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23
“너는 피할 수 있겠구나. 그럼 꺼 놓아도 돼. 아직은 네 감각이 훨씬 뛰어날 테니까.”
“아니, 그래도 해 볼래. 지금 시스템에 익숙해져야 나중에 응용하기 쉬우니까.”
결론을 내린 시로네 일행은 500미터 떨어진 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레벨 10의 출력이라면 5미터 높이는 넘을 수 있지만 문제는 총알이었다.
“온다!”
벽면에서 수백 개의 총구가 튀어나오더니 일행을 향해 불을 뿜어냈다.
타타타타타타타!
증강현실에 수십 개의 첨부선이 뜨고 그 옆에 저마다 명중 확률이 표시되었다.
반사 반응 보정, 즉 움직임 보정이 가해지면서 시로네의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훅! 훅!”
인공지능이란 결국 하이 기어 내에서 사용자의 뇌이기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말 편하다. 외부의 사고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부에서 사고가 촉발되고 있어.’
파괴마신707이 소리쳤다.
“최대한 멀리 뛰어야 돼! 50퍼센트 아래로 내려가면 그때부터 힘들어져!”
벽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음 아플 정도로 회피 확률이 떨어지고 있었다.
빗발치는 탄환을 인공지능에게 맡긴 채 시로네는 거리를 계산했다.
‘지금이다.’
하이 기어의 출력을 높여 힘차게 땅을 박차자 네 사람이 동시에 날아올랐다.
“이야아아아!”
고함 소리가 포물선을 그리고, 마침내 네 사람이 벽을 뛰어넘어 착지했다.
총성이 사라지고 적막이 찾아왔다.
“후우, 됐다.”
시로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인공지능이 공간 정보를 출력했다.
-왕도의 시작.
벽 너머는 침엽수가 심긴 울창한 숲이었고 언덕을 향해 길이 나 있었다.
새소리에 고개를 들었으나 크리처였고, 심지어 레벨도 8이나 되는 강적이었다.
데스공쥬가 말했다.
“왕도의 시작은 전자의 황무지에 퍼져 있는 사용자들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곳이야. 어떤 벽을 뛰어넘든 이 길을 지나게 되어 있거든.”
파괴마신707이 덧붙였다.
“아토그램은 하이 기어에서 처음 도착하는 중립지대야. 낮은 레벨 위주라도 의외로 규모가 크다. 동국과 서국을 결정하는 곳이거든. 그래서 랭커들도 자주 와서 동향을 듣거나 가끔은 스카우트를 하기도 해.”
본격적인 여정의 시작이었다.
***
서국 길드 랭킹 1위, 승천昇天.
사용자 맞춤형 캡슐에서 강력한 공기가 뿜어져 나오더니 문이 덜컹 튀어 나갔다.
“…….”
캡슐 안에는 곱슬머리 금발이 눈을 가린 아리따운 여성체가 서 있었다.
-하이 기어 충전 완료.
철컹 소리를 내며 기체가 흔들리더니 검은 플랫 슈즈가 땅을 밟았다.
“…….”
신장은 172센티미터, 체중은 극비.
다만 인간의 육체였다면 55킬로그램을 넘기지 않을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사용자 코드명, 오퍼레이터.
하이 기어에서 두말할 여지가 없는 최강의 하드웨어이자 소프트웨어였다.
“음.”
의도적으로 음성을 출력한 그녀는 고양이처럼 요염하게 방을 한 바퀴 돌았다.
“괜찮네.”
저번 레이드에서 손상된 부위가 복구되어 있었다.
승천 길드가 통째로 사용하는 건물의 높이는 23층이었고 그녀의 방은 22층이었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가자 승강기에 130센티미터의 작은 소녀가 서 있었다.
오퍼레이터의 눈에 코드명이 떴다.
꼬마마녀.
482레벨로, 전체 랭킹은 13위지만 듀얼 분야에서는 전체 7위에 있는 실력자였다.
‘껄끄러워.’
최단기간에 랭커가 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대하기 어려운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승강기로 걸어간 오퍼레이터가 물었다.
“22층에는 웬일이야?”
길드장 전용 층이기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길드원은 이곳에 오지 않는다.
꼬마마녀가 몸을 돌렸다.
“어? 접속했네? 노크해도 조용하더니.”
인형에 가까운 얼굴, 표정을 드러내기 어렵고 심지어 턱은 관절 인형 그대로였다.
“기체 수리하느라 잠시 나갔다 왔어. 날 찾으러 온 거야? 무슨 일인데?”
“아니, 그냥. 요즘 좀 이상해서.”
“…….”
오퍼레이터가 꼬마마녀를 대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점이었다.
“혹시 야훼라고 알아?”
“야훼?”
승강기의 층수를 확인하고 있던 꼬마마녀가 평소보다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감정은 읽을 수 없었다.
“흐음. 안다면 알고, 모른다면 모르지. 그런데 야훼는 왜? 요즘 센티멘털해진 것과 관계가 있어?”
“하이 기어에 들어왔어. 나랑 내기를 했거든. 듀얼에서 나를 이기면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호오.”
꼬마마녀의 얼굴은 여전히 웃고 있었으나 오퍼레이터는 왠지 섬뜩했다.
승강기 문이 열렸다.
먼저 들어간 꼬마마녀가 따라서 들어오는 오퍼레이터를 보며 물었다.
“그게 왜 기분 나쁜데?”
“조사를 좀 해 봤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더군. 거기까지는 좋아. 하지만 그 녀석은 하이 기어를 무시했어. 현실 세계의 인간을 위해서 나를 이용하려는 생각밖에 없다고.”
“하하! 완전 꽉 막혔잖아?”
마치 편을 들어 주는 것 같지만, 어딘가 모르게 유쾌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오퍼레이터는 더 기분이 상했다.
“물론 그 녀석의 뜻대로는 되지 않을 거야. 어차피 나를 꺾을 수는 없을 테니까.”
“아차, 번호.”
꼬마마녀가 1층을 누르며 말했다.
“물론 무패의 오퍼레이터를 꺾는 건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쉽지 않을걸. 사실 내가 야훼를 좀 아는데, 그 녀석도 보통내기가 아니야.”
“알아.”
오퍼레이터의 기분이 엉망인 이유였다.
“어제 회의에서도 말이 많았어. 시간에 대해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바이오 상태에서 소총탄을 피했거든. 이미 육체로 인간을 초월했다는 뜻이야.”
“우와, 정말? 되게 멋있다.”
꼬마마녀의 과장된 연기에 오퍼레이터는 콧잔등을 살짝 일그러뜨렸다.
“문제는 그 녀석이 내 세계를 부정했다는 거야. 그런 놈에게는 절대로 질 수 없지. 솔직히 열 받은 상태야. 박살을 내 버릴 거라고.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면 현실의 뇌에 충격을 가해서라도…….”
“오퍼레이터.”
달라진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꼬마마녀가 한결같은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뭘 하든 상관없어. 나도 응원할게. 하지만 현실의 야훼에게 위해를 가하면…….”
그래서 더욱 섬뜩한 것이다.
“너는 나에게 죽는다.”
기체는 침을 삼킬 수 없지만 오퍼레이터의 정신에서는 침이 꼴딱 넘어갔다.
“……그래.”
현실을 외면하는 그녀라도 바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꼬마마녀. 정말 이상한 사람이야.’
튜토리얼 관리자에게 물어볼까도 생각했지만, 룰을 깨는 건 절대 사양이었다.
다만 길드 생활을 하며 그녀를 지켜본 결과 한 가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아마도 카샨의 여황……이었던 사람.’
조사한 바에 의하면 현재 카샨은 간도라는 황제가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자금력에 한계가 없어. 그리고 엄청나게 해박하다. 무엇보다…….’
성전의 극비를 알고 있었다.
‘물론 나는 꿈을 해킹해서 알아낸 거지만.’
가장 핵심적인 증거는 어떤 방법으로도 꼬마마녀의 꿈에 접속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인간이 아닐 확률도 있어.’
분위기가 무거워진 가운데 생각을 끝낸 오퍼레이터가 말을 이었다.
“걱정 마. 바깥의 일에는 관심 없으니까. 물론 너와 야훼의 관계도. 나는 하이 기어에서 야훼를 박살 내면 그만이야.”
“후후, 기대할게.”
꼬마마녀의 목소리가 나긋해지자 오퍼레이터는 살며시 고개를 기울였다.
‘참 묘하단 말이야.’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얼굴에서 수백 가지 감정이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왔다.”
승강기가 1층에 도착했다.
***
“왔다.”
왕도의 시작의 마지막 지점에서 시로네는 저 멀리 있는 거대한 도시를 눈에 담았다.
아포칼립스의 멸망한 세계 이전의 모습이 이랬을까?
“정말 엄청나네.”
수많은 고층 빌딩이 하늘까지 올라가 있고, 건물 사이사이로 열차가 지나다녔다.
파괴마신707이 말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강해지는 일만 남았어. 물론 본격적으로 짜증이 날 수도 있겠지만, 괜찮겠지. 우리에게는 욜가의 아들이 있잖아.”
파괴마신707 일행은 2회 차 플레이인 셈이지만, 마음은 1회 차보다 훨씬 들떴다.
‘금화륜에 들어가는 거야.’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시로네 일행은 언덕 아래로 빠르게 질주했다.
“좋았어! 박살을 내 버리자고!”
공간 정보 : 자유 도시, 아토그램
동국과 서국 (4)
아토그램의 입구는 높이 30미터의 아치형 문이었다.
거대한 크기에도 위화감이 없는 이유는 도시의 성벽이 훨씬 높기 때문이리라.
-사용자 코드 확인. 출입 허가.
현실과 달리 여기서는 모든 게 자동이었고 거대한 철문이 좌우로 열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광경만으로도 시로네는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이야, 엄청 많잖아?”
최첨단 도시를 오가는 각양각색의 기체들.
건물의 네온사인은 수많은 색들이 번쩍거려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였다.
“욜가의 아들은 저녁에 만나기로 했으니까, 그동안 사냥이나 하자. 레벨은 우리가 올리는 거니까.”
데스공쥬가 말했다.
“그 전에 파츠부터 맞추는 게 어때? 소총으로 하기에는 좀 짜증 나는데.”
거리를 지나가는 한 팀이 시로네 일행을 보더니 폭소를 터트렸다.
“하하! 야, 저 애들 좀 봐. 저거 낡은 철모 아니냐? 아직도 저게 있어?”
“옛날 생각나네. 저거 쓰고 메탈랫 잡고 그랬는데. 아직도 텐맨들 있나?”
파괴마신707이 땅을 쳤다.
“아우, 저것들이! 내가 코드명만 세탁 안 했어도 나한테 말도 못 붙였을 텐데.”
시로네가 물었다.
“레벨 180이었다고 했지? 어쩌면 저 사용자가 더 높을지도 모르잖아. 여기는 고레벨도 모이니까.”
“아니, 저거 딱 봐도 100레벨이나 될까 말까야. 파츠만 봐도 알지. 스프레드사에서 만든 거잖아. 거긴 양산형 제품만 취급하거든. 만약 100레벨 넘는데도 저걸 장착하고 있으면 진짜 웃기는 거고.”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아토그램에 도착하면 2만 은하 정도가 모이지. 보통은 패키지 파츠를 구입하는 게 정석이야.”
시로네가 물었다.
“그럼 실렉티브 옵션은? 자꾸 ‘전자 상점’에서 뭘 구매할 수 있다고 깜박거리는데.”
데스공쥬가 말했다.
“초보자 팁은 꺼. 사냥 중에 불편하니까. 내가 말해 줄게. 일단 실렉티브 옵션으로 들어가 봐.”
시키는 대로 하자 슬롯이 하나 보였고 그 아래에 ‘전자 상점’표시가 떴다.
“실렉티브 옵션의 기능은 전자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어. 물론 지금은 ‘통신’밖에 없을 거야. 그게 2만 은하인데, 패키지를 사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져. 텐맨처럼 조직적 활동을 할 게 아니라면 말이지.”
“하긴, 우리는 말로 소통하면 되니까. 그런데 슬롯이 하나인데, 여기에 기능을 추가하는 거야?”
“응. 슬롯은 20레벨에 1개, 30레벨에 1개 더 추가될 거야. 총 세 가지 옵션을 장착할 수 있는 거지. 그리고 40레벨부터는 10레벨 단위로 새로운 기능이 ‘전자 상점’에 등록돼. 그때부터는 너의 취향이나 상황, 임무에 따라서 옵션을 골라서 조합하는 거야.”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어차피 욜가의 아들이 지원을 해 준다면 통신을 구입해도 되지만, 기분 문제니까. 저녁까지는 시간이 좀 남으니 패키지를 사서 사냥이나 하자.”
파괴마신707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맞다, 그런데 욜가의 아들이 너를 도와주는 게 확실해? 그럼 은하도 받을 수 있는 건가?”
“아마 그럴 거야.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진 건 전부 토해 내야 할걸.”
인류의 미래가 걸린 문제였기 때문이다.
“정말? 엄청 친한가 보네.”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지만 굳이 장광설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하하! 뭐…….”
파괴마신707이 시내를 가리켰다.
“그럼 ‘마론’으로 가자. 초보자가 사용하기에는 마론사가 최고니까.”
파츠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상업 구역에 들어가자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다.
“정말 많다.”
“하이 기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레벨 다음이 파츠니까. 총 270개의 회사가 여기에 상점을 차리고 있어. 개중에는 사용자가 운영하는 곳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