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34
-알겠습니다.
통신이 끊어졌다.
‘이 방법을 쓸 줄은 몰랐는데.’
승천 길드에 가입한 우오린은 하이 기어의 요인들에게 감시를 붙였다.
속셈이 있었다기보다는 그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한 것뿐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만.’
시로네와 함께 태양전을 즐기려면 아직은 승천 길드에 붙어 있어야 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태대천이 들어왔다.
“…….”
길드 내에서 접속을 끊었을 경우 스타트 지점은 각자의 미드 기어였다.
루비믹스와 야귀가 슬그머니 길을 열어 주자 태대천이 꼬마마녀에게 다가왔다.
그의 무릎이 천천히 굽혀졌다.
“제가 잘못…….”
“아, 됐어.”
우오린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게 왜 그랬어? 잘 지내다가 어색하게 이게 뭐야? 나도 너희들에게 악감정은 없다고.”
다시 무릎을 편 태대천이 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냥 하던 대로 해. 내가 하는 일에 태클만 걸지 마. 어쨌든 나도 태양전에서 이길 생각이니까.”
“알겠습니다.”
“말도 편하게 해. 어색하다니까?”
“……그래.”
루비믹스와 야귀는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태대천은 승천 길드에서 가장 호전적인데, 대체 바깥에서 무슨 일을 당한 거야?’
꼬마마녀가 손가락을 겨누었다.
조금 전과는 압박의 강도가 달랐고, 길드원들의 상체가 움찔 젖혀졌다.
“피유.”
그녀가 말했다.
“나가 봐.”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그들이 천천히 돌아서더니 줄을 지어 나갔다.
꼬마마녀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이겨야지.”
만약 시로네가 도와 달라고 하면, 하이 기어의 전부를 죽여서라도 도울 것이다.
‘그럴 리가 없잖아.’
오직 시로네를 차지하기 위해 영겁의 세월을 버틴 그녀에게 거칠 것은 없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린 그녀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자신에게 되물었다.
“영혼이 있기는 하고?”
***
데모크라시, 자정.
-하이 기어의 충전이 완료되었습니다.
미드 기어의 문이 열렸다.
천천히 눈을 뜬 시로네는 어느새 어둑해진 충전소 내부를 바라보았다.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마치 긴 꿈을 꾸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통속의 뇌.’
물론 기억은 없었다.
고개를 돌리자 마피아 일행이 어디에도 가지 않고 근처를 지키고 있었다.
소나가 다가왔다.
“끝났어? 그럼 슬슬 출발하자.”
미드 기어에서 빠져나온 시로네는 실렉티브 옵션을 켜 두고 물었다.
“도나텔로를 얻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달의 잉태. 달섬이라고도 불러. 바다에 있는 섬이라 부스터를 써야 해. 실렉티브 옵션에서 등속 주행 모드를 장착하는 게 도움이 될 거야.”
능숙하게 옵션을 교체한 시로네가 충전소를 나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게시판을 보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우와! 진짜 미켈란 건이다!”
영상으로도 접하기 어려운 전설 등급 아이템이었기에 관심도는 최고조였다.
여지없이 기자가 나타났다.
“서국의 개인 기자, 히트다히트입니다! 제가 알기로 현재 100레벨일 텐데, 어째서 미켈란을 장착하셨죠? 아깝지 않으셨나요?”
마피아가 끼어들었다.
“쳇! 누가 아니래? 어차피 우리는 정산만 받으면 그만이지만. 인증 영상 올릴 테니까 구경하라고.”
나중에 금화륜이 말을 바꾸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것이지만 기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중요한 건 야훼2의 입장이었다.
“한 말씀 해 주시죠. 현재 하이 기어의 모든 사용자가 야훼2의 행보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어…….”
시로네가 말을 꺼내려고 하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냥 별생각 없이 장착했어요. 어차피 사냥해서 얻은 거니까 쓸 생각이었는데요.”
싱거운 대답에 기자는 멍했다.
“그보다는 오퍼레이터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 물론이죠!”
이어진 말에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고, 기자는 녹화 상태를 재차 확인했다.
“지금 뉴스를 보고 계신 사용자 여러분, 야훼2가 충격적인 선언을 할 것 같습니다.”
야훼2의 행보에 금화륜과 승천이 연루되어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동국의 유저가 서국 사냥터에서 미켈란을 획득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어떤 말이든 해도 좋습니다. 하이 기어의 모든 사용자들이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까요. 태양전에 대한 출사표인가요? 아니면 개인적인 도전장?”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 오퍼레이터와 통신을 한 적이 있는데요. 좀 다퉜어요. 안 좋은 말도 했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오퍼레이터와 통신을 했다고?”
그들의 머릿속에 수많은 스토리가 양산되었고, 점차 가닥이 잡혀 갔다.
기자는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개인적인 원한. 그래서 금화륜에 들어간 거야. 복수하기 위해서! 이제야 아귀가 맞네.’
오늘의 최고 뉴스는 단연 자신의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플레이를 하면서 오퍼레이터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어요. 자신감이 넘쳤던 이유도, 왜 나에게 화가 났던 것인지도.”
“응?”
“물론 여전히 양보할 수 없는 신념은 있지만, 이 기회를 통해 착각을 바로잡고 싶어요. 오퍼레이터 씨, 그때는 미안했습니다.”
시로네는 마치 오퍼레이터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기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재밌게 즐기고 있어요. 당신은 정말…… 멋진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상입니다. 그럼 저는 시간이 촉박해서.”
시로네가 자리를 떠나자 마피아 일행이 놓칠세라 빠르게 뒤를 쫓았다.
한참이나 그 자리에 서 있던 기자가 정신을 차리고 클로징 코멘트를 했다.
“이건 또 다른 의미로 충격적이네요. 오퍼레이터에게 사과한 야훼2. 과연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또한 오퍼레이터는 야훼2의 발언을…….”
승천 길드.
-또한 오퍼레이터는 야훼2의 발언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서국과 동국의 관계가 미궁에 빠진 가운데, 태양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오퍼레이터는 활주로에 앉아 있었다.
“…….”
굽힌 무릎에 손목을 얹은 채로 뉴스를 듣고 있는 그녀의 눈이 번쩍번쩍했다.
-저 히트다히트는 앞으로 계속 두 길드 간의 상황을 추적, 여러분께 전해드리겠습니다. 이상으로 오늘의 긴급 뉴스를 마칩니다.
안구의 빛이 멀어지듯 점멸했다.
“…….”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활주로의 끝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시로네.”
미켈란 건의 모티브가 되었던 인물.
가는 목선을 드러내며 밤하늘을 살피던 그녀의 신형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달의 중심에 가녀린 실루엣이 둥실 떠올랐다.
서해.
로켓엔진을 점화하며 바다 위를 날고 있는 마피아 일행은 말이 없었다.
복잡한 심정이었다.
‘가기는 가는데, 도나텔로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이러면 계속 뺑뺑이인데.’
마피아가 시로네의 옆으로 다가왔다.
“확실히 해 두자. 딱 하루만 돌아보고, 안 나오면 금화륜에 연락하는 거야. 미켈란부터 정산해 달라고.”
“알았어.”
시로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은 몰랐기에 마피아 일행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진짜지? 이거 녹화되고 있어.”
“알았다니까.”
실수만 없다면 한 번에 끝날 터였다.
‘완벽한 난수가 아니야.’
설계자의 의도대로 아이템을 얻었다는 것은 결국 패턴이 존재한다는 얘기.
‘이 세계의 시스템을 깨닫는다.’
현실에서는 입도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통 이때부터 부처의 경지라고 한다.
‘여기서는 프로그래머가 되겠지만.’
어쨌거나 하비츠 정도의 난수가 아니라면 시로네가 읽어 내지 못할 리 없었다.
“거의 도착했어.”
등속 주행 옵션을 사용했음에도 달섬에 도착하자 동력이 70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우와.”
하지만 정말 멋졌다.
“예쁘지? 꼭 마기너스를 잡는 게 아니더라도, 사용자들이 모여서 불꽃놀이를 하기도 해.”
중앙에 담수호가 있는 고리형의 섬이었고 하늘에는 거대한 달이 떠 있었다.
“달의 잉태.”
그래서 달섬이었다.
“사냥터는 저 담수호의 지하에 있어. 호수 아래로 빠지면 에르고스의 성지처럼 외부와 연결이 차단되니까, 여기서 실렉티브 옵션을 설정해야 돼.”
옵션에 대해 논의를 끝낸 그들은 부스터를 끄고 담수호 부근에 착지했다.
-마기너스 이벤트를 시작하시겠습니까?
쿠쿠쿠쿠쿠!
땅이 흔들리더니 담수호의 중앙이 좌우로 갈라지며 심연처럼 깊은 구덩이를 드러냈다.
“안으로 들어가면?”
소나가 답했다.
“얼음으로 만든 공간이 나와. 마기너스는 바다를 얼려서 터널을 만들어 이동하거든.”
대충 정보를 들은 시로네는 가장 먼저 날아올라 구덩이 안으로 들어갔다.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얼마나 깊이 떨어졌을까.
이미 섬의 두께를 넘었기에 바다 깊은 곳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피조물이여, 어찌하여 영생을 거부하는가!”
갑자기 주위가 밝아지더니 마치 다이아몬드의 안에 갇힌 듯한 풍경이 보였다.
벽 너머로 해양 생물이 오가고 있었다.
“키아아아아!”
뱀장어를 닮은 거대한 기계가 턱을 벌리자 송사리 같은 기체가 빠르게 튀어나왔다.
“쏴! 한 번이라도 놓치면 끝이야!”
마피아 일행이 송사리를 잡는 동안 마기너스는 방향을 돌려 얼음벽을 관통했다.
“따라가!”
엄청난 수량의 바닷물이 밀려들었으나 내부의 냉기에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아하, 이런 방식이구나.’
마기너스의 주특기는 냉기 분사로, 바다에 얼음 터널을 만들어 사용자를 죽인다.
‘타격 능력은 육탄뿐. 하지만 이건…….’
빠르게 잠영하며 개미굴처럼 복잡한 터널을 따라가는 건 아찔한 일이었다.
“조심해. 루트에서 이탈하면 그냥 바다야. 수압에 기체가 터져 버린다. 무조건 터널로 들어가야 돼.”
매듭처럼 복잡한 터널을 만드는 마기너스와의 유효 거리는 불과 200미터.
뒤에서는 바닷물이 밀려들고 약해진 얼음벽이 계속 파괴되는 가운데, 동력이 점차 줄어들었다.
“아, 진짜 안 맞네!”
특히나 레벨이 낮은 시로네의 동력은 이제 30퍼센트 아래로 추락했다.
‘시간이 없어.’
마기너스의 패턴을 분석한 끝에 내린 결론은 마지막 한 번의 기회였다.
‘여기다.’
8자의 형태로 심해를 우회한 마기너스가 시로네가 있는 터널을 향해 돌진했다.
‘뚫고 가려는 거야.’
자신이 만든 터널을 스스로 끊어 유효 거리를 더욱 짧게 만드는 전략이었다.
“피해! 부딪히면 죽는다!”
마피아 일행이 소리쳤지만, 이제는 시로네에게도 싸울 수 있는 무기가 있었다.
“미켈란 건.”
손바닥의 렌즈가 발동하자 빛의 입자들이 엄청난 속도로 압축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안 돼.’
현실의 감각을 상기한 시로네가 집중력을 높이자 빛의 구체가 폭발하듯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