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07
“자꾸 부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 어디, 한마디 정도는 들어 주지.”
“하나만 묻자.”
시로네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몸을 감싸던 미라클 스트림이 낙뢰가 거꾸로 승천하듯 솟구쳤다.
“내가 누구냐?”
빛의 기둥이 점차 반경을 넓히자 마족들이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그들이 상상하는 야훼와는 전혀 다른 기질이 도시 전체를 압도하고 있었다.
이타카는 고개를 수직으로 세우며 불의 구름을 뚫은 빛을 올려다보았다.
‘이 정도였던가?’
다른 7장군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녀는 이 순간 야훼와 싸우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대답해.”
모든 마족들의 시선이 한곳에 집중되었고, 레테는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 라비에트 도시는 찰나의 순간에 정화되어 버릴 터였다.
“결국은 협박…….”
“레테.”
시로네가 말을 끊었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잖아.”
승천하는 빛의 흐름이 더욱 거칠어지자 마족들은 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크으으으!”
유일하게 버틸 수 있는 건 레테뿐이었고, 마침내 대답이 내뱉어졌다.
“야훼.”
정확한 대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가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보탰다.
“……이십니다.”
“레테 님?”
야훼에게 존칭을 쓰는 모습에 주민은 물론 7장군까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부처는 이제 없다. 세계의 균형은 무너졌고 지옥은 이제 내 손에 달렸어. 너희들이 아무리 나를 타락시키려고 해도 더 이상 흔들릴 것이 없다는 얘기야.”
레테는 정확히 알아들었다.
“최고 관리자가 사라졌으니, 알아서 모셔야지요. 나에게 원하는 게 뭔가요?”
“마계 정화.”
“불가능합니다. 내 자식들을 다 죽이라고요?”
“최소한 군단장의 마계라도 없애. 그러면 나도 이면 세계를 들쑤시지는 않겠어.”
레테의 사명은 지옥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었기에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좋은 제안도 아니어서 문제지.’
마계를 해제하는 것도 복잡한 일일뿐더러, 사탄의 힘마저 약화시키는 일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받아 버리자니 시로네의 분노가 지옥을 뒤흔들 터였다.
그때 돼지 멱따는 목소리가 들렸다.
“꿀꿀. 사장님?”
듣는 것만으로 울화통이 터지는 음성에 레테가 사납게 고개를 돌렸다.
거지꼴을 하고 있는 모노라스가 부실장 보이드와 함께 서 있었다.
“너 이 자식……!”
레테의 눈에 불똥이 튀는 것을 보자마자 보이드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분명 급한 용무라고 말을 했는데도 막무가내로 도박의 도시에…….”
그것만으로도 모든 정황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사장님!”
모노라스가 억울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당했습니다! 제길! 그 녀석들 완전 꾼들이에요! 어떻게 가진 재산을 전부 걸었을 때 2퍼센트의 확률을 뚫고 그 패가 나올 수 있는지! 꿀꿀!”
모노라스의 뻔뻔한 모습을 레테가 빤히 지켜보자 보이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죄송합니다! 거기서 끝냈어야 했는데, 비서실장이 화공사 지분까지 거는 바람에…….”
퍼뜩 생각났는지 모노라스가 말을 이었다.
“맞아, 내 지분! 온갖 비리로 모은 내 지분을 전부 날렸다고요! 사장님이 가서 좀 찾아 주세요.”
“모노라스.”
레테가 천천히 다가왔다.
“네. 꿀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모노라스를 쳐다보던 레테가 두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그의 가슴에 닿고, 레테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다 찾아 줄게.”
“어? 정말요? 꿀꿀.”
“그럼, 다 찾아 주지. 그나마 빨리 와서 다행이야. 실컷 놀게 해 줄 테니까,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일하기 싫은데.”
“사장실에 들어오는 것도 허락해 줄게. 아무 때나 막 들어와도 돼.”
“호오?”
모노라스의 눈이 처음으로 반짝 빛났으나 이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엄청 귀찮은 일이면 안 할 거예요.”
“저기 뒤에 야훼 보이지?”
허리부터 회전시킨 모노라스는 빛에 휩싸인 시로네를 빤히 바라보았다.
레테가 말했다.
“죽여.”
한참이나 말이 없던 모노라스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 다행이다.”
쿵 하는 첫 번째 진동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노라스가 시로네에게 돌진했다.
쿠쿠쿠쿠쿠쿠쿠!
도시 전체가 흔들리고, 섬뜩함을 느낀 시로네가 엄청난 속도로 물러섰다.
“쉬운 일이어서.”
그 순간 불꽃에 휩싸인 손유정이 앞을 가로막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키이이이이!”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
이성적인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발동되어 버린 전투 원숭이의 본능이었다.
‘얼마나 강한 거야?’
까마득한 느낌을 받으며 손유정의 여의가 꽃잎처럼 만개하며 쳐들어왔다.
“꾸울!”
모노라스가 팔을 후려치자 돌원숭이의 화신에 쩍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
쾅! 쾅! 쾅! 쾅!
짧게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수 킬로미터를 공처럼 튀며 날아가는 중이었다.
‘이미르?’
굳이 비교하자면 그것과 같다.
손유정을 튕겨 낸 모노라스는 시로네의 속도를 따라잡으며 주먹을 내질렀다.
“꾸우우우우울!”
풍압이 눈에 보일 정도였고 거대한 주먹의 형태가 공간을 구기며 밀려들었다.
‘핸드 오브 갓!’
하늘에서 뭉친 빛의 주먹이 풍압을 그대로 치받자 구형의 충격파가 발생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
도시의 절반이 날아가면서 마족들의 비명 소리가 아련하게 밀려들었다.
“크으으으으!”
일 합을 경험한 것과 동시에 시로네 또한 손유정과 똑같은 생각을 했다.
‘이미르.’
다만 야훼로서 조금 더 파헤치자면.
‘이미르의 마魔.’
현실과 마찬가지로 이면 세계에도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가 존재한다.
‘최대 화두 중의 하나. 수많은 마족들이 이미르의 마를 찾아 헤맸으나 결국 발견하지 못했다.’
레테가 독점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실에…… 사장님실에…….”
모노라스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중얼거리더니 턱이 빠질 듯 소리쳤다.
“들어갈 거야아아아아아!”
일견 저급하고 충동적으로 보이는 성격에서 시로네는 의문을 느꼈다.
‘이게 이미르의 감정이라고?’
거인은 생식을 할 수 없다.
‘설마?’
퍼뜩 깨달은 시로네가 눈을 크게 뜨는 순간 두 번째 일격이 가해졌다.
콰아아아아앙!
첫 번째 충격파보다 10배 이상 강력한 힘이 광활한 지옥의 벌판을 휩쓸었다.
모노라스의 한쪽 눈꺼풀이 올라갔다.
“호오?”
놀란 이유는, 자신의 주먹으로 부술 수 없는 것이 존재할지 몰랐기 때문에.
“시로네, 괜찮아?”
어느새 앞을 가로막은 리안이 모노라스의 주먹을 검으로 막고 있었다.
미세 조정 (4)
시로네는 리안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리안?”
방패처럼 넓은 등은 언제나 그렇듯 안도감을 주었지만 기질은 전과 달랐다.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던 그의 의지도 지금은 농밀하게 압축되어 있었다.
“시로네, 내가 맡겠다.”
리안이라면 군소리가 나올 여지가 없지만 한 가지는 밝혀 두어야 했다.
“조심해. 이 녀석은 이미르의 마를 가지고 있어.”
“이미르?”
리안은 시로네에게 도달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위험을 제거하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이미르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자 최강의 라이벌이었다.
“……꿀.”
대직도를 사이에 두고 모노라스와 눈빛을 교환한 리안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믿을 수 없겠는걸.”
강하다는 건 분명하지만, 이미르라 칭하기에는 너무 저급한 기질이었다.
“복잡한 문제야. 아마도.”
시로네가 설명을 미룬다면 리안도 굳이 깊게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알았어. 여긴 맡겨.”
리안 또한 화공사의 사장을 제압하는 것이 급선무임을 알고 있었다.
“부탁할게.”
시로네가 도시로 날아가자 모노라스가 몸을 뒤틀며 따라갈 자세를 취했다.
“놓치면 안 되는데.”
“어이.”
리안이 불렀다.
“네 상대는 나다. 등을 보이는 순간 몸통이 둘로 쪼개질 테니 그런 줄 알아.”
평소라면 콧방귀도 뀌지 않을 모노라스였으나 이번에는 움직이지 못했다.
리안의 근육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온연한 야차의 형태를 갖추었다.
“제법……!”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안의 주먹이 모노라스의 턱에 정통으로 꽂혔다.
돼지의 얼굴이 짓눌리는가 싶더니 수백 미터 전방으로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콰아아아앙!
리안이 대직도를 끌어당기며 몸을 내미는 그때 모노라스가 연기를 가르고 뛰쳐나왔다.
“꾸울!”
쿠우우우우웅!
주먹과 대직도가 또다시 충돌한 순간 섬광이 터지며 충격파가 휘몰아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저항에 양쪽 모두 충격을 받은 가운데, 모노라스가 입가를 찢었다.
“간만에 힘쓰게 하네.”
고통이란 왜 이렇게 즐거운 것인지.
“꾸아아아아알!”
마음먹고 뻗은 주먹이 대직도를 때리자 손잡이를 타고 충격이 전해졌다.
“크윽!”
리안의 피부가 갈기갈기 찢어지고, 모노라스의 주먹이 우두둑 소리를 내며 부러졌다.
‘이래도 안 부서져?’
는 파괴되지 않는다.
“후우우우.”
천천히 물러선 리안이 대직도를 놓자 땡 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
모노라스는 대직도를 보는 한편 손바닥에 연결되어 있는 사슬을 주시했다.
“그건 뭐냐? 꿀.”
게헨나.
“모든 것을 태우는 불이다.”
대직도를 시뻘겋게 달군 리안이 사슬을 끌어당겨 손에 쥐고 겨누었다.
“너의 마를…… 내가 가져가겠다.”
정말로 이미르의 마魔라면, 완전히 정화시킬 수 있을지 리안도 미지수였다.
“으음.”
지옥의 시스템에 관심이 없는 모노라스도 게헨나의 사슬은 알고 있었다.
“크크. 크크크.”
모노라스의 근육이 불끈 일어서고, 처음으로 그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