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19
대형 기체에 달라붙어 2초 동안 철을 갉아먹다가 황급히 자리를 옮겼다.
“흐음.”
시로네는 기계의 진화가 기묘하다 느꼈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거로군. 그것도 원거리 공격을 의식한 패턴.’
따라서 2초는 섭식과 생존의 황금 비율일 터였다.
‘너무 빨리 이동하면 철을 먹을 수 없고, 너무 오래 머물면 저격에 당한다. 그 수많은 경우들이 세대를 거치면서 현재의 패턴을 확립한 것이라면…….’
시로네는 사냥 방식을 정했다.
‘기체를 갉아먹는 순간에…….’
가늠좌에 눈을 가져다 대자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조준점을 보정해 주었다.
실제로 어깨와 손목의 각도가 틀어졌지만 동기화가 끝나서인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지금이다.’
소총이 불을 뿜었다.
레벨 1의 인공지능은 반동까지 잡아 주지는 않기에 네 발 중에 두 발이 명중했다.
캥! 캥!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 메탈랫이 절뚝거리며 도망치자 시로네가 방향을 틀었다.
‘다시.’
탕! 탕! 탕! 탕!
반동을 줄이기 위해 단발로 쏘자 정확도가 올라갔고, 불똥이 터질 때마다 메탈랫이 밀려났다.
키이이이…….
복부 쪽에 생긴 구멍에서 야광색의 액체가 흘러내리더니 마침내 동작이 멈췄다.
“잡았다.”
증강현실에 정보가 떴다.
경험치 게이지가 빠르게 올라가더니 103EXP라는 수치가 깜박거렸다.
‘3분의 1이나 올랐어. 두 마리만 더 잡으면 레벨 업이네.’
여세를 몰아 주위를 샅샅이 뒤진 시로네는 금세 두 마리를 더 사냥할 수 있었다.
“레벨 업!”
망막에 환한 빛이 차오르면서 증강현실의 메인 페이지의 레벨이 2로 바뀌었다.
“보너스 포인트.”
스테이터스 창을 열자 세 가지 항목 옆에 +1이라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인공지능에 특별한 변화는 없는 것 같지만 출력의 변화는 몸으로 느껴졌다.
‘더 강해졌어.’
심장이 아닌 기계라는 게 찜찜했지만, 솔직히 쾌감에 가까운 진동이었다.
“좋아, 금방이네. 랭커까지 가자.”
하이 기어에 심취한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었다.
강력해진 엔진을 음미하며 시로네는 철의 고향을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크리처의 종류가 다양했으나 메탈랫의 패턴보다 높은 난이도는 아니었다.
“아싸, 3레벨이다.”
일곱 마리를 사냥하는 것으로 레벨이 올랐고 인공지능에 새로운 기능이 생겼다.
‘흐음, 반동 보정 20퍼센트. 열 발 연사하면 두 발은 더 명중하겠네. 그런데 실렉티브 옵션은 뭐지? 레벨을 3까지 올렸는데도 변화가 없어.’
슬슬 페르미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아직은 크리처를 사냥하는 게 훨씬 재밌었다.
조금 더 전진하자 날카롭게 철이 긁히는 소리가 으슥한 곳에서 들렸다.
모퉁이에 등을 대고 고개를 내밀자 거대한 사족 보행 기체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기체의 중심 쪽에는 서른 마리가 넘는 메탈랫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엄청 많잖아?’
철을 갉아먹는 소리가 시끄러웠고, 어떤 크리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집단으로 모일 때는 움직이지 않네. 아니면 저 기체에 비밀이 있는 걸까?’
시로네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하나였다.
‘좋은 경험치다.’
메탈랫을 전멸시켰을 때 얻을 경험치를 생각하면 기계 심장이 절로 뛰었다.
마침내 쓸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시로네는 수류탄을 하나 꺼내 들었다.
‘안전핀을 뽑고…….’
왼쪽 망막에 떠오른 매뉴얼대로 실행하고 있는데 사족 보행 기체 너머에서 누군가가 불쑥 솟아올랐다.
“야! 너 미쳤어?”
시로네가 고개를 들자 중무장을 두른 소년이 도끼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파괴마신707.’
플래티넘 코드명이었다.
메탈랫이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파괴마신707이 철모를 부여잡았다.
“아, 씨! 다 도망치네! 야, 빨리 잡아! 경험치 탄다!”
고철 더미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붉은 머리 소녀가 튀어나와 소리쳤다.
“잡긴 뭘 잡아! 이미 늦었어!”
피해를 전혀 입지 않은 메탈랫은 엄청나게 잽싸서, 바퀴벌레처럼 빈틈으로 숨어들었다.
시로네가 안전핀을 붙잡은 채로 쳐다보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깡마른 남자가 나타났다.
‘저 사람도 플래티넘이네.’
코드명은 ‘최강코드명’이었다.
소총을 겨눈 채로 시로네에게 다가온 그가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너, 지금 우리에게 시비 거냐?”
“응? 시비?”
“네가 트랩을 깼잖아. 겨우 모아 놨더니 날로 먹으려고 해? 치사한 자식.”
그때 파괴마신707이 도착했다.
“야, 야훼2! 이 자식 진짜! 꼴에 플래티넘은 달고 있네? 하이 기어 접게 해 줄까?”
소녀가 말했다.
“그만해. 이제 곧 텐맨이 올 거야. 그 녀석들하고는 만나기 싫단 말이야.”
코드명 ‘데스공쥬’였다.
“저기…… 내가 뭔가 실수를 했다면 미안해. 보상할 방법이 있으면 할게.”
파괴마신707이 소리쳤다.
“보상 같은 소리 하네! 생바이오 주제에. 얘들아, 그냥 죽여 버릴까?”
최강코드명이 고개를 저었다.
“손해가 너무 커. 장비도 전부 무료 지급품이고, 은하도 가지고 있지 않을 거야. 일단 데려가자.”
데스공쥬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허튼수작 부리지 말고 따라와. 일부러 죽으면 스타트 지점에서 못 나올 줄 알아.”
초보자 팁에 의하면 하이 기어에서 사망할 경우 파츠와 은하를 뺏길 수도 있다.
상당히 큰 페널티지만, 빈털터리인 지금의 시로네를 죽여 봤자 풀어 주는 격이었다.
‘차라리 잘됐어.’
페르미와 약속했던 도시에 가려면 정보가 필요했기에 시로네는 그들을 따라갔다.
“에이, 씨! 철의 고향 벗어나기 더럽게 힘드네. 사냥은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한 번만 더 시도해 보자. 이 녀석을 이용하면 트랩은 금방 만들 수 있어.”
시로네가 물었다.
“혹시 아토그램이 어딘지 알고 있어? 거기서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뭔가 보상할 방법이 있을 거야.”
“흥, 우리가 물로 보이냐? 아토그램에 갈 수 없으니까 이 짓을 하는 거잖아. 거기 가기만 하면, 씨…… 나도 파츠 복구하는 건 일도 아닌데.”
“왜 못 가는데?”
데스공쥬가 말했다.
“텐맨들이 막고 있으니까. 아주 지긋지긋해 죽겠어. 운영자는 왜 가만히 있는 거야?”
“텐맨은 뭔데?”
파괴마신707은 황당했다.
“도대체 아는 게 뭐야? 그런 것도 모르면서 하이 기어에는 잘도 들어왔네.”
“도움을 좀 받았거든.”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코드명 장사겠지. 야훼2라면 비쌀 테니까. 아토그램에 있는 친구라는 놈, 사실 장사꾼이지?”
“어, 뭐…… 비슷해.”
파괴마신707이 낄낄 웃었다.
“제대로 걸렸네. 좋아, 네 암울한 미래를 말해 줄게. 아토그램에 오라는 건 거기서 네 코드명을 경매에 부칠 생각인 거야. 척살령이 떨어져서 코드 세탁하는 놈들이 널렸거든. 그런데 문제는 철의 고향이지. 여긴 유일하게 레벨 제한이 있는 곳이라 접근이 불가능하거든.”
“레벨 제한이 몇인데?”
“10. 그래서 텐맨이야. 딱 10레벨만 맞춰 두고 초보자 사냥을 하는 거지. 사냥 좀 하려고 들면 단체로 와서 죽여 버리고, 온갖 모욕을 다 준다고.”
“왜 그런 짓을 해? 초보자 구역에 가둔다고 해서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게 없잖아.”
“재밌으니까.”
파괴마신707이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재밌으니까 하는 거지. 어쨌든 숫자가 많아서 우리 셋으로는 못 뚫어.”
“그럼 결국 여기가 끝이잖아?”
“그렇지는 않아. 신규 사용자들이 모이면 그때 전면전을 하는 거지. 아니면 대형 길드에서 대규모 코드 세탁을 할 때를 기다리든가. 그럴 경우 30~40명이 동시에 들어오는데, 실력도 좋아서 텐맨 따위는 그냥 밀어 버리거든.”
시로네는 입술을 비틀었다.
‘페르미 이 자식.’
가장 중요한 정보를 쏙 빼놓고 내일 저녁까지 아토그램에 오라고 한 것이었다.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한 가지 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솔직히 짜증 나는 일이라서.”
“응? 어떤 방법?”
“그 녀석들이 요구하는 걸 들어주는 거야. 놈들은 그걸 녹화하는데, 나중에 레벨이 오르면 영상의 삭제 조건으로 거액의 은하를 요구한다는 소문이 있어. 사실이라면 놈들도 재미로만 하는 건 아닌 셈이지.”
데스공쥬가 덧붙였다.
“텐맨에 대해서는 다양한 소문이 있지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 어쨌든 철의 고향만 벗어나면 다신 볼일이 없으니까. 우리가 트랩을 만든 이유도 한 번에 레벨을 올리려고 했던 거야. 하나씩 사냥하고 있으면 어느새 텐맨이 와서 죽이거든.”
파괴마신707이 말했다.
“넌 운이 좋은 거야. 계속 사냥하고 있었지? 원래 진즉 텐맨에게 걸렸어야 했는데.”
“아니, 나도 스타트 지점에서 만났어. 이제 막 시작하는데 갑자기 저격을 하더라고.”
“저격이라면…… 혹시 대장내시경?”
“어, 맞아.”
“하하! 너도 재수가 없었네. 그 녀석 실력 좀 있지. 그래서 우리를 방해했던 거냐? 텐맨한테 자꾸 죽어서 열 받으니까 화풀이하려고?”
“진짜로 실수라니까. 그리고 죽지도 않았어. 한 번 피하니까 안 나타나던데.”
“피해? 뭘 피해?”
“저격. 아슬아슬했지만.”
정적이 흘렀다.
세 사람이 시로네를 멍하니 쳐다보는 가운데 파괴마신707이 폭소를 터트렸다.
“푸하하하! 허세 죽이네! 뭐? 저격을 피해? 그럼 네가 총알이라도 피했다는 거냐?”
“아니,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섬뜩한 살기.
반사적으로 몸을 날린 시로네가 바닥을 구르자 사방에서 총알이 빗발쳤다.
“제길! 텐맨이다!”
납작 엎드린 세 사람이 포복으로 기었으나 엄폐물까지는 너무 멀었다.
‘꼼짝없이 죽었네.’
그런데 포화 소리만 시끄럽게 들릴 뿐, 누구 하나 총에 맞은 사람은 없었다.
“뭐야?”
포복 중에 뒤를 살핀 그들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대략 11명의 텐맨.
그들이 노리는 건 오직 1명이었고, 야훼2가 탄의 궤적 사이를 맨몸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진짜로 피하네?’
어떻게든 이해를 해 보려던 파괴마신707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혹시 버그 아냐?”
하이 기어(HIGH GEAR) (4)
시로네에게 십자포화를 날려 대는 자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딱히 동작이 빠른 것도, 우아한 것도 아니다.
‘아주 미세한 차이.’
텐맨의 조장을 맡고 있는 ‘텐맨10번’은 높은 곳에서 정황을 살폈다.
‘아주 미세한 차이군.’
인공지능의 자동 조준이 잡아내지 못하는 몇 센티미터의 간극이었다.
‘보고 피하는 게 맞아. 하지만 가능한가? 10레벨 인공지능이라고 해도…….’
총알을 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시스템 오류다. 정식으로 건의를 해야 하나? 운영자랑 얽히는 건 싫은데.’
초보자를 사냥하는 텐맨의 활동도 어떤 의미로는 시스템을 악용하는 것이었다.
텐맨10번이 소리쳤다.
“사각을 없애! 표적을 겨누지 말고 공간에다가 예측 사격을 하란 말이야!”
총알이 활로를 차단하자 고지를 향해 달리던 시로네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이런……!’
몸을 뒤트는 순간 시커먼 총알이 1미터 앞에서 회전하는 게 보였다.
시로네는 더욱 집중했다.
스피릿 존은 불가능하지만 집중의 메커니즘 자체는 타의 추종을 불허.
11감도가 극한으로 치솟으면서 탄의 회전이 눈에 보일 정도로 느려졌다.
‘거의 막혔어.’
고지 점령을 포기한 시로네는 유일한 활로가 있는 곳으로 몸을 던졌다.
고철 더미의 움푹 파인 곳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탄환이 언저리를 타격했다.
철 깨지는 소리에 귀청이 멍멍했다.
“후우!”
시간의 흐름이 되돌아오고, 시로네는 적들과 등을 진 채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다시 집중.
‘셋!’
벌떡 몸을 일으키며 돌아서자 느린 풍경 속에 새까만 점들이 박혀 있었다.
시로네는 소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