멸시킬 생각인 레테에게 길을 터 주는 역할은 절대로 사양이었다.
“아직도 착각하고 있다면.”
레테가 지옥 불의 화염을 태우며 몸을 돌렸다.
“착각한 채로 죽는 수밖에.”
대장군들이 소멸을 각오하고 눈을 감는 그때, 집행대장 이타카가 나섰다.
“제가 열겠습니다.”
그림자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땅을 끌더니 마치 먹물처럼 주위로 퍼졌다.
모오놈의 외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타카.”
“어쩔 수 없어. 대공께서는 죄를 지었다. 우리의 충성심도 지옥에 도움이 될 때의 일이야.”
“…….”
4세대 격변에 도달한 모오놈이 모를 리가 없었다.
‘망할 것. 끝까지 잘난 척이야.’
활로가 없는 이상 모든 책임을 끌어안고 동료만이라도 살려 보려는 것이었다.
“눈물겹구나, 이타카.”
평소라면 그들의 우정에 방긋 웃었을 레테지만, 지금은 차가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헛수고야. 대공을 소멸시키면, 너희도 응당 벌을 받게 될 것이다.”
뒤편의 마족들이 동의했다.
“옳소! 대장군들도 죽여야 합니다! 마족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배신자들!”
야훼를 증오하는 만큼이나 마족들이 대장군들에게 품은 분노 또한 극에 달했다.
이타카가 말했다.
“당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급류처럼 빠르게 퍼지더니 성문을 타고 올라갔다.
쿠쿠쿠쿠쿠쿠!
웅장한 소리를 내며 안쪽의 풍경이 모습을 드러내자 마족들이 주먹을 들었다.
“대공을 끌어내자! 대공을……!”
그 순간 하늘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공은 잘못이 없어.”
마족들이 동시에 하늘을 쳐다보았으나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그는 누구보다 지옥을 아끼고 있어. 그렇기에 내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마족의 인파가 강제로 열린 곳을 따라 시로네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리스가 중얼거렸다.
“유피…….”
아니, 이제는 야훼다.
하지만 고양이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어린 악마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편, 바깥의 사정을 모르는 리안은 게헨나의 사슬로 연결된 대직도를 들었다.
“업의 사슬을 끊는 검이라. 이것으로 진성음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겁니까?”
“자네가 얼마나 많은 업을 감당할 수 있느냐에 달렸지. 물론 나도 그렇게 되기를 바라네만…….”
대공은 말을 줄였다.
진성음이 해방되고 심령권이 열리면 마족의 두 번째 침공이 있을 것이므로.
리안이 돌아섰다.
“그렇군요. 아무튼 고마웠습니다.”
그냥 그렇게 보내면 될 일이었지만, 결국 마그리트는 묻고 말았다.
“나를 죽이는 게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