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6
리안이 돌아섰다.
“민망한 말이지만 나는 인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수많은 기술을 알고 있네. 즉, 심령권이 열리면 가장 위험한 적은 나라는 얘기지. 지금이라면 날 죽일 수 있을 터.”
리안은 손바닥을 통해 와 연결되어 있는 게헨나의 사슬을 살폈다.
“나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한심하면서도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당신은 시로네를 도왔어요. 적어도 지금은. 만약 훗날 시로네를 방해한다면, 그때 베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기회가 두 번 있을 것 같나?”
마그리트는 마음이 무거웠다.
“지옥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 말이야. 나중에 나를 베려면 억에 달하는 병사를 먼저 뚫어야 할 거야.”
“……그래도 베어야죠.”
“벨 수 없다면? 결국 벨 수 없게 되어, 자네의 주군이 죽는다면?”
리안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벨 수 있습니다.”
다른 선택지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오직 베기 위한 눈빛.
‘이 녀석은 그냥 검이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실수한 것은, 리안도 시로네도 아닌 마그리트 자신일지도 모른다.
‘현실이든 지옥이든, 어떤 철학이든, 그저 베어 버리는 것. 정말로 이 녀석을 그냥 보내는 게 옳은 일인가?’
자존심 강한 대공이 속물적인 생각을 할 만큼 시로네의 검은 강했다.
“전장에서 보죠.”
지하실에 거대하게 뚫린 구멍을 통해 리안은 성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야훼의 등장으로 생긴 정적은 마족들의 분노로 인해 처참하게 박살 났다.
“크아아아아! 야훼! 야훼!”
가증스러운 적을 바라보는 마족들의 눈빛은 충혈되다 못해 터질 지경이었다.
“야훼여.”
레테가 나섰다.
“뻔뻔하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그토록 혐오하던 마족의 탈을 쓰고 연기를 하더니, 이제는 역겨운 얼굴을 우리 앞에 드러내느냐.”
“마그리트는 빼.”
시로네는 할 말만 했다.
“그는 마족을 배신한 게 아니야. 오히려 지옥을 위해 나와 거래를 한 거지. 누가 더 유리한지는 결과가 말해 주겠지만, 그도 나도 최선을 다했어.”
레테가 마그리트를 소멸시킨다면 시로네 또한 일이 쉬워지겠지만…….
‘비겁할 수는 없다.’
그런 건 신념이라 부를 수 없을 테니까.
“깔깔깔! 깔깔깔!”
레테가 분노의 폭소를 터트렸다.
“언제나 그런 식이지. 지금도 봐. 마족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잖아? 하지만 결국 너는 우리를 소멸시킬 거야. 그것을 위해 여기 온 것이 아닌가?”
“…….”
“왜 그러지? 대답해 봐. 그토록 당당하다면, 왜 마족으로 변장하면서까지 우리 아이들을 능욕한 거지? 마족이 그렇게 우습게 보여? 이 개자식아!”
“거기에 대해서라면…….”
유피로 지냈던 시간은 짧았지만, 마족과 나누었던 교감은 진심이었다.
“사과할게. 너희들을 우습게 본 것은 아니야. 변명을 하자면, 더 큰 싸움을 막기 위해서였어.”
손유정이 난입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조용히 흘러갔을 일이었다.
“그걸 말이라고 해!”
찢어질 듯한 고함을 내지른 사람은 레테가 아닌 잠행대장 오리스였다.
“감히 네가……!”
말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오리스는 고양이의 발을 박차고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나쁜 새끼!’
가장 혐오하는 존재에게 잠시나마 호감을 느낀 이 배신감을 어떻게 지워야 할까.
‘죽인다!’
오리스의 날카로운 손톱이 시로네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듯이 쇄도했다.
“제길!”
반격의 의지가 없는 시로네의 눈빛을 본 순간 그녀의 손이 우뚝 멈췄다.
“왜 피하지 않지? 나 같은 건 만만하다는 거야?”
“미안해. 내가 너를 속였어. 상처를 줄 생각은 없었지만 결국 내 잘못이야.”
고양이의 눈이 불타올랐다.
“거짓말. 내가 죽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겠지! 그게 야훼의 본질이니까!”
시로네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네 판단에 맡기고 싶었어. 하지만…… 알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
“그래. 그게 바로 너야. 편견 없이 사랑하는 척하지만, 결국 네 뜻대로 할 뿐이지.”
“그럼 어떻게 할까?”
시로네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너에게 죽을 수도, 너를 죽일 수도 없어. 모두를 구할 수도, 모두를 살릴 수도 없다고.”
아무도 모른다.
유일하게 야훼를 이해했던 부처조차 이제는 세상에 남아 있지 않으므로.
모든 죽음은 고독사.
‘진짜 그만할까.’
포기해도 그만, 싸워도 그만이라면, 굳이 고통을 받을 필요도 없는 것을.
“……어떻게 믿어?”
오리스의 살기가 느슨해졌다.
“뻔뻔하게 속여 놓고서는, 상처 주고 싶지 않았다는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말이야?”
“나를 믿을 필요 없어.”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너의 마음을 믿는다는 거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돼.”
그 순간 레테가 소리쳤다.
“죽여라! 세 치 혀로 마족을 능멸하는 야훼를 갈기갈기 찢어발겨라!”
마족들이 괴성을 내며 달려오는 소리에 오리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거짓이야. 지금 이 눈빛도, 했던 말도,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말이라고.’
생각의 속도만큼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족들이 무기를 내리쳤다.
‘또 속으면 안 돼. 분명 죽기 전에 태세를 바꿀 테니까. 나를 죽이겠지. 그 전에 내가 먼저…….’
지옥의 병장기들이 빠져나갈 틈조차 없이 시로네의 등에 밀려들었다.
오리스는 흐느꼈다.
“흐으으.”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충격이 가해지고, 마족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뭐야? 어디로 갔어?”
레테가 싸늘한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리스.”
20미터 떨어진 곳에서 시로네를 품에 안은 그녀가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미세 조정 (3)
오리스가 시로네를 지킨 것을 확인한 순간 마족들이 받은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어, 어떻게 당신이…….”
야훼에 대한 증오도 그렇지만 7장군은 도시에서 가장 존경받는 마족이었다.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선택이었는지 오리스의 눈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나도 야훼가 싫어. 정말 싫단 말이야.’
하지만 유피.
설령 자신을 속였더라도, 야훼와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그 거짓이 너무나 좋아서.
“가.”
오리스는 시로네를 떠밀었다.
“어디든 가 버리라고. 여기서 개죽음당할 바에는 차라리 싸우다가 죽어.”
마족들이 악을 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오, 오리스! 지금 당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이 세계를 지탱하는 상식, 체계, 옳음 앞에 그녀가 반박할 여지는 없을 테지만…….
“믿을게.”
설명할 수 없는 논리도 있는 법이다.
“너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최선을 다해 잘해 보려고 해도,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제발…… 그냥 가.”
빌어먹을 세상.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 따위, 인간계에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오리스.”
상상만 해도 황홀하지 않은가?
그 상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통쾌해서, 시로네는 포기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미안해.”
잠시 놀란 오리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배후가 밝아지더니 등에서부터 지옥 불이 타올랐다.
“허억!”
불은 순식간에 번졌고 무언가를 할 겨를도 없이 그녀의 육체가 소멸했다.
레테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치스럽구나, 내 아이여.”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시로네는 오리스의 기억이 남은 곳에 손을 내밀었다.
“…….”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천천히 일어서는 시로네의 몸에서 비로소 황금빛 연기가 무섭게 피어올랐다.
“레테,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무슨 소리지? 오리스는 결국 네가 죽인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우리를 돕는 길이야.”
레테는 관리자. 따라서 다른 마족과 달리 야훼에게 특별한 증오는 품고 있지 않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레테.”
시로네가 이를 악무는 순간 주위의 마족들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크르르. 야훼여, 어디까지 우리를 타락시킬 셈인가? 어디까지 우리를 깔보는가?”
“너희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아.”
그것이야말로 오리스가 소멸을 각오하면서까지 시로네에게 남긴 것일 테니까.
“흥! 헛소리. 너는 언제나 그렇게 말하지. 그리고 또다시 우리를 몰살시킬 거야.”
“비켜. 레테랑 이야기하고 싶어.”
시로네의 목소리는 간곡했으나 마족들에게는 오히려 무시당하는 느낌이 컸다.
잠시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던 그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돌진했다.
“크아아아! 야훼를 죽여라!”
미라클 스트림에 감싸인 상태의 시로네에게는 모든 동작들이 눈에 선명했으나.
‘또 이건가?’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대체 언제까지…….’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서, 더 이상 반박할 대상조차 없는 세계가 되면.
‘그게 승리인가?’
과연 그것이 신념의 관철인가?
시로네의 맑은 눈동자에, 분노에 몸서리치는 마족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죽어어어어……!”
선두의 마족이 2미터가 넘는 대형 도끼를 쳐들고 팔을 휘두르는 순간.
콰아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불구덩이가 폭발하며 주위의 마족들을 송두리째 불태웠다.
“크아아아아!”
충격파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마족이 괴성을 지르자 레테가 인상을 구겼다.
“……너냐?”
전신이 달구어진 돌처럼 불타고 있는 여자가 붉은 곤봉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시로네가 고개를 기울였다.
“손유정? 네가 왜?”
거의 백광에 가까울 정도로 불타는 그녀가 흰자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네가 오라며! 너 지금 뭐 하냐? 나한테는 잘도 긴고주를 외우더니 마족에게 빌빌대는 거야?”
시로네가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자 정신을 차린 손유정이 어깨를 움찔했다.
“아니, 뭐…… 그렇다고요. 말하자면 제 속마음이 그대로 나온 것이죠, 네.”
“하악! 하악! 손유정 님! 뜨거워 죽겠어요!”
허리춤에서 리체라의 얼굴이 앓는 소리를 내뱉었으나 열기를 줄일 수는 없었다.
‘저건 진짜다.’
손유정이 자신도 모르게 여의를 강하게 쥘 만큼 강한 상대는 레테였다.
‘저 옆에 있는 머리카락 귀신(이타카)도 제법이지만, 이 여자는 차원이 달라.’
붙어 보고 싶었다.
“간다!”
손유정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화력을 높이는 그때 시로네가 말을 내뱉었다.
“그만둬.”
긴고아가 살며시 목을 조이는 느낌만으로도 손유정은 기겁하며 고개를 들었다.
“크윽!”
근두의 화신이 약해지면서 불기가 빠지자 비로소 리체라가 숨을 내쉬었다.
“레테와 할 얘기가 있다.”
“……네.”
저항할 의지조차 없이 손유정이 물러나자 시로네가 레테에게 다가갔다.
“레테.”
아이를 달래듯 간절한 목소리였으나 레테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