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13
“신에게는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네. 그 사람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에요. 혹시 짐작이 가는 게 있나요?”
“아뇨. 몇 가지 가설은 세울 수 있겠지만, 확실하게 짚이는 건 없어요.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예요. 줄루 씨와 고대 유적으로 가는 중이거든요.”
카니스와 아린도 합류한 상태였다.
‘일단은 위저드.’
생각과 동시에 고개를 돌리자 때마침 위저드가 훈련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밤을 새웠는지 두 눈이 퀭했고 하루 사이에 몰라보게 앙상해져 있었다.
‘애썼구나.’
세기의 천재가 하루 만에 열량을 소진할 정도로 노력을 했다면 과연 결과는 어떨까?
“선생님.”
위저드가 시로네에게 똑바로 다가오자 교사들이 침을 꿀꺽 삼키며 지켜보았다.
“그래. 하루를 꼬박 썼구나. 성과는 좀 있니?”
“하루.”
매섭게 시로네를 노려보던 위저드의 표정이 갑자기 울상으로 변했다.
“하루만 더 주시면 안 돼요?”
정보의 무덤 (1)
위저드의 울먹이는 얼굴이 귀여웠지만 시로네는 그 표정에서 간절함을 읽었다.
‘정말로 분한 거구나.’
이미 시폭감을 개방한 시로네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인간은 빛의 신호를 기본으로 시간을 인지하게 되어 있다.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뇌의 근원적인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
“좋아.”
위저드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으나 시로네는 예상과 다른 말을 했다.
“훈련은 여기서 끝이야. 각오는 충분한 것 같으니, 이제 시폭감을 개방하자.”
“그게 무슨 소리예요?”
시간의 흐름은 뇌의 착각에 불과해서, 갑자기 시폭감을 개방할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다.
현재가 파괴되면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이니까.
“너에게 하루를 준 이유는 지금을 위해서야. 시간에 대해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 해 두어야, 상식이 깨지는 충격이 왔을 때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시로네는 이카엘을 돌아보았다.
“이분은 내 어머니, 이카엘이셔. 대천사의 감각은 인간보다 월등하지. 이제부터 너는 이분과 정신을 공명하는 과정을 경험하게 될 거야.”
“어머니?”
위저드는 고개를 끝까지 쳐들었다.
그녀의 작은 키로는 2미터가 넘는 이카엘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반가워요. 당신이 위저드군요.”
이카엘이 고개를 숙이며 눈웃음을 짓자 위저드의 입이 살며시 벌어졌다.
‘멋지다.’
인간의 미적 기준을 넘어서는 특별한 품격이 형태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교사들과 학생들도 감상은 비슷했다.
‘천사라니. 말도 안 돼.’
시로네의 친모가 인간이 아니라는 소문이 현실에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흠흠.”
교장 니콜라이가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다.
“빙의에 대해 설명은 들었지만, 위험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위저드의 부모를 의식해서 하는 말이지만 굳이 대화를 거는 이유가 있는 듯했다.
이카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로네가 괜찮다고 했으니 큰일은 없을 겁니다. 만약에 위험해지면 제가 멈출 테니까요.”
“허허, 학생도 그렇지만 이카엘 씨도 보중하셔야죠. 인류의 큰 별이신데요.”
“과찬의 말씀이세요. 감사합니다.”
시로네는 니콜라이의 입이 귀에 걸린 모습을 지켜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에이미가 옆구리를 찔렀다.
“뭘 신경 쓰고 그래? 내색을 못 해서 그렇지 다들 저 정도 호감은 가지고 있다고. 게다가 딱 보니 네 어머니는 관심도 없구만.”
“알고 있어. 그냥…….”
시로네에게 편견은 없다.
다만 이카엘이 얼마나 거핀을 사랑했고 또 행복했는지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시작하죠.”
이카엘은 위저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신을 믿으세요. 그게 곧 저를 믿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성광체를 당신의 머리에 흡수시킬 거예요. 우리는 하나의 정신으로 사고하게 될 거고, 그 과정에서 시폭감을 깨울 수 있을 겁니다.”
시로네가 덧붙였다.
“현재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고개를 끄덕인 위저드가 눈을 지그시 감자 이카엘이 성광체를 흡수시켰다.
“헉.”
아이의 가슴이 크게 부풀고,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사이로 안광이 새어 나왔다.
여전히 사위는 고요하지만 위저드의 뇌에서는 굉음의 대화가 오가고 있을 터였다.
“흐으으으!”
눈꺼풀에 이어 어깨가 떨리더니 급기야 전신이 감전된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 진동의 극한에서 위저드가 눈을 떴다.
“아아아아!”
시간의 장벽이 깨지면서 과거도 미래도, 전부 현재로 인식되고 있었다.
‘여기서 잡아야 해!’
마음에 집중하자 시폭감이 진정되면서 자신의 존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하아! 하아!”
거친 숨을 내쉬는 것도 잠시, 그녀는 새롭게 열린 감각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어라?”
현재가 너무 길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이미 지나간 과거를 현재처럼 살고 있는 기분은 어떨까?
“성공했구나.”
“선생님.”
시로네에게 다가가려던 위저드는 갑자기 느껴지는 살기에 걸음을 멈췄다.
“그럼 다음 단계.”
핸드 오브 갓을 머리 위에 띄운 시로네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내 공격을 피하는 거야.”
훈련 중에는 어리광이 없는 위저드였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간다.”
거대한 빛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여태까지의 훈련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와 위력에 위저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잠깐……!”
콰아아아앙!
핸드 오브 갓이 굉음을 내며 땅을 내리찍자 그녀의 육체가 개미처럼 으깨졌다.
시로네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합격.”
여기까지가 1초.
“헤헤, 감사합니다.”
현실에 머문 것은,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사제의 모습이었다.
***
케시아의 수도에 도착한 시로네는 인적이 없는 한적한 거리를 둘러보았다.
‘유령도시처럼 보이는데.’
건물 안에서 느껴지는 수많은 인기척만이 그 사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케시아에 왔을 때만 해도 살인, 약탈, 방화가 일상이던 곳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도 없기에 소문조차 돌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감정병을 막아 낸 건 확실해 보여. 아니, 이건 막았다고 볼 수도 없지만.’
시로네는 금화륜의 상징이 첨탑에 걸린 고층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유리창 안으로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그 풍경이 텅 빈 거리와 대비되어 시로네는 묘하게 소름이 끼쳤다.
“안녕하세요.”
바깥보다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말을 걸었으나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자세히 살피자 그들의 눈이 모두 풀려 있었다.
“누구……?”
그나마 정상인 것 같은 여자가 애써 걸음걸이를 다잡으며 걸어왔다.
“아, 저는 시로네라고 하는데요. 혹시 페르미 있나요?”
조건반사적으로 직원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어눌한 말이 이어졌다.
“시로네? 페르미?”
제정신이 아니라고, 시로네는 생각했다.
“이쪽으로 오시죠.”
계단 쪽에서 들린 목소리에 몸을 틀자 청명한 눈빛의 남자가 안경을 올리고 있었다.
“당신은…….”
일전에도 본 적이 있는 페르미의 비서가 손목시계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예상보다 20분 일찍 오셨군요. 하긴, 이 사건이 채굴된 것은 20일 전이니까요. 제가 안내하죠. 페르미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 수 없는 얘기뿐이었으니 시로네는 남자를 따라 승강기에 탑승했다.
17층에 도착하자 전면 유리창으로 채워진 사무실에서 페르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시로네.”
전에 비하면 훨씬 말끔해진 그가 마치 죽마고우를 만난 듯 두 팔을 벌렸다.
“어떻게 된 거야?”
회포를 나눌 사이는 아니었기에, 페르미는 어색하게 팔을 내렸다.
“일단 앉아. 차라도 마시면서…….”
“어떻게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지? 감정병이 창궐하지 않은 이유는 뭐야? 어째서 거리에 아무도 없는 거야?”
페르미가 피식 웃었다.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군. 하긴, 그렇겠지. 기억이 지워진 부분도 있을 테니 말이야.”
“기억.”
테라포스 대법관의 말에 의하면 시로네는 자신의 의지로 기억을 소멸시켰다.
“말해 줄까?”
페르미가 균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어때? 너도 궁금할 거 아냐? 네가 원한다면 무슨 거래를 했는지 말해 줄 수도 있는데.”
이래서 페르미가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내가 페르미와 거래를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다.’
유능한 놈인 건 사실이었다.
“됐어. 그보다는 케시아의 전말을 알고 싶어. 대체 무슨 수로 감정병을 막은 거야?”
“흐음.”
턱을 괴고 생각하던 페르미가 문을 가리켰다.
“직접 볼래?”
그가 시로네를 데려간 곳은 고아원 아이들이 엔젤이라는 마약에 취해 있는 병동이었다.
“하아. 하아.”
어린아이의 목에서 새어 나오는 가냘픈 쾌락의 신음에 시로네는 몸을 떨었다.
“이게…… 뭐야?”
“내가 만든 특제 비약. 전에 왔을 때도 봤잖아? 몇 단계 임상 실험을 거쳐 마침내 만들어 냈지. 천사의 눈물, 엔젤. 이것으로 감정병을 억제할 수 있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가 페르미의 멱살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미쳤어?”
페르미는 차갑게 바라볼 뿐이었다.
“열 살도 안 된 애들이잖아. 그 애들에게 마약을 썼다고? 그게 무슨 짓인지 알기나 해?”
“……알지.”
페르미가 입을 열었다.
“그러는 너는 어때? 지금 이 상황보다 더 좋은 것을 세상에 가져왔나?”
시로네의 눈에 불똥이 튀었으나 페르미의 목소리를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결과가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어.”
“결과? 멍청한 소리군. 인류의 짐을 전부 짊어지니 뽕이라도 맞은 기분이냐?”
“…….”
“모든 삶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결과야.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너 같은 놈도 세상엔 필요하겠지만, 제발 현실을 직시하라고.”
“……어떻게 했지?”
시로네의 손에 힘이 빠졌다.
“어떤 마약이 감정병을 막을 수 있지? 세리엘이 모든 약물을 실험해도 실패했는데.”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치료제는 개발되지 않았으니까. 물론 아직은 말이지.”
시로네는 풀었던 멱살을 다시 잡고 싶은 기분이었다.
“알아듣게 설명해.”
“내가 어떤 방법으로 오늘 안에 네가 도착할 거라는 사실을 알았을까?”
“몰라.”
“그럼 알게 해 주지.”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 페르미는 다시 승강기를 타고 2층으로 내려갔다.
회복실이라고 적힌 문이 자동으로 열리자 200개의 침대에 사람들이 누워 있었다.
“어?”
시로네도 아는 사람이 보였다.
“마르샤 누나?”
상당히 큰 소리를 냈음에도 마르샤는 미동조차 없이 잠에 빠져 있었다.
시로네가 페르미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된 거야? 설마 엔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