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042
‘모두 싸우고 있어.’
현실이 아니라고 해도, 시로네를 위해 희생한 친구들의 마음은 진짜였다.
‘나도 싸우고 있다.’
비로소 이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공진.
시로네의 감각이 시뮬레이션을 이루는 코드의 배열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렇기에.’
나와 세계가 다르지 않다.
미켈란 건이 만든 빛의 구체가 흔들리자 풍경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동국과 서국을 막론하고 태양전의 사용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전투를 멈췄다.
“어? 어?”
중계 화면에 보이는 것은 마치 태양.
야훼2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은 직경 10미터가 넘는 황금빛 구슬이었다.
“크윽!”
오퍼레이터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걸었다.
‘저게 뭐야?’
하이 기어의 최초 설계자인 그녀조차 상상해 보지 못한 크기의 광자였다.
야훼2가 섬광을 쏘자 오퍼레이터의 인공지능이 공격 정보를 출력했다.
-탄막 레벨, 879레벨.
직사의 궤적, 오직 속도만으로 정의된 회피 난이도 앞에서 그녀는 섬뜩했다.
‘피……!’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섬광이 직격하면서 충격파가 반경 일대를 휩쓸었다.
퍼어어어어엉!
현장을 분석하는 운영자 회의실은 고요했다.
“…….”
누군가 답답한 듯 쏘아붙였다.
“몇이야? 빨리 말해.”
막대 사탕 마크에 불이 들어왔다.
“210만 포스요.”
분위기는 더욱 답답해졌고, 침묵의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터였다.
‘불법 프로그램은 아니야. 하지만 미켈란 건으로 이런 위력을 내면 안 돼. 저건 무한대로 쓸 수 있단 말이야.’
명백한 밸런스 파괴다.
‘긴급조치를 해야 하나?’
미켈란 건 하나로 태양전의 승부가 갈린다면 사용자들에게서 말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태양전이 진행되는 와중에 패치를 하면 그것도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을까?
“일단 지켜보죠.”
톱니바퀴 마크가 말했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오퍼레이터의 플레이를 승인한 거니까요.”
그들이 다시 시선을 돌린 곳에, 크레이터가 선명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태양전의 사용자들은 화면에 넋을 잃었다.
“세상에…….”
고도에서 찍은 영상에서도 육안으로 확인될 정도로 거대한 함몰이었다.
“후우우우.”
그 중심에 흑장을 땅에 박아 넣은 오퍼레이터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막, 막았다.”
찰나의 순간에 그들이 본 것은 검은 자기장이 엄청난 크기로 확장된 것이었다.
페르미가 중얼거렸다.
“남은 출력을 전부 붕괴에 쓴 건가?”
하이 기어의 동력과는 별개지만 충전 시간은 미켈란보다 훨씬 길었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다.’
붕괴를 잃어도 오퍼레이터는 강력하지만, 적어도 승률은 현실적인 수치였다.
동국의 사용자들이 소리쳤다.
“가라, 야훼2! 오퍼레이터를 해치워!”
그 천 명의 함성을 가슴에 묻고 시로네는 크레이터 안으로 뛰어들었다.
오퍼레이터의 눈에 불이 들어왔다.
‘동력이 애매한데.’
한 번도 죽지 않고 끝까지 싸웠기에 그녀의 동력은 다른 랭커보다 낮았다.
깔끔하게 적을 섬멸하고 유유히 돌아가는 게 오퍼레이터의 상징이었지만.
“…….”
지금은 적을 앞에 둔 상황이었다.
‘19퍼센트. 당분간은 버틸 수 있어. 야훼2를 파괴하고 태양궁으로 가면…….’
다음 순간,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더니 태양궁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중계 화면 앞이 술렁거렸다.
“뭐, 뭐야?”
오퍼레이터가 도망치고 있다.
하이 기어 역사상 처음으로 보는 광경이었기에 그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설마, 무패의 기록 때문인가?”
분명 1패는 뼈아프다.
하지만 그 1패를 지키기 위해 도망치는 모습 또한 결코 명예롭지는 않았다.
시로네는 오퍼레이터를 뒤쫓았다.
‘명예 때문이 아니야.’
그녀가 무패를 지키는 이유는…….
‘이곳이 전부이기 때문에. 현실을 피해서 도망친 이 세계가 진짜여야 하기 때문에.’
패배는 곧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얼마나 돌아가기 싫었으면.’
오퍼레이터가 받은 상처는 십분 이해하지만, 또한 시로네는 알고 있다.
죽음이란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님을.
‘공진, 다빈치.’
금속 날개가 발동하면서 야훼2의 기체가 총알처럼 앞으로 쏘아졌다.
오퍼레이터는 이를 악물고 달렸다.
‘절대로 죽지 않아.’
이 세계가 현실이다.
매일같이 싸우는 부모의 감정도, 그들을 버렸다는 죄책감도 한낱 허상일 뿐.
‘죽어서는 안 돼. 죽는 순간…….’
깨닫게 된단 말이야.
현실이 어디인지, 사실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
마음은 조급하다.
하이 기어 최강이라고 자부했던 기체도 그녀의 마음을 태양궁에 놓아 주지 못한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빠르게 곁을 지나치며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야훼2.’
경직된 사고에서 흑장이 휘둘리고, 시로네의 기체가 코드를 뛰어넘었다.
‘이중 점프?’
멀리 찍어 가까이 온다.
1밀리미터 간격으로 흑장을 피한 시로네가 라파엘과 다빈치를 동시에 발동했다.
콰앙!
야훼2의 주먹이 로켓처럼 쏘아지며 오퍼레이터의 가슴을 정면으로 관통했다.
“컥……!”
그녀의 표정은 시뮬레이션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겁에 질려 있었다.
대륙 전체가 침묵에 잠긴 가운데 시로네가 권을 찔러 넣은 채로 말했다.
“오퍼레이터.”
그녀의 두 눈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제 1승 1패다.”
미소를 짓고 있는 야훼2를 본 순간, 망가진 하이 기어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리로리드 (1)
그것은 태양전에서 싸우고 있는 사용자들이 모두 정지할 정도의 충격이었다.
“오퍼레이터가…….”
명치를 뚫고 들어간 시로네의 손이 그녀의 등 밖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의심할 여지 없는 치명상.
“흐윽.”
팔을 뽑아내자 앞으로 비틀거린 오퍼레이터의 몸에 전기가 흘렀다.
이를 악문 채로 고개를 치켜드는 순간, 그녀의 기체가 펑 하고 폭발했다.
“사망했다.”
여느 사용자와 다를 것 없는 이펙트였으나 어째서인지 더욱 찬란해 보였다.
하이 기어 역사상 초유의 사태에 사용자들은 심지어 두려움마저 느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무도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그때, 시로네가 동국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자, 가자!”
그 목소리에 자석처럼 이끌린 듯 동국의 사용자들이 함성을 터트렸다.
“오퍼레이터를 쓰러뜨렸어! 무적이 아니야! 이제부터 동국의 시대가 온다!”
동국의 병사들이 터보를 발동하자 팽팽하던 전선이 순식간에 300미터나 밀렸다.
욜가의 아들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 그대로 기세.’
흥분이 최고조에 달한 그들이기에 지금 당장은 싸우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이지스에게 통신이 왔다.
-통제할까요? 너무 무리하게 강행하면 나중에 딜레이가 걸릴 수도 있습니다.
-놔둬. 어차피 이건 통제 못해.
하이 기어 최강의 기체에게 1패를 새긴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정도의 기세를 만드는 것도 야훼2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했지. 동국의 병력을 핵심 점령지로 유인시켜. 거기만 지켜도 이득이야.
-알겠습니다.
페르미는 꼬마마녀를 돌아보았다.
“더 할 겁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살기로 몰아붙이던 그녀는 전투 의지가 없어 보였다.
“오퍼레이터를 듀얼로 쓰러트리는 것, 조건은 클리어 했네. 야훼2에게 더 남은 게 있나?”
“있죠.”
시로네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알잖아요, 어떤 놈인지.”
그저 결과를 내는 게 전부였다면 오퍼레이터에게 여지를 남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납득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계속하는 수밖에요.”
“애프터서비스 확실하네. 역시 대기업이야.”
“……고객이 까칠하잖아요.”
금화륜의 입장에서 시로네는 진상 중의 진상이었다.
“하하, 그래도 잡고 싶지.”
거기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은 채, 페르미는 부스터를 켜고 날아올랐다.
“재밌게 해 보죠. 동국이 이길 겁니다.”
그가 동국의 아지트로 향하자 꼬마마녀도 태양궁 쪽으로 몸을 돌렸다.
“흐음.”
오퍼레이터의 얼굴이 궁금했다.
***
운영자 회의실.
오퍼레이터의 사망은 사용자들뿐만 아니라 운영자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졌잖아?”
운영자에게 개별적으로 도착한 메시지가 공유 채널을 타고 연달아 터졌다.
“윽! 깜짝이야. 뭔데, 무슨 일이야?”
스마일 마크가 말했다.
“게시판 폭주예요. 사용자들이 오퍼레이터의 사망 장면을 올리고 있는 모양이에요.”
저마다 게시판을 확인하자 말 그대로 영상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제목, 오퍼레이터 사망! 가장 처음 올라온 게시판은 벌써 조회 수가 7천을 넘었군요.”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라는 거지. 솔직히 나도 오퍼레이터가 패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어.”
막대 사탕 마크가 말했다.
“거기에 대해서 말인데요, 마지막에 야훼2가 코드를 두 번 점프한 것은 이상해요. 눈앞의 문을 열기도 전에 두 번째 문의 위치를 아는 셈이라고요.”
“흐음, 게스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네. 문의 위치를 전부 알고 있는 건 집주인뿐이죠. 이건 분명 호스트의 권한입니다.”
톱니바퀴 마크가 말했다.
“오퍼레이터도 호스트야. 기습적인 상황이었다고 해도 예측이 불가능하지 않았을 텐데?”
“로그를 보면 순간의 경직이 보여요. 어쨌든 인간이니까요. 역시 문제는 야훼2예요. 이미 개인의 개성이라고 불릴 수준이 아닐 정도로 감각이 올라간 상태입니다.”
회의실에 정적이 흘렀다.
“이걸 봐.”
검은 서클 마크가 창을 띄웠다.
“현재 야훼2의 움직임이다.”
보이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수많은 코드의 질주, 그래서 더 충격적이었다.