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24
“사용자가?”
“당연하지. 이제는 사용자끼리 모든 물건을 교환할 수 있으니까. 가판대에서 부품을 파는 사용자도 있고, 은하로 상점을 매입해서 가게를 여는 경우도 있어.”
데스공쥬가 덧붙였다.
“사용자가 만든 파츠는 신중하게 구매해야 돼. 독특하거나 뛰어난 기능이 많지만 밸런스 쪽에서 약하거든. 오른팔이 ‘메가믹스’ 회사의 제품인데 호환이 되지 않을 경우, 그때는 돈만 버리는 거지 뭐.”
“그건 네 얘기잖아.”
최강코드명의 말에 데스공쥬가 발끈했다.
“그러니까 해 주는 얘기야! 은하만 넘쳐 나면 뭐든 실험해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가난하니까. 최대한 신중하게 구매해야 하는 거라고.”
‘마론’에 도착하자 철골이 전부 보이는 인간형 기체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파츠를 사고 싶은데요. 마론 패키지 초급요. 아직도 2만 은하죠? 세일 기간은 언제예요?”
파괴마신707의 질문에 친절하게 대답한 안내 로봇은 사람보다 큰 박스를 가지고 왔다.
“포장에 신경을 많이 썼네?”
겉면을 살피자 아리따운 소녀가 꼭 사 달라는 듯 윙크를 하고 있었다.
“상업용 파츠는 전부 박스에 담겨서 나와. 박스를 개봉하면 환불 불가야. 사용하지는 않아도 특정 모델 때문에 몇 개씩 수집하는 사용자들이 있거든.”
“그럼 내용물은 확인하지 못하겠네. 하긴, 프로그램이니 하자가 없으려나?”
“하자는 없지. 그래도 내용물은 확인할 수 있어. 박스에 보면 인공지능 시뮬레이션 마크가 있을 거야. 그걸 만지면 가상 체험을 할 수 있어.”
‘여기가 가상이잖아.’라는 말을 삼키며 시로네는 박스로 손을 내밀었다.
전기신호가 시로네를 스캔하더니 어느새 파츠를 장착한 상태가 되었다.
“어라?”
외형은 거의 똑같았으나 관절마다 베어링이 박혔고 얼굴에도 접합면이 그대로 보였다.
“크크! 신기하지? 이것저것 실험해 보고 마음에 들면 구입하면 돼. 아, 데스공쥬가 말했듯이 사용자가 파는 물건은 이 기능이 없으니까 주의하고.”
‘관절이…….’
팔꿈치를 360도로 회전시킨 시로네는 목 관절을 돌려 등 뒤를 보았다.
“진짜 이상하네.”
데스공쥬가 말했다.
“처음에는 생소할 거야. 하지만 구동 관절이라는 것 자체가 전투에서는 엄청 편리하거든. 물론 나중에 가면 내구력 문제가 생기지만. 아무튼 사자. 우리는 이거 말고 다른 걸 살 수 있는 은하도 없어.”
시로네는 일행과 똑같이 박스에 있는 ‘구매’에 손바닥을 올리고 은하를 지급했다.
“즉시 교체로 선택해. 나중 가면 어차피 경험하겠지만, 그거 좀 이상하거든.”
인체 교환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들었으나 아직은 거부감이 더 컸다.
“응. 즉시 교체.”
거래가 끝나자 교체 과정이 생략되면서 안드로이드로 변한 네 사람이 탄생했다.
“이제 사냥하자. 조금만 플레이하면 파츠에 적응될 거야. 자, 그럼 어디부터 시작할까?”
최강코드명이 말했다.
“국적이 없으니 중립지대로 가야지. 물론 거기도 짜증 나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아토그램의 북문을 빠져나오자 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버려진 도시가 있었다.
징그럽게 생긴 크리처가 상주했고 몇몇 사용자들이 신나게 사냥 중이었다.
공간 정보 : 디스트로이-033
“디스트로이는 하이 기어에서 기본이 되는 사냥터야. 일단 10레벨이니까 워 로봇을 잡자. 저거 보이지?”
삼각발로 땅을 콩콩 찍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기체가 눈에 들어왔다.
자동 에임이 포착하자 시로네의 오른팔이 기계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치잉! 치잉!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어느새 손이 한 뼘 길이의 총구로 변해 있었다.
“으악!”
“보기에 좀 그래도 참아. 초보자 파츠가 이 정도면 준수하니까. 아무튼 이 파츠의 주요 화력은 에너지 탄이야. 시야 측면에 세로 게이지 보이지?”
“응. 1,000/1,000이라고 뜨는데.”
“에너지 탄은 배터리를 사용해. 배터리 하나에 1천 발을 쏠 수 있는 거지. 다른 회사에서는 실탄을 쓰는 것도 파는데, 그건 은하가 감당이 안 돼. 효율도 떨어지고.”
“배터리는 얼만데?”
“500은하. 그 정도면 아무리 사냥을 망쳐도 충분히 살 수 있는 금액이지. 이제 시작하자.”
디스트로이-033에 총성이 울려 퍼졌다.
바이오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속도가 빨랐고 화력도 막강했다.
쾅! 쾅!
네 사람의 에너지 탄이 집중될 때마다 워 로봇이 통쾌한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오백 발 남았네.”
“그래도 벌써 2천 은하나 모았어. 조금만 더 잡으면 레벨도 오를 거고.”
가장 높은 성적을 거두는 건 시로네였다.
“저쪽! 그리고 저쪽!”
팔꿈치 관절은 물론이고 목 관절까지 빙빙 돌리면서 워 로봇을 파괴하고 있었다.
‘……적응력 끝내주네. 언제는 징그럽다더니.’
어쨌거나 하나는 분명했다.
‘하이 기어는 처음이라고 했지만, 이 녀석 엄청나게 많이 싸워 본 놈이야.’
랭커들의 레이드를 위성중계로 관전한 적이 있다.
기능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온갖 전략과 전술, 순발력과 판단력.
‘레벨은 낮지만…….’
야훼2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들에게서 느꼈던 전율이 기시감처럼 밀려들었다.
‘대체 뭐 하는 놈이지?’
처음으로 정체가 궁금해졌으나 파괴마신707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 또한 누군가가 현실의 정체를 캐고 다니면 기분이 좋지 않을 터였다.
‘사냥이나 하자.’
그런 생각으로 심기일전을 하는데 갑자기 시로네가 크게 소리쳤다.
“피해!”
동시에 데스공쥬의 몸에서 불똥이 튀었다.
“윽!”
남은 세 사람이 고개를 틀자 250미터 앞에서 누군가가 히죽 웃고 있었다.
‘사용자 코드명…….’
개판5분전.
‘서국이네.’
궁감을 통해 시로네는 미리 느꼈지만, 말로 전하는 것 외에는 해 줄 게 없었다.
데스공쥬가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죽을래?”
“하하! 미안. 실수야, 실수. 건너편에 있는 늑대 잡으려다가 그만……. 미안해.”
개판5분전이 사과했으나 일행은 여전히 불쾌했다.
‘실수 같은 소리 하네.’
자동 에임이 실수를 할 리도 없을뿐더러, 관절을 덮은 파츠를 보니 20레벨 이상이었다.
‘20레벨이 여기서 사냥을 해?’
한판 붙을까 싶었으나, 기껏 구입한 장비를 잃기는 싫었기에 몸을 돌렸다.
“신경 쓰지 말고 가자. 저 녀석, 심심해서 저러는 거야. 초보자들만 골라서 괴롭히는 거지.”
시로네는 데스공쥬의 옆구리를 살폈다.
“깨졌어.”
“응. 내구력은 80/100. 마론사의 볼트 건이야. 그냥 우리가 피하자. 장갑도 우리보다 위일 테니까.”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자 시로네도 일단은 물러서며 개판5분전을 노려보았다.
그가 씩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다시 10분을 사냥할 무렵, 시로네는 또다시 짜증 나는 감각을 느꼈다.
“피해…….”
쾅!
데스공쥬의 왼팔이 박살 났다.
‘관통 판정.’
작정하고 노린 것이 분명했고, 시로네가 눈을 부릅뜨며 뒤를 돌았다.
개판5분전이 머리를 문질렀다.
“하하! 미안! 또 실수했네. 앞으로는 진짜로 조심할 테니까, 한 번만 봐주라.”
시로네는 믿지 않았다.
“싸우자. 저건 악질이야.”
“반격하면 우리도 적대 행위가 돼. 그 상태에서 죽으면 전리품을 뺏긴다고. 그게 저 녀석이 노리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로네가 땅을 박차며 에너지 건을 개판5분전에게 갈겼다.
“하하하! 쐈지? 이걸로 적대 행위야!”
23레벨의 인공지능이 시로네의 탄을 자동으로 피하고 있었다.
‘크크, 마론 따위야 쉽지.’
어차피 가진 것도 별로 없겠지만, 그는 사용자의 원통한 반응을 보고 싶었다.
“이게 바로 볼트 건이라는 거다.”
시로네의 무기보다 훨씬 묵직한 소리를 내며 에너지 탄이 튀어 나갔다.
그리고 시로네는.
“응?”
빗발처럼 쏘아지는 탄을 회피하며 계속해서 반격을 시도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고.
“어? 어?”
개판5분전의 회피 확률이 빠른 속도로 0퍼센트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동국과 서국 (5)
“이! 이, 이……!”
야훼2와의 거리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개판5분전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뭐야? 이건 뭐냐고!’
중립지대에서 초심자들을 괴롭히는 데 이골이 난 그는 나름의 매뉴얼을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의 초심자들은 자존심만 강해서, 몇 번 도발을 하면 야훼2처럼 덤벼들기 마련이다.
설령 선공을 가하더라도 반격을 하는 순간 쌍방은 적대 관계가 되는 게 하이 기어의 시스템.
그 상태에서 상대방을 제거하면 설령 국적이 다르더라도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
전리품의 내용은 랜덤으로 은하의 10퍼센트를 받거나, 특정 파츠를 빼앗을 수 있다.
수십조를 가지고 있는 고수라면 은하의 10퍼센트는 대박일 테지만, 개판5분전은 초심자의 파츠를 얻어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그리고 지금도, 이제 막 초보자 패키지를 장착한 그들을 뜯어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랬는데…….’
하이 기어의 출력을 최대로 높여 사격을 해 보지만 야훼2는 한 발도 맞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 거야?’
경험 밖의 상황에 개판5분전은 당황했고, 마침내 회피 확률이 20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이 나쁜 자식아!”
시로네가 소리치며 팔을 치켜들고, 에너지 탄이 개판5분전의 육체를 두드렸다.
“크으으으!”
물론 화력 대비 내구력이 좋기 때문에 당장 몇 대 맞았다고 사망에 이르진 않는다.
‘이건 이상해. 버그야. 시스템 오류라고.’
개판5분전은 오싹함을 느꼈다.
마치 너무 익숙해서 신경 쓰지 않았던 뻐꾸기시계가 틀린 시간에 튀어나온 것처럼.
‘거리가 좁혀지면 회피 확률은 떨어진다. 하지만 저 녀석도 마찬가지야.’
교전은 계속되었다.
시로네가 탄막의 사이사이를 피하는 가운데 몇 발이 개판5분전에게 명중했다.
몸에 불꽃이 튀고, 증강현실을 통해 손상 부위의 내구력이 떴다.
‘크크. 크크크.’
내구력 482/500.
비정상적인 상황에 잠시 당황했지만, 숫자로 보는 힘의 차이는 역력했다.
‘놈의 무기는 위력이 없어. 근거리에서 교전하는 거라면 내가 훨씬 유리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에게는 이것이 있다 이거야.’
20레벨에 활성화되는 실렉티브 옵션, ‘터보’를 발동하자 출력이 급상승했다.
“죽어라!”
에너지 탄을 쓰는 경우 출력의 영향을 받기에 화력은 전보다 2배 이상 강했다.
“크으으으!”
탄막의 속도가 빨라지자 시로네는 콧잔등을 일그러뜨리며 집중력을 높였다.
시간이 점차 느리게 흐르고…….
‘특정 패턴.’
민들레처럼 생긴 동그란 섬광의 탄착군이 또렷해졌다.
‘저기다.’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기하학이었고 시로네는 빈틈을 찾아 빠르게 파고들었다.
“으…….”
개판5분전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으아아아아!”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미친 듯이 탄을 흩뿌렸으나 시로네를 더 편하게 만들어 줄 뿐이었다.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온 시로네를 향해 개판5분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오냐!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
쾅!
개판5분전의 눈이 흔들리고, 지켜보고 있던 일행의 표정이 멍해졌다.
교전을 할 줄 알았던 야훼2가 반대편 주먹으로 개판5분전의 얼굴을 갈긴 것이다.
“컥!”
예상치 못한 충격에 개판5분전이 뒤로 넘어지고 시로네가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머리에 총구를 조준하는 시로네의 눈에 겁에 질린 남자의 표정이 보였다.
정적이 흘렀다.
파괴마신707이 중얼거렸다.
“왜, 왜 안 쏘지?”
“사람을 죽이는 건 처음이라서 그런가? 저 녀석은 그런 쪽에 민감한 것 같던데.”
시로네가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