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1
시로네의 몸이 굳었다.
3번을 적은 것은 똑똑히 기억하니 결국 틀리고 만 것이다.
점수는 78점. 단 2점 차이로 진급에 떨어지자 숨이 턱 막혔다.
“2번…… 2번…….”
같은 말을 되풀이하던 시로네가 갑자기 뒷목을 잡으며 뒤로 넘어갔다.
황급히 그의 등을 떠받친 네이드와 이루키가 소리쳤다.
“시로네! 괜찮아? 정신 차려! 너 금강불괴라며?”
“2번? 어째서…… 어떻게 그게 2번…….”
“선생님,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
시로네는 끌려가는 중에도 같은 소리만 중얼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시이나가 피식 웃으며 교무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하여튼 지치지도 않나? 날마다 기운이 넘치네.”
채점하는 교사들로 교무실은 어수선했다.
시이나도 자리에 앉아 할당된 시험지를 채점했다.
그러다가 문득 떠올랐는지 서랍을 열어 수학 A형 시험지를 꺼냈다.
“객관식 마지막 문제라고 했지?”
시이나는 증명식을 살펴보았다.
잠시 눈으로 풀이를 한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아, 3번이네.”
아리안 시로네.
클래스 포 진급 확정.
학기 말의 성적표(5)
***
카이젠 검술학교.
토르미아 왕국 수도에 위치한 카이젠 검술학교는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교답게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기사들을 다수 배출했다.
공인 1급 검사만 10명 이상이었고, 그중에는 대검호의 칭호를 받은 자도 있었다.
철의 신념, 용기의 상징.
토르미아에서 기사를 꿈꾼다면 누구나 카이젠 검술학교에 입학하기를 원하지만 부와 권력이 있다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카이젠은 입학시험이 없다. 대신 한 달의 수습 과정을 통해 생도의 자질을 평가받고, 가능성이 보이는 인재만을 선별하는 방식이었다.
한 학기 지원자는 무려 300명. 그중에서 입학생은 오직 30명뿐이었다.
그리고 이 30명 안에 당당하게 속한 리안은 현재 카이젠 검술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었다.
시가지 전투 훈련장.
시가지의 풍경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훈련장은 카이젠의 자랑거리였다.
해골처럼 강퍅한 인상의 교사가 계단에 앉아 있는 1학년을 노려보며 말했다.
“오늘 실기는 무브먼트다. 그중에서도 1학년은 중심 이동에 초점을 맞추어 평가한다.”
교사의 이름은 파르카 쿠안.
공인 6급의 검사로, 전쟁에서 다리에 부상을 입기 전에는 죽음의 마술사라 불리던 검의 고수였다.
“중심 이동은 검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능력이다. 검의 3박자인 속도, 힘, 정확도가 여기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생도들에게 걸어간 쿠안이 거구의 소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너. 검사의 무게중심은 어디냐?”
“네! 배꼽입니다!”
“틀렸다. 너, 말해 봐.”
쿠안은 상어처럼 눈이 쫙 찢어진 생도를 가리켰다.
답을 몰라도 일단 일어서야 했다. 조금이라도 머뭇거리다가는 얼차려를 받을 테니까.
“네! 발바닥입니다!”
“틀렸어. 너.”
“검, 검입니다!”
말을 더듬는 것도 그랬다.
“엎드려.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실시!”
열에서 이탈한 생도는 팔굽혀펴기를 했다.
평가를 앞두고 체력을 소진하는 건 끔찍한 일이지만 검술학교의 교사들은 그딴 건 안중에도 없었다.
쿠안은 허리춤에 채워진 장검을 뽑아 들었다. 끝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고 상대적으로 검신은 가늘었다.
“검사의 무게중심은 어디인가? 정답은 바깥이다. 이를 스키마 용어로 외중력이라고 한다. 따라 해, 외중력.”
“외중력!”
소리치는 생도들의 눈에 당황과 분노가 얽혔다.
한 학기 동안 들어 본 적도 없는 용어를 평가 직전에 설명한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여태까지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귀찮아서다. 어차피 너희 같은 꼴통들이 알아먹을 리도 없겠지. 하지만 오늘은 내가 기분이 안 좋은 관계로 외중력에 대한 평가도 추가한다. 알겠나?”
“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대답에는 살의가 담겼다.
이제 와서 평가 항목을 추가하면 반년 동안 개처럼 구른 노력은 뭐란 말인가?
‘진짜 죽여 버리고 싶다. 저게 무슨 교사야?’
“딱 한 번 시연한다. 잘 보고 익히도록. 곧바로 평가에 들어갈 거니까.”
저마다의 생각이야 어쨌든 원래부터 고요하던 훈련장에 적막이 흘렀다.
“나가면서 베고, 물러서면서 벤다.”
쿠안은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검을 휘둘렀다.
다리를 절뚝이는 탓에 볼품은 없었지만 바람을 가르는 소리만큼은 무시무시했다.
“이것이 바로 일반적인 검술의 무브먼트다. 육체의 힘은 중심을 이동시키고, 중심의 이동은 검의 파괴력을 끌어올린다. 게다가 스키마로 근력을 향상시킨다면 검의 파괴력은 기하급수로 높아진다.”
생도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지만 평가를 앞둔 긴장감은 더없이 높았다.
“……라는 저급한 생각이나 하고 있겠지. 하지만 이런 생각으로 실전에 접근하다가는 3초 안에 죽는다.”
‘재수 없어.’
생도들의 눈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명심해라. 아무리 파괴력이 강해도 무브먼트에서 밀리면 승부는 하나 마나다. 따라서 검사들은 상황에 따라 무게중심을 바깥으로 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쿠안은 발바닥으로 땅을 내리찍었다. 그런 다음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중심축이 무려 70도 이상 기운 상태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생도들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말도 안 돼.’
허리에 줄이라도 묶어 놓지 않은 이상 땅에 쓰러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했다.
“스키마로 증폭된 힘은 무게중심의 이동을 극대화한다. 현재 나의 중심은 몸의 바깥에 있다. 정확히는 등 바깥쪽이겠지. 이것을 외중력이라고 한다.”
쿠안이 고개만 살짝 들자 기울어져 있던 일자의 육체가 오롯이 세워졌다.
“외중력을 이용하면 무브먼트의 가능성은 무한해진다. 이를테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다시 땅을 짓밟은 쿠안이 이번에는 뒤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지면에 등이 닿을 정도까지 쓰러진 그의 육체가 원뿔을 그리며 회전했다.
“…….”
생도들은 말을 잃었다.
“외중력은 실제로 존재하는 중력이 아니다. 단지 극단적으로 강한 관성일 뿐이지. 따라서 외중력에 회전을 먹이면 이렇듯 육체도 회전한다.”
검을 중심 바깥으로 내밀자 일순 회전이 느려졌다.
그러다 육체가 일어서자 구심력이 발생하면서 가속이 붙었다. 급기야 초당 5회가 넘는 속도로 칼날이 돌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스!
무서운 바람 소리를 내며 회전하던 쿠안이 마지막 일 검을 휘두른 자세로 동작을 멈췄다.
생도들은 경악했다.
‘저건 못 막아.’
근력으로 도는 것이 아닌 물리를 이용해 육체에 회전을 먹인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당하는 입장에서는 토네이도를 상대하는 기분일 터였다.
‘이것이 죽음의 마술사.’
상대가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게 죽음을 준다고 하여 붙은 별칭이었다.
쿠안이 검을 거두고 말했다.
“이것이 오늘의 추가 항목이다. 장애물 통과가 첫 번째, 시가전 무브먼트가 두 번째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엎드려.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실시!”
곧바로 열을 이탈한 생도는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반드시 기억해라. 원하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압도해야 한다. 교관은 생도의 부모가 아니다. 칭찬받고 싶어 하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마라. 역겨워 죽을 거 같으니까. 알겠나?”
“네! 시정하겠습니다!”
“다시 해 봐.”
얼차려를 끝낸 생도가 손을 들며 악을 질렀다.
“교관님! 질문 있습니다!”
“말해 봐.”
“시가전 무브먼트는 무엇을 평가하는 항목입니까!”
“그건 이제부터 설명한다.”
생도는 머쓱했다.
사실 질문을 한 이유는 쿠안에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쿠안은 존경심조차 나약함의 발로라고 생각했다.
“시가전 무브먼트. 귀찮으니 짧게 하고 끝낸다.”
쿠안은 훈련용 건물로 들어갔다. 인형의 집처럼 전방이 트여 있어 견학에 문제가 없었다.
“외중력이 빛을 발하는 장소는 복잡한 지형이다. 특히나 시가전은 공간마저 협소하기에 무브먼트의 수준으로 임무 수행의 결과가 갈린다고 할 수 있다.”
쿠안이 마룻바닥을 발로 찍으며 말했다.
“땅을 찍는 이유는 힘을 발생시켜 중심을 육체 밖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이를 퍼스트 임팩트라고 한다. 물론 실전에서 이런 미친 짓을 하고 있을 시간은 없지만 애송이인 너희는 반드시 땅을 찍는 게 좋을 것이다.”
비하와 조롱이 섞여 있었지만 생도들은 이제 분노의 감정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퍼스트 임팩트로 땅을 찍지 않는다. 마음먹고 내려찍으면 마루가 박살이 날 테니까. 그 소음은 아군을 죽이겠지. 따라서 스키마에서 외중력 계열은 다양한 퍼스트 임팩트를 구사하는데, 그중에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근진동을 이용하겠다.”
쿠안의 상체가 텅 하고 튕기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점프한 그가 벽에 손을 대고 팔꿈치를 살짝 구부리자 3초 이상 두 발이 떠 있는 진풍경이 드러났다.
“우와아아아.”
생도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당연히 ‘엎드려!’가 나와야 할 상황이지만 쿠안은 귀찮은지 설명을 이어 갔다.
“퍼스트 임팩트로 외중력을 만들면서 도약한다. 물론 이런 경우 중력은 벽의 방향으로 작용하겠지. 이를 응용하면 이런 무브먼트도 가능하다.”
다시 근진동을 일으킨 쿠안이 벽면을 따라 수직으로 걷기 시작했다.
시선으로 좇아가던 학생들의 고개가 천장을 향했을 때는 모두 입을 벌리고 있었다. 쿠안이 박쥐처럼 천장에 두 다리를 대고 거꾸로 서 있었다.
“외중력이란 관성을 만들어 내 중력을 상쇄시키는 것. 현재 나는 너희들과 정반대의 중력을 느끼고 있다.”
쿠안이 천장을 걷는 광경은 경이를 넘어 기괴할 지경이었다.
물론 마술 같은 건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벽을 타고 달리는 정도라면 스키마가 불가능한 서커스단의 곡예원도 가능할 테니까.
다만 쿠안은 스키마의 힘으로 더 강하고 정밀하게 관성을 발생시켰을 뿐이다.
외중력이 소멸하자 쿠안의 몸이 정상적인 중력을 받아 추락했다.
가볍게 한 발로 착지한 그가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생도들은 넋이 나가 있었다.
“전부 엎드려. 팔굽혀펴기 200회 실시.”
“실시!”
생도들은 아차 싶었다.
물론 대부분 스키마를 다룰 수 있으니 불가능한 횟수는 아니지만, 1학년 수준에서 구사할 수 있는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팔굽혀펴기 200회라면 꽤나 뻐근한 얼차려인 셈이었다.
“하면서 들어라. 첫 번째 실기는 수평 장애물이며 단계가 올라갈수록 높이가 낮아진다. 마지막 단계는 외중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통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시간은 20초. 장애물은 진검이기에 심각할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물론 무섭다고 낙오하는 머저리는 없으리라 믿는다. 부상을 당하면 카이나 교관의 치료를 받을 것이다.”
카이나는 검술학교 최고의 서저리였다.
마법사에 힐러가 있다면 검사에는 외과 수술을 하는 서저리가 있었다. 다른 점은 수술의 고통이 극악하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절단 환자 같은 경우는 신경계까지 이어 버리기 때문에 치료를 받다가 졸도하기 일쑤였다.
‘젠장. 그게 더 무섭잖아!’
“시가전 무브먼트는 간단하다. 벽에 손을 대고 두 다리를 띄우는 것. 오래 버틸수록 점수가 높아진다. 이해했나?”
“네!”
생도들이 독기가 오른 표정으로 악을 지르자 쿠안은 평가지를 챙기고 자리를 옮겼다.
“1번부터 시작한다. 호명하지 않을 테니까 눈치껏 나오도록. 대기하는 자들은 쉬어.”
얼차려를 끝낸 리안은 자리에 앉아 턱을 괴었다.
1명당 최소 3분이라면 휴식 시간은 넉넉했다.
“어때? 잘할 수 있겠어?”
검술학교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여자의 목소리였으나 리안은 대수롭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금발이 파도처럼 흘러내리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큰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팔다리가 쭉쭉 길어서 시원한 느낌이 드는 체형이었다.
이름은 엘자인 테스.
왕국에서 명망이 높은 엘자인 가문의 외동딸로, 식민지 사령관인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검술학교에 들어온 여성이었다.
얼굴은 귀엽다면 귀엽고 사납다면 사나웠으나, 성격만큼은 어떻게 보든 사나웠다.
실력 또한 출중하여 1학년 톱을 달리는 천성적인 무골이었다.
학기 말의 성적표(6)
“왔으면 빨리 앉아. 교관한테 들키면 사형이다.”
“호오? 천하의 리안도 교관은 무서운 모양이네? 어차피 채점하느라 정신없잖아?”
“알 게 뭐야? 뒤에도 눈이 달린 양반인데. 그나저나 갑자기 자리는 왜 옮긴 거야?”
“친구 좋다는 게 뭐야? 혹시 긴장하고 있을까 봐 풀어 주려고 왔지.”
“내가 언제 긴장하는 거 봤냐?”
“후후. 하긴, 더 이상 내려갈 바닥도 없으니 긴장할 건수라도 있겠어? 속 편한 꼴등이네.”
검술학교 생도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지만 리안은 입술만 삐죽 내밀고 말았다.
그 모습에 테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는 그의 성격은 분명 다른 1학년 생도들과 구별되는 점이었다.
이런 남자가 어째서 늘 꼴등인 것일까?
1학년 중에서 가장 훈련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단연 리안이었다. 아니, 거의 혹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혹한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성적은 안 오른단 말이야.’
한 달 전에 스키마를 터득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과연 사실인지 의문일 정도로 강화 속도가 느렸다.
리안이 말했다.
“아무리 내가 꼴등이라도 해 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지. 막상 도전하면 의외로 잘 풀릴 줄 누가 알겠어?”
“후후, 너다운 말이네.”
테스는 리안의 약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