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10
“아…….”
청량감이 사라진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시로네가 설명했다.
“스피릿 존의 밀도를 높이는 버프입니다. 조금 전의 느낌을 상기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거예요.”
얼마나 단련을 거듭해야 조금 전의 상태를 다시 맛볼 수 있을까?
그렇더라도 특정 경지를 잠시나마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은 엄청난 특혜였다.
한껏 들떠 있는 학생들과 달리 위저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네.”
즉각 대답이 나왔다.
“하지만 왜 이걸 배워야 하죠?”
어쩌면 처음으로 제기하는 의문에, 학생들과 교사들이 그녀를 돌아보았다.
“오빠, 아니 선생님.”
교육 시간에는 오빠라는 칭호가 금지였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건 알고 있어요. 선생님이 원하는 건 제가 하비츠를 죽일 정도로 성장하는 거잖아요.”
감정이 흔들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지만, 이번에는 선을 넘은 감이 있었다.
“위저드.”
“죄송해요. 제대로 전달하고 싶어서요. 하지만…… 어쨌거나 사실이잖아요.”
“…….”
“생존의 문제보다는 임무 성공에 집중하고 싶어요. 목숨까지 돌보면서 죽일 수 있을 만큼 약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어요.”
시로네는 흔들리지 않았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최대한 빨리 내 과제를 해결해라. 그게 가장 빠른 길이야.”
두 사람의 시선이 잠시 동안 부딪쳤다.
“좋아요.”
한숨을 내쉰 위저드가 비전 마법을 펼치자 시로네가 보인 것과 같은 십자가가 그려졌다.
“포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의 머리 위로 이펙트가 터졌다.
버프의 효과도 놀라웠지만, 사고를 충돌시키는 속도가 시로네를 상회할 정도였다.
“세상에…….”
한 사람의 마법사로 온전히 인정받고 싶은 위저드의 마음이 보이는 듯했다.
‘여기서 응용한다.’
십자의 중심에 수많은 사선이 탄생하면서 사고의 형태가 구 모양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마도 10인회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저건…… 3차원이잖아?”
“확실히 놀랍군.”
람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체적 사고는 모태 각성의 영향이겠지만, 포스에 응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일 터.”
그렇기에 시로네의 반응이 더욱 궁금했다.
‘사제 간의 신경전이라…….’
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은 포스 시연이 끝난 뒤에도 침묵을 지켰다.
“하아. 하아.”
위저드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으나 시로네를 향한 시선만큼은 거두지 않았다.
“이제 됐나요?”
“탁월한 실력이구나. 아주 잘했다.”
“그럼 이제 싸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사탄에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싸우는 방법을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
위저드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시로네가 비전 마법을 시전했다.
“무슨……?”
위저드와 똑같은 입체적 사고를 구축한 시로네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유틸리티를 가르친 이유는 물론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야. 하지만…….”
위저드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정말로 보여 주고 싶은 건 이거라고 할 수 있지.”
워낙에 빠른 포스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교사들이 불현듯 깨달았다.
“어? 어?”
차례대로 충돌시켜야 하는 버프들이 마음대로 순서를 뒤바꾸고 있었다.
“4차원…….”
위저드가 중얼거렸다.
“그래. 전지가 공간을 초월하여 순서를 바꾼다는 것은 시간을 뛰어넘는다는 뜻.”
시폭감의 경지였다.
“하비츠의 곁에는 언제나 시옥이 있다. 네가 시간의 장벽을 파괴할 수 있다면 임무 성공률은 비약적으로 상승하지. 유틸리티 계열을 선택한 이유 또한, 이 방법이 시폭감을 훈련하는 데 가장 좋기 때문이야.”
비로소 시로네의 깊은 뜻을 깨달은 위저드였으나 솔직히 장담할 수 없었다.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나요?”
새로운 감각을 개방하는 것은 재능의 영역이 아닌 종의 영역에 해당했다.
“실패할 수도 있겠지. 그렇기에 도박이지만, 시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
스펀지처럼 가르침을 흡수하는 위저드에게는 1시간도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시옥을 간과한 채로 보낼 수는 없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심각하게 생각하던 위저드가 고개를 들었다.
“언제까지 하면 되죠?”
“음.”
하늘을 살핀 시로네가 말했다.
“하루 주마.”
“네?”
눈이 똥그래진 위저드가 울상을 지었으나, 이럴 때의 시로네는 철벽이었다.
“내일 아침까지. 방법을 찾으면 나에게 와.”
좌우로 눈을 굴리던 위저드가 갑자기 물었다.
“무슨 방법이든 써도 되죠?”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그렇게 위저드의 훈련이 일단락되자 시로네는 에이미에게 걸어갔다.
“잘 잤어? 머리 많이 자랐네?”
“아.”
시선을 올린 에이미는 보이지 않는 짧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비볐다.
까까머리는 아니었으나 다른 여교사들에 비하면 여전히 볼품이 없었다.
“너무 바빠서 신경 쓸 겨를도 없었네. 우리 이따가 나가서 점심 먹을까?”
에이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혹시 위저드에게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잖아. 오늘은 그냥 학교에 있는 게 좋겠어.”
여전히 시로네를 배려하는 그녀였지만, 평소보다 감정이 절제되어 있었다.
“그럼 학교 식당에서라도…….”
“알았어.”
에이미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때 보자.”
자신이 거절해 놓고 서운함을 느끼는 모순적인 감정이 싫었고, 그 감정을 들키는 건 더욱 싫었다.
시로네의 뒤로 람파가 다가왔다.
“에이미 양이 생각이 많은 모양입니다. 오대성님에게 추파가 끊이지 않으니까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껄껄! 저에게 설명해서 뭐 하시게요? 정인 앞에서는 누구나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싶은 법입니다. 머리가 짧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은 아닐까요?”
“설마요. 제가 에이미의 짧은 머리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요. 인류를 구한 대가잖아요.”
“……아마도 그게 문제 아닐까요? 어쨌든 여자의 마음은 부처님도 모르는 것이니까요.”
시로네도 찔리는 구석이 없지는 않았다.
“사실 이곳에 온 이후로 에이미를 따로 만난 적이 없어요.”
“본인의 마음을 의심하십니까?”
“아뇨. 오히려 반대예요. 에이미를 볼 때마다 가슴이 뛰는걸요. 하지만…….”
일단 그녀에게 마음을 던지면 세계도, 인류의 문제도 하찮아질 것 같아서.
“하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일이 손에 잡히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죠. 알아서 잘하시겠지만, 그래도 너무 자신의 마음을 학대하지는 마십시오.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고 해서 아픈 게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
멀어지는 에이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로네는 람파의 말을 곱씹었다.
***
그날 밤.
시로네, 이루키, 네이드는 오지의 시골 마을에서 마족의 잔당을 소탕했다.
“오오, 야훼시여.”
순례를 떠난 이후 야훼의 이름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소문이 늘 그렇듯 사건은 과장되고 미화되기 마련이었으나, 적어도 시로네의 진심은 전해졌다.
“혼탁한 세상에 내려오신 한 줄기 빛이여, 부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특별히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먼저 알고 있다는 점에서 시로네 일행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확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말을 내뱉는 것은 1명이지만 듣는 귀는 수를 셀 수 없기 때문이다.
네이드가 목청을 돋웠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 정도면 도시에서는 장난이 아니겠는데?”
인류의 구심점이 생긴다는 것은 울티마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으나 시로네는 방심을 경계했다.
“여유를 부릴 수는 없어. 교황청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묵고 새벽에 다음 장소로 이동하자.”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인지, 시로네는 다른 때와 다르게 술을 주문했다.
네이드는 취기가 올랐다.
“하아, 오랜만에 마시니 기분 좋다. 기분이 좋으니 우리 리즈가 보고 싶네. 안 그러냐, 이루키?”
스스로 원해서 여행을 하는 것이지만 연인의 입장에서는 생이별이나 마찬가지였다.
“네 여자 친구를 내가 왜?”
“멍청아, 도로시 말이야. 짜식이, 자기도 좋으면서 괜히 차가운 척하기는.”
이루키가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에이미는 잘 있냐? 요새도 위저드 훈련 때문에 정신이 없는 거야?”
네이드는 퍼뜩 깨달았다.
“어라, 그러네? 너만 안 외롭잖아? 지금 둘이 뭐 하는지 이실직고하는 게 좋아. 인지 밖의 사건은 존재하는 게 아니다 같은 헛소리 하면 때려 버릴 테니까.”
시로네는 피식 웃었다.
“응, 잘 있어. 훈련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고.”
예상 밖으로 싱거운 대답에 네이드가 맥주잔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데 우리, 이쯤에서 밝혀야 할 것 같지 않냐? 왜 그런 거 있잖아. 던전에 들어가서 보물을 찾고 싶어? 아니면 땅굴을 파고…….”
이루키가 한심하게 쳐다보았다.
“그게 왜 궁금한데?”
“궁금한 게 아니라! 당연히 우리 사이에 비밀이 있을 수야 없는 거지. 너는 어때?”
“나야 뭐.”
이루키가 싱겁게 대답하자 네이드는 건너편에 앉아 있는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응? 뭐, 뭐가?”
시선을 피하는 반응으로 깨달은 네이드가 황당한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설마 너…….”
속세에 미련이 없는 건가.
“아니, 너는 그렇다 치고 도대체 에이미는 무슨 죄야? 너희들 또 싸웠냐?”
이루키마저 놀란 눈치였다.
“하하, 그런 게 아니라. 사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어. 게다가 워낙에 일정이 바빠서…….”
“사정은 무슨.”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네이드가 시로네에게 다가와 귀를 잡아당겼다.
“아야야! 뭐 하는 거야?”
네이드의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야, 시로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그냥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해. 여기 이 순진한 본체만 믿고 있다가는 평생 홀아비로 늙어 죽을 테니까!”
“본체가 어디 있어.”
네이드를 떠민 시로네가 귀를 어루만졌다.
“이게 무슨 통신 장비인 줄 알아? 다 똑같은 나라고. 그리고 이런 식으로 전달되는 게 아니란 말이야.”
하지만.
“하아, 남의 속도 모르면서.”
네이드의 목소리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스탕 왕국의 시로네에게 정확히 전달되었다.
‘누군 사람도 아닌 줄 아나.’
본능이라.
‘하긴, 차가웠을 수도 있겠구나.’
람파도 그렇고 친구들도, 자신보다는 여태까지 기다린 에이미를 걱정하고 있었다.
“좋아! 일단 부딪쳐 보는 거야.”
뭐가 좋은 것인지도 모른 채, 시로네는 반쯤 달뜬 기분으로 숙소를 나섰다.
에이미의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자유전자 (3)
***
거울 앞에서 양치질을 하면서, 에이미는 짧은 머리를 들어 올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군인이었고, 전투에서 겉치레가 얼마나 무소용한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녀도 1명의 여자가 아니던가.
“어휴.”
세안을 끝내고 나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에이미, 방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