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37
“너에게 서국 프리 패스를 준 사람, 꼬마마녀지? 정체는 아마도 카샨의 전 여황일 테고.”
“……그래.”
꿈을 해킹할 정도라면 거짓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길드원이 현실에서 당했어. 간단한 방법 같아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야. 언더 코더에서 바깥 세계와 싱크로를 맞추는 작업은.”
시간 마법을 이용했을 것이다.
“아마 내 위치도 알고 있을 거야. 잔인한 사람이니 나를 죽일 수도 있겠지.”
“걱정하지 마. 그런 방법으로 네 동의를 구하지는 않을 거니까. 처음 했던 약속대로.”
“흥, 상관없어. 마음대로 하라고 해. 모른 체한 것도 겁이 나서가 아니야. 현실의 1분은 이곳에서 거의 30분. 바깥에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태양전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하이 기어.”
오퍼레이터의 입가에 처음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솔직히 기뻤어, 내 세계를 칭찬해 줘서. 위로를 받은 기분이랄까. 미켈란과 도나텔로, 너에게 넘길게. 태양전까지 열심히 해 봐.”
“내가 이기면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오퍼레이터는 시로네를 향해 천천히 돌아섰다.
“내가 이기면 나랑 살지 않을래?”
“응?”
“네가 보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전부 내가 줄게.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 너, 현실에서 너무 힘들잖아. 나랑 아름다운 곳을 여행하고, 하이 기어도 같이 하자. 이곳의 시간은 현실보다 느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쉬고 싶지 않아?”
“…….”
단호하게 거절이란 말이 튀어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시로네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네가 만든 세계는 아름답지만 진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내 마음은 현실에 있어.”
“……그래.”
그녀는 순순히 받아들였다.
“꿈에서 봤어. 너는 현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정말 치열하게 싸웠으니까. 너에게는 이곳의 모든 게 가짜겠지. 현실이 나에게 가짜인 것처럼.”
천천히 다가온 오퍼레이터가 고개를 기울이더니 시로네에게 입술을 맞췄다.
“…….”
짧은 입맞춤을 하고 물러서자, 시로네가 눈빛으로 의문을 표했다.
“칭찬에 대한 보답이야. 하이 기어에서는 모두가 자유롭게 즐기지만, 나는 아직 누구한테도 해 준 적 없어. 가짜의 세계가 너에게 보내는 경의라고 생각해.”
훌쩍 뛰어오른 그녀가 시로네를 내려다보는 상태로 달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태양전에서 보자.”
완전무장 (4)
***
운영자 데이터베이스.
운영자 넘버세븐은 야훼2의 로그를 계속 검색해 간 끝에 달섬에 도달했다.
마피아 일행과 전투를 벌이는 과정들이 신호로 해체되어 끝없이 내려왔다.
‘도나텔로를 능숙하게 다루는군.’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다음 이어진 오퍼레이터의 등장에 넘버세븐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야?’
서국의 사용자를 스스럼없이 파괴할 때도 성질머리 고약하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
그 후로 이어진 로그들을 지켜보며, 넘버세븐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오퍼레이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 언더 코더에 있는 자들 대부분이 현실이 싫어 이곳으로 도망친 자들이 아니던가?
‘현실 세계.’
오퍼레이터는 현실의 운명을 손에 쥔 자에게서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그들 사이의 마지막 로그를 확인했을 때 넘버세븐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경의라고?’
그에게는 이곳이 전부다.
현실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인간 따위에게 경의를 보낼 일은 없는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에서 빠져나오자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공장의 풍경이 보였다.
‘그럼 나는 뭔데?’
넘버세븐은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
전설 등급의 파츠 2개를 장착한 시로네는 다시 열차를 타고 동국으로 넘어왔다.
이지스가 마중했고, 다시 열차를 타고 금화륜의 중간 거점인 나스카시에 도착했다.
건물의 대부분이 철골만 남은 도시는 을씨년스러웠으나 의외로 사용자가 많았다.
“근방에는 200레벨대의 사용자들이 많이 찾는 사냥처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건 현상금 사냥꾼의 성지죠. 특별한 불문율이 있는데, 여기서 일어난 일은 길드 간의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듀얼을 하고 싶은 랭커들이 자주 찾기도 하죠.”
시로네가 주위를 둘러보니 200레벨이라고 하기에는 강해 보이는 자들이 즐비했다.
금화륜의 아지트에 도착하자 욜가의 아들이 미드 기어에서 나오고 있었다.
“때깔이 다르군. 역시 파츠가 좋아.”
시로네가 쏘아붙였다.
“그 사람들이 배신할 걸 알고 있었지?”
“서국까지 도우러 갈 필요는 없잖아. 어차피 사망해도 아이템은 드롭되지 않으니까. 오퍼레이터의 등장은 우리도 의외였어. 무슨 얘기를 했지?”
마피아가 녹화 영상을 올린 듯했다.
“그냥 뭐…… 이것저것.”
시로네가 말을 저어하자 페르미는 의외라는 듯 돌아보았으나 깊게 파고들지는 않았다.
“따라와.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지.”
지하의 방으로 들어가자 페르미가 양손에 하나씩 파츠를 들고 돌아섰다.
“받아. 네 거야.”
동국의 사냥터에서 얻을 수 있는 강장갑 라파엘과 금속 날개 다빈치였다.
라파엘은 투박한 광물, 다빈치는 거위에서 뽑은 것 같은 깃털이었다.
“장착해?”
페르미가 손을 들어 권하자 시로네는 우선 라파엘을 장착했다.
빛이 퍼지고, 시로네의 기체 각각에 금속 구체 7개가 관절처럼 박혔다.
양쪽 팔꿈치, 양쪽 옆구리, 양쪽 무릎, 마지막은 하이 기어가 있는 명치였다.
“강장갑 라파엘은 하이 기어에서 내구력이 가장 좋은 장갑이야. 아마 사용자의 화기로는 거의 파괴 불가능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다만 사용하기가 까다롭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기체에 박힌 금속 구체는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지켜 줄 거다. 단, 7개 부위 중의 한 군데만 말이야. 증강현실에 정보가 떴을 테니, 시험 삼아 해 봐.”
“흐음.”
팔꿈치의 라파엘을 활성화시키자 오른팔 전체가 거울처럼 맑은 금속으로 덮였다.
페르미가 말했다.
“이제 오른팔은 무적이다. 물리 공격을 가할 수도 있고, 상대의 탄을 막아 낼 수도 있어. 하지만 하나가 활성화되면 다른 부위는 비게 되지.”
“그래도 파츠 내구력은 남아 있잖아.”
“물론 그렇지만, 태양전까지 300레벨을 맞추는 게 고작이라면 랭커의 공격은 치명적이지. 어떻게든 라파엘로 막아 내는 수밖에 없을 거야.”
“깃발 올리기 게임 같은 거네. 어떤 상황에 어떤 부위를 활성화시킬지 말이야.”
“단순해 보여도 총알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난이도는 최상이야. 스키마 유저라면 더 쉬웠을 테지만, 어차피 진짜 육체도 아니니까 너라면 적응할 거다.”
시로네는 각각의 라파엘을 번갈아 활성화시키며 방어 범위를 가늠해 보았다.
“상체 방어가 제일 까다로워.”
페르미가 동의했다.
“선택지가 3개니까. 왼쪽 옆구리를 활성화시키면 등을 포함한 상체 절반이 커버돼. 오른쪽은 그 반대. 마지막으로 심장, 즉 하이 기어가 있는 가슴이야.”
“머리는 불가능하군.”
페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라파엘을 장착해도 헤드샷의 가능성은 여전히 있어. 물론 팔이나 다리로 막으면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회피를 염두에 두어야 해. 그때를 위해 필요한 것이…….”
시로네가 깃털을 들었다.
“금속 날개 다빈치.”
장착하자 깃털이 나풀거리는 이펙트를 내며 시로네의 등에 새로운 파츠가 장착되었다.
외관상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다빈치가 금속 날개라 불리는 이유는, 실제 날개가 아니라 기계장치이기 때문이지. 풀 버스터라 불리는, 폭발력을 이용한 추진체야. 열어 봐.”
시로네가 다빈치를 활성화시키자 등 쪽의 어깨판이 열리면서 에너지 분사구가 튀어나왔다.
“동력 100퍼센트.”
시로네가 문구를 읽자 페르미가 설명했다.
“100퍼센트라고 해도 풀로 가동하면 10초도 안 돼서 전부 소진될 거다. 아껴서 써. 자체 충전식이지만 다시 채우려면 시간이 꽤 오래 걸리거든.”
“어떻게 충전하는데?”
“태양. 하이 기어의 세계관에 의하면, 다빈치는 로우 기어의 기술로 만들어진 물건이야. 따라서 미드 기어를 거치지 않고 태양력을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지.”
“흐음, 엄청나게 강력한 부스터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전설 파츠는 사용자의 실력에 좌우된다고 들었는데, 다빈치도 다루기 어려운 점이 있어?”
“있지. 한번 사용해 봐.”
“여기서?”
페르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스카시의 모든 건물은 어차피 버려진 거야. 어디 좀 부서진다고 손해배상 청구할 사람 없어.”
“알았어. 그럼…….”
시로네는 다빈치를 가동했다.
분사 장치의 렌즈에서 푸른 빛이 켜지는 순간 기체가 마하를 뛰어넘는 속도로 튀어 나갔다.
“이……!”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끝없이 벽을 관통하며 멀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던 페르미가 중얼거렸다.
“빨라도 너무 빠르거든.”
10분 뒤.
시원하게 뚫린 지하의 터널에서 시로네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기체가 전부 긁혀 있었다.
“너…… 죽을래?”
추진 속도 그대로 벽에 부딪혔다면 시로네는 지금보다 훨씬 빨리 돌아왔을 터였다.
‘사망했을 테니까.’
하지만 스타트 지점이 아닌 갔던 길로 다시 왔다는 것은 적응이 끝났다는 얘기였다.
페르미는 시로네의 오른팔이 선명한 은색 금속으로 덮인 것을 보았다.
‘반응 속도 죽이는군.’
충돌 직전에 라파엘을 발동, 기체를 보호하며 계속 뚫고 나갔던 것이다.
“실전만큼 확실한 게 어디 있겠어? 이제 알겠지? 하나하나의 기능도 뛰어나지만, 4대 전설 무기는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사용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레벨 차이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뜻이지.”
시로네가 페르미를 싫어하는 이유는 사실만 말하는 거짓말쟁이이기 때문이었다.
“쳇, 이런 건 말로 해도 되잖아.”
페르미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게다가 시폭에 박지까지 있으니, 전설 등급의 효율도 올라갈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오퍼레이터를 꺾을 확률은 10퍼센트가 안 되지.”
오퍼레이터가 얼마나 강한 기체인지 달섬에서 똑똑히 확인한 시로네였다.
페르미가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 어디까지 올릴 수 있냐? 현실에서는 끝까지 갔잖아.”
하이 기어의 깨달음이 현실의 입도라면, 공진과 무태, 울티마가 남았다.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입도가 끝이지. 그다음부터는 관철의 문제야. 공진은 세계와 내가 동화되는 것. 하지만 나에게 이 세계는…….”
진짜가 아니다.
“진짜라고 마음을 먹으면 되는 것이지만, 또한 그럴 수 없는 게 마음이지. 나는 현실을 위해 이곳에 있는 거야. 오퍼레이터를 꺾고, 아포칼립스를 발굴해서, 세상의 마계를 없애는 게 목표라고.”
페르미는 이해했다.
“흐음, 그럼 지금 가진 것만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뜻이군. 어쨌든 좋아. 금화륜은 너를 오퍼레이터에게 운반해 주면 되는 거니까.”
그다음은 시로네의 일이었다.
“나가자. 최소한 300레벨은 되어야 오퍼레이터의 출력에 맞출 수 있을 거야. 선생님을 붙여 주지.”
“선생님?”
페르미를 따라 밖으로 나가자 금화륜의 멤버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1진들이 아우라를 뽐내고, 그 뒤편으로 파괴마신 일행이 어색하게 서 있었다.
“어? 야훼2.”
시로네를 발견한 그들이 달려왔다.
서국으로 간 사이에 상당히 레벨을 올렸는지 파츠가 전보다 훨씬 고급스러웠다.
“우와! 미켈란 건이다!”
하지만 그들의 외형은 4대 전설 등급을 장착한 시로네 앞에서 빛이 바랬다.
이지스가 다가왔다.
“전설 등급을 먼저 찾은 이유는 난이도도 그렇지만 레벨 업이 빨라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와일드 웨스트와 함께 사냥터를 돌게 될 것입니다.”
시로네는 코드명 와일드 웨스트를 돌아보았다.
전신이 해골이었고 카우보이모자를 썼으며 44구경 매그넘을 장착하고 있었다.
갈비뼈 안쪽에서 반짝이는 하이 기어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반갑다. 와일드 웨스트다.”
해골이 말을 하는 게 기괴했지만 하이 기어에서 불가능한 건 없을 터였다.
“아, 반갑습니다.”
데스공쥬가 말했다.
“앞으로 우리도 레벨을 올릴 거야. 목표는 마그난. 2진에 들어갈 정도는 되어야 태양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웨스트가 엉거주춤하게 서서 말했다.
“나에게 맡겨 둬.”
총을 뽑아 들 듯 자세를 취한 몰골이 우스웠으나 코드명은 분명 익숙했다.
‘내구력의 웨스트.’
스컬사의 장갑을 장착한 그는 확실히 듀얼보다는 사냥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럼 출발하지. 태양전까지 최소 300레벨. 그 이후에는 1레벨이라도 더 올려 두는 게 좋아.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걸리니, 여기부터 정복해 볼까?”
시로네는 웨스트를 따라 나스카시 인근에 있는 사냥터로 들어갔다.
크리처 레벨이 시로네보다 100레벨이 높았지만 못 잡을 정도는 아니었다.
“우와…….”
마치 20레벨에서 철갑탄으로 사냥한 것처럼 경험치 게이지가 쭉쭉 올랐다.
시간이 지나자 사용자들이 몰려들었다.
“어이, 저기 봐. 야훼2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