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39
매끈한 금속 기체에, 정수리 쪽에 포니테일처럼 장식을 단 사용자가 다가왔다.
코드명 공주.
레벨 랭킹 93위의 실력자였다.
“태양전 실제로 하는 건 처음이지? 아마 충돌하는 순간 죽을 거야. 스타트 지점에서 잘 뛰어 봐.”
파괴마신707이 발끈했다.
“흥! 하는 건 처음이어도 중계는 엄청 봤어. 그리고 우린 금화륜이라고.”
공주가 어깨를 으쓱했다.
“하아, 금화륜도 한물갔네. 아무리 3진이라고 해도 200레벨대를 데려오다니. 그리고 코드명은 그게 또 뭐야? 파괴마신? 데스공쥬? 호호호! 이제 보니 내 짝퉁이잖아?”
데스공쥬의 인상이 구겨졌다.
“웃기지 마! 나는 진짜로 공……!”
황급히 말을 멈춘 그녀는 상대하기 싫다는 듯 몸을 돌려 인파에 숨어 버렸다.
-태양전 개시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카운트가 시작되고, 모든 사용자들이 위성 영상을 확인하며 출진 준비를 했다.
-태양전이 열렸습니다.
메시지가 뜨는 순간 수천 명이 동시에 하이 기어를 가동하자 굉음이 터졌다.
20킬로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그보다 먼저 탄과 탄의 교환이 일어났다.
퍼어어어어엉!
270명이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갔다.
“빨리! 빨리 움직여!”
꼬마마녀는 자신의 부대를 이끌고 태양궁의 정문을 향해 질주했다.
가장 먼저 정문을 차지한 그녀는 위성 영상을 통해 시로네의 위치를 가늠했다.
“응?”
그 순간 깨달았다.
“뭐야?”
영상에 잡힌 동국의 거대한 흐름은 처음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중앙이 아니야.’
서국과 똑같이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며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양전을…….”
영상이 전하는 의미는 명백했다.
“이길 생각이야.”
등골을 타고 전기가 흐르는 기분을 느끼며 그녀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후후. 후후후.”
탁월한 선택이다, 시로네.
태양전 (2)
하지만 그렇기에.
‘짜증 나네.’
시로네가 태양전을 이기겠다는 것은 이 세계의 사용자가 되겠다는 뜻이다.
시로네는 모두를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시로네를 사랑한다.
‘그렇게 되어 버린 것. 선택의 여지는 없어.’
이 행성에서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유일하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시로네뿐이었다.
‘빼앗을 거야.’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야훼가 사랑하는 무한에 가까운 것들 중의 하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가자. 서쪽으로 간다.”
승천 2진의 사용자가 의아한 듯 물었다.
“기껏 중앙을 차지했는데요? 서쪽으로 가 봤자 이미 다른 사용자들이 널렸을 거예요.”
태양전에서 활약한 결과는 포인트가 되고, 그것이 태양전 랭킹으로 집계된다.
요충지를 점령하는 게 중요한 이유였다.
“제대로 해 보려고. 이번 태양전은 좀 힘들 거야. 최선을 다해 서국이 이기도록 만들겠다.”
시로네가 한다면, 그녀도 한다.
“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자유분방의 대명사인 꼬마마녀의 각오에 승천 2진도 열의에 불타올랐다.
‘하여튼 말은…….’
현실에서 수많은 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그녀였기에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자, 가자! 서국을 위하여!”
어쨌거나 승리를 위해서는 그들의 사기를 고조시킬 필요가 있었다.
한편, 동국에서는 시로네를 위시한 금화륜이 치열한 접전을 펼치고 있었다.
포화가 터지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탄들이 사방에서 빗발쳤다.
‘전투는커녕, 살아남는 것조차 힘들어.’
최초의 전투는 화력전.
사망해도 스타트 지점에서 부활하면 그만이기에 모든 화력을 쏟아붓는 것이다.
동국과 서국을 막론하고 레벨이 낮은 사용자부터 속속들이 죽어 가기 시작했다.
‘태양전에서 사용자의 상태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죽지 않고 계속 싸우는 자.’
현재 시로네를 비롯한 랭커들이었다.
‘둘째, 사망한 자.’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갈 때까지 전장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자들.
‘셋째, 스타트 지점에서 합류하는 자.’
이 부류가 핵심이다.
‘얼마나 빠르게 합류하는가, 또 얼마나 많은 자들이 합류하는가에 따라서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어.’
이들의 속도와 위치를 통제하는 것이 죽지 않고 계속 싸우는 자, 즉 랭커의 실력이었다.
“이히히히! 죽어라, 죽어! 다 죽어라!”
동국의 한 사용자가 전쟁과는 무관하게 아군에게 총탄을 퍼붓고 있었다.
아마라 일체형이라는 것은 레벨이 100조차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어? 파츠다, 파츠!”
땅에 떨어진 전리품을 발견한 그가 불로소득을 노렸으나 유탄에 맞아 박살이 났다.
‘……넷째, 전쟁과 무관하게 활동하는 자.’
카테고리를 하나 더 만든 시로네는 태양전의 흐름을 대충 그려 볼 수 있었다.
‘이 전쟁에서 랭커가 가진 목숨의 무게는 엄청나다. 랭커 1명이 사망하면 순식간에 구멍이 생겨. 그러면 두 번째 부류의 사망자가 늘어나고…….’
병력 보충에 연달아 딜레이가 생기면 태양전에 패배하게 되는 것이다.
‘서서히 소강되고 있다.’
현재 사망자는 2천이 넘었고 동국과 서국의 비율은 5 대 5로 비등했다.
가장 격렬한 최초의 충돌.
그 화력의 총합에서 생존한 자들만이 남는 이 시점이야말로 태양전의 서막이었다.
-별동대는 동쪽 성벽으로! 와일드 웨스트 씨는 후방에서 엄호해 주세요!
-수호 길드 2진 발견! 좌표 전송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금화륜의 커맨드 센터에서 실시간으로 계속 통신이 들어왔다.
400레벨이 넘는 서국의 사용자들이 충돌하면서 마침내 국지전이 발발했다.
‘사망은 안 돼. 아예 죽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병력이 되돌아올 때까지는…….’
그 순간 깨달았다.
‘뭐야, 그러니까.’
오퍼레이터.
하이 기어 역사상 패한 적이 없는 전설적인 행보에는 태양전도 포함된다.
‘한 번도…… 사망하지 않았다는 건가.’
얼마나 경이로운 기록인지 몸으로 깨닫는 순간 오싹 전율이 흘렀다.
시로네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부턴가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경쟁에 대한 투지가 다시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랭커를 잡는다.”
작전을 변경한 금화륜이 야훼2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야훼2!”
승천 길드는 아니지만 랭킹 게시판에서 본 적이 있는 코드명들이 달려들었다.
라파엘의 강장갑이 철갑탄을 튕겨 냈다.
몇 번의 듀얼 연습을 했지만 실전에서 마주친 랭커들의 실력은 차원이 달랐다.
도나텔로의 전방위 시야 속에서 반투명하게 아른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스텔스.’
황급히 몸을 틀자 실물의 탄환이 스쳤고, 랭커들이 동시에 덤벼들었다.
“잡았……!”
박지의 감각으로 코드를 뛰어넘은 시로네는 금속 날개 다빈치를 가동했다.
마하의 속도로 날아간 그는 스텔스 사용자가 반응하기도 전에 주먹을 내밀었다.
라파엘의 금속으로 뒤덮인 오른팔이 그의 하이 기어를 꿰뚫었다.
“컥!”
스텔스가 해제되면서 전류에 휘감긴 랭커의 기체가 괄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나 잡았다.’
랭커를 사망시킨 것은 크다.
스텔스 작전이 실패한 랭커들이 모습을 감춘 가운데 경고음이 들렸다.
-공격 감지.
도나텔로의 전방위 시야를 통해 자신에게 날아드는 섬뜩한 섬광이 보였다.
빠르게 하늘로 날아오르자 섬광이 처박힌 자리에 충격파가 터졌다.
“미켈란 건…….”
위력의 정체를 깨달은 야훼2의 앞에 승천의 길드원이 버티고 있었다.
사용자 코드명, 미스틱.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이었으나 하체는 괴형으로 거대한 거미의 다리였다.
‘듀얼 랭킹 전체 24위의 실력자.’
미스틱이 미켈란 건을 들고 말했다.
“영상 봤어. 야훼2, 유명하더라. 하지만 미켈란 건은 서국이 오리지널이거든.”
그녀의 손바닥 위에 빛의 연기가 맴돌더니 급격하게 구체로 압축되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동시에 움직인 두 사용자는 전장을 종횡무진 달리며 섬광을 쏘아 댔다.
‘엄청나게 빠르다.’
미스틱의 괴형체는 지상전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 시로네를 추적하고 있었다.
“호호호! 고작 그 정도였어?”
307레벨의 출력으로는 450레벨이 넘는 미스틱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크윽!”
코드를 점프했으나 랭커의 인공지능은 곧바로 야훼2의 위치를 추적했다.
“후후.”
그녀의 미켈란 건에서 수십 개의 빛의 구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쏘아졌다.
‘다중탄?’
코드를 점프할 공간을 막은 미스틱이 희열의 미소를 지으며 돌진했다.
‘이미 영상으로 분석했다고.’
연쇄 폭발이 일어났으나 연무가 걷힌 곳에 야훼2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쳇! 다빈치.’
혀를 차며 상체를 뒤튼 미스틱이 다시 미켈란 건을 발동하려는 그때.
“…….”
전투에 정신이 팔린 자들마저 싸움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한 빛의 구체가 탄생했다.
“저, 저게 뭐야?”
야훼2가 미켈란 건을 하늘로 쳐들고 있었고, 직경 4미터의 광체가 무섭게 진동했다.
“더.”
시로네의 눈이 부릅떠지는 순간 빛의 구체가 폭발하듯 더욱 크기를 키웠다.
과연 저것이 어떤 위력을 낼지 순수한 의문에 사용자들은 승패마저 잊었다.
“오리지널이 뭔지 보여 줄까?”
미켈란 건은 시로네를 모티브로 한 무기다.
“이게 포톤 캐논이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온 힘을 다해 팔을 휘두르자 거대한 섬광이 쭉 하고 뻗어 나갔다.
“피해……!”
거미의 다리가 급격히 굽혀지는 순간 섬광이 처박히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퍼어어어어엉!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듯 반경 수십 미터 내에 남아 있는 사용자는 없었다.
“후우.”
그 섬뜩한 위력을 목도한 동국의 사용자들이 하늘로 탄을 쏘며 소리쳤다.
“좋아, 가자!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이긴다! 태양궁을 차지하는 거야!”
2명의 랭커가 사라진 곳은 서국의 약점이 되었고 동국은 끝없이 밀고 들어갔다.
위성 영상을 확인한 이지스가 통신했다.
-현재 스타트 지점에서 부활한 병력을 전부 동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최대한 밀고 들어가세요.
동국의 사용자들이 뒤를 따르자 시로네의 하이 기어가 심장처럼 박동했다.
‘이긴다. 우리가 이길 거야.’
조금씩…… 마음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편, 운영자 회의실에서는.
“저건 도대체 뭐지?”
오퍼레이터와 넘버세븐을 제외한 10명의 운영자들이 태양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이 만든 세계의 최대 이벤트이기도 하거니와, 즉각적인 오류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막대 사탕 마크가 말했다.
“미켈란 건의 양자 수집 기능은 기본적으로 세계의 광자 총량하고 같아요. 하지만 특정 구간을 지날 때마다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응집 시간은 길어져요. 현재의 위력은 명백히 비정상적이죠.”
검은 서클 마크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